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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Apr 25. 2022

아이의 '주제 글쓰기' 과제는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우리 아이의 학교에서 초등 저학년을 대상으로 선생님께서 내주시는 글쓰기 과제는 크게 세 가지다. 일기 쓰기, 주제 글쓰기, 독서록 작성. 2학년 과정에 동시 쓰기도 있으나 그것은 대부분 수업 시간에 소화한다. 주제 글쓰기는 과제로 내주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 형태는 선생님마다 다르다. 어떤 선생님은 ‘게임’, ‘봄날’, ‘학교’ 등 글감을 주제로 내주셨고, 어떤 선생님은 상황을 주제로 내주셨다. 예를 들면 ‘바닷가를 거니는데 빈 병이 떠내려왔다. 그 안에는 뭐가 있을까?’ , ‘친구가 생일파티에 나를 초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등이다. 첫 문장을 정해주고 그 뒷이야기를 꾸미도록 하는 선생님도 계신다. ‘어느 날 창문을 열어보니 음식이 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숲 속에서 낯선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처럼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예 주제까지 학생 스스로 정하게 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지금의 우리 아이 담임선생님처럼 말이다. 뭘 쓸 것인지 주제도 내용도 자유롭게 정하라는 것인데, 아이는 자유니까 하고 싶은 대로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인 엄마는 그렇게 접근이 되지 않았다. 정해진 것이 없으니 정말 내 맘대로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것일까? 사실 주제 글쓰기는 일기 쓰기보다 한 단계 위의 작업이다. 왜냐하면 글의 형식을 스스로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처 : 픽사베이



너는 작가가 되었어. 이 글을 누가 읽으면 좋을 것 같니?”     


 글의 형식을 정하려면 ‘독자’를 생각해야 한다. 이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 목적을 정해야 글의 형식이 정해진다. 그래서 주제 글쓰기를 하기 전에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꼭 해야 한다. '너는 작가가 되었어. 이 글을 누가 읽으면 좋을 것 같니?'. 사실 이 깨달음은 내가 아이와 주제 글쓰기를 하다가 무척 당황스러운 일을 겪고 나서 얻게 되었다.     


 2022년 4월 16일. 그날은 세월호 8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학교에서 그 사건에 대해 얘기를 들은 아이는 그 주제로 글을 쓰고 싶어 했다. 나는 아이와 함께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았다. 사건이 일어난 원인과 과정, 선체에 그대로 남아있으라는 말을 잘 듣던 학생들이 더 많이 목숨을 잃었던 아픈 기억, 미적지근했던 어른들의 대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목숨과 그 책임을 져 교도소에 간 사람들까지. 나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그날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방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알려주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꽂힌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세월호의 급선회 항로였다.


 당시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는 진도 근처에서 갑자기 급한 곡선을 그리며 항로의 방향을 틀었다. 그것 때문에 세월호는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큰 사고로 이어졌다. 아이는 신문 기사에 그림으로 표현된 급선회 항로를 보더니,

 “왜 세월호 리본이 그렇게 생겼는지 알겠어. 모양이 똑같잖아.”

 라고 말했다. 즉 아이는 리본 모양이 그 항로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그 리본은 모양을 단순화한 시각적 디자인에 가깝다. 긴 직사각형 모양의 리본 테이프를 한번 꼬아 교차하는 지점을 고정하면 간편하게 리본 모양이 된다. 유방암 예방 캠페인에 사용되는 핑크 리본도, 에이즈 인식 개선과 예방을 의미하는 빨간 리본도 모두 같은 모양이다. 그러나 아이는 자신이 스스로 알아낸 그 정보에 완전히 꽂혀버리고 말았다. 실제 사실과는 다르지만 본인이 생각하기에 ‘맞다’라고 생각한 그 정보에 엉뚱하게 꽂혀버린 것이다. 나는 ‘이게 아닌데’ 싶었다. 그 사건은 아이가 두 살 되었을 때 일어났다. 그리고 열 살이 된 지금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아이가 쓸 수 있는 글이 엉뚱한 리본 모양 타령이 되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제지했고 아이는 실망했다.      


펜을 든 아이가 작가, 어른은 어시스트일 뿐.     


 결국 그날의 글쓰기는 엄마인 내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시곗바늘이 밤 10시를 향하고 있었고, 당장 내일 제출해야 하는 과제였고, 이제 와서 다른 글감으로 바꾸기엔 자료조사가 아까웠다. 나는 일단 첫 문장에 아이가 원하는 내용으로 적고, 다음은 사고 원인, 사망자 수, 처벌 등을 쓰도록 했다. 첫 문장을 쓸 때도 아이는 확신에 가까운 어조로 리본의 모양이 항로의 모양이라고 주장했지만 난 그 어투도 바꾸었다. ‘지극히 내 생각입니다.’라는 느낌이 들도록. 아이는 그날의 글쓰기를 재미없어했다. 마지막 감상평을 생각해보라고 했을 때 ‘나도 세월호를 기억해야겠다.’는 뻔한 소리를 했다. 엄마가 자료조사에 근거해 뻔한 소리로만 글을 쓰게 했으니, 본인도 앵무새 같은 소리로 감상평을 적었는지도 모르겠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가 작성한 '세월호' 주제 글쓰기. 작업 과정에 안타까움이 많이 남는다.


 나는 그날의 글쓰기를 여러 번 곱씹었다. 아이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새로운 것을 자신이 발견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있었지만, 그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아이와 조금 더 대화를 나눴어야 했다. 아이가 쓰고자 하는 내용을 더 정확하게 파악해야 했고, 비록 틀린 생각이더라도 아이의 생각을 존중했어야 했다. 그렇게 묵살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만약 그랬다면 ‘글은 본인이 쓰고 싶은 것을 써야 한다’는 내 대전제에 어긋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글쓰기가 재미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긴 시간을 들여 단순히 과제 수행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의 사고를 깊게 하는 글쓰기의 순작용을 충분히 얻었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작가로 존중했어야 했다. 엄밀히 말해 그 순간 나는 독자였다. 독자인 내가 작가에게 원하는 글을 쓰라고 강요한 꼴이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생긴 그날의 사건을 아이는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게 너무 궁금했다. 그러나 아이가 쓰고 싶은 글은 그게 아니었다. 그러니 적어도 아이에게 물어봐 줬어야 했다. “너는 어떤 글을 쓰고 싶어? 어떤 독자를 위해 이 글을 쓸 거니?” 독자에 대한 고민을 어른인 내가 할 것이 아니라, 펜을 든 아이가 해야 했다. 그랬다면 그날은 조금 더 세월호 리본에 집중된 글이 나왔을 것이다. ‘세월호 리본에 궁금증을 가진 사람’을 독자로 하고, 친구나 동생들을 위한 글을 썼을지도 모른다. 가벼운 설명문이나 편지글 형식을 취했을 것이다. 이처럼 현실이 된 미래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언제나 아쉬운 것뿐이다. 만약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수많은 후회를 남기지만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그저 과거의 일을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의 일을 고쳐나갈 뿐이다. 세월호 사건도, 아이의 글쓰기도,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보는 일도.


 요즘 부모들은 배경지식을 넓혀주기 위해 아이들에게 과학 동화, 수학 동화 전집을 사주기도 하고 어린이 잡지를 구독해주기도 한다. 박물관이나 과학관 체험도 가고, 한국사나 세계사에 관한 것도 알려준다. 그것이 글쓰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독창적이고 풍부한 글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많은 정보를 줘도 아이가 쥘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적다는 것이 문제다. 가끔은 아주 소소하고 엉뚱한 것에 꽂히기도 한다. 아직은 아이의 사고가 어른만큼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어른들은 탄식한다. 원하는 것을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는 아이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이미 복합적이고 융합적 사고가 가능한 어른들은 본인의 기대에 못 미치는 아이의 글쓰기에 불만을 가지기 쉽다. 소위 말해 눈에 안 찬다. 그래도 어른은 글쓰기의 주도권을 아이게 줘야 한다. 어디까지나 작가는 펜을 잡고 있는 아이이고, 그 옆에 어른은 어시스트고 자료조사 요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히 기억할 것은 글을 쓰면서 아이는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사고 능력을 점점 키워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기다려줘야 한다. 아이를 존중하고 아이가 진정 원하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아이의 글쓰기를 지도하는 어른의 자세는 바로 그 기다림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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