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타기다리기 싫어
남편은 해비.스모커다.
우리 아빠도 담배를 태우시지만, 뭐 그렇게 불편한 적은 없었다.
항상 집 밖에서 피우셨고 냄새를 집에 들이진 않으셨다.
남편도 집 안에선 절대 피지 않기는 하다.
근데도 남편이 담배 피우는 게 너무나 싫다.
저 놈이 담배 피우다가 폐암 걸려 죽을까 봐
걱정돼서 싫은 게 아니고
냄새나서 싫은 것도 아니고
담배 피우는 시간, 일명 담타를 기다려줘야 해서 싫다.
식당에 도착하면 나부터 들어가라고 한다.
담타하고 온다고.
나 혼자 자리 잡고 저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다.
하나만 피지도 않는다. 꼭 두 까치는 피고 들어온다.
배고파 죽겠다 싶을 땐,
그냥 내가 먹고 싶은 걸로 두 개 주문해버린다.
너는 메뉴 선택할 시간에 담배 폈으니 권한이
없다.
밥을 다 먹으면 계산하고 또 기다려줘야 한다.
담타한다고.
밥 먹기 전에도 피웠으면서
밥 먹고 나서도 피우냐!
결혼해서 같이 살다 보니 식당에서 기다려줬던 것쯤은 그저 애교 수준이었다.
시댁 친척 어른께 처음 인사드리러 갔다.
남편 담타 마치고 같이 올라갔다.
긴장되는 자리에서, 신난 어른들은 얘기가 길어지고 남편은 혼자 나가서 담타한다고 몇십 분을 자릴 비운다.
개놈쉬끼.
어색하고 곤경한 자리에 혼자 놓여서 버텨본다.
같이 여행을 가면 꼴불견이 따로 없다.
비행시간보다 일찍 넉넉히 시간 잡고 가긴 하지만
공항에 도착하면 들어가기 전에 담타를 기다려줘야 한다.
야, 보딩패스받고 펴!
마지못해 공항 안으로 들어온 남편은
후다닥 짐을 부치고 보딩패스를 받은 후
냅따 공항 밖으로, 담타 공간을 찾아 도망간다.
이게 한국에서 그러면 참을 만 한데,
외국에서 이러면 진짜 답도 없다.
갑자기 위탁 수화물 찾아가라는 방송이 나와서
도망간 놈 냅두고, 나 혼자 처리하러 다시 갔다.
화가 나는 건
내가 혼자 처리한 게 억울해서가 아니다.
내가 이 놈 여권이랑 보딩패스를 다 가지고 있는데, 혼자 실컷 담타 즐기다가 서로 길을 잃은 거다.
로밍을 한 사람만 해서 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연락도 쉽지 않다.
보딩 타임은 다가오는데 이 놈을 찾을 수가 없다.
나중에 발견해서는 왜 헤어진 자리에서 안 기다리고 없어졌냐고 뭐라 한다.
야, 니가 캐리어 안에 보조배터리 넣어서 그거 빼고 왔거든?
날 기다렸다가 같이 갔어야지!
니가 언제 올 줄 알고!
담타 그거 몇 분이나 된다고 그래!
이십 분을 안 넘긴 적이 없어 니가.
흡연실이 먼 걸 어쩌냐! 나도 억울하다!
경유라도 하는 날은 진짜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지!
보통은 최종 목적지까지 짐을 안 찾아도 되게 해 주지만 외국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분명 보딩패스받을 땐 커넥티드 되어 있다고 해놓고는 짐을 찾아서 다시 보내야 한다.
밖으로 안 나가고 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나는 다시 보딩패스받는 창구로 가서 붙여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밖으로 나와도 되는 걸 알고는 또. 또. 담타하러 잠깐 나갔다 온다고 한다.
그때는 서로 예민한 때이니, 그래 오래 버텼다 하고 보내주는 편인데도, 저놈은 보딩타임 따위 보지 않는다.
밖에서 살림 차렸나 싶을 정도로, 한 갑은 피고 오는 것 같다.
보딩타임 텀이 아주 짧을 때도 있다.
한 번은 저놈 담타 기다려주다가 진심으로 비행기 놓칠 뻔했다.
입국장으로 들어가려는 막대한 줄과
짐 검사 줄을 모두 패쓰하고
저희 보딩타임 10분 남았는데 먼저 갈 수 없겠냐고
영어도 안 통하는 곳에서 아주 생 쑈를 했었다.
그래도 뒤에 가서 줄 서라는 단호박 공항 직원에 비하여, 우리 사정을 알아듣고 양보해주신 친절한 외국인 덕분에 우리 보고 빨리 게이트로 오라는 방송을 들으며 급하게 뛰어가 비행기를 탔다.
여행 중 유적지 같은 데 가려고 소그룹 투어 한 적이 있는데 아주 기가 막혔다.
가이드 따라서 다니다 보면 내 옆에 있어야 할 놈이 없다.
어디 간 거야? 둘러보면 어디 숨어서 담배피고 있다.
내가 혼자 여행 온 거지 뭐.
가이드가 그룹끼리 연인끼리 사진 찍어주는데 돌아보니 남편이 없길래 나는 그냥 혼자 찍었다.
이 나라에서는 가끔 주재원 모임이 있다.
삼삼오오 테이블을 잡고 앉는다.
어색하게 얘기하면서 밥 먹다 보면,
우리 테이블엔 나 혼자 앉아있는 경우가 있다.
뭐지?
하필 남편이 친해진 주재원들은 모두 담배를 피우고, 그들의 와이프도 모두 흡연자다.
다들 같이 담타하러 가면 인간적으로
남편은 와이프를 좀 챙겨야 하는 거 아닌가?
한 번은 혼자 테이블에 남겨진 나를 보고
라운딩 돌고 친해진 법인장님이 와주셨다.
법인장님이 오시니 부지런히도 자리를 잡고 앉더라.
와이프를 너무 혼자 두는 거 같아?
최대한 가련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목을 앞뒤로 격하게. 마음을 담아 동의의 포오즈를 취했다.
이내 법인장님의 금연 연설이 이어졌다.
비흡연자 법인장님은
근무시간에 담타한다고 다 같이
자리 비우는 걸 예전부터 지적하고 싶었다고.
화장실 같이 가는 것 마냥 자기 눈엔 이상해 보인다고.
법인장님도 나와 같은 편이시구나!
속으로 너무나 통쾌해서 그날 그렇게 술이 달았다.
회사 다닐 때,
답답한 사무실에서도 좀 벗어나고 싶고
잠깐의 바람도 쐬고 싶고
스트레스 좀 날려볼 장소를 찾으면
모두 흡연구역이 되어 있었다.
회사의 중정 그리고 옥상 모두.
(지금은 아니겠지만)
저 쉼터를 차지하려면 담배를 피워야 하나
젠장.
비흡연자인 나는, 실내 계단을 오르내리며 하체 힘을 기르고
다시 책상에 앉아 일에 집중했었다.
담배가 잠깐의 휴식, 리프레쉬, 숨 쉴 여유를 주는 점 인정한다.
담배로 정신적 건강을 챙길 수 있다면
육체적 건강과 trade off 하는 걸
뭐.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남편한테도
금연을 강요하지는 않고
내가 담타 기다리는 시간을 없애달라고 요구한다.
알아서 피라는 거다.
날 좀 기다리게 하지 말고.
내 친한 친구들은 모두 담배를 싫어한다.
운이 참 좋지, 모두 비흡연자 남편을 만났다.
그래서 참 속 편히도 얘기한다.
그렇게 짜증 나면, 남편 담배 좀 끊으라 그래!
야, 그거 잔소리하면서 살기 싫어.
해비스모커 해피하게 스모킹하다가 저세상 가라고 그래.
너 남편인데 그게 돼?
어쩌겠냐, 멀쩡히 걸어 다니다가도 튀어 오르는 차에 치여 죽기도 하는 세상인데,
지가 평생 펴온 담배 때문이라면 그나마 덜 억울하겠지.
너가 애가 없어서 그런 소리하는 거야!
속 편한 게 나인지 친구인지.
해비스모커 저 놈은 그냥 해피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