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떡볶이를 좋아해서 자주 배달을 시켜 먹는다. 입맛에 맞는 떡볶이 집을 발견한 후 더 자주 시켜먹게 된 것 같다. 떡볶이의 국물의 매콤 단짠 조합이 아주 좋아서 나무랄 데가 없고, 떡의 찰기도 훌륭하다. 떡볶이를 직접 만들어 보면서 알게 된 것인데 떡의 찰기를 적절하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떡을 탱글 하게 만들면 양념과 따로 놀고, 양념을 스며들게 하려면 떡이 퍼지게 된다.
배달 음식의 경우에 보통 정해진 금액 이상을 시켜야 배달이 된다. 그래서 항상 음식을 과하게 시키게 되고, 입이 짧은 우리 집은 항상 음식을 남긴다. 이 가게의 경우엔 ‘순한 맛 쌀 떡볶이에 치즈 추가, 그리고 중간 맛 쌀 떡볶이에 어묵 추가’로 각각 2분씩 총 4인분을 시키면 최소 배달 금액에 딱 맞아떨어진다.
항상 떡볶이가 남아서 버리게 되지만 어쩔 수 없다. 같은 메뉴로 여러 번 시켜 먹고 나니 '혹시 아이들이 치즈가 모자란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어묵을 더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몰려오는 바람에 쉽사리 메뉴를 바꾸거나 빼거나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음식이 남을 것이 분명한데 튀김이나 순대를 더 시킬 수도 없었다.
요즘은 좀 덜 하긴 한데, 한 주에 많게는 서너 번 떡볶이 배달을 시켜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 시켜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는 직접 쓰신 손편지와 함께 쿨피스를 서비스로 넣어 주셨다. 너무 자주 시켜 먹은 게 티가 난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러웠다. 한편으론 단골을 인증받은 것 같아서 약간의 성취감도 들면서 기분이 좋았다.
어느 날 같은 동네에 사는 후배와 커피를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인적이 뜸한 생뚱맞은 곳에서 익숙한 이름의 간판을 발견하였다. 자주 시켜 먹는 떡볶이 집이었다. 근처에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곳에 있으리라 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다. 원룸 빌라들만 빼곡한 인적인 드문 곳이었다. 내부가 궁금해서 빼꼼 들여다보았다. 배달과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였다. 음식을 주문하고 건네받을 수 있는 한 평 정도의 작은 공간이 있었고 주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오늘따라 저녁을 하기 귀찮았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오늘 저녁 떡볶이 어때?” 딸에게 전화를 했다.
“좋아! 떡볶이! 아주 좋아!!”
세상 밝은 목소리.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무한 긍정의 대답이다. 어떤 것을 좋아해 주거나 인정해 줄 때에는 아이들처럼 힘껏 마음을 담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순간순간 아이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주 많다.
가게로 들어갔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사장님께서 계셨고, 혼자 운영하는 것 같았다. 메뉴판을 봤지만 조금 복잡하기도 하고, 마땅히 떠오르는 메뉴가 없었다. 평소 먹던 대로 주문을 했다.
“순한 맛 쌀 떡볶이에 치즈 추가하고요, 중간 맛 쌀 떡볶이에 어묵 추가요. 얼마 정도 걸릴까요?”
“10분 정도 걸려요.”
기다리는 곳이 조금 좁아서 10분 동안 앉아 있기에는 갑갑할 것 같았다. 10분 후에 오겠다고 전하고 가게 밖을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산책을 하면서 ‘여기 떡볶이가 너무 맛있어서 평소 자주 배달시켜 먹고 있습니다.' 하고 넉살 좋게 인사를 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하지만 타고난 성격 탓에 어차피 못할 것도 알고 있었다.
한 바퀴 돌고 와서 가게 안을 보니 아직 포장이 되어있지 않았다. 들어가서 기다리면 괜히 독촉을 하는 것 같아서 밖에서 서성였다. 잠시 후 사장님이 떡볶이 포장을 들고 가게 밖으로 나오셨다.
“많이 기다리셨죠?”
“아아.. 감사합니다.” 쭈뼛거리며 대답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저희 가족이 여기 떡볶이를 좋아해서 자주 시켜먹습니다. 너무 맛있어요.’ 하고 너스레를 떨고 싶었으나 역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 대신 마음을 담아 꾸벅 목례를 하고 돌아 서렸는데, 사장님이 말을 건네 오셨다.
“저기.. 혹시 저희 집 떡볶이 자주 시켜 주시는 분이신가요?”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뭔가 속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한편으로는 마음을 알아줘서 기쁜 마음도 있었다.
“아.. 예, 맞아요.” 정도가 입 밖으로 나왔다. 속으로는 '안 그래도 제가.. ' 하고 싶었다.
“시키신 메뉴가 너무 익숙해서요. 잠시만요 서비스드릴게요!” 하시더니 쿨피스 한통을 가지고 나와 건네주셨다.
“자주 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활짝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여기 떡볶이가 맛있어서 저희 집 아이들이 아주 좋아해요.”
그 아이들에 나도 포함된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메뉴만 보고 알아봐 주다니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았다. 사장님의 표정에서도 자신의 요리를 좋아해 주는 사람에 대한 순수한 고마움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떡볶이를 들고 집으로 오는 동안 입가에 미소가 계속 남아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좋아하겠지 싶었다. 아이들과 떡볶이를 먹으면서 사장님과 있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했다. 역시나 아이들은 쿨했다. 별 반응이 없었다.
맵다고 호호 쩝쩝거리는 아이들에게 쿨하게 쿨피스를 가득 따라줬다. 오늘의 특별한 떡볶이를 남김없이 먹어야지 했으나 역시나 남았다. 남은 떡볶이를 치우면서 생각해보니 배달이 아니면 굳이 4인분을 다 채우지 않아도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 메뉴 덕분에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4인분의 떡볶이를 남기지 않을 때까지, 아니 메뉴를 더 추가할 수 때까지, 이 맛있는 떡볶이 집이 오랫동안 장사를 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