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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Jan 24. 2023

마흔 셋에 받은 용돈

힘들어하는 나에게 엄마는 꾸준히 전화를 해왔다. 

아침은 먹었는지, 

기분은 어떤지, 

물어보았다. 


난 왜 이럴까. 

자꾸 넘어지고 과거만 들여다보고. 

내 옆의 동료는 가족들과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랑하면서 잘 사는데.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는 게 옆에서도 절절히 느껴졌다.

그들에게는 귀여운 딸 두 명도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결혼 생활은 망한 지 오래처럼 느껴졌다.

실패한 인생을 살아온 것 같아. 


큐티 시간에 나눔을 하면서 내 진짜 기분을 숨길 수가 없었고 

그럴수록 엉망진창인 내 기분은 여과없이 드러났다. 

잘 숨겨지지 않았다. 

무너져가는 내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 

수업도 해야하는데. 

왜 수업 전에 이미 기분이 망가지는 걸까.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아. 


그날도 엉망인 마음 그대로 수업을 끝내고 

지친 마음으로 지하철역에 가고 있었다. 

아침에 세 번이나 엄마가 전화를 했었지만 받지 않았었다. 

그래도 자식된 도리로서 전화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괜찮다고 할 걸 그랬나. 

다 괜찮다고. 

왜 사실대로 말한 걸까. 

엄마에게. 


-다 망한 것 같아. 내 인생 다 망한 것 같아. 

말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결국 난 어떻게든 내 마음을 드러내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난 어릴 때가 너무 행복했나 봐. 초등학교 때. 그때가 너무 좋아서 그 후로 그 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봐.자꾸 그때 기억만 떠오르고. 


지하철에 앉아서 엄마에게 말하는데 눈물이 터져버렸다. 

객실 안에는 서너명이 앉아있었다. 

다행히 내 맞은 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맞은편 옆 좌석에 앉은 누군가가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상관없었다. 


-나도 어릴 적 고향에서 뛰어놀 때가 좋았지. 다 그런 거야. 어릴 때가 좋은 거야. 나이들면 어릴 때만 생각난다. 너도 이제 늙었나 보다.


엄마의 그 이야기를 듣는데 또 눈물이 났다. 내가 알기로 엄마를 낳아준 외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 그래서 새엄마 밑에서 컸다. 그런데도 그 때가 좋았다니. 정말 인생은 왜 이런 걸까. 왜 이렇게 힘든 걸까. 


힘들다는 말을 하기만 했어도 한결 마음이 나아진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집 사느라 얻은 대출금 빚 때문에 내가 우울증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음날.


-오십 만원 부쳤다. 남편한텐 말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 거 해라. 백화점에서 쇼핑도 하고. 


차마 안 받는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게 아니야. 돈 때문이 아니야. 

하지만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고마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엄마 때문에 버티고 있는 것 같다.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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