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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Apr 20. 2022

일기 쓰기 지도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학교에 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글쓰기가 바로 일기다. 그림일기로 시작해, 글로만 된 일기까지 초등 저학년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써야 한다. 심지어 일기 쓰기는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그러나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일기 지도 앞에서 막막함을 느낀다. '이거 어떻게 알려주지?' '매일 뻔한 소리 말고, 어떻게 해야 다양하게 쓰지?'


 사실 학부모 스스로도 일기 쓰기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지 못해 머리를 쥐어짜던 학창 시절의 기억, 방학 동안 미뤄둔 일기를 몰아 쓰느라 지쳤던 기억, 늘 ‘참 재미있었다.’로 끝내면서 ‘참 지루하구나’라고 느꼈던 그때의 기억. 아마 그런 ‘아픈’ 기억을 가진 일기를 아이에게 지도하려니 갑갑했을 것이다. 아이가 쓴 일기를 보면 더 갑갑했을 것이고.  


처음 아이가 쓴 일기는 부족한 것 투성이다. 내용도, 글씨도, 맞춤법도 엉망이지만 그런 것의 교정보다 우선 되어야 할 것은 아이가 '쓴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살짝 내려놓으면 사실 쓸 거리는 아주 많다. 많은 사람들이 일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은 ‘일기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특별한 이벤트가 있거나 아주 인상 깊었던 어떤 일화가 반드시 일기에 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매일 다람쥐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에서 어떻게 매번 새로운 일을 찾아낼 수 있을까? 주말이면 아이들을 끌고 체험이니, 여행이니 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새로운 일을 만들까.


새로운 '일'이 아닌 '생각'에 집중하라


첫 문장은 늘 쓰기 어렵다.


 새로운 ‘일’이 아닌 ‘생각’에 집중하면 된다. 일기는 겪었던 일 말고, 평소 하던 생각을 적어도 된다. 예를 들면 ‘엄마는 왜 화를 많이 낼까?’ ‘왜 게임을 자유롭게 못 하지?’ ‘나도 핸드폰을 가지고 싶다’ 등 평소 고민하고 사유하던 일들을 적어도 충분히 좋은 일기가 된다. 평소에는 괜찮았던 친구의 말투가 그날 유독 거슬려 싸우기까지 했다면, ‘나는 왜 그날 그 말투가 유독 거슬렸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 당시 마음을 떠올려보고 나는 왜 그랬을까 생각한다면 그 자체가 훌륭한 일기 쓰기 활동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일기를 쓰려면 사실 대화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즉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가 좋으면 일기도 쉽게 쓸 수 있다. 첫 질문은 이런 것이 좋겠다. “오늘 어떤 내용으로 일기를 쓸까?” 아이가 글감을 정하면 그 이야기로 파고든다. 이때 주의할 점은 부모가 속단해서 이야기를 진행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놀이터’라고 대답을 했다면 “아 그래. 너 그네 타는 거 좋아하잖아. 그거 쓸까? 미끄럼탄 거 쓸까?” 이렇게 ‘논 것’으로 단정 지어 이야기를 끌고 나가면 안 된다. 실제 경험한 것인데, 그날 아이가 쓰고 싶었던 것은 ‘놀이터에서 본 달팽이’ 얘기였다. 그러나 내가 놀이터에서 ‘누구랑 놀았어? 뭐하고 놀았어?’라고 계속 질문을 하니 아이의 대답이 시원치 않게 나왔다. ‘놀이터 뭘 쓰고 싶은데, 뭐가 재밌었는데, 놀이터 얘기 뭐?’ 이런 식으로 계속 물어보니 아이가 놀이터 화단에서 달팽이 본 얘기에서 줄줄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 아이가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구나. 그런데 나는 놀이터는 당연히 친구랑 논 얘기일 거라 속단하고 질문과 이야기를 진행했고, 아이의 대답은 단답형이거나 뭔가 시큰둥하게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뭘 쓸까?’라는 질문에 ‘몰라요.’라고 답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일기 쓰기를 하고 싶지 않거나, 정말 쓸 거리가 없어서 그럴 것이다. 여유가 된다면 그날의 일기 쓰기를 미룰 수도 있지만, 학교 숙제라서 꼭 해야 한다면 같이 소재를 찾아나갈 수밖에 없다. 이때 ‘생각’ 위주의 일기 쓰기를 하면 좋다. 평소 아이의 관심사를 알고 있다면 그것으로 소재를 던져보는 것이다. ‘포켓몬, 공룡, 자동차, 캐치 티니 핑, 친구, 햄버거, 공벌레, 층간소음’ 등. 아이가 평소 자주 얘기하거나 흥미로워했던 이슈를 꺼내 주면 그것의 뭘 쓰고 싶은지는 아이가 찾을 것이다. 포켓몬의 다양한 타입이나, 공룡의 종류나,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자동차나, 제일 귀여운 캐치 티니 핑 캐릭터에 대한 소개 등 아이는 금방 흥미를 찾고 글쓰기 욕구가 되살아 날 수도 있다.


"엄마가 옆에 있어도 되나요?"


아이가 글을 쓸 때 맞춤법만 보지 마세요^^


 이렇게 아이와 이야기 글감을 정하고 글을 쓸 때 또 몇 가지 주의사항이 필요하다. 먼저 “엄마가 옆에 있어도 되나요?”라는 질문이 가장 많은데 대답은 “Yes.”다. 물론 아이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다. 아이가 함께 있기를 원하는지, 혼자 있기를 원하는지 물어보면 된다. 그리고 아이가 함께 있기를 원한다면 옆에 있으면 된다. 바로 옆에 앉아 지켜봐도 되고, 근처에서 집안일을 하며 곁을 지켜도 된다. 사실 어른들은 글쓰기를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부끄럽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잘하지 못하니까 또는 내 생각을 투명하게 보여줘야 하니까 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일기는 비밀이니까 부모가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초등 저학년의 일기 쓰기는 글쓰기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좋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는 첫 단계라는 시각이 좋다. 그리고 어른들이 생각하는 그 ‘부끄러움’이 의외로 아이들에게는 없다. 오히려 잘한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고, 잘 안될 때 도움받고 싶어 한다. 글쓰기가 부끄럽다는 생각은 어른들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곁에 있어 주었을 때 좋은 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글쓰기가 막혔을 때 문장을 불러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을 불러 주고 적게 하다니 그것은 부모의 글쓰기가 아닌가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양새는 그래도 실제는 아이의 생각을 적는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글감 찾기 대화에서 아이가 했던 말이나 문장을 불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와 글감 찾기 대화를 할 때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아이가 썼던 표현, 의미, 그 의도 등을 잘 이해하고 파악했다가 아이에게 돌려주면 된다. 이때 가급적 아이가 썼던 표현 그대로를 말해주는 게 좋다. 그 토씨까지 기억해서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너 아까 먹은 사탕이 유치하지만 맛있었다고 했잖아.” “너 아까 같이 논 친구 이름 말했잖아.” “아까 시간이 없어서 아쉽다는 얘기도 했는데.”처럼 말이다. 그러면 아이는 ‘유치하지만 맛있는 사탕을 먹으며’라고 문장을 이어 적는다. 글의 양을 더 늘리고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사실 책의 글밥을 늘리듯이 글쓰기의 양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길고 많은 내용을 적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일기를 쓸 때 아이의 맞춤법과 띄어쓰기, 심지어 예쁜 글씨체까지 바로바로 지적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러나 지적을 하는 순간 아이의 머릿속은 백지화가 된다. 사실 글쓰기 행위는 매우 복합적이다. 앞 문장과 뒷 문장의 연결도 생각해야 하고, 쓰고 싶었던 이야기도 기억해야 하고, 은/는/이/가 등의 조사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는데 “‘ㅐ’가 아니라 ‘ㅔ’잖아.”하는 순간 생각하던 것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만다. 뭘 쓰려고 했는지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언제 잡아줘야 할까? 바로 글쓰기를 모두 마친 후이다. 아이가 뿌듯한 마음으로 또는 다 끝났다는 개운한 마음으로 일기를 보여줄 때 “와~ 이런 표현 좋다, 이런 생각 좋다.” 등의 칭찬까지 마치고 “이제 맞춤법 잡아줄까?”라고 물으면 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순간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맞춤법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완성된 글을 더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만약 그때 고개를 매몰차게 가로젓는다면 그때의 맞춤법 교정은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좋다. 이미 글쓰기로 체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앞으로 계속할 테니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 좋다.


이런 표정으로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의 일기 쓰기는 사실 아이와의 대화가 70%를 차지한다. 30분 일기 쓰기 활동에 20분은 대화를, 10분은 글쓰기에 할애되는 정도다. 그리고 앞으로 쓰게 될 독서록, 주제 글쓰기에도 이 대화는 빠지지 않는다.


 우리가 아이에게 글쓰기를 시키는 이유는 아이의 사고가 깊어지는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또 내 생각을 타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내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표현해야 다른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있는지 배우는 소통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혹시 글쓰기로 맞춤법을 가르치거나 문해력을 가르칠 생각이었다면 나는 다른 방법을 권하고 싶다. 맞춤법 관련 문제집이나 독서가 더 빠른 해결법이 될 수 있다. 글쓰기는 아이를 더 깊어지게 하는 작업이다. 생각을 깊고 다양하게 해 보고, 자신만의 인생 가치관을 만들며, 내 마음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아이의 첫 글쓰기인 일기도 그런 관점으로 바라봐준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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