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론 수업, 마지막 기말 과제는 전시나 공연을 보고, 이에 대한 보고서를 쓰는 것이었다. 때마침 그라운드 서울에서 뱅크시 전시회가 있어, 주말에 A랑 다녀왔다.
뱅크시는 1974년생의 잉글랜드 브리스톨 출신의 백인 남성으로 추정되지만 인적 사항이 정확하지는 않다. 본인에 의하면, 14살부터 낙서화를 시작했고, 고등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퇴학을 당했으며 사소한 일로 체포된 경력이 있다고 한다. 그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이며 영화감독으로 스스로를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칭한다.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브루클린 박물관, 뉴욕현대미술관에 몰래 잠입해서 소를 사냥하고 쇼핑하는 원시인이 그려진 돌을 몰래 진열하고 도망가기도 하고, 판에 구멍을 뚫고 물감 등을 통과시키는 스텐실 기법을 활용해 공공장소에서 몰래 그림을 그리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를 통해 예술을 겉치레로 여기고 제대로 감상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였다.
대형전시관의 경우, 물건을 구매하게 되어 있는 선물가게(art shop)를 통과하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예술, 특히 전시예술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을 담은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자신이 작업하는 과정과 인터뷰를 담은(얼굴을 가린 채) 다큐멘터리로 감독으로 데뷔하였고, 이는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데미언 허스트를 포함한 여러 예술가들과 손잡고 디즈멀랜드라는 아이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가족 막장 테마파크를 만들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분리 장벽과 거의 맞닿아 있는 곳에 월드 오프 호텔(Walled Off Hotel)이라는 호텔을 세우고, 건물 사방을 벽으로 막는 대신 안팎을 그 자신의 작품으로 가득 채워 운영한 후, 수익금을 전부 지역 주민들에게 나눠 주기도 하였다.
뱅크시의 작업은 자본주의에 대한 뒤틀린 비판을 제공한다. 그는 자본주의가 붕괴되기 전까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동안 우리는 쇼핑이나 가서 자신을 위로 하는 게 낫다고 비꼰다.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는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다. 2019년 소더비 경매장에서 낙찰 직후, 액자 속에 감추어진 파쇄기가 작동한 퍼포먼스로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그는 그 다음날, 본인의 SNS에 '파괴의 욕구는 곧 창조의 욕구'라는 파블로 피카소의 말을 올렸고, 파쇄기 설치 과정과 예행연습, 실제 파쇄장면이 들어 있는 유튜브 영상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다시 2021년 소더비 경매에 나왔고, 원래 가격보다 18배 오른 304억에 낙찰되었다.
이번 한국 리얼뱅크시 전시회는 뱅크시가 직접 설립한 회사인 ‘패스트 컨트롤’에서 인증한 전시다. 정식 승인 작품 29점과 영상 작품을 포함한 약 13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사실 공식적으로는 익명의 예술가이지만, 자신이 설립한 회사도 존재하고, 결혼한 아내가 누구인지도 밝혀진 마당에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뱅크시라는 예술가 자체가 매력적인 건, 그의 작품 보다는 그의 태도이다. 목숨도 돈도 명예도 중요하지 않다는 그 자세 말이다.
무엇보다도 전시 마지막에 뱅크시가 뉴요커와 한 인터뷰는 그의 그릇을 말해준다.
“ The Money that my work fetches these days makes me a bit uncomfortable, but that’s an easy problem to solve- you just stop whingeing and give it all away. I don’t think it’s possible to make art about world poverty and then trouser all the cash, that’s an irony too far, even for me”
(요즘 내 작품이 가져다주는 돈이 나를 좀 불편하게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죠. 징징댈 것 없이 그냥 모두 나눠주면 돼요. 내가 세상의 빈곤에 대한 예술을 만들면서 그 돈을 혼자 다 쓸 수는 없다고 봐요. 그건 내게도 너무 아이러니한 일이죠.)
실제 그는 범세계적인 분쟁과 이슈의 현장에 출몰하여 자신의 예술 활동을 통해 폭력과 권위, 차별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전하고, 그의 예술작품에 대한 수익금 대부분을 전쟁과 난민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쓰고 있다.
예술가의 권력은 이렇게 멋지게 부리는 것이다.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