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가면 신기해하더라
맡고 있는 민사사건 중에 상대방이 파산신청을 해서 파산선고를 받아버린 사건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는데, 이 사람이 면책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것이다. 안 그러면 사실상 우리 의뢰인의 채권은 날아가게 되니까. 물론 수임범위에 따라 파산사건까지 들어가서 처리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논의가 되지만, 이 부분을 안내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사무실은 이 파산 및 면책사건에서 채권자 대리인으로 들어가서 의견서도 내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같이 살피기로 했다.
(*이 부분은 나도 잘 아는 건 아닌데, 파산선고와 면책은 별개이고 사건번호도 따로 나온다(뒷자리는 같더라고? 2024하단0000, 2024하면0000으로. 나의사건검색에서는 하단(파산선고) 사건으로 검색해야 내용이 많이 나오고, 하면(면책) 사건으로 검색하면 별 게 안 나오더라). 파산선고를 받으면 파산자의 재산은 파산관재인이 관리하게 되고, 파산자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채권은 개별적으로 청구하는 게 불가능해진다(채무자회생법 제329조(채무자의 파산선고 후의 법률행위) ① 파산선고를 받은 채무자가 파산선고 후 파산재단에 속하는 재산에 관하여 한 법률행위는 파산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 면책을 받으면? 파산자가 가지고 있던 재산 내에서 채권자들이 나눠가지고 끝나게 되는데 파산을 신청할 정도면 남은 게 얼마나 있겠냐? ㅠㅠ 다만 세금, 벌금,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권 같은 것은 면책되지 않으므로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권임을 입증해서 파산 및 면책 후에도 면책되지 않고 남기도록(?) 하거나, 애초에 면책이 불허가되도록 해야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파산사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어쩌다보니 파산면책사건의 기록복사까지 하게 되어서 그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사실 진짜 기록복사는 형사사건을 가야 하는데, 변호사가 형사사건 기록복사를 할 일이 뭐가 있겠나. 통상 형사사건 많이 하는 사무실들은 직원이 많다. 열람복사 다녀야 하니까. 그럼 형사사건 전자화되면 직원 다 없어지는 건가 했는데 최근 형사 전자소송 준비 미흡…연내 서비스 도입 힘들듯 이런 기사를 봤다. 그럴 줄 알았다.
아무튼 어떤 사무실들에서는 저년차 변호사가 들어오면 형사사건 열람복사 한 번 가보게 일부러 시키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나도 한 번 가보고 싶긴 하다. 전자화되면 큰 의미가 없겠지만, 공부를 한다 한들 '기록이 어디에 있느냐', '판사가 실제로 보고 있는 기록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이냐' 같은 것들은 쉽게 와닿지 않으니까. 이런 것들은 대체로 '주임님', '국장님'이 더 빠르게 캐치하고 계시는데, 모르고 살 수는 없잖아? 나도 개업할 거고 내 사건 내 사무실 돌아가는 건 내가 알아야 하는데. 아무튼 나도 열복 한 번 가 보고 싶긴 했는데, 우리 사무실은 직원조차 열복을 안 가는 곳이라(사람이 적어서 해당 법원 앞 사무실에 맡긴다) 나도 갈 일이 없었다. 어쩌다보니 시간이 맞아서 채권자집회를 갈 일이 있었는데, 그 김에 신청도 하고 복사도 해 봤다. 근데 파산사건은 전자소송이 되는데 왜 복사를 갔냐고? 파산관재인 의견서는 ((대체 왜인지 모르겠는데)) 열람허가대상문서인가 뭔가 해서 안 열리거든 ㅡㅡ 재판부에 전화해서 열어달라고 할 수 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냥 간 김에 해본 거지 뭐. 우리 대표님은 내가 뭘 하고 다니든 잔소리 안 하거든. 다른 사무실이었으면 변호사가 그런 걸 왜 하냐 그 시간에 뭘 해라 난리를 쳐서 피곤하고 짜증났겠지만 여긴 그런 거 없어서 좋다. 대신 하고 싶은 걸 다 하면 시간이 없지요~...
사실 채권자집회는 변호사는커녕 채권자도 잘 안 가는 경우가 많다. 난 그냥 뭐하는 건지 궁금해서 가봤을 뿐이고. 내가 갔을 땐 내 사건 의뢰인 외의 채권자는 두어 명 정도 와 있었다. 00시 00분 사건 분들 들어오세요, 해서 우르르 들어갔는데, 판사님이 "채권자 온 사건들 먼저 진행할게요. 채권자 손 드세요"하고 어떤 사건의 채권자 누가 왔는지 정도 확인하시더라고. 할 얘기 있으면 하라고 하시기에 우리 사건에서 저 사람이 면책되어서는 안 되는 사유 간단하게 밝히고, 어떤 서면 제출하겠다고 했다. 근데 채무자가 안 와서(?!) 채무자는 말도 할 수 없었고; 기일을 넉넉하게 잡아주셨다. 나와서 우리 의뢰인이 물어보는 것에 답해주고, 다같이 종합민원실로 향했다. 우리 의뢰인은 지난 채권자집회 기일에도 갔었고, 지난번 파산관재인 의견서도 복사해서 우리 사무실로 보내줬었다보니 나보다 더 잘 알더라 쩝.
열람복사신청서는 그냥 쓰면 된다. 내 이름, 자격(채권자 000의 대리인), 대상기록(사건번호와 사건명, 재판부), 복사할 부분(제n회 파산관재인 의견서) 정도. 그 정도 써서 접수하면 신분증 확인하고 접수해준다. 대체로 당사자나 사무직원이 가는 경우가 많다보니 사무직원 신분증 달라고 하는데, (당연하지만) 변호사 신분증 제시하면 된다. 대체로 변호사가 안 할 만할 일을 변호사가 하고 있으면 약간 삐끗하거나 신기하게 쳐다보는 경우가 있다(이럴 땐 의뢰인한테 내가 이렇게 신경쓴다 하는 식으로 보여주고 싶은데 실제로 의뢰인들은 이걸 어떻게 쳐다볼지는 모르겠다). 신청서에 도장 쾅 쾅 찍으시고는 "재판부에서 연락갈 거예요~" 하고 보내주신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일엔 안 된당…
나는 금요일엔가 신청했다보니 월요일에 연락이 왔다. 언제 오실 거냐고 해서 점심시간 피해서 오늘 한시반 돼용? 하고 갔다. 기본적으로 수수료 500원에 장당 50원 수준의 복사비가 있는데, 얼마인지 미리 안내해주시더라고. 회생법원 1층 신한은행 창구에서 해당 금액만큼의 수입인지를 사들고 가면 된다. 근데 처음 가는 사람은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이, 가다보면 갑자기 4별관이 되어 있다(???). 아무튼 종합민원실을 지나 신한은행에 갔다가 2층으로 올라가면 파산과가 나온다. 법인회생파산이랑 개인파산은 또 다르니까 잘 찾자...
저기로 조용히 들어가서 내 재판부가 어딘지 찾아보자. 천장에 해당 자리가 몇 재판부의 실무관 자리인지 달려 있다. 가서 아까 한시반에 오기로 했던 누구인데용. 하고 수입인지 드리면 왠지 복사된 걸 주시더라고?? 난 이런 건 다 종이뭉치기록 받아서 알아서 복사해서 가는 건 줄 알았다(형사사건은 다 그렇게 하니까). 편하고 감사하고 좋지 뭐. 나오면서 파산관재인 의견서를 잠깐 훑어봤다. 파산관재인은 누가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변호사의 자격이 있어야 하는 건 아는데, 그 외에 어떤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걸까.
다음엔 형사사건 열람복사도 한 번 가봐야지 싶긴 하다. 그게 진짜(?)니까. 이러다 일에 치여서 전자화될 때까지 못 갈 것 같긴 한데, 전자화도 일에 치여서 내가 열복하러 갈 때까지 안 될지도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