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콩 Dec 22. 2021

아이의 생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세요.

 내가 만난 4학년 민정이(가명)는 정말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였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고, 일에 대한 욕심도 많고, 매우 창의적이며, 아이디어까지 독특했던, 얘기하면 할수록 미소 짓게 만드는 정말 예쁜 아이였다. (실제로 얼굴도 예뻤다,)     


 우리는 그날의 글거리를 찾기 위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민정이는 앵무새를 좋아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고양이를 키웠는데 동생에게 알레르기가 생기면서 다른 집에 입양 보내고 지금은 앵무새를 키우는데 정말 귀엽다고 했다. 앵무새가 처음 왔을 때 자신의 손을 물었는데,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말에 나는 ‘왜 그랬을까?’물었다.      


 “앵무새가 손을 물면 무서웠을 수도 있잖아. 가까이 가기 싫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 왜 민정이는 앵무새에게 더 다가가고 싶었지?”     


 그 질문에 민정이는 딱히 대답이 없었다. 그 질문을 바탕으로 ‘민정이는 책임감이 많은 사람인가? 민정이는 어떤 사람이지?’라는 질문이 이어졌고 그 내용으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민정이가 스스로에 대해 쓴 글. 코칭을 마치고 이 글은 자신이 가지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


 수업은 무난하게 끝났다. 민정이는 뭐든 하고 싶은 욕심이 많았고, 또 일머리가 있어서 뭐든 잘하는 아이였다. (심지어 폴 댄스도 는 아이였다.) 나는 그렇게 코칭을 할 뻔했다. 민정이의 어머니를 만나기 전까지.     


 민정이 어머니에게 민정이가 쓴 글을 보여주며 아이가 참 다재다능하다고 얘기했는데, 민정 어머니의 눈길이 민정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향하고 있었다.     


 “선생님. 이게 딱 민정이에요. ‘나는 용감한데 주눅이 들고,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시선도 보고, 많은 걸 하고 싶은데 하면 걸린다.’는 이 문장이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심각성을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민정이 어머니는 민정이네 가족들이 처음 키웠던 앵무새에 대한 얘기를 하셨다. 지금의 앵무새는 두 번째고 사실은 처음 키웠던 앵무새가 있었는데, 그 앵무새가 죽고 나서 온 가족이 깊은 애도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민정이 역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너무나 슬퍼했고, 사실 그 얘기를 전하는 어머니 자신도 무척 슬퍼하셨다. 지금의 앵무새를 키운지 1년 반이 되었다는데,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그 얘기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가족들의 슬픔은 깊고 깊어 보였다.     



민정이와 함께 했던 수업 모습


 나는 그 얘기와 동시에 민정이가 썼다던 과거의 일기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글들은 아주 솔직한 글들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쓴 글들이었다. 그러나 그 글 속에 죽은 앵무새 얘기는 없었다. 나와의 대화 속에서도 죽은 앵무새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민정이는 ‘선택적인 솔직함’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았다.     


 선택적인 솔직함. 나는 그게 뭔지 잘 안다. 내가 그러고 있으니까.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한 편이고 사람들을 대할 때도 진심이지만, 진짜 진짜 상처받고 진짜 진짜 눈물 나는 얘기는 딱 한 사람 남편에게만 한다. 나는 글도 진심으로 쓰고, 사람을 대할 때도 진심으로 대한다. 그러나 솔직함의 전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보여주는 모습에 가식은 없지만, 진짜 모습 전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도 나는 내 모습 전부를 보여줄 사람이 한 명은 있는데, 민정이는 어떨까.      


 민정이 어머니와 더 대화를 이어갔다. 민정이 어머니는 민정이를 조금 버거워하셨다. 너무 잘해서. 뭐든 너무 잘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런 모습에 어머니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감정이 있으신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을 가지시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 감정 때문에 민정이가 잘했을 때, 민정이가 뭔가를 잘 해내어 커다른 성취감을 가졌을 때 순수하게 100% 즐거워하며 칭찬하거나 축하해주지 못하셨던 것 같다. 그 뜨뜻미지근한 온도 차이를 똑똑한 민정이가 알아채지 못 했을리 없다. 민정이는 그런 엄마의 반응에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되게 잘한 것 같은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민정이가 뭔가를 할 때마다 주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용감한데 주눅이 들고,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시선도 보고, 많은 걸 하고 싶은데 하면 걸린다.’는 마음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열 한 살 민정이(가명)가 그린 그림


 “아이가 스키를 배우고 싶다는데 그걸 해주게 할 수도 없고......”     


 민정이 어머니는 본인이 뭔가를 지원해줘야 한다는 부담도 있으신 것 같았다. 금전적이든 환경적이든 아이를 도와줄 충분한 무언가를 해줘야하는데 그걸 못 해서 부담을 느끼신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실 민정이는 칭찬과 응원만 있으면 된다. 본인 하고 싶은 건 그 방법까지 찾아내서 할 것 같은 아이였다.  

   

 나는 민정이에게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주라고 어머니께 코칭을 드렸다. 민정이를 있는 그대로 예뻐하고 칭찬해줄 때, 그 마음을 그대로 민정이가 느끼면 아마 뭔가를 할 때 주저함이 덜 할 것이다. 심지어 예술적 재능도 있는 아이라 그림이든, 음악이든, 글이든 뭔가에 꽃을 피울지도 모른다. 더 큰 날개를 달게 될지도 모른다.     


 잘한다고, 잘하고 있다고.     


 지금 민정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말이 아닐까?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나요?


사실 저는 그게 어려웠습니다. '얘는 왜 이럴까?' 이 말을 달고 살았으니까요. 그렇다면 저는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며 자랐을까요? 그 역시도 아닌 것 같습니다. 생긴 모습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기쁨은 성장시기엔 경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저는 그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제 아이들로부터요. 제 남편으로부터요. 아이에게 아무리 화를 내고 부족한 거 투성이래도 우리 아이들은 엄마를 다른 사람과 절대로 바꾸지 않는데요. 화내고 있어도 그 모습을 비난하지 않아요.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요.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그러져있는 저를 그대로 받아들여주더군요. 그 경험은 저를 성장시켰습니다. 다른 무언가를 할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됩니다. 내 생긴 모습 그대로를 인정받고 수용되어졌을 때 그 기쁨과 감동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즐거움을 우리 아이들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 든든한 경험을 우리 아이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상기 내용은 코칭 수업 당시의 느낌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장하는 글쓰기가 되는 아이는 따로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