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낭인
어릴때엔 무엇인지 모르는 자신감이 차 있었던 그.
어른이 되면 저절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꺼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렸던 그에게 첫 좌절은 대학입시.
그때부터 인생에 공부가 중요함을 깨달았다.
재수를 하며 공부는 못해도 공부를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했고, 대학 동기들이 취업을 준비할 때
행정고시를 시작했다.
최대 3년이면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던 행정고시는 어느새 5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대학원에 입학해 시간을 벌어 보았지만
결국 포기.
정년퇴직을 앞둔 교수님의 추천으로
어느 공공기관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운이 좋게도 정규직 채용에 합격하였고
전공을 살릴 수 있는 팀에도 발령이 났다.
그 무렵 대학원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을 하고
없는 형편이지만 아내의 박사과정을 뒷바라지하며
행복한 신혼생활을 영위했다.
회사의 우리 팀은 아주 좋았다.
부서장님은 국내외로 평판이 좋으신 분이셨고
그보다 10살이나 어리지만 팀원들도 능력이 출중했다.
아내의 학업을 보며 그도 욕심?이 생겼다.
계속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싶다는.
그러나 석사학위를 주신 교수님은 이미 퇴직하고 계시지 않았고, 그는 번번히 대학원 입학시험에서 떨어졌다.
회사에선 부서장님이 아주 좋은 분 이셨다.
팀원이 모두 여직원이고, 혼자 남자였던 그.
부서장님은 아무래도 그를 상대하는 걸 더 편하게 생각하시는 듯 했다.
부서장님의 배려로 대학원 입시 준비를 할 시간도 마련되었고 아내와 부서장님 덕분에 대학원에 가까스로 합격할 수 있었다.
부서장님은 진심으로 축하해주셨고,
서둘러 학위를 받으라며 배려해주셨다.
그러나 논문자격시험에 번번히 낙방하게 되었고
한번 더 떨어지면 학위를 받을 수 없는 벼랑끝에 몰리고 나서야
몇번의 휴학을 써거며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대학원 입학과 논문자격시험을 합격하는 그 사이.
그에겐 아이가 태어났고, 아내는 육아와 학위논문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아내와 부서장님 그리고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논문자격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그제서야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니,
아이에게서 언어장애가 발견되었다.
엄마는 학위논문으로, 아빠는 시험으로 정신이 없이 살다보니 아이가 관심과 사랑을 덜 받아서 그런건 아닌지 죄책감이 드는 그였다.
사람 좋으신 부서장님과 식사 도중 언어치료 얘기를 했더니, 마침 부서장님의 늦둥이도 언어치료를 한 적이 있었고 그 치료를 다니며 부모가 얼마나 가슴졸였는지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부서장님의 하늘과 같은 배려로, 아이의 언어치료 라이딩을 그가 전담할 수 있었고
그 사이 아내가 학위논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다행히 아내도 박사학위를 무사히 받았고, 아이도 언어가 트이게 되었다.
이제 그의 차례가 온 것이다.
프로포절을 통과하고 학위논문을 쓰기만 하면 된다.
논문 주제를 생각하고자 문득 회사일을 돌아보니,
부서장님의 그동안의 배려?로
그는 팀에 중요한 업무에선 모두 배제되어있었다.
본인의 학업과 아이의 언어치료로 흘러버린 세월이 벌써 6년,
팀에 막내였던 여직원이 주도적으로 모든 일을 하고 있었고 정작 그는 가장 단순한 일만 해오고 있었다.
이제라도 제 자리를 찾고자 팀원들과 회의하자고 졸라서 업무를 억지로 배당받았으나,
다른 데 신경쓰느라 지나버린 세월동안 업무능력의 차이가 꽤나 생겨버렸다.
팀원들이 오전이면 끝날 업무가 그에겐 하루종일을 애써도 마무리가 되지 못해버린 거다.
부서장님은 그에게 얼른 프로포절을 해서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으라며 또 배려해주셨다.
하지만 이번엔 업무를 놓치기 싫은 그 였고
일욕심을 내기 시작하자 팀원들은 당황해했다.
결과물은 냉정한 법.
일을 욕심내서 한 그였는데, 정작 발표되는 보고서에서는 그가 작성한 내용은 한 페이지도 실리지 못했다.
일도 못하는데 갑자기 욕심까지 내다보니
팀에서 주도적으로 업무를 해온 막내에게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한 그였다.
학위를 받아 실력을 입증하리라.
그는 결국 프로포절에 매달렸다.
논문자격시험도 겨우 통과했는데
프로포절은 더 통과하기 어려웠다.
결국 프로포절마저 마지막 기회까지 통과하지 못하고 벼랑 끝에 가서야, 같은 전공인 아내의 100프로 도움으로 겨우 통과될 수 있었다.
아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아이와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항상 주말마다 사무실에 나와 논문을 준비했다.
그렇게 속절없이 세월이 흐르고
어느날 부서장님은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셨다.
입사 이후로 오랜 시간동안 그 부서장님의 팀에만 있었던 그.
부서장님의 퇴사로 팀이 해체되고
처음으로 회사 FA 시장에 던져졌다.
그동안 다른 직원들은 여러 군데서 스카웃을 받았었는데, 그에겐 처음이었다.
그래도 전 부서장님이 워낙 능력있던 분이셔서 그런지, 그에게도 새로운 부서에서 기회를 주었다.
새로운 부서에서 새로운 직원들과 몇 번의 협업을 하다가 결국 그의 밑천이 드러나 버렸다.
1인분도 못하는 직원.
한사람이 2인분 일을 해도 부족한 그 부서에서 그는 냉정한 평가를 받고, 결국 가장 단순업무만 배정받게 되었다.
그동안의 부서장님 배려는 사실, 싫은 소리 하기 싫었던 부서장님의 성격 탓에 능력안되는 그를 업무에서 자연스럽게 배제하기 위한 핑계거리였음을 처절히 깨달았다.
동년배의 직원들은 벌써 보직을 받아 팀장이 되었고, 입사 동기들도 능력을 인정 받아 스카웃을 받고 있는데,
그의 업무는 알바와 다름없는 지경.
사회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처음?으로 냉정한 평가에 직면한 그에게 마지막 빛은
학위논문밖에 없었다.
적어도 프로포절에 도움을 준 아내에게도 실망을 주기 싫었다.
주말마다 도서관으로 사무실로 학교로 출근해서
논문을 써보고자 노력했다.
날이 좋은 어느 주말, 선행 논문을 읽어보고자 사무실에 나와있는 데 문득,
우리 아이를 데리고 제대로 소풍조차 간 적이 없다는 걸 뒤늦게야 알아버렸다.
뒤통수가 아려오고 미안함에 그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냥 포기할까? 너무 내 욕심만 부리고 산 걸까?
그러나 아내에게 말하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학위받으라고 노력해준 아내인데, 포기한다고 말하면 아내가 너무 큰 실망을 할 것 같아 무서웠다.
주말, 토요일 어느 날
오늘은 사무실 안가고 가족 소풍이나 가자며
아내에게 이야기해야지 다짐하고 거실로 나왔는데,
아빠 아직 안나가셨냐는 아들의 말,
당신 밥 먹고 나갈꺼냐는 아내의 말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이미 주말에 아빠와 남편이 없는게 익숙해진 가족이었던 거다.
나가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
주말에 집에 그가 없어야 편해진 것 같은 아내와 아들,
응 나가야지.
결국 무기력하게 그는 집을 나서고
갈 곳 없는 주말에 사무실로 향해 시간을 보낸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목적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그.
가족은 잃지 않고자 노력했는데
가족과의 주말이 불편해져 버린 그.
그렇다.
그는 그렇게 가족도 불편하고 회사도 불편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