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놀마드 노을 Jan 21. 2024

나는 여행자인가, 동양인쭈구리인가



한국에서 야행성으로 사는 사람을 보면 '너 완전 유럽시간으로 사는구나?'라고 했었는데

정말 올빼미형 한국인이 유럽에 가면, 시차적응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나는 항상 한국시간으로 살아온 사람이라 밤낮을 바꾸는 게 참 곤욕이었다.

그렇게 몸은 너무 피곤했지만 밥은 잘 먹더라.

절대 굶지는 않더라.



첫날에 물과 음식을 사야 해서 주변 마트에 다녀왔고

중국인이 운영하는 아시안마트에서 푸라면도 사 왔다.


라면 뽀글이는 환경호르몬이 걱정되니까 호텔에 있는 머그컵에 뜨거운 물을 부어 '찐 컵라면'을 해 먹었다.


저 라면이 사나이도 울린다고 광고를 했었는 데, 과연 눈물이 나는 맛이었다.









도착한 다음날은 비가 계속 왔고, 그다음 날은 정말 화창했다.


유럽 와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건 현지인처럼 유럽거리를 걸어보는 것이었다.




가자, 소원성취하러!




어제만 해도 밖은 날씨가 계속 흐렸었고 호텔 안은 조명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햇빛이 환히 비추는 거리에 나오니 굴 속에 있다가 광명 찾은 두더지가 된 기분이었다.



조심스레 앞뒤좌우를 살피며 바르셀로나 거리를 걸어본다.

마트 가는 것 외에 밖에 나온 게 처음이라 계속 경계를 하며 걸었다.

악명 높은 바르셀로나 소매치기를 생각하며.



와 그런데 걸을수록 너무 멋있는 도시의 모습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눈 돌리면 영화세트장이고 거리엔 모델들이 걸어 다닌다.

보이는 곳마다 살아있는 실시간 화보이다.

지구상에 뭐 이런 동네가 있나 싶었다.

계속되는 새로운 자극에 눈이 번쩍 뜨인다.




그렇게 보른지구에서 바르셀로나 가장 번화가인 람블라스거리로 가는 길에 바르셀로나 대성당에 잠시 들렀다.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리는 건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지만,

바르셀로나 대성당도 엄청 웅장하고 멋있었다.


아니 그런데 대성당 공사보호막에 부착된 삼성 갤럭시 광고를 보고 새삼 놀랐다.

반가운 마음이 금세 국뽕으로 차오른다.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말하고 싶었다.


저기요, 제가 저 삼성이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걸랑요? 꼬리아 아시죠? 몰라요? 저기요?


(.... 아무도 신경 쓰는 이 없고요...)





그렇게 혼자 뿌듯해하며 계속 걸었고 말로만 듣던 람블라스 거리에 도착했다.

2월이라 꽤 쌀쌀했지만 햇빛이 다했던 풍경.

활기찬 사람들, 서늘한 공기, 낯선 냄새, 그 안에 오롯이 혼자 서 있는 나.



두려움 그리고 설렘

다양한 감정이 심장을 통통 두들겨댄다.

두려움의 주먹심은 점점 약해지고 설렘과 감동 마음껏 부풀어 오른다.



그렇게 람블라스거리에서 바다를 향해, 콜럼버스 동상이 있는 쪽으로 또 걸어간다.

아나 뭐 이렇게 멋있어 나 원 참.

바르셀로나 있으면서 이쪽은 몇 번 더 왔다.

유럽에 도착하여 맨 처음 제대로 봤던 곳이라 아직까지도 이때 산책했던 거리가 정말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하 그런데 다 좋은데 말이죠.


유럽은 화장실 인심이 너무 박하다.

주변에 공중화장실이 절대 없어서 할 수 없이 가까운 카페에 들어갔다.

화장실부터 다녀와서 무난하게 아메와 크로와상을 시켰다.

주문을 하고 보니 물이 마시고 싶어 진다.

조심스레 직원분께 물어봤다.



"음... 올라?... 이즈 워터 프리? "

(스페인어로 인사하고, 영어로 묻는다.)


"오우, 노 프리~ "


"아하, 땡뀨땡뀨"



핫... 두근거렸지만 잘 물어봤다.

여기서는 그냥 커피 마시고 물은 호텔 가서 마셔야겠다 싶다.

물값에 덜덜 떠는 동양인쭈구리인 거 티 났나 싶지만,

아낄 수 있는 건 아끼고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어야지라고 생각한다.





유유자적 앉아서 커피에 크로와상을 먹었다.

매장에는 꽤 자주 듣던 저스틴비버 노래가 흘러나왔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노래가 나오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 세상엔 없는 줄 알았던 평화가 너무나도 환한 온기를 낸다.  

너무 따뜻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머머 주책바가지야 이게 뭔 일이야 싶지만, 평소 같았으면 한참 일하고 있을 시간에 어떻게 여기에 와있나 새삼 놀랍고 신기했다.

행복했으며 감사했다.



11년 회사 다니느라 고생했다, 나 자신.

여기 있는 동안은 지금만 생각하고 즐겁게 지내보자.




이전 02화 유럽에서의 첫 밤, 누가 내 방 문을 열려고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