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갈이글(下)

by 노마 장윤석

성적표를 꺼내보여 남사스럽다. 나의 행복이 타인의 고통이 되는 구조가 참 잣 같아서 늘 성적이라면 치를 떨어왔다. 지금도 마음이 영 뒤숭생숭하다. 자랑에는 인색하지만, 이 기하학적인 수열을 다시 볼 일은 없을 것 같아 부끄러운 자랑을 조심스레 해본다.


새해에는 자멸하는 짓 좀 그만두려 한다. 자격론도 버리련다. 학자로서의 자질이 있니 없니 하면서 괴롭히고, 세상이 말센데 너는 이 모양이니 하면서 손톱 물어뜯고 하는 짓 좀 그만두려고 한다. 자기 칭찬에 야박한 것도 강박이다. 왜 나는 나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사람인가. 안아줄 수는 없나. 성적은 사람 됨됨이와 능력을 평가하는 조금의 잣대도 못 되지만, 수고했다 말 한마디 정도는 건넬 수 있지않나. 일기장 깊숙이 묻어놓아야 할 글을 긴가민가 하며 이렇게 꺼내는 것은 다짐으로라도 내뱉고 싶어서다.


올해 쓴 글 중 ‘변방과 중심부’라는 제목을 붙인 글이 있었다. 중심부 콤플렉스가 있는 변방은 창조의 공간이 아니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했다. 간단하게 서울대냐 성공회대냐의 이야기다. 간혹 수업 중 농담 비스무레라도 서울대보다 성공회대가 낫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웃었지만 분위기는 묘했다. 학교를 다니는 모든 친구들에게 조금의 자긍심과 숨겨둔 큰 열등감이 있는 걸 느꼈다. 하기사 이 학벌사회에서 경쟁원리를 내면화하며 자라온 우리 중에 서울대에 열등감 없는 이가 어디있을까. 자유와는 거리가 먼 교육이고 사회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의 묘한 기분을 기억한다. 김상봉의 ‘학벌사회’를 읽고 대학을 거부한다 단언하고 수능을 때려쳤는데 면접전형으로 붙어버렸다. 네 성적으로는 택도 없다 말하던 선생들의 코를 누른 듯해 우쭐했지만 한편으로는 대학거부자 친구들을 배신한 듯한 괴로움도 있었다. 상처가 많았다. 이 미친 세상에서 학벌이 어쩌고 수능이 어쩌고 부조리 어쩌고 한다 어쩐다 말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서울대 가서 바꾸라 였다. 그러면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줄 거라고. 외로웠던 기억이 난다.


변방과 중심부의 고민이다. 나는 대학원으로 가는 전철을 탔고, 서울대와 성공회대를 생각하고 있다. 생태경제학을 전공하려 한다. 환경사회학, 한국철학, 생태학 등 여러 분과를 넘나들며 공부하겠지만 지금 한국에는 생태경제학을 전공한 이가 없다. 다른 말로는 지금의 위기를 헤쳐내는데 가장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이겠고. 서울대에는 국내 유일하게 환경대학원이 있다. 이 곳에서는 환경경제학에 대한 수리적 공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실력과 힘인가. 억울하고 절박한 만큼 힘을 원하게 되지만, 나를 갉아먹으리란 걸 알기에 겁난다. 성공회대에서는 사랑하는 교수님의 제자로 건강하게 공부할 수 있고, 힘보다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 공간은 중심부가 버거워 막막함 속에서 대안을 만들어보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나는 무얼 하고자 하는지. 앞서 말했듯 방주를 만드려 한다면 나는 이들과의 만남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이곳의 사람들이 좋다. 학문적으로도 좋다. 올해는 유독 미친 듯이 포럼·컨퍼런스·세미나·학술대회를 찾아다녔다. 서울대 대학원의 젊은 연구자들의 발표를 들을 기회가 몇 있었고, 깊이 대화도 나누었었다. 인상을 많이 받고 돌아왔지만, 나는 변방의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리웠다. 채영, 예규, 백월, 윤호, 하연. 주류의 그릇에 담길 수 없는 생각들이 어찌나 귀한지 이들은 모른다. 나는 지금의 판을 뒤엎을 열쇠가 이제까지 조명되지 않았던 거칠고 미숙한 생각들에 있으리라 믿는다. 이반 일리치와 칼 폴라니처럼. 나는 그들의 날카롭고도 섬세한 생각들이 늘 그립다.


하지만 이 고민은 수많은 특권들에 기초한 물음이었다. 나는 내가 공정한 경쟁을 했다고 자부하지는 못하겠다. 나는 내 손으로 등록금과 월세를 벌어본 적이 없다. 전공교재를 빌릴까 살까 고민하지 않고 샀다. 나는 빚을 질 수 있었고,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럼에 투잡 쓰리잡 뛰며 학업까지 병행했던 친구들과 공정한 경쟁을 했냐면 도저히 그렇다고는 말 못 하겠다.


한편 동지 월의 물음도 떠오른다. 학자가 되고 싶으니 대학원에 가리란 내 말에 그는 “공부하려고 꼭 대학원에 가야 해? 나도 공부 좋아하는데 굳이 거기까지 가고 싶지는 않은데.”하고 답했다. 나는 제도의 편한 맛을 누리려 하는가 싶었다. 제도 밖에서 창조를 모색할 수는 없을까.


결국 물음은 이렇게 정리된다. 특권과 제도에 기댄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존재를 무엇에 비끌어멜까 고민하면, 나를 살게 한 것들에 은혜를 갚아가는 것이라는데 생각이 닿는다. 그게 아니고서는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미친 듯이 흔들려왔지만 그럼에도 방향과 마음이 곧다. 나에게 주어진 일과 시련들을 감내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세 가지 일을 제안받았다. 하나는 그린뉴딜한국네트워크 플랫폼 제작·관리자, 다른 하나는 생태적지혜연구소 연구원, 마지막은 녹색당 정책위원. 내가 필요한 곳에서 쓰일 수 있어 기쁘면서도 조급한 마음에 무턱대고 너무 많은 것을 해버린 건 아닌가 염려스럽다. 녹색진영이 상황은 심각한데 대처와 반응은 미온하고 사람은 없어 그렇다.


세미나도 한 주에 네 번이다. 월요일 경향 <거대한 전환> 세미나, 수요일 공생연구소 <도넛 경제학> 세미나, 목요일 GPS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 세미나, 금요일 너도나라 <서로주체성의 이념> 세미나. 가히 세미나 덕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즐거운 일이라 스트레스받지는 않는다만, 이렇게 여유 하나 없이 일 년을 삼 년처럼 살아가는 것이 지속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를 걱정하는 나의 교수님은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고, 나의 이 열정이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하기야 느리고 안정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빠르고 불안정하게 달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니, 부담을 좀 덜고 여유롭게 임해야겠다. 발제 좀 그만 맡아오고, 일 좀 나누고, 책임감 필요한 직은 남 주고.


한 해 수고했다. 늘 스스로에게 야박한 사람이라 이 말 내뱉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변화를 위해서는 누가 뭐래도 일과 대의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고, 옆과 스스로를 다독이지 못하면 쉬이 소진되고 덧없어진다. 연말에 애틋하다는 말을 참 많이 썼는데, 올해도 애틋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애틋함을 찾아 방주 타고 항해하는 것도 참 낭만적인 것 같다. 실존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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