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변시 탓임
…재시를 해야 하는 경우는… 발생한다…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아무리 잘하던 사람이라도 운 없으면 걸린다. 변호사시험이 자격시험이 아닌 채로 사람을 와르르 떨구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상, 시험 중에 어떤 변수가 됐건 뭐라도 생길 수 있는 이상… 그런 것이다. 10회 변시부터 시험 중에 환기한답시고 창문 열고 시험을 쳐서 손이 굳어서 사례를 다 못 써서일 수도 있고, 갑자기 객관식을 밀려썼을 수도 있고(실제로 우리 기수에서 상위권 논할 때 빠지지 않던 사람이 밀려썼다고 들었다), 하필 나의 선택법이 그 해에 과락을 와르르 발생케 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빅펌 컨펌된 사람, 검클 붙은 사람도 떨어질 수 있는 것이고. 대체로 재시를 하게 되는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 너무 스스로를 탓하지 말자. 우리에게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욱여넣게 한, 너무 많은 사람들을 떨어뜨리게 된 제도의 잘못이 더 크지.
…어쨌거나 재시를 하게 되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는 재시를 한 적이 없으며, 주변에서 들은 말을 정리한 것입니다. 깊은 상담은 학원 혹은 학교선배, 간혹 교수님을 통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제일 열심히 고민한 건 0. 재시 여부 결정하기 부분입니다.
*제가 하는 말이 항상 그렇듯 일단 이거라도 보고 찾아보라는 것이지 이대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0. 재시 여부 결정하기
일단 이 글을 지금(1월말) 쓰는 이유는 지금이 바로 취준? 재시? 다른길? 고민의 적기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채점을 하고 바로 취업을 하거나 재시 준비를 한다. 예전에는 4월까지 일단 기다리는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4월말에 합격발표 기다리고 시작하면 늦다는 견해가 있는 듯하다. 수험법학은 항상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비유되곤 하는데, 1월초부터 4월말까지 안 붓고 있다가 정신 차리고 5월에서야 시작하면 아무래도 로3들보다 늦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취준이냐 재시냐의 질문에 앞서, '변시를 다시 준비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채점이 가장 먼저일 텐데, 나에게는 채점보다 재시 여부 결정이 먼저였다. 왜냐면 이 짓을 더 할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었으니까. 살면서 이 정도의 고난을 겪어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안 되면 재시를 할 것인지, 아예 다른 길을 찾을 것인지, 찾는다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부터 고민했다. 일단 행시를 준비했던 선배, 대학원에 다니다 공기업에 취업한 친구, 임용고시를 치고 교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난 교사자격증은 없지만;), 채점은 했지만 붙을 가능성이 전혀 없고 어쨌거나 다시 하지는 않을 거라고 하는 친구, 부모님 등과 이야기를 나눴다. 행시를 준비했던 선배는 몇 년 해보고 다른 진로로 길을 틀어 관심있는 분야를 생각해본 후 학내 취업준비팀에 갔었던 이야기를 해줬고, 공기업에 취업한 친구는 공기업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두 가입하는 카페를 알려줬다. 임용고시를 친 친구하고는 수험기간의 고통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은 일단 나를 겨울 내내 침대에 눕혀두신 다음에… 4월즈음 "아빠 나 이거 안 되면 뭐할까?"라고 했더니 "너 한 번은 더 하기로 아빠랑 약속했잖아?"라고 하셨다. ??? 난 그런 적 없는데…
요즘은 NCS가 도입되었을 수도 있는데(확인 안 해 봄), 사시를 치다가 진로를 바꾸는 경우는 금융공기업 법학직렬 등으로 틀기도 했었던 것 같다. 나는 공무원을 찾아보다가 말았고(생각해보니까 시험 준비하다가 또 시험 준비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이상하다). 아무튼 요래조래 길을 더 찾아볼 수 있다.
로스쿨을 다니다가 자퇴하는 경우도 있고, 시험을 보다 중간에 자리를 뜨는 사람도 있으며, 한 번 해보고 나니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어 다른 길을 찾는 사람도 있다. 길을 바꾸는 건 그냥 바꾸는 거지, 포기했네 도망갔네 하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
1. 채점하기
일단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으면(?) 대체로 채점을 한다. 120이 넘어도 떨어지는 사람도 있고 90개가 안 돼도 붙는 사람은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객관식이 큰 지표가 되어주긴 한다. 120개 넘기면 안정권, 110개 넘기면 그냥저냥 안정권(?), 100개 넘기면 덜덜권, 100개 이하는 아무래도 공부를 시작해야 하려나…? 요즘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금컷이 뜨기를 기다린다. 나의 경우 객관식이 105개 부근이었고 나~중에 성적표 나온 후에 확인해보니 (굳이 계산해보면) 객이 70~80개 수준이어도 붙을 가능성은 있었지만 사례기록이 그 정도 나오는데 객이 70개 나올 일이 얼마나 있겠나 싶기도 하고;
그럼 이제 금컷에서 뭐라고 하는지 보자. 금컷은 금동흠 강사가 '제n회 변호사시험 예상 객관식 컷'을 추측해서 알려주는 영상이다. 2022년 제11회 변호사시험 객관식 예상합격 커트라인 영상 링크. 올해 컷은 101개(+-1개), 10회 컷은 99개(+-1개). 같은 영상에서는 ‘사례기록에서 평타를 쳤다고 가정했을 때 올해 객관식 n개면 어떻게 해라’ 같은 걸 알려준다. 올해는 120개 이상이면 무조건 합격, 110개 이상이면 안정적 합격, 100~109개면 사례기록 영향 있음, 90개 이하면 공부하면서 발표 기다리기 정도로 나와 있다(내가 시험봤던 9회 컷을 보니 102(+-1개)… 아악!). 이때 초시생이면 학교 모의고사를 기준으로, 재시 이상이면 6 8 10을 기준으로 했던 것 같다.
(*참고로 객 120개 넘어도 떨어지는 사람도 있고 80개 나와도 붙는 사람도 당연히 있다)
2. …어쨌거나 좀 쉬기…
어쨌거나 나는 1월은 잘 누워 있었다; 취업할 거면 변시 끝나자마자 좋은 취업자리가 제일 많이 나온다고들 하던데 나는 그것도 몰랐지롱. 취업할 생각이면 백수에서 변호사로! - 로지마의 취준기로 넘어가세용.
3. 어디서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정하기
대체로 세 갈래로 갈리는 것 같다. 집 vs 학교 vs 학원. 근데 애초에 저 이외의 선택지가 있나?
집의 경우 눕기 쉽고 정보력에서 딸린다는 문제가 생기지만 일단 가장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동시간도 줄어든다. 인강으로 공부할 경우 집이 제일 편할 것이다. 코로나로부터도 안전하다;
익명의 모님(집 선택)에 따르면
1. 독서실 결제하고 인강들었습니다.
2. 장점: 비용이 적게듦. 자유로운 시간분배. 땡땡이치기 좋음(?)
3. 단점: 저는 고향에서 혼자 했는데 같이하는사람없음+부모님닦달+사기피드백없음 콤보로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네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학교 주변에서 자취하실 것 같다고 하심)
학교의 경우 불편한 사람이나 후배들을 봐야 한다는 슬픔이 있지만 합격률이 올라간다는(?) 경향이 있다. 출처는 모르겠는데 내가 학교 다니는 동안 "그래도 학교에서 공부해야 붙는다더라, 7회 변시에서 안 된 선배들 중에 학교에서 공부한 선배들은 다 붙었다더라" 같은 말을 엄청 많이 들었다. 근데 재시한 8기 언니들 학교에서 하나도 못 만났는데 다 잘 붙었던데요. …어쨌거나 아는 사람들이 있으면 정보력이 딸리지 않게 되고, 긴장도 되고. 학교 수업이 좋을 경우 대부분의 교수들이 자기 수업을 청강하게 해주므로 그런 점도 좋고. (코로나 이전이라면) 학교 강의실을 빌리거나 남는 열람실 자리를 쓸 수도 있다. 다만 이건 학교 상황마다 좀 다르므로 확인해보자. 6 8 10 모의고사도 학교에서 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시험은 학교 강의실에서 치는 것이다보니 적절한 긴장감을 가지고 시험을 준비하기에 좋은 편이다.
학원의 경우 돈이 가장 많이 들고 정보력에서 딸리지 않게 된다.
트이타친구 슈니님(학원 선택)에 따르면
1. 많은 생각 없이 누군가 짜주는 커리를 따라서 가고 싶었던게 컸음. 어떤 시기에 어떤 책으로 공부하는지, 뭐가 중요하게 나올지 등등을 고민하기 싫었음..(로삼때 이거 고민하다 시간 많이 날린게 패착인거 같아서) 그래서 걍 시키는대로라도 꾸준히 하려고 현강종합반을 선택했음… 이건 다른 친구들도 비슷하게 얘기햇슴
2. 현강을 선택한건..인강듣는 속도를 생각해봤을때(1시간짜리 강의 2시간 걸려 듣는 사람) 도저히 학원 커리대로 나갈 수가 없어서 강제로라도 머리채잡고 끌고 나가려고…ㅠㅜㅋㅋㅋ 그래서 웬만하면 학원 현장강의 무조건 나갔음. 졸아서 인강으로 다시 듣는 한이 있더라도…!
3. 공부 분위기를 좀 바꾸고 싶었음! 나는 학교와 집이 같은 지역이어서인지 너무 익숙했고..학교에서 공부한다고 붙는다는 보장이 없어서..? 가족과 아예 떨어져서 고독하게 공부해야 덜 놀거같았움 !
학원비: 난 변시끝나자마자 선등록햇고, 이것저것 할인(아마 한 100만원정도) 받아서 대략 500 플러스 알파로 들었음! 물론 교재비는 별도…
+) 참고로 어쩔 수 없이 돈을 생각하게 되긴 한다. 나는 로3때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놨었는데(왜 만들었는지는 기억 안 남;) 요즘은 전문직대출이 막힌다는 이야기가 도니까 적당한 시점에 아무래도 하나 만들어놓는 것도 괜찮고. 1년 단위 갱신이니까 조심하자. 잘못하면 변시 직전에 이거 갱신 안 되면 어떡하나 고민이 늘 수도 있으니까; 인강 혹은 학원비, 자취 혹은 독서실비용, 생활비 등도 잘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4. 일찍 시작하기
요즘은 재시생들 합격률이 많이 올랐다는 것 같은데, 전에는 재시생이 오히려 많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왜냐면 1~4월을 쌩으로 쉬고 다시 시작하려면 그동안 잊어버리는 것도 많고, 멘탈 추스르기도 힘드니까. 안 되겠다 싶으면 빨리 시작해야 한다. 친구 중에 채점하고 일찌감치 학원 예비반 들어간 친구가 있었는데, 결과 보고도 크게 충격받지 않고 계속 공부해서 무사히 해낸 듯하다. 얼굴 보니까 이번엔 붙을 것 같더라고.
애초에 변호사시험이 처음 계획했던 것처럼 자격시험으로 운영되지도 않고 거의 50%를 떨구는 시험이 된 이상, 잘 안 돼도 당신의 잘못이 아닐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다음 1년이 힘들겠지만 스스로를 너무 탓하지는 말자. 아는 사람 중에 1~2점 차이로 떨어졌다가 다음 해에 바로 붙어서 하고 싶었던 일을 잘 해내고 있는 사람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