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에 가기까지, 오지말라고 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
*워드프레스의 로지마입니다. 및 왜 아무도 로스쿨 오지말라고 안해줬냐_로스쿨 왜 왔는지에 관하여 를 새로 쓴 글입니다.
트위터에 로스쿨오지마세요(@nolawschoolstay) 계정을 만든 지도 벌써 3년 가까이 되어 간다. 아무것도 모르는 1학년 비법학사 꼬맹이가 잉잉 로스쿨 싫어요 자퇴하고 싶어요 하면서 저런 이름으로 계정 만든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변시 치고 한 달 가까이 지나 졸업예정자 명단 확인하라는 공지까지 받았다. 그간 왜 오지 말라고 하느냐는 질문(혹은 공격)도 많이 받았다. 그러게, 왜 나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학부 저학년 때 일이다. 친한 과 선배 언니와 교양수업 하나를 같이 들었었는데, 조모임에서 만난 8학번 위 타 학과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ㅇㅇ과... 휴... 빨리 경영 복전 하셔야겠어요." 우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하하.. 대학원 갈 거라서요..." 하고 넘겼다. 나는 그런 과(휴...)를 전공했고, 그런 과 대학원(휴...)을 갈 생각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도 이미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그때 이미 법대가 없어지고 로스쿨이 생기고 있었어서 로스쿨 가기 좋은 전공을 찾아야 했었다. 지금이야 상경계가 유리하니 마니 하는 이야기라도 있지만 그때는 로스쿨 초창기라 변호사도 입시전문가도 고3담임도 뭐가 좋을지 말해주질 못했다. 그래서 차선으로 가고 싶었던 '그런 과'를 선택해서 대학에 갔고, 이걸 계속 공부하거나 로스쿨에 가거나 다른 일을 하거나 해야지 하는 정도의 얕은 생각을 했다. 그러고 대학에 갔더니 전공 공부가 예상보다 잘 맞아서 로스쿨 생각은 없어졌다. 학부저학년의 내가 세웠던 계획은, 대학 생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죄다 시도해본 후 최종적으로는 학부 전공으로 석박을 하겠다는 생각 정도였다.
그렇게 대학 생활을 절반 가량 했을 때였나, 도저히... 이건 더 못하겠다 싶어졌다. 나는 공부는 아니구나. 탈출... 탈출 레버를 당겨야 한다. 어디로 탈출하지? 헌데 마침 시대는 박근혜 탄핵 전의 흉흉했던 시대. 마침 친하게 지내던 운동권 친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잡혀갔고, 매일매일이 시위와 집회의 연속이었다. 들어갔던 학회에서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나 <페미니즘의 도전>과 같은 책들을 함께 읽었다. 하루하루 세상이 뒤집히고 있었고, 그와 함께 내 세상도 뒤집히고 있었다. 나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런 세상에서 나 혼자 살겠다고 취준이네 뭐네 해도 되는 걸까, 아니 애초에 살아남을 수나 있는 건가?
그렇게 고민하던 날에도 시험기간은 다가왔고, 동아리방에서 형사소송법 시험공부를 할 일이 있었다. 시험범위 중에는 체포와 구속이 있었고, 마침 맞은편에 앉아있는 건 며칠 전 잡혀갔다 온 운동권 친구였다. 그가 경찰에게 끌려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여전히 생생했다.
"현행범...체포... 긴급...체포... 근데 넌 뭘로 잡혀갔었어? 그거 직후에 잡힌 거니까 현행범체포였어? 이 사안에서 긴급체포가 될 수 있나? 이게 요건이 생각보다 엄격해 보이네."
"나.. 그냥 임의동행이었는데?"
"그게 임의동행이었다고?"
학부생 대상 수업이다 보니 아주 자세하게 가르치진 않아서였는지 임의동행의 요건과 관련된 판례('오로지 피의자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하여 수사관서 등에 동행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객관적인 사정에 의하여 명백하게 입증된 경우에 한하여...')도 몰랐고, 위법한 체포 상태에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등도 몰랐지만 저게 제대로 된 체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느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나중 일이지만, 법원 견학 갈 일이 있어서 형사재판 방청을 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뒤통수가 보이더라니 저 친구였다. 위의 사건이었는지 다른 거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벌금형이 선고되었었다) 그 이외에도 저런 사유로 잡혀갈 수 있나 싶은 사유로 잡혀간 케이스,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은 케이스 등을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다 보니 세상에 아직 변호사가 더 필요한가보다, 저 사람들을 위한 변호사가 있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엄마에게 얘기했다.
"엄마, 나 로스쿨 준비해도 돼?"
"...그래라?"
그렇게 로스쿨 입시를 시작했다.
살다 보니 주변에 로스쿨 간 선배는 좀 있어서 조언이나 응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어째 다른 분야로 간 선배들은 하나같이 '이쪽은 아니야... 다른 길은 어떠니?' 하던데, 로스쿨 선배들은 하나같이 문과한테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잘 생각했다 하더라. 솔직히 내 경우 입시까지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학점이 나쁘긴 했어도 리트가 잘 나와주는 편이었고, 자소서에 쓸 말이 없지는 않았으니까(물론 저 위의 사례를 쓴 건 아니었다). 모 로스쿨 교수가 로스쿨 입시는 생물과도 같아서 매해 달라진다는 말을 남겼다던데, 그 혼란의 와중에도 재시하는 친구나 이제 갓 로스쿨에 입학한 선배들이 길 찾기를 도와줘서 입시 자체는 그냥저냥 무난히 치렀다. 근데 들어가고 나서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공부도 힘들거니와 비법학사 멍청이에게 알려지지 않은 지점들이 너무 많았다. '문과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는 점에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긴 하다. 나 같아도 로스쿨오지마세요 계정을 보고서도 어쨌거나 입시를 했을 것이고, 들어간 다음에 '저게 그런 뜻이었구나...'하고 후회했겠지. 어쨌거나 이렇게 된 이상 서로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살아보자는 뜻일 뿐이(었)다. 그래서 로지마 계정을 만들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시간이 지나 변시를 치고 여기까지 와 있다는 게 전부다. 입시 관련 글이나 입학 후 수업과 관련된 글 등도 워드프레스에 여럿 썼었는데, 슬슬 옮겨올 예정.
그리고... 로스쿨과는 별 관련 없는 뒷이야기. 위에 언급한 운동권 친구들이 속해 있던 계열에 대해 언더조직 폭로가 있었다. 내가 본 사건들의 당사자들 중 일부(혹은 전부)도 그에 속해 있었다. 내가... 이걸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 나는 국가폭력이나 형사피의자의 권리보장 등에 대해 고민하다 여기 와 있는데, 그게 다 만들어진 장면이었다고 하니 이제 당췌 뭘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