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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May 02. 2022

정말 하기 싫은 독서록 과제를 하는 방법.

 앞서 밝힌 바가 있지만 내 글쓰기의 대전제는 ‘쓰고 싶은 글쓰기’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 ‘뭔가 쓰고 싶다’고 느끼는 일이 많이 있을까? 어른들은 책을 읽으면 무조건 기록하게 시키는데 그 책에 아무 감흥이 없다면? 그때 아이는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내 아이가 처음 독서록을 썼을 때 줄거리부터 쓰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런 건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데 어쩜 이렇게 똑같이 하지?’

 내가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 어린아이들도 그렇고, 아마 우리 엄마가 학창 시절 독후감을 쓰셨을 때도 줄거리부터 쓰지 않으셨을까? 책을 읽고 난 후 쓰는 글들은 대부분 유사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줄거리를 쓰고 한 두 줄의 감상평을 적고. 왜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까? 아니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을 찾기에 앞서 먼저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자. 먼저 독서록과 독후감이다. 독서록은 본인이 읽은 책을 중심으로 ‘기록’에 목적을 둔다. 따라서 독서록은 책 제목만 적어도 무방하다. 지은이, 날짜, 한 줄 평을 적기도 하는데 기록의 범위는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하지만 독후감은 그 책에 대한 느낌 즉 ‘감상’을 중심으로 적는 것이다. 따라서 줄거리보다 본인의 생각을 더 많이 담아야 한다. 아니 반드시 담아야 한다. 그렇다면 ‘서평’과 ‘비평’은 어떨까? 서평은 책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다.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표지, 그림까지 개인의 평가를 담는다. 비평은 여기에 ‘분석’을 더한다. 왜 이런 표현을 썼고, 이런 표현에 대한 역사적 의미까지 아주 전문적이고 세세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평은 전문가의 영역이며 ‘비평가’라는 직업까지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아이의 독후활동 글쓰기에 어떤 형태를 입힐 것인지 어른들은 고민해봐야 한다. 아이에게 독서록을 쓰게 하고 싶은지, 독후감을 쓰게 하고 싶은지, 서평을 쓰게 하고 싶은지.


 초등학교 저학년 선생님들이 과제로 내주시는 독후활동은 독서록과 독후감의 경계를 오간다. 어떤 선생님은 읽은 날짜, 제목, 지은이만 적게 하셨고, 어떤 선생님은 거기에 더해 핵심 단어를 적게 하셨다. 더 나아가 인상 깊은 문장 쓰기를 요구하거나 한 줄짜리 감상평을 적게 하시는 분도 계셨다. 자녀가 어리다면 딱 이 정도의 독후활동이 좋을 것 같다. 기록도 남기고 크게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독후감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독서록이라고 하기엔 부담스러운 ‘7~10 줄 정도로 써올 것’이라는 독서록.(선생님께서 독서록이라고 하셨으므로 일단 독서록이라 정의한다.) 학년이 올라가니 그런 요구의 글쓰기 활동이 나왔다. 이 얘기는 책의 줄거리를 1~2 문장으로 요약하고 본인의 감상평을 5~7 문장 정도 써야 한다는 소리인데, 책 한 권의 줄거리를 1~2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사실 어른도 어렵다. 출판사 직원 정도면 가능할까.


 그래서 내가 찾은 방법은 줄거리를 과감하게 빼버리는 것이었다. 어차피 독서록에서 독후감으로 글쓰기가 진행되어야 한다면, 감상 위주의 글을 쓰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럴 경우의 단점은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은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읽으면 더 아리송할 것이다. 그래서 숙제 검사를 할 선생님 심정을 생각하면 못할 짓이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찾은 절충안이다.


독서록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하기 싫음'의 몸부림.


 위 사진은 우리 아들이 학교 숙제로 정해진 책을 읽고 독서록을 작성한 글이다. 읽어야 할 책마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정말 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도 숙제라 어쩔 수 없어 꾸역꾸역 끌고 간 글쓰기인데, 이 글에 대한 설명을 하기 전에 먼저 두 가지 양해 말씀을 구해야겠다. 첫째, 글씨 상태가 고르지 못해 죄송합니다. 둘째, 아이의 허락 없는 무단 유출입니다. 그러니 아이를 비방하지 말아 주세요.


 이 책의 제목은 <숙제 안 하는 게 더 힘들어>라는 책이다. 아이에게 “독서록 첫 줄을 어떻게 쓸 거니?”라고 물었을 때 “나도 숙제 안 하고 싶어.”라고 했다. 나는 그걸 그대로 쓰게 했다. 책의 내용과도 잘 맞고, 재밌으며, 솔직한 마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왜?”라고 이유를 적게 했다. “귀찮아.” “그래 그렇게 써.” 그다음 문장은 내가 유도를 했다. “너도 얘네 반 가고 싶겠네? 주인공 이름이 뭐지? 그래 유스케. 너도 유스케 반 학생 하고 싶겠네?” 아이가 고개를 끄덕한다. “그래 써.” 물론 그다음은 “왜?”라고 또 묻는다. “숙제 안 해도 안 혼나니까”. 그건 이미 자기가 대답하며 쓰고 있다.

 “대신 뭐 해야 하잖아? 숙제 대신 뭐 한다며?”

 “이야기 만들어.”

 “넌 무슨 이야기 만들 건데?”

 “몰라. 하기 귀찮아.”

 “그냥 이야기 아니고 멋진 이야기잖아. 그거 써야 안 혼나지.”

 난 이 순간에 책의 뒤표지를 슬쩍 보여줬다. 책의 표지엔 그 책의 내용을 가장 잘 담은 글이 있기 마련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든, 이야기의 줄거리를 담든, 인상 깊은 문구가 있든. 그러니 아이 글쓰기가 잘 안 풀릴 때 책 표지의 앞, 뒷장을 슬쩍 보여줘라. 이건 나만의 팁이다.


글의 진도가 안 나갈때 책장의 앞, 뒤를 보여줘라. 그 책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구가 가득하다. 아이가 힌트를 얻고 글을 쓸 수 있다.


 아이가 나름 힌트를 얻고 다음 문장을 쓴다. 그러다 보니 얼추 숙제의 양을 채워간다.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질문했다.

 “넌 이 책 속 이야기 중에 뭐가 제일 재밌었어?”

 그리고 “왜?”라는 질문도 빼놓지 않았다. 아이가 꼽은 것은 이야기 속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내 줄 과제를 미처 만들지 못했을 때, 반 아이들 앞에서 들려주신 이야기다. 그러니 선생님도 숙제를 하지 못해 똑같이 멋진 이야기로 숙제를 대신하신 거였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담은 책의 힘들었던 독서록 과제를 해치웠다. 아이는 힘들어 죽겠다며 방으로 가서 잠들었고, 나는 그런 글쓰기 활동에서도 남는 것이 있어 이렇게 적는다.


 독서록도 결국은 본인의 생각을 적어야 가장 재밌다. 어른들은 뭔가 멋들어진 표현을 원하지만 사실 책을 읽고 아이들이 얻는 감상은 그렇게 깊지 못하다. 지금의 독서록도 기껏해야 ‘나도 숙제하기 싫다’, ‘내가 좋아하는 용 얘기를 한 선생님 이야기가 제일 재밌다.’ 정도의 감상평이 나왔을 뿐이다. 핵심은 ‘내 생각을 솔직히 쓴다’는 것이다. 어른들이 제일 못하게 말리는 부분이다. 단순하고 깊이 없는 감상평이 ‘성의 없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다. 아이가 느끼는 것은 그런 것이며 아이가 할 수 있는 표현도 그런 것이다. 있는 그대로, 생긴 모습 그대로의 존중은 귀하다. 글쓰기뿐만이 아니다. 아이를 대하는 어른들의 자세는 늘 그래야 한다. 아이에게 어른의 잣대를 들이밀면 언제나 미성숙한 것뿐이다. 내가 우리 아이에게 꽤 잘하는 말이 있는데 “왜 말로 못 하고 징징거려?”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기분 나쁜 순간에 그 감정과 사건의 내막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물론 말로 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맞지만, 윽박지를 일이 아니고 가끔은 그 모습 그대로도 수용해 줘야 옳은 어른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독서록의 글밥을 이제 막 늘리고 있는 우리 아이와 비슷한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 글은 일단 써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 ‘내 생각’이어야 한다. 투명하게 내 생각을 쓸 수 있을 때 글의 진도가 나간다. 재미도 느낀다. ‘하기 싫다.’ ‘귀찮다.’는 아이의 도발적인 마음도 마음껏 쓸 수 있게 해 준다면 아이는 분명 글쓰기에 흥미를 갖게 될 것이다. 논리적이고 멋진 글쓰기의 기술을 입히는 것은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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