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속 등교 전쟁을 시작한 부모들을 위해
코로나 사태로
만년 방학일 것만 같았던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아이에게는 도전이지만
대충 너무 늦지 않게만 일어나서
마실 가듯 유치원을 보내던 습관 때문에
아침에 일찍 아이를 깨우는 것은
부모에게도 큰 숙제다.
하지만 어디 깨운다고
한 방에 일어날 아이인가ㅡ
내일부터 일찍 일어나겠다던
어제의 굳은 약속은 온데간데 없고
온갖 짜증과 투정이 난무하는
고난의 아침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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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빨리 일어나! 늦었어!"
"지금이 몇시야! 빨리 안 일어나?"
하지만
이렇게 재촉하고 화를 내면 아이는
일어나기가 더 힘들어진다.
이미 아빠는
자기 때문에 기분이 상했고
이미 아빠는
자신을 형편없는 아이라 생각할 게 뻔하며
일어나면 그 모든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여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어쩌면 그저
딸의 일방적인 오해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아빠다.
그렇게
뚜렷한 명분으로 무장하더라도
그걸 이해할 리 없는 아이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
분명 평소 기회가 될 때
WHY?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WHY? 왜 시간을 지켜야 하는지
WHY? 왜 이게 널 위한 일인지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대화해야 하지만ㅡ
일단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 당장 아이를 빠르게 움직이고 싶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공감'이다.
아이의 관점에서
지금 아이가 느낄 마음을 읽어주고
나도 같은 심정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그것이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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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야, 일어나야지ㅡ 지금 8시야"
"아빠는 +☆♧¥○¤¡|■€ 하면서~~"
뭐라고 중얼거리시는지
너는 털어서 먼지 안 날 것 같으냐 뭐
그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잠과 관련한 문제는
진심으로 목숨이 달린 문제다
아이는 지금 생사와 싸우느라
제 정신이 아니니 개의치 않고
아이의 마음에 공감한다
"어이구, 일어나기 힘들지? 얼마나 더 자고 싶을까
아빠도 그냥 수아 꼭 껴안고 같이 자고 싶다ㅡㅎㅎ"
그리고 이어진 뽀뽀 세례에 반응하는 아이
움찔ㅡ
"아빠가 책 읽어줄게ㅡ 무슨 책이 좋을까?"
아침에 애 깨워 준비 시키기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아이 투정에 공감할 시간이 있고
책 읽을 여유가 있을까 싶겠지만
어차피 아이 깨우느라
아이와 씨름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거니와
아이와 부모 모두가 받을 스트레스와
관계를 만회하기 위해 들여야 할 시간을 생각하면
아이가 좋아하는 얇은 동화책 한 두 권 읽는 데
걸리는 시간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잠시 후 디테일한 주문이 이어진다.
"견우와 직녀ㅡ"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아이는
아빠 무릎에 바로 앉아
천천히 그리고 기분 좋게
잠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빠른 듯한 느린 길보다
느린 듯한 빠른 길을 택하는 것은
참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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