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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Jan 22. 2022

아이도 글이 안 써질 때가 있다.

 방학을 하고 많은 부모들이 새로운 과제를 아이들에게 주고 있을 것이다. 학기 중에 바빠서 하지 못 했던 것들 수영, 미술 등 예체능을 새롭게 시작해보거나, 부족한 과목을 보강할 수 있는 방학 특강을 듣거나, 독서량을 늘려보는 일 등 말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몇 몇의 부모는 아이에게 글쓰기를 시키고 있다고 했다. 초등 고학년 수업부터 중학교 수행평가까지, 아이들의 글쓰기 활동이 많아지고 중요해지기 때문에 방학 때 연습을 시키고 있다고 했다. 하다못해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일기 쓰기가 방학 숙제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편은 글을 써야 한다.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아이들의 글쓰기가 대부분 과제의 하나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내주는 일기를 통해,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는 독서 활동을 통해, 또는 부모가 제시하는 과제를 통해 아이는 처음으로 글쓰기를 한다. 그러니 글쓰기 활동이 얼마나 따분하고 재미없겠는가.      



 나는 글쓰기는 말하기와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은 비교적 쉽다. 그냥 생각난 것을 언어로 표현하면 된다. 글도 마찬가지다. 그 말로 할 것을 글자로 적으면 된다. 그뿐이다.     


 사실 이 깨달음은 내가 약 한 달가량 글을 쓰지 못하고 답답해할 때 얻게 된 생각이기도 하다. 그 당시 나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해도 서두를 꺼내기가 어려웠고, 글에 살을 붙이는 작업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왜 그럴까 그 생각을 몇 날 며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내가 글에다 이것저것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브런치를 통해 글을 쓰면서 내가 조금 교만해졌던 것 같다. 내가 글을 엄청 잘 쓴다는 생각이 들고, ‘나 책도 낼 수 있을 것 같아’라는 꿈에 부풀었다. 책을 내려면 뭐가 필요할까 이런저런 정보를 얻고 나는 내 글에 그 ‘정보’들을 끼워넣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분량은 어느 정도 되어야 한다든지, 글의 형식은 에세이처럼 술술 혀야 한다든지, 내용은 자기개발서처럼 독자가 얻어갈 내용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든지 등등. 그러다 보니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생각이 많고 제약이 많았다. 내 글이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A인데 예쁘게 포장해서 A'로 내놓으려니 글의 핀트가 살짝씩 엇나갔다.      


 그때 아이들에게 수업하던 것이 생각났다. 아이들과 수업할 때 나는 먼저 어떤 얘기를 할 건지 대화를 한다. 그리고 아이가 했던 말로 서두를 떼게 했다. 예를 들면 ‘학원에 가기 싫다’ ‘핸드폰을 가지고 싶다’ ‘줄넘기를 잘하고 싶다’ 등등의 말이다. 그 말을 쓰게 하고, 그다음에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를 불러준다. 그러면 아이는 자기의 생각과 논리와 이유를 단다. 그러면 벌써 두 문장이다. 학교 선생님이 다섯 문장만 써도 된댔는데 벌써 두 문장을 완성한 것이다. 자신감이 생긴다. 그다음엔 아이와 했던 대화를 떠 올리며 “너 아까 그 얘기 했잖아.” 그러면 아이는 “아 맞다.”하고 세 번째 문장을 쓴다. 이 과정에서 나는 글의 서론, 본론, 결론 따위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주장하는 글쓰기는 어떤 형태고 독후감은 어떤 형태여야 한다고 형식을 정해주지도 않는다. 글에는 반드시 본인의 생각이 담겨야 한다며 네 느낌을 쓰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가 ‘모르겠어요.’라고 하면 “그래, 그럼 모르겠다라고 쓰자.”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했던 것처럼 내 자신에게 그냥 생각나는 것을 적자고 말했다. ‘글이 안 써진다. 내 구독자 중에 몇 분이나 그 사실을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거의 한 달가량 글을 쓰지 못했다’ 그게 이 글의 첫 문장이었다. 그러다가 아이들과 수업하던 게 생각났고, 아이들도 글이 안 써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이 이어졌다. 지금 아이에게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는 어떤 엄마의 얼굴도 떠오르고, 글쓰기가 과제의 한 부분이 되는 요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생각났다. 지금의 이 글은 그런 생각들로 완성되어지고 있다.    


 아이가 글을 못 쓰겠다고 할 때, 혹은 쓰기 싫다고 할 때 그냥 쓰기 싫다, 못 쓰겠다는 말부터 시작하며 글을 쓰게 해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왜 글이 안 써지는지 쓰기 싫은지 그냥 그 마음을 담게 해보는 것이다. 일기도 마찬가지다. 꼭 그날의 경험을 중심으로 글을 쓰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소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이 신기했던 아이가 왜 구름이 움직이는지 이상하다는 내용으로 일기를 쓸 수도 있고, 잡곡밥이 싫은 아이가 엄마는 왜 맨날 잡곡밥을 먹으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일기를 쓸 수도 있는 것이다.      


 말하는 것처럼 글을 쓰자는 말은 어떤 형식이나 제약을 넣지 말자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화를 할 때 서론, 본론, 결론을 따져서 말하지 않고,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가, ‘아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냐면’하고 부연 설명을 나중에 하기도 한다. 경험이나 상황을 육하원칙으로 말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다가 누가 물어보면 그때서야 빠진 부분을 보충 설명하기도 한다. 아이가 누가 그랬는지 언제 그랬는지 글에서 빠졌다면 한 문장 더 추가해서 ‘그런데 사실은 이 말은 누가 한 말이다.’라고 하거나 ‘어떤 상황에서 있었던 일이다’라고 부연 설명해 주면 된다. 그리다가 마음에 안 든다며 아이가 앞서 쓴 문장들을 다 지우고 육하원칙으로 다시 쓸 수도 있는 문제다.     


 아이에게 글쓰기가 재밌으려면 그 활동이 의미 있게 다가와야 한다. ‘왜 해야하는지 모르겠어’라고 생각한다면 그 어떤 활동도 재밌을 수가 없다. ‘내가 평소 말로 하던 걸, 글로 써볼 수도 있네.’ 이 새로움만 아이에게 쥐어주자. 글이 ‘재미’로 다가가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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