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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May 12. 2023

11년 다닌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여행을 갔다가 퇴사에 확신이 생겼다


 2023년 1월 4일.. 11년 다닌 직장에 퇴사의사를 밝혔다.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던 다리가 와르르 무너지듯 결국 사표를 냈다.

당시엔 정말 지금 당장 그만둬도 아쉬울 게 하나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애써 외면하며 참아왔던 것들이 터졌고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회사에선 한 달 정도 시간을 줄 테니 쉬면서 퇴사여부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1달 반 정도의 휴가를 냈다. 어디 가서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막연히 가고 싶었던 곳, 약간의 환상이 있던 유럽을 가야겠단 생각에 스페인행 비행기를 탔다.


혼자 인생샷 건지려고 적당한 장소와 시간을 찾아서~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마냥 다녔다


 난생 처음 발을 디딘 유럽.. 스페인의 모습은 너무 멋졌다.

이렇게 넓은 세상이 있었는데 그냥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하루하루 시들어가듯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여기에 와있는 거니까 후회가 되진 않았다.

나는 단지 하고 싶은 일이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설 용기도 없었으며.. 모든 게 막연했고 많이 두려웠으니까.



 나에게 퇴사는 단순히 회사를 그만둔다는 의미 이상이었다. 내가 여태까지 걸어온 길, 추구해온 가치, 삶의 방식과 방향 등의 본질적인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항상 보통의 삶, 남이 가는 길, 안전하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했다. 이런 내게 퇴사는, 그 궤도를 완전히 벗어나는 선택이었고 여태껏 살아온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수정해야하는 일이었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 나를 이해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시작이었다. 그 일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터널 같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알 수 없는’, ‘확실하지 않은’, ‘희미한’ 길이었고, 그것은 곧 불안함을 의미했다.      


며칠동안 아파서 굴속에 두더지마냥 호텔에 커튼치고 누워있는데 띵가띵가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선물처럼 퍼레이드를 했다.


 허나 여행을 하는 동안 정해놓지 않고 떠나온 길이 더 좋을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페인에 올 때 불안해서 미리 예약한 숙소들보다 그때그때 나의 상황을 고려해 선택한 숙소와 일정이 훨씬 더 만족스러웠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즐겁고 재밌다라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평소에 계획대로,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큰 스트레스였는데 여행 와서는 오히려 즐거움, 묘미로 바뀌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해지지 않는 삶, 알 수 없는 삶이기에 더 재밌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난 정해진 삶,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는데 그건 불안하고 싶지 않은 나의 바람일 뿐이었고 그런 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보면서 맥주랑 애그타르트 냠냠 빵순이에게 유럽은 천국이다
근데 자꾸 비둘기가 친구하잔다 . . 절루 가 ㅜ_ㅜ


 퇴사를 고민할 때 회사라는 강제성에서 벗어난 내가 ‘본질적인 나 찾기’, ‘내 적성 찾기’를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늦잠자고 일어나 넷플릭스나 보는 한심한 백수가 되어있을 것 같았다. 나의 의지력을 믿을 수 없었다.


조급함에 쫓겨 현실에 수긍하는 선택을 할 것 같았고 다른 이의 눈에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어영부영 사는 한심한 인간’으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웠다.


부모님의 걱정스런 눈빛, 친구들 사이에서 나 때문에 속상해하실 모습이 그려졌다. 남의 평가가 두려웠고 패배자, 사회의 낙오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꽁꽁 숨어살 것 만 같아 무서웠다. 무엇보다 그런 내 모습을 참아낼 자신이 없었다.      



내가 한식러버라는 걸 확실히 알게된 순간들. . 샐러드 드레싱도 챔기름을 먹어주는 리얼꼬레안


 허나 내가 항상 습관처럼 달고 살았던 모든 걱정들과 내가 직면한 문제들은 사실 정말 작은 것들이었고 사소한 게 많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의 실체는 생쥐처럼 작았는데 걱정이라는 놈이 만든 허상의 그림자 때문에 그 크기가 공룡처럼 크게 보였다. 그림자에 속아서 실체가 클 거라고 확대해석하고 두려워했다. 걱정은 두려움을 먹고 자랐기에 내가 겁먹을수록 걱정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그러나 여행을 하며 잠시 현실을 떠나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보니 대부분의 문제가 정말 별게 아니었다. 그 안에 있을 땐 모든 게 너무 커보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남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생각하던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내 스스로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였다. 이제 남의 눈치는 그만 보고 내 눈치를 보며 살고 싶었다. 나를 가장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고 누가 뭐라고 하던 나는 내가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면 방황은 할지라도 결국 다시 온전히 설 수 있을 거라 생각됐다.      





스페인 시체스에서 카니발구경중 ㅋ 스페인사람들 저세상 텐션 ㅋ


 계기가 어찌되었든 나는 이미 다른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항상 회사 그만두고 더 잘살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던 내 소원이 이루어지긴 했다. 나는 어떤 일이 생길 때 ‘결과적으로 내게 좋은걸 가져다주기 위해 이런 일이 생긴거야’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한다. 



 낯선 길이 두렵고 힘들 때 혼자 공항으로 향하던 그때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설렘보단 두려움이 컸던 그때, 그 차가웠던 공기, 무거웠던 마음, 떨림, 걱정... 근데 정말 또 별게 아니었고 나는 좀 아프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고 작은 헤프닝도 겪었지만,  즐겁게 잘 지내다가 무사히 돌아왔다.


삶이라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 지금의 이 과정이 있었기에 내 인생이 더 성장하고 가치 있어졌다라고 말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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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5I7Lm07CNc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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