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어떻게 상처가 되는지는 아무도 몰라
루머의 루머의 루머 (13 Reasons Why-Netflix Original)
방영연도: 2017
제작자: 브라이언 요키
출연: 딜런 미네트(Clay Jenson), 캐서린 랭퍼드(Hannah Baker)
기타: 소설 원작 드라마 / 넷플릭스 오리지널 / 청불 / 셀레나 고메즈가 총괄 제작자 (Executive Producer)
요약 (스포있음)
고등학생 해나(Hannah Baker)가 유서 한 장 없이 자살한다. 학교는 충격에 휩싸이고, 그녀가 죽은 지 몇 주 뒤, 그녀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고 친분이 있던 클레이(Clay Jenson)에게 카세트테이프와 지도가 담긴 상자 하나가 도착한다. 그 테이프에는 해나의 목소리로 그녀가 죽은 13가지 이유가 녹음되어 있다. 알고보니 클레이에 앞서 그 카세트테이프를 들은 친구는 순서대로 10명, 클레이는 11번째로 받은 사람이었던 것. 그러나 그 테이프를 이미 들은 친구들은 자신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테이프의 존재조차 쉬쉬한다. 테이프를 하나하나 들을 때마다 밝혀지는 충격적인 진실. 소셜미디어를 통한 따돌림, 배신, 성추행, 성적 대상화, 성폭행, 스토킹 등 여러 비밀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이와 관련된 친구들과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클레이 사이에서 미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클레이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던 이전의 사람들과 달리 복수를 하기도 하고 상황을 바로 잡기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로 두려움과 혼란한 감정에 빠진 해나를 그냥 두고 떠난 이유로 테이프의 한 면을 차지하게 된 클레이는 자신 때문에 해나가 죽은 것이라며 크게 괴로워한다. 클레이의 테이프 다음은 해나를 성폭행한 브라이스와 해나의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못한 상담교사에게로 향한다. 클레이는 원래 규칙을 어기고 브라이스에게 테이프 박스를 전하지 않는다. 대신 브라이스의 자백을 받아내고, 이를 포함시켜 상담교사에게 박스를 전달한다.
감상 (스포있음)
사실 보기 전에 리뷰를 쓸 생각은 크게 없었는데 보면서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어 글로 남기게 되었다. 워낙에 유명한 Netflix TV시리즈이고, 주변에서도 재미있다고 추천을 많이 했던 터. 넷플릭스 구독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였다. 한 편당 50여분이고 총 13회이다. 멈출 수가 없어서 .. 만 이틀이 채 안되어서 정주행 완료. 이렇게 리뷰까지 쓰게 됐다.
청소년 관람불가가 무색하게 이 영화는 고등학생 즉 10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나를 죽음으로 몰아간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에필로그 영상에서 특정 장면은 '보기 불편하게' 촬영했다고 한다. 그 순간이 사실적으로 담기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이야기한다. 해나의 자살 장면은 정말 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습을 발견한 해나 엄마, 아빠의 모습은 전혀 포장되지 않은 그대로의 감정이 표현된 것 같아 그냥 슬픔을 넘어선 상상할 수 없이 거대한 애통함이 느껴졌다. 이 드라마는 가끔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해나가 있던 과거와 없는 현재를 번갈아 보여주며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해나가 있던 시절을 따뜻한 색감으로, 없는 시절을 차갑고 무거운 색감으로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뭐가 어떻게 상처가 되는지는 아무도 몰라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
가끔 뉴스에서 유명인의 자살소식이 나올 때 잠깐 말고는 자살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감히 이 주제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살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사람들의 상황과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상상하기조차 싫었는지 모르겠다. 대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괴로움인것 같아서. 이 드라마는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도록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자살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그를 막을 수 있는 것 또한 우리 모두라는 것을 명확하고 강력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게 어렵다. 반면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대부분 기꺼이 돕지만 때론 나도 모르게 피해가 되는 것은 없나 계산하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 이야기하기 전까지 '나서서'누군가를 돕거나 챙겨주는 일을 잘 하지 못한다. 무뚝뚝한 천성인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한 편이다. 그런 태도를 반성했다.
불필요한 관심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나의 한마디가 정말 큰 힘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먼저 생각을 예쁘게 하고, 섯부르게 남을 판단하지 않고, 말 쉽게 하지 않고, 조금은 .. 주변으로 눈을 돌려 혹시 미약하나마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지는 않을지 살필 필요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그런 작은 조짐들을 이야기로 보여준다. 그런 조짐들은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어떻게 상처가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만큼 무엇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정말 부끄러워 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전에 성폭행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한 강연영상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쪽은 성폭행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여야 하며, 피해자가 느껴야하는 감정은 분노에 가까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 절도, 사기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이 분노여야하는 것 처럼 성폭행에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폭행은 몸과 함께 정신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점에서 부끄러워하고 숨기는게 아니라 심각한 범죄로 모두 다루어질 수 있도록 수준 높은 피해자 보호와 범죄자 처벌 방식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진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여권신장이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하고, 알파걸이 득세하는 시대라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 멀었다. 너무 오랜 세월동안 여성은 사회적 약자였고, 단지 표면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여자로 살면서 매일매일, 곳곳에서 아직 갈길이 멀다는 것을 느낀다. 뼛속깊이, 마음속깊이, 사회속깊이 오랜 시간에 걸쳐 그런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드라마에서도 성폭행을 당하고 용기를 내어 찾아간 상담실에서 해나에게 돌아오는 질문은 "부끄러움을 느꼈니" 이다. 그렇게밖에 대처할 수 없었던 상담교사가 안타깝기도 하지만 범죄 피해자가 부끄러움을 느껴야하는 현실에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강자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떳떳하고 약자는 자신을 숨길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왜 인간은 이기고 싶어하고, 지배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왜 그런 방법으로 쾌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일까 라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떠오른다. 만약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진화심리학적'인 인간의 본성이라면 '인간이 좀 더 진화한 인간 다움' 을 영위하기 위해서 보다 강한 수준의 처벌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주 어릴 때부터 하지 말아야 하는 언어, 사고방식, 행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주 자세한 교육이 필요하다.
아이들과 사춘기를 함께 겪는 부모들 (부제: 힘내세요)
이 드라마에서 저스틴과 셰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화목한 가정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있다. 아이들도 부모 앞에서 크게 반항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를 통제하려는 부모와 이를 거부하려는 아이들의 미묘한 신경전은 계속된다. 그렇지만 결국 아이들이 최종적으로 기대는 곳은 가족과 부모님이다. 커가는 과정이고, 소중한 것을 깨닫는 과정인건지.
나의 사춘기 시절은 다시 상상하기도 싫다. 못된 딸래미, 어두운 모습, 불만 가득하고 근심걱정 많았던 그 시절. 그 시절을 함께 견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청소년기는 아직 전두엽의 성장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라고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 그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이 충분히 세상을 잘 안다고 쉽게 착각하곤 한다. 그 모습이 어른들이 보기에 무척 불안해 보이고 그로 인한 관심을 간섭이라 아이들이 느끼는 것은 아닐지. 그 미묘한 정도를 조절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언젠가 그 노력의 시간을 함께 돌아볼 날을 기대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 세상의 사춘기 부모와 아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아직 궁금한 캐릭터의 정체
시즌1의 큰 성공으로 시즌2가 제작 중이라고 한다. 이 드라마에서 선의 캐릭터는 클레이와 토니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클레이에게도, 토니에게도 무언가 큰 반전이 있을 것을 기대했다. 클레이가 이전에 정신상담을 받은 적이 있고, 어떤 약을 복용했다는 내용이 잠시 나오는데 그게 어떤 이유였으며 어떤 약인지에 대해서 언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클레이가 기억상실을 겪었다거나 .. 어떤 정신적 질환 때문에 해나에게 한 행동을 기억못하는 것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클레이는 끝까지 정의롭고 그저 착한 캐릭터였다. 토니도 이상하리만치 클레이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해나와의 약속을 지키려 한다. 그리고 해나와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토니는 해나가 자신을 성적으로 나쁜 시선을 보내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 테이프가 처음으로 전달되었다고 추측할 뿐이지만 추측일뿐이다. 이 둘 모두 아직 남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결국 해나 부모님과 학교와의 소송은 어떤 결론을 맞았는지도 궁금하다. 그래서 시즌2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