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콩 Dec 24. 2021

하루에 다섯 편씩 써대는, 시 쓰는 아이

 일기 코칭으로 만난 아이 중에 평소 시를 쓴다는 아이는 혜영(가명)이가 유일했다. 나이는 겨우 9살. 아마 교과과정에 동시가 처음 나오는 학년이 2학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시의 매력에 빠져서 주야장천 써대는 아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혜영이에게 시의 매력을 물어보니 시는 재밌고, 자유로우며, 짧게 쓰고 다른 거 또 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다른 거 또 쓴다는 말에 ‘풋’ 웃음이 나왔다. 혜영이의 시는 정말 자유로웠다. 그리고 그림이 그려지는 듯했다. 제목도 탁월한 <삼총사의 밤>에서 ‘또 그렇게 시를 쓰고’라는 표현은 압권이었다. <숨은 그림>이라는 시를 읽을 때는 연필을 들고 숨겨진 그림에 동그라미라도 쳐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좋아서 감탄을 하자 아이가 내게 선물로 주었다. 그 예쁘고 소중한 시 두 편을.     


그림이 그려지는, 보여지는 듯 한 시 두 편. 9살 아이의 작품.


 이 멋진 혜영이와 나는 어떤 글을 써볼까. 역시 시를 쓰는 게 좋을까, 아니면 새로운 글쓰기를 해볼까. 혜영이와 대화를 나누고 글의 소재를 정하자, 역시 시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혜영이는 앞서 쓴 글에 소개된 ‘민정(가명)’이의 동생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 가족의 아픈 손가락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는 상태였다. 어느 날 무지개 다리를 건너버린 앵무새와 어쩔 수 없이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아홉 살 혜영이에게는 벌써 두 번의 큰 이별이 있었던 것이다. 이 아이에게 이별이란 어떤 느낌일까.     


 아이와 대화를 이어갔다. 고양이가 떠나던 날에는 너무 슬퍼 학교도 가지 못하고 집에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고양이가 입양된 집을 지날 때는 물끄러미 올려다본다고 했다. 가까운 곳으로 입양된 모양이었다.  

   

 “그 집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창문에 캣타워가 있는데 그게 보여요. 우리 아빠가 만들어준 거거든요.”

 “다시 만나면 어떨까? 집에 데려오고 싶을까?”

 “아니요. 반가울 거예요.”     


 아이의 대답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반갑다니. 어른들은 이별 후 찾아오는 그리움에 압도되어 다시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별한 그 사람에게 매달리기도 하고, 이별이 너무 슬퍼서 상대를 미워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만나지 말걸’ 후회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이별의 대상을 만났을 때, 우리 어른 들은 몇 명이나 ‘반갑다’는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아이의 맑은 대답에, 그 건강한 대답에 가슴이 먹먹했다.      


 “반갑고 또 어때?”

 “잘 살고 있을 거야. 앞으로도 잘 살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우리 먹을 것도 가끔 보내줘요.”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맺혔다. 그렇게 아이의 솔직한 마음이 담긴 <이별>이라는 시는 결국 혜정이 어머니를 울리고 말았다. 시를 읽으며 엄마가 우는 모습에 아이는 어리둥절했다.     

 

맞아. 이별이란 같이 있고 싶은데 떠나는 것이지.



 어머니는 혜정이에 대해 이렇게 말해주었다.    

 

 “더울 때 가족들이 밥을 먹고 있으면 지나가다 선풍기 바람을 식탁 쪽으로 돌리는 아이에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주어진 상황에 대해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아이. 작가로서 손색없는 재능을 가진 아이였다. 혜정이가 계속 글을 쓰는 사람으로 커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별>이라는 시는 혜정이 어머니에게 선물되어 졌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상처가 어머니에게도 깊은 것 같았는데, 그 선물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감정을 물어본 적 있나요?     


저는 예전에 아이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엄마한테 혼나면 어떤 기분이 들어?’ 첫째는 ‘슬프다’고 했고 둘째는 ‘슬프고 화나고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다른 건 다 알겠는데 궁금한 건 뭘까? 아이와 대화를 해보니 이 녀석은 혼날 때 대부분 ‘나 왜 혼나지?’했던 것 같았습니다. 제 잘못도 있겠죠. 그 이유를 명확히 얘기해주지 않았거나, 대부분 제 감정에 빠져 훈육할 상황이 아닌데 화를 내고 있었겠죠. 아이의 대답에 웃음이 나고 또 반성도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대화하면 아이도 다 생각이 있고, 논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도 어른보다 훨씬 건강할 때가 많아요. 아이들과 일상적인 대화 말고 조금은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도 나눠보세요. 새롭게 배우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아이의 감성과 생각을 만나는 일은 즐겁니다.



상기 내용은 코칭 수업 당시의 느낌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생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