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논어』에서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냐는 질문에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는 것”이 정명이라고 하였다. 공자가 이 말을 한 것은 당시 사회의 신분질서를 바로잡는데 이름을 정확히 붙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듯하다. 기성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말이지만 언어와 인지와의 관계성을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의 중요성을 얘기하는데 ‘프레임은 생각의 구조’라는 것이다. 우리 두뇌 속에는 프레임을 규정하는 다양한 언어 의미적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식당에 가면, 음식, 서비스, 웨이터, 계산서 등 한 묶음으로 짜여진 언어들이 펼쳐진다는 예를 든다. 소나무나 버스 등은 식당이라는 프레임에 들어올 수 없다. 프레임 속에는 특정한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프레임은 각각의 단어가 아니라, 단어가 활성화시키는 사고라고 강변한다.
한국인의 밥심
그럼 놀이나 밥, 잠이라는 이름(단어)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인지되어 있을까? 밥이나 잠은 인간이 생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어 식사하셨습니까?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등 우리의 인사법에는 밥과 잠이 주요하게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인사법은 어쩜 서로의 무사 안녕한 생존을 확인하는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느낌을 준다. 이에 비하면 서양의 굿모닝(Good morning)이나 해브 어 굿데이(Have a good day)는 마치 아이들 소꿉장난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밥과 잠이 보약이 되기도 한다. 밥이 보약이다. 잠이 보약이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이 밥으로 통하기도 한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너 밥 없을 줄 알어”는 혼날 때 듣던 가장 무서운 말이었다. 밥은 한 끼라도 끊어지면 배고파 죽겠단 소리가 나오기에 부정적인 상황과 많이 연결되어 있다. 일도 안 하고 빈둥거리면 '밥만 축낸다'거나 ’밥충‘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거기에 멍청하기라도 하면 '밥팅'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한다.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말은 직업이라도 있는지 안부를 묻는 것이고 “밥은 먹고 산다”라는 대답은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표현이다. 이렇듯 언어생활에서 밥이 부정적인 거와 연결이 많이 되는 건 인간의 기초적인 생존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디 취직할 생각은 안 하고 악기나 두들기며 놀고 있으면 “그게 밥 먹여 주냐?‘는 기본이고 호되게 야단맞고도 밥 먹고 있으면 "밥이 목구녁으로 넘어가냐?“는 비수가 꽂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였으며 일 좀 똑바로 하라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에 "밥값은 하라"며 또 밥을 들먹인다. 이렇게 간섭하고 훈화질하는 꼰대한테는 '밥맛 떨어진다'고 궁시렁거렸으며 '그 사람하고 밥 먹기 싫어'는 꼴도 보기 싫다는 표현이다. 그러다가도 아프기라도 하면 "밥은 꼭 챙겨 먹어라"고 걱정하며 고마울 때는 "밥 한번 살게"라고 인사한다. 밥이 이토록 우리의 삶에서 중요하기에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일은 없길 바라며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좋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밥 잘 사 주는 사람’이 차지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힘은 바로 ‘밥심’이라는 사실이다. 위와 같은 표현법이 많은 것은 한국인 특유의 우뇌가 활성화된 것과도 관련이 깊다.
그 외 밥과 관련된 속담도 풍부한데 ‘밥그릇만 크면 제일인 줄 안다’는 건 먹는 거밖에 모르는 미련함을 탓하는 것이고 ‘밥그릇 앞에서 굶어 죽을 사람’은 밥그릇을 앞에 두고도 움직이기 싫어 굶어 죽을 정도로 게을러 빠졌다는 것이며 ‘밥 빌어먹기는 장타령이 제일’은 체면을 버리면 못할 게 없다는 것이다. ‘밥은 굶어도 속편해야 산다’든가 ‘밥 위에 떡’은 금상첨화와 같은 뜻이고 “밥 우에 떡 안 준다고 그러느냐?”는 잘해주어도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을 꼬집는 말이다. 얘기하다 보니 ‘밥보다 고추장이 더 많아’ 졌는데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고 부차적인 곁다리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좌우지간 ‘밥 군 것이 떡 군 거보다 못하다’라는 속담은 언어유희로 ‘밥 군’이 바꾼으로 소리 나는 것에 착안하여 물건 ‘바꾼’ 것이 맘에 들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여튼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부르고 같이 붙어사는 사람을 ‘가족’이라고 부르는데 좀 더 행복한 사회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두루 모여서 밥이라도 같이 먹는 식구를 늘여가는 게 아닐까 한다.
미인은 잠꾸러기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룩한 한국인에게 잠을 많이 잔다는 건 마치 죄를 짓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잠을 안 자고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민족이었기에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잠은 생존본능이다. 그래서 충분히 자야 한다. 잠과 관련한 속담도 만만찮게 많다. ‘자는 벌집 건드린다’ 거나 ‘자는 범 코침 주기’나 ‘잠자는 범의 수염을 다친다’는 가만히 내버려 두면 무탈할 건데 공연히 일을 만들어 화를 당한다는 표현으로 생존을 위협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다.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다’ 거나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속담은 정신 팔고 있다가 엉뚱한 말이나 얼토당토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빗댄 것이며 뜻밖에 당한 액운은 ‘자다가 얻은 병’이라 말하였고 ‘자던 중도 떡 세 개’라는 속담은 아무 일도 안 하고 이익을 나누는 데는 참여한다는 염치없음을 표현하였다.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게 인간이자 ‘잠은 같이 자도 꿈은 다른 꿈을 꾸’는 인간은 개성과 고유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잠귀가 엷’든 ‘잠귀가 무디’든 ‘잠을 자야 꿈을 꾸’고 ‘꿈보다는 해몽’을 통해 긍정마인드로 살아가는 게 인간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잠자고 나서 문안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 것이며 특히 어린이들은 ‘잠자고 난 누에 같’이 먹성이 좋아 잘 먹어야 신체발달 두뇌발달이 왕성해질 테니 잠이나 밥을 갖고 야단치거나 혼내지 말았으면 한다.
특히 우리나라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헌법 10조는 ‘행복 추구권’이다. 그러니 제발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냐’라든가 ‘니 성적(등수)에 잠이 오냐는’ 둥 매슬로우가 얘기한 인간의 첫 번째 욕구인 생리적 욕구를 가지고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야단치는 건 행복 추구권을 침해하는 행위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사흘 굶어 담 안 넘을 놈 없다는 속담이나 잠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듯 천하의 절경보다 밥이 먼저이며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이 있듯이 잠을 잘 자야 피부가 고와지고 행복도가 높아진다. 잠이나 밥을 부정하고 죄악시하는 말 대신에 긍정적인 프레임을 해야 국민총행복(GNH) 지수가 올라가겠기에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별 거인 밥과 잠 얘기를 해보았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놀이에 대해서도 한국인뿐만 아니라 인류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 위대한 동화작가인 이솝이나 철학자인 플라톤도 그러했으니 일반인들의 놀이에 대한 생각이야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우리말 형태소사전』(백문식, 2012)에서 <놀다>에 대해 ‘생업이나 본분과 관련된 일에서 떠나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다. 방탕하게 지내다. 도박하다. 이리저리 움직이다. 헐겁다.’로 풀이하고 있다. ‘놀다’라는 동사가 명사인 ‘놀이’이며 어간인 ‘놀’로 파생된 단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는 우리 생활이 놀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는 걸 증명해준다.
나사가 풀려서 제멋대로 놀다라는 사물의 상태로부터 훼방을 놀다 놀고먹다 놀리다 사기꾼에게 놀아나거나 이성과 불건전한 관계를 가지는 것도 놀아난다고 표현하였다. 함부로 나쁜 짓이나 방탕한 짓을 하는 것도 놀아먹는다고 하였으며 명사화된 노라리(건달처럼 빈둥빈둥 세월만 보내는 짓_밤새도록 노라리를 부리다)나 노는계집이나 논다니(웃음과 몸을 파는 여자)도 부정적인 단어이다. 놀이로부터 노래가 나왔으며 이로부터 노리개, 노리갯감, 놀음 등 명사와 덤비지 않고 놀 듯 천천히 행동하는 것을 ‘노냥’이라 형용하였으며 아이의 옹알이를 놀소리라고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놀이는 많고 많은데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성행했던 걸로 알려진 4월 초파일의 관등놀이로부터 정월 대보름과 추석에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는 거북놀이. 함경도나 제주도지방에서 입춘 때 나무로 소를 만들어 놀던 목우(木牛)=낭쉐놀이, 무당의 일대기를 엮은 계면놀이, 풍물판에서는 상모놀이, 무동놀이, 버나놀이와 버꾸잽이들이 부포상모로 노는 벅구놀이를 비롯하여 굿중패가 꽹과리를 치면서 요란스럽게 염불을 하는 굿중놀이. 마당에서 놀면 마당놀이, 들로 나가 들놀이, 물로 가면 물놀이, 봄철의 화전놀이, 꽃놀이로부터 뱃놀이. 봄이 가는 게 아쉬워서 전춘놀이, 오월단오 널뛰기놀이, 복날 노는 복놀이, 가을철 단풍놀이, 겨울철 썰매놀이, 쥐불놀이, 불놀이까지 사시사철 놀이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소꿉놀이와 병정놀이. 술래놀이를 좋아하고 공부에 지친 아이들은 널브러진 시체놀이를 좋아하고 성인이 되면 애정을 나누는 사랑놀이를 좋아한다. 좌우간 뭐든 놀이화하기를 좋아한 민족임에 틀림없는 거 같다. 심지어는 저승길에 가는 상여를 놀리는 호상놀이도 있으며, 소싸움놀이, 영산놀이. 풍계놀이(물건을 감추어두고 찾아내기를 하는 일종의 보물찾기), 울산죽광대놀이, 예전에는 마을마다 상징 깃발인 용대기가 있었는데 깃발끼리 싸우며 노는 용대기놀이 등 우리는 모두가 놀이 이웃이었으며 놀이패가 되어 놀이판을 만들고 힘든 가운데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는 놀이 겨레였다.
놀이를 놀음이라고도 표현하였는데 광대놀음, 꼭두각시놀음, 박첨지놀음, 대갈놀음, 말놀음, 문쥐놀음, 장구놀음, 채상놀음, 잡색놀음, 남사당패놀음, 도깨비놀음, 사자놀음, 탈놀음, 신선놀음, 들놀음(野遊), 인형극놀음, 안동의 하회별신굿놀음, 동래들놀음, 통영오광대놀음, 예천의 청단놀음, 강원도 영양의 영양원놀음, 지방에서 일컫는 도(또)채비놀음 등이 있다. 놀이와 놀음이 주는 뉘앙스가 약간 달라 보이는데 놀이보다 놀음이 왠지 전문성이 있어 보이고 더욱 드높아 보이는 건 광대들이 주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고의 놀이꾼인 광대를 놀음바치라 하였는데 옛말 바치나 아치는 특정 분야에 종사하거나 전문가를 칭하는데 전통시대 사농공상 서열에 따라 갖바치나 성냥바치처럼 낮은 신분과 비하하는 뜻이 숨어 있다. 장사(아)치나 동냥아치가 풍기는 뉘앙스가 결코 긍정적으로 다가서지 않은 이유다. 놀음받이라는 단어는 응석받이가 그렇듯 흉보거나 비웃는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말하며 놀음놀이판에 차리는 음식상은 놀음상이며 북한에서는 놀이터를 놀음터라고 한다고 한다.
2013년 백정각시놀음이라는 것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는데 내용인즉슨 조선시대에서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백정의 치마를 벗기고 올라타고 희롱하는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놀이를 말한다. 박경리의 토지와 이규태의 역사 에세이가 근거라는데 사료적 근거나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들어 사대부가 성리학을 도입하면서 가장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신분사회를 만들어 노비나 백정은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던 건 사실이다. 백정각시놀이라는 게 어딘가에 있었기에 이런 얘기가 소설이나 에세이에도 언급되었을 거라 보이며 현재 학교폭력이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폭력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하여 돌려본다든가 목을 조여 기절하게 하는 일명 기절놀이를 장난삼아 했다고 뻔뻔스럽게 대답한다. 놀이나 놀음에는 절대로 신체적 폭력이나 차별적 인권침해 등이 끼어들 수 없으며 가장 평등하고 가장 공평하고 평화로운 활동이 놀이이자 놀음이다.
놀이가 자칫 폭력이 되고 차별행위가 되듯 놀음이 빗나가면 노름이 되고 만다. 팽이 치는 건 놀이지만 화투 치는 건 노름이라고 말하듯 '노름'은 주사위. 골패. 마작. 화투. 트럼프 등을 써서 돈이나 재물 따위를 걸고 내기를 하며 요행수를 바라는 것을 말한다. 지나치면 자칫 폭력이 될 수 있고 노름으로 변하여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가 발달되면서 스포츠나 예술 심지어는 놀이마저 돈으로 사고파는 상품이 되었는데 이것을 인류 문명사의 슬픈 현실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한 아이가 도리도리 짝짜꿍 놀이로부터 소꿉놀이나 술래잡기 같이 여럿이 어울리는 놀이로 발전하고, 팽이치기나 연날리기 같이 놀잇감을 가지고 노는 것에서 마을 간 줄다리기나 강강술래로 마침내 모두가 어우러지는 대동놀이에 이르러 재미와 기쁨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 춤과 노래를 비롯하여 노리개를 가지고 노는 수많은 놀이는 스포츠와 예술로 나아가 인류의 공존과 평화를 위한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놀이라는 단어가 긍정적으로 활성화되도록 놀이와 관련된 부정적인 측면보다 긍정적인 요소와 연결 지어 프레임 하는 게 필요하겠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노랫말처럼 놀아본 사람이 잘 놀고 늙으면 체력이 딸려서 못 논다. 놀이는 당 시대의 행복도를 나타내 주는 바로미터다. 놀이가 현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놀이가 갖는 미래 가치에 대해 연구하는 ‘놀이인문학’을 통해 별 거 아닌 거 같은 놀이가 알고 보니 별 거라는 긍정 프레임이 필요하겠단 생각에 밥, 잠과 더불어 놀이라는 단어로 놀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