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당한? 동참한? 경험

여왕벌, 정치인 되다.

무난한 학창 시절을 보낸 편이지만

왕따에 동참하고? 나도 왕따 당한? 경험이 있다.

무려 대학생 때.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고등학교 친구들인 점은 같이 유럽여행, 미국 여행을 다녔던 대학교 친구들과 손절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OT였나? 같은 방을 쓰던 다섯 명이 친구가 되었다.

부산, 대전, 인천, 강남, 강북 각자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른 친구들이었다.


여중 여고 트리를 밟아온 인천 친구와 강북 친구.

다른 친구들은 모두 남녀공학을 다닌 친구들이었다.

무엇인지 인천 친구와 강북 친구는 여왕벌? 위치를 다투는 기싸움이 있었다.


여왕벌 하면 지금도 웃기는데,

사실 여자들 모임에 여왕벌이 있는지를 대학교 와서 그 친구 통해 처음 알았다.


아무튼,

인천 친구와 강북 친구의 여왕벌 기싸움에서, 강북 친구는 빠르게 CC가 되어 한 발 물러섰다.

인천 친구가 여왕벌의 위치를 차지하고 대학교 초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인천 친구의 여왕벌 심기를 제일 처음에 건드린 건 부산 친구였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던 인천 친구에 비하여, 부산 친구는 꽤 잘 살았었던 것 같다.

부산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으리으리한 광안대교 뷰 아파트가 기억에 남는다.

그녀의 부모님이 처음으로 명품백을 사주어서 들고 다닌걸 인천 친구는 고깝게 생각했다.

어느새 우리 무리에서 인천 친구는 자꾸 부산 친구를 따돌리고 있었다.


아주 불쌍하게도 나는 참 그런 눈치는 또 없다.

인천 친구가 언짢아하는 줄 모르고 부산 친구를 잘 챙겨서 다녔다.

부산 친구도 인천 친구가 불편한데, 나 때문에 같이 어울렸던 것 같다.

보다 못한 인천 친구가 나에게 부산 친구가 자기를 너무 힘들게 한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뭘 어떻게 힘들게 했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인천 친구가 자기 집과 정 반대편인 우리 동네까지 와서 얘기하고 간 게 생각난다.


부산 친구와 대화를 해보자고 모였고 인천 친구는 서운함을 토로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인천 친구의 서운함을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많이 속상해하는 것 같아서, 그 자리에 같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왕따 만들기에 동참한 것과 같은 역할인 듯.

그 이후 부산 친구는 자기는 인천 친구가 불편하고, 차라리 혼자 수업 듣는 게 편하다며

자길 신경 쓰지 말아 달라고 하고 우리 무리에서 빠졌다.


그러고는 한 동안 네 명의 친구들이 잘 어울려서 다녔다.

미국 여행도 가고, 유럽여행도 가고 대학교 시절에 추억을 많이도 쌓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인천 친구는 나를 많이 칭찬해줬었다.

강남에 살면서 명품 하나 없이 겸손? 한 것 같다고.

형편이 안돼서 없는 건데, 내가 왜 이리 과외를 열심히 하고 살겠니.

그래도 그 친구는 그저 나를 겸손한 애로만 봤었나 보다.


강북 친구와 대전 친구가 먼저 취업에 성공하고,

한동안 나와 인천 친구만 남았었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인턴이 되었나 보다.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재미있고 바쁜 생활을 해 나갔다.

단체 톡 방에 대화가 쌓여도 그때그때 읽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나는 정규직도 아니고, 잠시 지나가는 인턴이어서 그런가? 처음 해보는 직장생활이 신났었다.

그래서 유독 인턴 동기들이랑 어울려 다녔다.


그렇게 인턴 생활도 마무리가 되어갈 때쯤

크리스마스 겸 송년회 겸 연말 파티를 하자고

인천 친구가 우리를 소집했다.


어느 모텔인지 레지던스인지 빌려서

예쁘게 꾸미고 사진 찍고 노는 그런 걸 하자고.


퇴근하고 모여있는 친구들에게 갔고

처음엔 사진도 찍고 예쁘게 셋팅한 음식도 먹고

달라진 분위기를 나만.

눈치채지 못한 채 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친구가 불을 끄고 촛불을 하나 켜더니

나에게 서운한 게 너무 많다고 털어놓기 시작했다.

일단 단체 톡을 왜 안 보냐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정규직으로 취직한 친구들이 회사생활 힘들다고

톡방에 올리면 딱히 위로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가끔 내가 인턴생활이 재밌다고 올리면

톡방에서 자기들은 힘들다는데 나는 재밌다고 한다고 상처받는다고 하길래

말을 아낀 것뿐이었다.

아마도 그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거였을 텐데,

참 눈치가 없었다 나도.


처음엔 내가 오해를 풀어주면 되겠거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나 웬걸,

이미 인천 친구는 대전, 강북 친구에게

나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자길 속상하게 한다고 정치질?을 해 놓은 뒤였다.


인천 친구는 서운한 걸 계속 꺼내놓기 시작했다.

몇 번의 모임에도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고 나오지 않았으며,

그럴 때마다 매번 서운했으며

우리가 널 생각하는 마음보다

내가 자기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작은 것 같다고.

자기들이 불편해하는 걸 눈치도 못 채고

그렇다고 자기들이 뭐라고 하기엔

나의 행동이 악의가 없는 것 같아서

지켜보고만 있었다고.


그런 피곤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번에 저 여왕벌의 타겟은 나인가 보다.

이전에 부산 친구를 따돌렸던 것처럼, 여왕벌 친구 옆에서 의무적?으로 앉아있는

다른 친구들을 보니 답답하고 안쓰럽고 미안했다.


그 자리를 얼른 끝내고자

여왕벌 친구에게 서운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서둘러 마무리했다.


원래는 그 방에서 다 같이 하루 묵고 내일 떠나기로 했으나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고

(술을 잘 못 먹는 친구들이었다.)

눈만 부치고 그냥 인사도 없이 나는 나와버렸다.


나오면서 단체방에 메시지는 잊지 않았다.

밤새 생각해보았는데

나는 너에게 미안하지 않은 것 같다고.

우리 처음엔 다섯 명이 어울렸는데,

부산 친구가 오늘의 나처럼 똑같이 너에게 서운함 공격을 당했던 게 기억난다고.


한참 후였던가?

눈치 없게 자꾸 끼어있던 게 누군데 그러냐는

인천 친구의 일갈

친구라고 생각했다는 그녀의 위선을 코웃음 치며

잘 살길 바랄게, 인사를 남기고 단톡방을 나왔다.


이런 방식의 따돌림을 더 어린 나이에 겪었다면 상처받았을까?

단톡방을 나오고 다시는 여왕벌 친구를 안 봐도 될 생각을 하니

오히려 숨 통이 틔였다.


그 이후로 그 친구의 소식은 카톡 프사 정도로 알고 있는데,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여왕벌이었던 인천 친구는 자신의 주특기인 정치를 살려 국회에 있다는 것.


여전히 그들이 잘 어울리고 있는지

아님 다른 친구가 또 여왕벌의 심기를 건드려서 손절하고 나왔을지 모르겠다.


정치가 주특기였던 인천 친구.

국회에서 훨훨 날아다닐 모습을 기대할게.

적어도 네 특기가 정치니까, 정치인들 속에서 정치적 희생양이 되진 않길.


무엇이 되었든 너는 적성을 잘 찾은 것 같아서

참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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