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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녹진 Feb 05. 2023

덩달아 어려지는 기분

카페 면접을 보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생각했다. “붙으면 어쩌지?”, “떨어지면 어쩌지?” 붙어도 문제고 떨어져도 문제다. 솔직히 주 7일을 근무하는 게 언제까지 가능할지, 사람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는 게 그게 될 일인지도 모르겠고 또 내가 과연 사고 치지 않고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성격이 좀 많이 급해서, 백수시절을 게으르게 먹고 놀고 살만찌다보니 당장에 움직여야겠어서 지르긴 했는데 과연?


긴가민가 하고 있을 쯤에 전화가 왔다. 카페에서 언제부터 출근 가능한지 묻는 합격 연락이었는데, 이번주 일요일부터 출근할 수 있다고 답했다. 토요일부터도 가능했지만 괜히 일요일만 출근하면 돌아오는 평일 동안 쉴 수 있으니 살짝 맛만 보고 싶은 마음으로 일요일이라고 말했다.


무언가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되는 첫 출근을 앞두고 출근가방을 꾸렸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나의 생활반경이 바뀌었다. 새로운 동네를 향하면서 새로운 출근길을 걸었다. 카페 매장 밖으로 보이는 낯선 풍경이 오히려 좋았다. 모든 게 새로웠고 그 풍경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만족스러웠다.


첫 근무날, 포스기를 배우고 온갖 결재 방법과 적립방법. 선불카드 충전과 기프티콘 차액에 머리가 빙빙 돌았다. 여태컷 사장님이 운영하는 매장에서 근무하다가 가맹점에서 근무하려고 보니 분할되어 있는 업무가 익숙하지도 않았다. 매장에서 드실 건지, 포크는 몇 개 필요한지, 데워드릴지 미리 포스기에 입력하지 않으면 음료를 제조하는 곳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주문받는 사람 따로, 만드는 사람 따로, 제공하는 사람 따로라 오더를 확실하게 입력해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


첫날이라 뭘 어떻게 알아서 내 업무를 찾아 할지를 몰라서, 물어보고 시키는 일만 해도 근무시간이 후딱 지났다. 업무를 배우다가 주문을 받고 다시 업무를 배우다가 음료를 제공하고 돌아와서 다시 업무를 배우다가 매장 홀 정리를 하고 다시 업무를 배우길 반복했다.


여기서 ‘난 참 찌들었구나 ‘를 느꼈는데,


내가 생각하는 보통의 인수인계는 필요한 정보만을 딱 딱 간결하게 이해시키는 게 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카페에서 인수인계받을 때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결재방법 중, 스탬프 12개를 모으면 모든 음료 사이즈 관계없이 한잔이 무료로 제공되고 스탬프의 유효기간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고 있는데


“한 번은 어떤 손님이 스탬프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시는 거예요. 모든 음료 사이즈 다 상관없는데, 이왕이면 비싼 거 드시지, 제가 다 아까웠어요. “


“언제는 스탬프로 결재하신다고 하셨는데 12개가 채워지지 않은 거예요. 어제까지는 분명 있었는데! 하시면서 엄청 아쉬워하셨어요. 스탬프도 유효기간이 있는데 아마도 만료되었던 것 같아요”


나라면 저렇게 설명 안 했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했을 거다. 굳이 예시를 들기 위해 자신의 경험 속 감정들을 꺼내지 않았을 거다. 정말로, 굳이. 찌들대로 찌들어버린 나는 더 이상 일하는데 감정을 쓰지 않게 되었다. 지금까지 일 했던 병원에서 감정을 쓰면 언제나 끝이 좋질 못했다. 안 좋은 소리들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버릇이 들었는지 평상시에도 다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생각지 못한 감정의 공감을 받게 되었다.


원과 카페의 분위기는 생각한 것보다 아주 많이 달랐다. 누가 직장에서 자기감정을 꺼내서 종알종알 이야기하겠어. 다 큰 성인들끼리 일하는 거지만, 찌들어버린 서른과 이제 막 어른이 된 대학생의 감정폭은 어마무시하더라. 그 속에서 덕분에 메마른 감수성이 조금은 촉촉해질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휘몰아친 첫 근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신없어서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기는커녕 너털한 웃음을 지으며 지하철에 올랐다.


덩달아 어려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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