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관점 육아] 아버지를 이해하는 효과적인 방법

그리고 우리의 할 일

by 신우석 소장
아버지에 대한 아쉬움


얼마 전 어버이날을 맞아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카네이션을 만들어 왔다. 처음 보는 새로운 형태의 것이긴 했지만, 역시 세월이 지나도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이 빠지지 않는 모양이다. ‘아빠, 엄마, 사랑해요.’라고 어설픈 손 글씨로 비뚤배뚤 쓰여 있는 카드를 흐뭇한 미소로 들여다본다. 역시 아이를 키우는 재미라는 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 녀석이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지금과 같은 마음일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배움의 초기 단계에 선생님을 대하는 자세는 남다르다. 그분의 행동을 따라 하기도 하며, 말씀 한마디에 집중하고, 그분과 비슷한 생각을 하도록 노력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크고 대단하게 보인다. 그야말로 절대적인 존재처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 배움의 단계가 올라갈수록 경험이 쌓이게 되고, 전에는 알지 못하던 세상에 차츰 눈을 뜨게 된다.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진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절대자처럼 여겨지던 선생님에 대한 시각 또한 점차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분의 모든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비판적 사고가 작동하면서 급기야는 다른 선생님과 비교를 하기도 한다. 결국, 선생님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내려진다. 마치 자연의 섭리와도 같은 이런 현상을 당사자인 선생님은 그저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은 본래 아버지의 성품이나 행동, 습관 등을 아들이 그대로 전해받는 모습을 가리킨다. 하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는 비아냥거리는 말로 쓰이곤 한다. 어렸을 때 우리의 아버지는 그저 한없이 크고 대단한 존재였지만, 지금 우리는 이전 세대의 아버지 역할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그런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비단 우리 세대뿐만이 아니다. 아버지 또한 그 전 세대의 역할에 대해 마찬가지로 아쉬워했다는 것을 우리는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서 접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를 닮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를 닮은 아빠가 된 우리. 삼대를 걸쳐 이루어지는 이 붕어빵 같은 연결고리는 너무나도 강력하다. 부모의 피를 받아 태어나는 아이가 부모의 모습을 이어받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그리고 이 연결 고리의 바로 다음 단계에 걸려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다. 우리는 과연 이전 세대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가? 그리고 세월이 지나 아이가 성장한 뒤에 우리가 받게 될 평가는 어떠할 것인가?


TV나 인터넷에서는 육아 관련 프로그램과 기사들이 붐을 이루고, 아빠 육아에 관한 책도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아빠 육아의 중요성에 대해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사실 지금의 이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이다.


몇 세대를 걸쳐 내려오던 마치 관습과도 같은 것이 세상의 요구로 그냥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우리 아버지 세대로부터 가장의 올바른 역할 모델을 제대로 보고 배울 수 있었다면 얘기는 달랐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아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할 일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분명 이런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를 원망한 들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원망은 단지 아버지를 향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더 윗세대로까지 올라간다 한들 끝나지는 않는다. 원망은 또 다른 원망을 나을 뿐, 그 어떠한 것도 긍정적으로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쉬운 결과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근본적인 원망을 풀어낼 방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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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이해하는 방법


우리의 조부모 세대는 일제 치하에서의 고난 속에서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우리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피땀을 흘려오다 전쟁까지 거쳐 오면서 그야말로 진정한 고통과 공포를 겪어야만 했고, 부모 세대는 그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아무는 동안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다. 당신들에게 세상이라는 건 그저 밝지만은 않은 어쩌면 어두운 날들이 더 많았을, 한 마디로 ‘생존 터’였을 것이다.


필자를 키워주신 외할머니는 항상 웃음과 미소가 가득한 분이셨다. 하지만 전쟁 통에 피난을 내려가든 이야기를 해주시든 날이면 마치 다른 분을 보는 듯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던 눈물, 마치 아직도 그곳에 넋을 놓고 오신 듯 허망한 표정을 보이시던 그 모습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는 하늘에서 화염을 내뿜던 쌕쌕이(폭격기)나 피와 살이 날아다니는 참혹한 지옥의 광경을 영화에서나 봤을 뿐, 그 공포를 몸으로 겪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의 어른들이 그런 생지옥 같은 세상을 살아내고 보릿고개를 지나며 이루어낸 지금의 이 세상을 우리는 큰 덕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 먹고살아내기조차 힘든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최선으로 우리들을 키워낸 그분들의 입장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였다 본의 아니게 우리들 또한 그런 세월의 여파로 인한 그다음 세대의 피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변함없이 가게 된다면 그다음의 피해자는 바로 우리 아이들이 될 것이다.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변명의 여지없이 가해자가 되고 만다. 설령 내가 아빠 노릇에 대해 잘못 배웠더라도 우리 대에서는 반드시 끊어 내어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가진 원망을 비워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아빠가 되고 싶은지, 어떤 남편을 만나고 싶은지 누군가로부터 질문을 받는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만약 ‘우리 아빠 같은 아빠’라면, 그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일지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세상이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는 현재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주인이 될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인생을 걸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지 않겠는가?


앞으로 우리의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단지 깨끗한 자연뿐만 아닌 그들의 미래, 또 그 후손들의 미래를 위한 행복한 기억이다. 원망이 원망을 낳았던 것을 뒤집어 이제는 행복이 대를 이어 또 다른 행복을 낳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 우리가 바꿔 나가야 한다. 건강한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처로 남아있는 과거는 툭툭 털어 버려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를 온전히 치유해야 같은 상처를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


아직은 우리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아이가 정말 두고두고 꺼내보며 힘이 될 수 있는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 주는 아빠가 되는 것이다.


지금 아빠의 모습은 미래 아이의 모습이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그 날을 위해, 아빠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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