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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May 07. 2024

열심히 살지 않으려고요



멀티태스킹이 능력인 줄 알았다



회사원일 때 내 소원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었다.

두세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게 예삿일이었기에 내 머릿속은 항상 뒤죽박죽이었다.

늘 바쁘게 움직이며 정신없이 일하는 게 습관이 되면서 만성두통과 어지럼증을 달고 살았다.

회사는 많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재주를 능력으로 쳐줬기에,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채 내던져진 일을 끌어안고 끙끙대며 해결하기에 바빴다.



회사에서 일하던 관성이 남아서인지 쉬는 날도 한 번에 여러 가지를 했다.

나를 위한답시고 시작한 힐링요리에서까지 채소를 손질하며 찌개를 끓이고 계란프라이를 하며 두 가지 이상의 행동을 한꺼번에 했다.

일은 물론이고 휴식을 취하는 것조차 숙제 같았고, 항상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혼자 바빠서 허둥지둥 댔다.






노력이라 포장된 고통이 미덕인 사회



세상엔 정말 열심히 노력하며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미라클모닝을 하고 N잡을 뛰며 갓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쉰다며 떠나는 여행에서조차 아침부터 해가질 때까지 빽빽한 일정에 맞춰 돌아다닌다.

인생에 쉴틈도 없고 힘들어할 틈도 없다.


세상은 고통으로 일궈낸 것들을 높이 평가했고 뭔가를 힘들여하지 않는 건 성의가 없고 잘못된 것 같았다.

어느 순간은 노력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근면성실과 성공을 부르짖는 사회의 부추김 속에서 노력강박에 시달리다가 피로와 번아웃으로 나가떨어졌다.

한참 열심히 살아야 할 30대의 나이에 퇴사를 하고 집에 있으니 게으른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퇴사는 했지만 부지런히 살고 있다는 걸 어떻게든 증명해야 할 것 같았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욕심껏 모아 와서 한 번에 하려고 낑낑거렸다.

백수가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정신이 없었고 회사 다닐 때 느꼈던 익숙한 통증이 다시 나를 괴롭혔다.

심할 때는 설거지를 하며 음악을 들었더니 두 가지를 병행한다는 느낌이 들면서 두통이 시작됐다.






적당히 살아도 괜찮아



다양한 일을 기를 쓰고 이겨내며 하다 보니 내게 주어진 한정된 에너지를 몰아서 써버리는 기분이었다.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예민해진 몸을 살피기 위해 '욕심내지 말고 한 번에 한 가지씩 차례대로'를 지키려 했다.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고 머리 비우기'라는 나만의 처방전을 조금씩 적용해 나갔다.


번에 한 가지만 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지만 두통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는 게 어려운 이유 : 밥 먹으면서 웬그막 보는 재미를 어떻게 포기하냐고.



무언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신경 쓸 것들이 늘어난다는 걸 뜻했다.

나는 좋다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소유하는 삶보다는 불편하고 싫은 것들을 덜어내는 삶을 원했다.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자 하는 기존의 태도는 유지하되 생활은 단순화시키기로 했다.

매사를 간단하고 단순하게 가져가니 필요 없는 것들이 많이 걸러졌다.

불순물이 제거된 일상은 투명하고 깨끗해진 유리병 같았다.  



그때부터 별일 없이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는 기쁨을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로 삼았다.

여러 가지를 신경 쓰며 복잡하게 사는 건 능력이 아니라 나를 옥죄는 오래된 습관이자 질병일 뿐이다.



N개가 아니라 한 개라도 하면 된다라는 마음으로, 신의 영역인 갓(God)생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걍생'을 살고자 한다.

유행 없는 기본 셔츠를 입은 것처럼 단정해진 기분이다. 오래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든든하기까지 하다.


나를 움직이는 힘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사명이 아니라 적당함이 가져다주는 편안함과 즐거움이었으면 한다.

자극은 덜어내고 내가 즐거운 것들을 하나둘 모아서 나에게 꼭 알맞은 행복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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