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들이 뭘 알아욧!
* 이 글은 표현이 다소 거친 부분이 있습니다.
아직도 생각하면 어이없는 웃음이 난다.
벌써 십 년 전 일이니 지금 이런 글을 써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써본다.
그 당시, 아니지 지금도 어떻게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마 다양한 곳에서 저출산 정책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논의되었고, 진행 중이겠지.
10년 전이었다. 그땐 좀 초창기였으려나,
저출산 정책의 방향을 바꿔보자고 전문가들을 모았다.
(내가 모은 건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전문가인 것도 아니고 그냥 관찰자였다.)
비공개 테이블이었고, 나름 알만한 사람들 저명한 사람들도 있었다.
전문가 라인업, 전문가의 화려함만 보면 정말 간절히 정책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합의하에
바쁜 스케줄을 마다하고 모인 건 확실해 보였다.
전문가들을 테이블에 앉히고 나와 같은 관찰자들은 그 주변을 빙 둘러앉았던 것 같다.
그 광경이 아직도 어이가 없다.
전문가라고 모인 분들이 주택이 문제 입네, 보육이 문제 입네, 결혼제도가 문제 입네, 남자도 육아휴직을 의무화해야 됩네, 외국은 어떤 상황 입네, 멀리 보지 말고 이미 생긴 아이부터 지켜야 합네, 앞으로 이렇게 가면 인구가 얼마나 더 줄어들지 모른다는 둥 각 분야에 전문가다운 소리를 하고 앉아있었다.
보통은 그걸 보면 전문가는 다르구나 생각했을 텐데,
주변을 빙 둘러앉아있던 나와 같은 관찰자와 눈 마주치고 코웃음 친 적이 있다.
전문가라고 앉아있는 아저씨들이 뭘 알아요!
빙 둘러앉은 관찰자들을 보시라구요!
전문가는 적어도 40대 아저씨들, 빙 둘러앉은 관찰자는 2030 여자가 과반 이상이었다.
전문가들 중 누구 하나라도, 그 광경을 눈치채는 사람은 없었다.
자기들의 전문적 견해 다 뽐냈다면 한번 좀 둘러보고 물어보지 그러니,
관찰자들인 너희가 보기에 우리의 대안이 설득력 있는지.
그냥 우리 이제 어쩌지? 이러다 존망하는데?
망하면 어떻게 망할 거 같아? 그래도 망하는 속도는 좀 늦춰지지 않을까?
이런 얘기를 전문가들이 전문적으로 얘기한 것 같다.
그래도 전문간데, 왜 이렇게까지 얘기하냐고?
논의가 마무리되고 내 옆 관찰자 중 한 명의 나지막한 욕
'X나 이렇게 조찬모임 하면, 낳은 애도 못 키울 판인데 쌉소리한다 X발'
그녀가 그 테이블의 관찰자로 앉기 위해 얼마나 큰 전쟁을 치르고 왔는지 절실히 느껴졌다.
뭐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분명 10년 전 일이라고 했고, 그때보다 10년 지난 지금 그 결과를 알려주고 있으니.
해외에 나와보니까 이나라는 분명 우리나라보다 소득 수준도 낮고 휴직? 그런 건 기대도 못하고,
평균 노동시간은 탑클래스를 달리는 국가인데 아이를 많이 낳는다.
너무 무책임하게 애만 낳는 거 아니야? 싶은 생각으로.
생명을 키우는데 무한한 책임이 필요하다.
부모에게 그럴 마음가짐이 있어야 올바르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바른 인간으로 성장하는 건 맞는 이야기이다.
근데 나부터도,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딩크족을 선언한 것은 아닌데
내가 살아온 고단한 삶을 내 자식은 겪게 하고 싶지가 않다.
이상하게 나는 자식을 위해 기꺼이 고단할 수는 있을 것 같음에도.
친구들이랑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만약 자식을 낳는다면, 그렇다면 차라리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키우고 싶다고.
아마도 한국보단 미국이 기회가 더 많을 테니까.
그랬더니 미국에서 이민자로 사는 친구가 자긴 미국이 너무 위험해서,
언제든 총격 사건이 일어날 수 있어서 학교 다닐 때쯤 한국으로 돌아가서 키우고 싶다고 한다.
어디서든 힘들구나, 그 얘길 들으니 한국이 정말 좋은 환경일 수도 있긴 하네.
대신 딱, 학교 다닐 때만.
지금 미국의 직장은 금토일 주 3회 12시간씩 근무하고, 남편은 평일 재택근무라 이보다 좋은 육아환경은 한국에 없거든.
그리고 대학은 당연히? 미국으로 보내고 싶다고 한다.
한국사회보다 더 기회가 많은 미국 사회에서 자신의 꿈을 무한히 펼쳐 보이길 원한다고.
아이를 다 키워서 우리가 부러워? 하는 언니가 있는데 최근 큰 고민이 있었다.
중학생이 된 아이가 생일선물로 아이패드, 아이팟을 사달라고 했다 한다.
친구들이 명품 운동화 신고 다녀도 한 번도 명품 운동화를 사달라고 한 적이 없는 아이라서, 그런 요구를 할 애가 아닌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싶었고
사춘기 민감한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묻자니 솔직히 얘기할 것 같지도 않고
요즘은 두꺼운 책 안 들고 다니고 아이패드에 넣어서 공부하는 것도 알고
이어폰은 우리도 공부할 때 필수품이었으니
비상금을 깨서 사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걱정되었던 건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패드가 어쩌면 차별? 받지 않기 위한 마지노선이었을 수도 있는데
그동안 이 물건이 없어서 아이가 상처받았으면 어떡하지.
하, 너무 어렵다.
내가 이 물건이 없어서 애들한테 놀림당하는 것보다
어쩌면 그냥 미국에서 내가 아시안이라 차별당하는 게....더 불가항력의 상황에 놓이는 게..
아니지, 그럼 아시안끼리 이제 이런 물건 없다고 차별하겠지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도 저런 과정을 겪으면서 상처받고 회복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해왔는데,
아이도 그런 성장통을 겪는 중일 텐데
다 지켜주고 싶다. 다 지켜주지도 못할 거면서.
부모에게 무한한 책임이 있어야 하는 건 맞는데
어느 순간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사회화된 것은 아닌지
부모는 안 그래도 본능적으로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그럴 수밖에 없을 텐데..
아이 없는 내가 보기에 그녀들에게는
조금의 숨 쉴 구멍이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