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철학에 대하여
누군가 말하길, 젊은 사회과학도면서 맑시스트가 아니면 인생 헛산거라 했다. 이 말에 동의하게 될 줄은 몰랐다. 마르크스에 대한 피상적이고 일면적인 이해를 넘어서보며, 후대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의 난해하고 자의적인 해설들을 벗어나보면, 마르크스의 이론에 감탄치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마르크스가 철학사에 지워질 수 없는 흔적을 남긴 까닭은 ‘실천’에 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상을 해석해왔을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다’는 유명한 언사처럼, 마르크스는 관조적 태도로 이론을 펼친 것이 아닌 변화의 바람을 내포한 채 사유를 전개해나갔다.단순한 태도로서의 적극성을 넘어서서, 맑스의 ‘실천’ 개념은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대상을 정태적인, 정적인 것으로의 파악이 아닌 활동적인 생활 과정, 실천 과정으로 파악하려는 것 이였으니. 이는 인간의 실제 ‘자유’에 대하여 어느 철학자보다 적극적으로 숙고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자연 속의 인간, 사회 속의 인간’이라는 유물론적 토대에 기초하여 사유했다. 하지만 기계적 유물론이 가진 한계 – 인간의 자유와 변혁의 위치가 애매해지는 - 를 넘어서 자유의 실현 가능성과 잠재력에 큰 주안점을 두었다.
에리히 프롬이 보는 마르크스를 보자. 프롬에게 맑스는 인본주의자이자 실존주의자이다. 마르크스가 인간의 소외를 말할 때 그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하나의 사물로 변모하는 사태(Fetisism) - 자유와 주체성의 침범 – 에 저항하는 것이다(자본에 관한 면밀하고 총체적인 분석을 통해 그는 인간과 자연의 동시 소외를 발견했다. 결과물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과정으로부터의 소외, 나아가 ‘유적 존재’로서의 소외 또한 말한다.) 따라서 ‘마르크스 철학의 핵심은 개별 인간의 실존에 있다. 인간의 존재는 바로 그의 행동으로 나타나며 그의 본성은 역사 속에서 발현되고전개된다는 것이다’
베버는 인간을 개인으로 보고, 맑스는 유적 존재로 본다. 베버는 자유주의에 기초해 선택의 자유를 가진 개인으로, 맑스는 자연과 사회에 의해 구성되는 유적 존재로 본다. 이 철학적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어떤 이론의 차이를 가져오는가. 얕은 이해 탓에 궁금한 것만 넘친다.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마르크스를/마르크스의 계급론을 목적론적‧종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볼 수 있는가. 헤겔의 목적론에 맑스는 강한 비판을 가했고, 그의 저작 전반에 드러나는 유물론적‧비종교적 사유는 목적론‧관념론‧종말론과는 극명히 대치되지 않은가. 공산주의 유토피아론은 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우상화 한 것이 아닌가.
2. 마르크스와 헤겔의 관계. 교수님은 헤겔의 소외론과 변증법의 많은 부분을 마르크스가 그대로 차용했다 말했다. 철학이 헤겔에게 많은 부분 빚지고 있나? 헤겔의 철학에 ‘반’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이론이 정립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특히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방법론은 헤겔과는 교차점이 없지 않나.
3. 헤겔은 역사발전을 정신의 발전으로 보았다. 하지만 교수님의 설명은 헤겔이 역사를 주인과 종의 대립(계급대립‧계급투쟁)으로, 소유‧계급을 통해 본 것처럼 들렸다.
4. 헤겔은 스미스의 인간관 중 어느 부분에 빚지고 있는가?
5. “경험론에서 맑스의 계급론과 계급투쟁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 2019. 9.10, 김동춘 교수의 <계급과 계층> 수업 과제로 제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