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젊은 혈기에 다짜고짜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던 일이 있었다. 한창 학벌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철학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끓어오를 때였다. 자유와 보편성, 진보 등 추상적인 단어를 늘여놓는 나에게 교수는 짧게 물었다. 어떤 ‘일(직업)’을 생각하고 있냐고. 나는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있다고 답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넌 꿈이 뭐니’ 묻는 것에 질리기도 질렸을 뿐더러, 매년 적어내야 하는 학생생활기록부 진로 칸에도 신물이 나, 엿 먹어라 하고 철학자를 적어낸 참이었다. (반은 진심이었지만) 국가·제도에 대한 반감으로 아나키스트가 되듯 나도 ‘직업’에 대한 반감으로 철학자를 내세운 거였다. 꼭 뭐가 되어야 하냐고 묻는 내게 교수는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다. “세상이 마음에 안 들고, 마음으론 당신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아무 일도 못하고 세상을 비판만 하면 절대 안 됩니다.”
그 때 이후 나는 무엇이 변했을까. 철교(무서운 종교가 분명하다)에 빠져 겁 없이 경제학세미나 수업을 듣게 된 나는 이 파릇파릇한 나이에 취업대비 자기소개서를 제출할 운명을 맞게 되었다.
취업이라, 솔직히 쓸 자신이 없다. 그쪽(직장에 한정)은 눈길도 안 주기로 했다. 드라마 ‘미생’을 보고 난 뒤 다짐했다. 직장인의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 드라마에 나는 묘한 환멸을 느꼈다. 생각하니, 부조리를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관습이나 모순이나 시대착오적인 것에 대해 직장(회사)에서는 변화보다는 답습을 택한다. ‘안 맞으면 나가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기존의 부조리는 변화불가능의 고정된 상태가 되어 구성원을 짜 맞춘다. 인생 뭐 몇 번이나 된다고, 그렇게 살지는 않기로 했다. 취업 바이바이.
직업을 고민하다 보니, 기억 속 어렴풋이 남은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직업을 고민하는 것이란 이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헌신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라 했다. 세상에 진 빚을 갚는 활동이라 했다. 여기서 분명해진다. 직업을 고민할 때, 내가 먹을 파이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경제학 전공을 선택한 건 그 고민의 결과다. 경제는 중요하다. 지금 한국에 경제문제는 그 어떤 문제보다 커다란 비교우위를 가진다. 물론 나쁜 측면에서. 경제는 생명줄이다. 옆을 둘러보면 돈 없어 괴로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나도 괴롭다. 통학을 왕복 4시간을 하는데, 익숙해진 가운데서 드문드문 이게 할 짓인가 싶다. 생각하고 생각하니, 이 아픔은 부동산 투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식이다. 내 일 아닌 듯 보이는 기업지배구조가 현실의 우리에게 마수를 뻗치고 있다. 얼른 부셔야 하지 않겠는가.
시작은 야심찼지만 끝마저 야심찰지는 잘 모르겠다. 관용적으로 글 마무리에 ‘더 나은 세상을 위해’라 적는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한다. 젊은 객기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세상은 더 크게 보이고,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막막함의 크기도 비례하여 커진다. 신우진 교수는 젊었을 때 넘치는 객기로 분배니 형평이니 하며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숨의 의미는 잘 모르지만, 괜스레 슬펐다. 나의 가능태 같아서.
다행인 건, 아직 젊다. 객기를 잃지 않기를, 젊은 피를 잃지 않기를.
*2018년 4월 4일 경제학세미나 자기소개서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