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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Feb 05. 2024

스페인에서 구글평점 1.8인 식당에 갔더니


계속되는 현기증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다.

뭔가 익숙하지 않은 천장이 눈에 들어오면서 순간 여긴 어디지? 하며 멍해진다.


아, 맞다. 나 바르셀로나에 와있었지?


때때로 잊어버린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든다.



이틀 전부터 극심해진 현기증이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영양제를 사려고 했는데 일요일이라서 약국들이 거의 문을 닫았다.

약은 내일 사는 걸로 하고 오늘은 고기를 먹으며 영양보충을 해보려고 한다.

따뜻하게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션찮은 몸을 이끌고 살살 걸어서 람블라스거리에 도착했다.

번화가인 람블라스 거리에서 맛집을 가고 싶단 생각보다는, 그냥 조용하게 스테이크를 먹으며 영양보충을 하고 싶었다.

소매치기생각에 항상 긴장된 상태로 다녔더니 어째 밥 먹는 것도 좀 미션같이 느껴졌다.

말도 안 통하고 기운도 없고 사람 많은 곳엔 가고 싶지가 않아서 손님이 없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소고기스테이크 하나와 따뜻한 레몬그린티를 시켰다.



그런데.


기다리면서 무심코 이 식당의 구글 평점을 찾아봤는데,

아니 5점 만점에  1.8  (???)


왜 내 초등학교 때 시력이 쓰여있는 게냐.


1.8이 진짜 평점 맞나 싶어서 몇 번을 다시 봤다. 또 봐도 맞다.






망했다 싶었다.

구글평을 읽어보니 타파스나 빠에야 등이 냉동이라며 맛없다혹평이 많이 있었다.

미리 좀 보고 들어올걸 슬쩍 후회가 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알아보기도 귀찮았고 이미 주문했기에 체념한다. 어쩔 수 없다. (ㅠ_ㅠ)






그렇게 나온 소고기 스테이크와 레몬그린티.


너무 기대를 안 한 탓인지 나쁘지 않았다. 워매 다행이다 싶다.

고기는 얇고 부드러운 편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굵은 감자튀김과 함께여서 괜찮았다.

레몬 넣은 그린티도 상큼하고 따뜻했다.



그리고 여기 여사장님이 되게 친절하셨다.

소스 뭐 먹을래? 매운 소스 필요하니? 하고 물어봐주시며 가져다주셨다.


계산하는데 내 카드를 보시더니 카드가 큐트 하다며 또 말을 걸어 주신다.

아 땡큐 하고선 당신도 예쁘다고 말을 건넸다. 작고 하얀 얼굴이 정말 예쁘셨다.


이때 너무 아프고 영어도 못하고 한껏 주눅 들어있어서 음식 주문하는 것도 스트레스인 상태였다.  

음식맛보다는 친절히 응대해 주셔서 마음이 참 편해졌다.


총 23.2유로가 나왔고 다른 식당들에 비해 비싼 건 아니었다. 적당한 음식과 친절한 직원 덕분에 나름 만족했다.



구글평점만 보고 너무 걱정을 했네 싶었다.


뭐 나도 컨디션이 좋은 상태로 와서 불친절한 직원이 갖다 주는 냉동 빠에야나 피자를 먹었다면 돈 아깝다고 불평 했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곳을 와도 각자의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역시 누군가의 평가는 참고사항일 뿐 절대적인 건 되지 못한다.


저 당시의 나에겐 짐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배려있는 말과 따뜻한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렇게 기분 좋게 식당을 나와 람블라스거리를 걸었다.



겨울은 춥지만, 차가운 공기 덕분에 코와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앓느라고 잘 몰랐는데 나와서 보니 날씨가 그냥 미쳤다 (!)

몸안으로는 찬 공기가 상쾌하게 들어오고, 몸 밖으로 따뜻한 햇빛이 샤르르 감싸온다.

배도 든든하고 기분이 좋다.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분과 사람들을 구경했다.

도착한 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생경한 바르셀로나,

그래서 항상 신기하고 재미있다.


천천히 걷다가 으미 저건 뭐지? 하고 멈춰 섰다.

동상 인가 하고 지켜봤는데

앞에 돈통에 돈을 넣으면 혼자 움직인다. 사람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돈통에 돈을 넣었고, 그 덕분에 몇 번이고 무료로 구경을 했다.

돈 버는 방법도 가지가지구나 싶어서 웃으며 발길을 돌린다.


해안가까지 걸어와서 벤치에 앉아 바다구경 사람구경을 해본다.


내 옆옆에 아이와 부모가 함께 앉아있었는데 한국인이었다.

사진 찍어달라고 해볼까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다른 쪽으로 가버려서 그냥 포기한다.

젤라또가 먹고 싶었는데 호텔 가는 길엔 없어서 다음에 먹기로 하고 이것도 포기했다.

저녁으로 햄버거를 먹으려고 KFC에서 키오크 주문을 하려는데 메뉴도 많고 소스야채 추가 등등 너무 어려워서 또 포기.(안 먹어 씌ㅋㅋ)



그래도 오늘 목표였던 스테이크를 먹어서 만족스럽다.

포기하고 못한 것들을 생각해 보니 엄청 웃긴다.

되는 건 되는 대로, 안된 건 안된 대로 있는 동안 즐겁게 지내자 생각해 본다.

스페인은 이제 안 올 수도 있고 혼자 멀리까지 여행 오는 것도 (내 기준에) 흔한 일이 아니니 말이다.


모든 건 알 수가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있는 동안 오늘을 즐기는 것뿐이다.


즐겨 즐겨!







<해당 글은 1년 전에 겪은 일입니다. 실감 나게 쓰고 싶어서 지금 가있는 것처럼 작성된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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