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잘 한줄 알았던.
신촌의 무용과를 나온 막내 이모.
이모의 20대는 오렌지족이었다.
압구정 로데오를 내 집 앞인 것 마냥 활보했고
이국적인 외모와 몸매로 나이트클럽에서 잘 나가는,
유명 연예인들과도 놀아본 이모다.
이모는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최소한 연예인의 와이프라도 되고 싶었다.
엄마를 비롯해 외갓집에선
저거 강남병 걸렸다고 핀잔을 샀었다.
이모는 건실한 사업을 하는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이모부는 강남병 걸린 이모를 강남에서 살게 해 줄 수 있는 분이셨다.
비록 연예인은 아니지만.
이모는 아이를 둘 낳고 애기 엄마들이랑 가끔씩
호텔 커피를 마시면서 행복하게 13년을 살았다.
문제는 14년째부터 생겼다.
이모부는 사업을 물려받아야 해서 강남 생활을 접고 지방으로 이사 가셨다.
강남을 떠나야 하는 이모도 슬펐지만 같이 갔다.
시댁의 사업을 물려받는 그동안, 시댁과 같이 살진 않아도 가깝게 살게 되었다.
월급은 시댁에서 나왔다.
2주에 한 번씩 손주들 용돈이라는 명목으로 주시는 돈은 월급이기도 보너스이기도 생활비이기도 했다.
대신 손주들을 보고 싶어서 돈 봉투를 들고 시댁 어른이 자주 오셨다.
이미 중학생이 된 큰아이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작은아이를 둔 이모.
이모의 아이들은 이제는 더 이상 엄마의 도움이 크게 필요하지 않을 만큼 성장했고,
자주 오시는, 가까이 사시는 시댁 어른은 아이들의 밥 정도를 챙겨 주시기엔 충분했다.
이모는 이제 자기도 무언갈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이 이모가 사는 지방에는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서울에 가서 하고 싶은걸 해보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남편이 이야길 한 건지 시부모님이 애 엄마가 아이들 두고 어딜가냐는 핀잔을 주었다.
대신 돈이 많은 시부모님은 차를 바꿔 주셨다.
이 좋은 차를 사주시면서 서울 가는 건 반대하는 게 참 어이없기도 했다.
답답한 이모는 그래도 이 핑계 저 핑계 둘러대가며 서울을 갔다.
그때마다 싸웠지만 질 수 없었다.
이모도 살아야 하기에.
싸움이 잦아지니 서로 너무 지쳐버렸다.
시부모님은 정당히 월급을 주셔야 하는 데도,
용돈 주시는 것처럼 생활비를 주셔놓고는
그 마저도 이모에게 벌을 주는 냥 주시지 않았다.
싸우는 삶을 얼마나 지속했을까. 결국 이혼하자는 소리가 나왔다.
그 무렵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데, 이모부가 오셨다.
이미 이혼하기로 했다는 걸 알고 있던 이모의 형제들은 이모부를 앉혀놓고 이야기했다.
애가 얼마나 숨 쉴 구멍이 필요했겠냐고.
시도 때도 없이, 감시하는 것처럼 찾아오는 시부모님에 저렇게 노이로제가 걸려 있는데,
그래도 하루쯤 숨 쉴 구멍을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이모부는 연신, 자기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었다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우여곡절 끝에 이혼을 하고,
이모는 강남 어느 오피스텔을 얻었다.
저렇게 강남이 좋을까? 혀를 내둘렀지만
저 좋은걸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싶기도 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막내 이모를 보면 그녀의 이상은 무대 위 화려한 삶인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과의 괴리에서 참 버거워하는 것 같다.
오렌지족일 때 얼마나 예뻤는지.
나도 이모를 예쁜 이모로 기억한다.
사실 이모를 보면 지금도 참 예쁘다. 그런데도 이모는 슬픈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