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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May 11. 2023

좋은 냥집사가 되기 위하여

냥이들 힘의 균형 맞춰주기

얼마전 '바람잘날없는 냥이들'이라고 독자분들의 큰 사랑을 받은 글이 있다. 둘째에게 늘 당하던 첫째가 다이어트에 성공해 둘째 기강 잡기에 돌입해 이제 전세가 역전되었다는 글이다.

https://brunch.co.kr/@nokid/361

고백해야겠다.

이 글을 쓴 날 바로 이 문제는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그러니까 냥이들의 서열싸움은 이 글을 쓰기 전 주에 벌어졌고 나는 주말 동안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했고 그 결과라면 결과로 이 글을 쓰던 이번주 월요일에 상황은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지난 주 내내 첫째가 둘째를 지나치게 많이 덮치는 걸 보게 되었다. 왜 그러지. 보통은 한 번 덮치고 끝나는데 둘째가 깨갱한 후에도 다시 덮치는 게 좀 심상치 않았다. 오뎅꼬치를 가지고 놀아줄 때 침대에 오뎅꼬치로 동그랗게 빠르게 원을 그리면 둘째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다가 이내 오뎅꼬치를 잡으러 헐레벌떡 뛰어오곤 했는데 이제 구석에서 바라만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뿐만 아니라 고양이는 기분이 좋을 때 몸 안에서 드릉드릉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를 내는 횟수가 현저히 감소했다.


뭔가 문제가 있구나, 직감했다.

그 생각이 굳어진 건 지난 금요일 밤이었다. 원래 자기 전에 사료를 주면 둘이 돌아가며 그릇에 코를 박고 한번씩 먹는데 첫째만 사료 그릇에 얼굴을 박고 먹는 것이다. 둘째는 사료 그릇을 맴돌기만 하고. 첫째가 사료 그릇에서 얼굴을 떼어도 그 앞에서 사료를 한번 쓱 보고는 잠자러 스크래처 위로 가 눕는 것이다.


첫째에 눌려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스크래처 위에 누워 있는 둘째에게 사료 그릇을 대령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앉아서 사료를 먹는 것이다. 마음이 아팠다.


바로잡아야 해. 이 둘의 관계를.

그 다음날 밤, 둘째가 역시 밥을 안 먹고 침대 밑에 들어가 있길래 사료 그릇을 주면서 나와서 먹으라고 유인했다. 둘째는 나올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둘째가 침대 아래서 막 사료를 먹으려는 순간이었다.


책상 위에 있던 첫째가 쏜살같이 뛰어 내려와 둘째 앞에서 공격을 했다. 둘째는 혼비백산하며 침대 밑으로 다시 들어갔다. 와. 첫째에게 이렇게 화가 나기는 처음이었다. 어떻게 했길래 동생이 밥도 맘 놓고 못 먹게 한 거지, 생각하니 화가 났다.


첫째를 안고 남편에게로 갔다. "둘째 맘 편하게 재우려고 하니까 자기가 오늘 첫째 데리고 자." 이렇게 중성화 수술 이후 처음으로 첫째와 둘째는 서로 떨어져서 잠을 자게 되었다.


첫째가 방을 나가자 둘째가 침대 위로 슬그머니 올라왔다. 둘째를 쓰다듬어 주었다. 둘째는 좋아하면서도 계속 문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첫째가 들어올까봐 신경쓰고 있었다. 괜찮아. 형 오늘 안 와. 에휴. 딱하지. 그 앞에 사료 그릇을 놓아주자 둘째는 안심하고 먹는 눈치였다.


둘째와 마주보고 자고 싶었다. 원래 둘째는 침대 구석 내 발치에서 잠을 잔다. 난 머리를 놓는 방향을 바꾸어 둘째 옆에 누웠다. 그리고 둘째를 많이 쓰다듬어 주었다.


원래 우리집 고양이들은 새벽에 애교가 폭발한다. 막 일어났을 때 만져달라고 드러눕고 주위를 뱅뱅 돌고 몸에다가 자기 얼굴을 갖다 부빈다. 다음날 새벽 둘째와 나는 둘만의 달콤한 시간을 가졌다. 둘째는 정말 오랜만에 자신의 애정을 나에게 맘껏 표현했고 나 역시도 둘째를 실컷 안아주고 만져주었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 오늘은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남편에게 선포했다. 첫째가 둘째 덮치는 걸 제지해야 한다고. 둘 사이를 조율하기 위해 원래 남편과 영화보려고 표를 예매했던 것도 취소했다.


첫째가 둘째를 덮칠 때를 기다렸다. 그때가 왔다.

"어허!"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첫째를 향해 앉아 그 앞에서 바닥을 치면서 야단을 쳤다. 알아들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일요일 내내 첫째가 둘째를 덮칠 때마다 몇 번 제지를 했다.

그리고 밤.


첫째가 둘째를 공격할 때, 둘째가 반격을 하는 것 아닌가.
그 모습이 반가웠다.


이거지. 원래 이렇게 투닥거려야 우리 고양이들이지.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당하는 게 아니라.

그 모습을 보면서 둘째가 다시 힘을 내준 게 고마웠다.


이제 이 둘은 예전처럼 같이 싸우기도 하고 놀기도 하는 관계가 되었다.

이 냥집사는 믿는다.


이 둘이 예전처럼 돌아간 건
둘째와 가졌던 시간 때문이었다고.
둘째에게 힘을 주고 사랑을 부어주었던 그 밤 시간 이후로
둘째는 다시 힘을 되찾았다고 말이다.

   

둘째 둥이야. 항상 네 모습으로 지내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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