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가정마다 아이들에게 금기시하는 행동이나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집은 게임과 핸드폰이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는 우리 집에서 금지사항이다. 다만 유튜브는 허용을 해준다.
하지만 3학년 성현(가명)이네 집에서는 게임, 핸드폰, 유튜브 세 가지 모두 노출되어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성현이가 놀이터에서 더 많이 놀고, 책을 통해 즐거움을 찾기를 바라셨다. 그리고 성현이도 그 뜻을 잘 따라주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하는 걸 보면 하고 싶을 것 같았다. 나는 어떠냐고 물었다.
“아니요. 전 괜찮아요.”
성현이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대답을 했다. 하지만 나는 이상했다. 우리 아들만 해도 ‘엄마. 00이 집에서는 게임을 해도 된대~ 하루 30분씩 한대~’ 라며 ‘엄마 나 게임하고 싶어’라는 소리를 돌려 말하는데, 성현이는 그런 게 없었다. 하다못해 ‘우리 반에 누구는 게임을 해요’라고 정보를 주든지, ‘누구는 위험하게 걸어가면서 게임을 해요’라면서 흉을 보든지 어떤 형태로든 얘기를 꺼낼 법도 한데, 무 자르듯 딱 자르는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부분을 건드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래도 될지 걱정이 됐다. 집안의 금기를 깨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출처: 픽사베이
나는 성현이 어머니만 따로 불러 성현이와 게임이나 핸드폰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되겠느냐 여쭤봤다. 괜히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될까 봐 염려스러웠다. 다행히 성현이 어머니는 괜찮다고 말씀해주셨다. 아이의 진짜 생각도 궁금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날 소재는 ‘핸드폰’으로 정해졌다.
성현이에게 게임, 핸드폰, 유튜브 중에 고르라고 했는데 아이가 고른 것은 ‘핸드폰’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핸드폰을 갖고 싶냐 물으니 갖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쓰라고 했다. 아마 쓰는 것만으로도 기쁘지 않았을까?
“그런데 핸드폰 쓰는 건 나쁜 걸까? 좋은 점도 있지 않을까?”
“좋게 사용하면 좋고, 나쁘게 사용하면 안 좋아요.”
아이의 대답이 두루뭉술했다. 아직 금지 물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러워 보였다. 나는 일부러 핸드폰이 있는 환경을 자꾸 연상시켜 주었다. ‘어른들도 있잖아’. ‘친구들은 핸드폰으로 뭘 해?’ ‘네 손에 있으면 어떻게 쓸 건데’ 등등. 아이는 마치 상상도 해보지 않은 것처럼 대답을 잘하지 못했다. 반대로 핸드폰의 부작용에 대해 물으니 줄줄줄 말이 나왔다. 재밌는 질문도 해봤다.
“만약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이번 크리스마스에 핸드폰을 선물하시면 어떻게 할 거야?”
“엄마 줄 거예요.”
“그럼 넌 언제 써?”
“나중에요.”
그래서 언제가 핸드폰 쓰기에 적기냐고 물으니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정도라고 했다. 그보다 어릴 때는 스스로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아이들은 이렇게 저마다의 논리가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직 그런 생각을 못 할 거라 생각해서 먼저 규칙을 정하고 통제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에게 먼저 어떤 규칙이 필요한지, 어떤 통제가 필요한지 물으면 꽤 합당한 기준으로 대답을 한다. 의외로 무모하거나 억지 부리지 않아서 놀랄 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성현이에게 초등학교 6학년 또는 중학교 1학년 시기에 네게 핸드폰이 생기면 뭘 하고 싶은지 적어보라고 했다. 아이는 금방 적지 못 하고 잠시 생각을 했다. 연필을 꼭 쥐고 가만히 노트를 바라보았다.
엄마에게 절대 보여줄 수 없다는 글. 그러나 본인의 생각이 담긴 글
‘핸드폰을 가진다면 영상, 문자 같은 걸 하거나 보고 싶다’
성현이가 쓴 마지막 문장이었다. 나는 드디어 성현이가 속마음을 보였구나 생각했다. 친구들과 문자 보내고 영상 보는 것. 사실 스마트 폰의 무궁무진한 위력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나온 답이겠지만 참 소박하고 순수했다.
나는 성현이에게도, 성현이 어머니에게도 글을 통해 잠깐씩 일탈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 보았다. 행동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말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끔 뭔가 허락되지 않은 생각이나 의견을 하얀 공간 위에 적어보는 것. 그 행동만으로도 해방감이 느껴질 것 같았다.
또 성현이 어머니는 혹시 자신이 너무 강압적으로 해서 아이가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말하지 않는 게 아니냐 물어보셨다. 잘은 모르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하기엔 둘 사이가 너무 좋았다. 나란히 앉아 자신의 어깨로 상대를 툭툭 치며 얘기하는 모습이 마치 연인들처럼 알콩달콩해 보였다.
나는 오히려 성현이가 엄마를 너무 좋아해서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엄마가 싫다는 행동을 굳이 해서 싸움을 만들거나, 엄마가 no라고 말한 부분에 굳이 yes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냥 엄마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도 괜찮았던 것이다. 엄마를 정말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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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이는 반듯한 선비나 착한 모범생처럼 부모의 기대에 부합하고 있었지만, 사실 본인만의 논리나 주장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다만 부모와의 사이라든지, 외부의 기대감을 고려했을 때 그 생각을 꺼내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럴 때 비밀 일기장이 있다면 훨씬 숨통이 트일 것 같다. 앞으로 다가올 사춘기에는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첫 대화에서 뾰족한 뭔가를 찾지 못해 답답했던 일기 코칭은 그렇게 금기를 깨면서 마무리되었다. 성현이는 나와 쓴 글을 엄마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자신의 품에 안았다. 앞으로도 많은 글들이 성현이에게 위로와 치유와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탈출구가 되어줄 글
일기 코칭이 끝나면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쓴 글을 가져가겠다고 말합니다. 오롯이 본인의 생각을 적고 감정을 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글이 좋습니다. 글은 정말 자유롭고 어떤 제약도 없습니다. 흰 종이 위에 마음껏 내 생각과 감정을 펼칠 수 있습니다. 가끔은 일탈을 하고, 가끔은 권력에 대들면서 일그러진 제 욕망과 감정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앞으로 모든 학원을 다 가지 않아도 된다면’, ‘엄마를 마음껏 야단칠 수 있다면’, ‘친구들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면’ 등등. 이런 주제를 던져주고 써보라고 하면 아이는 상상만으로도 히죽히죽 웃게 될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숨구멍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에게 그 숨구멍을 글이라는 수단으로 만들어주면 어떨까요? 가장 안전하고 손쉬운 방법이 아닐까요?
상기 내용은 코칭 수업 당시의 느낌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