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선생님 추도사

by 노마 장윤석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 졌다네

별은 그저 별일 뿐이야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오늘도 별이 진다네

아름다운 나의 별 하나

별이 지면 하늘도 슬퍼

이렇게 비만 내리는 거야

- 여행스케치, ‘별이 진다네’ 중”


어제는 비가 왔다. 빈소에서 비를 맞으며 돌아오는 길, 자동차가 너무 많았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빌딩들이 너무 컸다. 그 자리는 누군가가 살던 곳이었다. 별이 졌는데 도로를 꽉 메운 차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제처럼, 서른 해 전부터 있었던 경고를 무시하고 달리고 있었다. 참 야속하지 싶었다. 온갖 쓰레기들이 눈에 밟혀서 모른 척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름의 추모랍시고 선생님이 쓰신 글들을 읽어가고 있다. 서른 해 전에 하신 말씀들이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의 글은 늘 날이 서 있다. 경고가 잔뜩 서려있다. 그 서린 말들을 삼십 년 동안 해오셨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이 나라에서, 도중에 나가떨어지거나 변하기가 참 쉬운 이 곳에서 참으로 일관성 있게 뜻을 이어오셨다. 추수를 바라지 않고 씨를 뿌리는 농부처럼. 선생님의 글은 한결같다는 말이 어울린다.

늘 그렇듯이 낙담과 희망이 같이 있다. 서른 해 동안 이어온 선생님의 말씀을 누가 귀담아 들었나. ‘현실’이란 낱말로 사유의 빈곤을 감추지 못하고 매도하는 이는 많았다. 배부른 소리, 속 편한 소리, 현실 혹은 경제를 모르는 소리 등등. 선생님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이반 일리치가 죽었을 때 사회학자 피터 버거가 쓴 ‘천재였지만 아무 쓸모가 없는 사상가’라는 추도사가 떠오른다.


어쩌면 참된 학자란 쓸모없는 말과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신영복 선생님께서도 공부란 오늘의 소용을 떠나야 하는 것이라고, 오늘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리고 물어야 한다. 일리치의 마지막 책 제목처럼 누가 선생님의 말들을 쓸모없게 만들었는가. 시대가 그렇게 무시해 마지않았던 선생님의 말들이, 모두 알겠지만 점점 눈에 선해지는 미증유의 위기 앞에서 선지자의 예언처럼 되어가고 있다. 오래전부터 비관론자다, 너무 갔다, 예민하다 어쩐다 비난을 일삼았던 동시대의 많은 이들이 아직도 우리가 ‘지금 여기’ 놓인 상태를 정직히 인정하지 않는다면 선생님의 말은 실로 쓸모없게 되고 말았다.


쓸모 있는 말들만 찾아다니는 이들은 근원적인 진단과 대처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일리치가 평생 품고 살았다는 말처럼 ‘최선이 타락해 최악이 되고 만다.’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들, 그리고 소위 진보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서구’의 ‘소득 6만 불’ ‘복지국가’가 아닌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이가 얼마나 있었나. 선생님이 늘 말씀하시듯 정부가 모든 것을 해야 하고, 복지로 지금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빈곤한 상상력의 반증이다. 친절과 보살핌, 환대를 제도화하고 권력을 집중화하는 방식은 필연 ‘최악’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근대 자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결여하고 인격적 만남에 대한 감각 없이 내건 ‘쓸모 있는’ 구호들 중에서 얼마나 쓸모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어제는 꿈을 꾸었다. 나에게 선생님을 알려준 동지 윤이 꿈에 나와 같이 뻥튀기 먹으면서 선생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윤은 선생님의 제자다. 우리는 도서관에서 마치는 11시까지 공부하다가 집으로 같이 터덜터덜 걸어가곤 했다. 가끔은 낡은 벤치에 앉아 맥주도 마시며 갖은 이야기를 나눴다. 윤이 선생님께서 연세가 많으셔 걱정된다고, 선생님이 돌아가시면 녹색평론은 어찌 될까 하고 걱정하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선생님 같은 분 없이 녹색평론이 이어질 리 만무하다고. 안 그래도 어려운데 뒤를 어찌 이어가야 하나 하고.


우리는 대학에 생태주의 공부모임을 만들어 함께 선생님, 일리치, 간디, 슈마허, 더글라스 러미스, 반다니 시바, 나오미 클라인, 마르크스의 글들을 읽어나갔다. 지금은 멈추어져 있지만 오늘따라 유독 그립고 생각나고 그런다. 윤은 지금 연락이 닿지 않는 곳에 가 있다. 나도 마음이 아리다만 이이는 어떨까 싶어 걱정이 서리다. 빈소에 윤과 나의 이름으로 국화를 놓았으니, 윤이 찾아가지 못한 것에 마음 쓰지 않았으면 한다.


나름의 추모랍시고 선생님의 글들을 다시 읽어나가고 있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사뭇 놀라고 아 하는 탄성도 잦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왜 그런가 봤더니 어느새 선생님의 글이 나에게 한에서는 ‘상식’이 되어있는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이고 당연히 맞는 방향이다. 순간, 내가 김종철 선생님께 무척 많은 영향을 받았구나 싶었다. 하기사 나도 선생님처럼 가장 존경 어린 철학자로 일리치를 꼽으니까. 내 입으로 선생님의 제자라는 말을 하지는 못했는데, ‘먼발치의 제자’였다고 말하려 한다. 선생님의 말과 뜻을 이어간다면 그게 제자이자 후학이라 생각한다.


작년 9월, 내가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뵈었을 때 선생님께서는 녹색평론이 저물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세상의 위기가 심화되니까 관심을 놓아버리나..”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강의의 마지막에 질문을 드렸다. 우리 세대에 미래가 있을 것이라 믿으시냐고. 이 나라에서 학벌주의·반지성주의·물신주의에 푹 젖어 자라난 청년들이 ‘녹색평론 그다음’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냐고.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냐고. 나도 그때는 막막함과 우울함이 잔뜩이라 답도 없는 질문을 드리고 말았다. 선생님께서도 한동안 안경만 매만지다가, 본인은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우리 세대에게 또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답을 듣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 질문이 마지막 질문이 되어서 내 안에서는 계속 남을 것 같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소외시키는 근대의 폭주, 기후위기로부터 민초들의 지혜를 회복하고 인격적인 만남이 곳곳에서 피어날 수 있는 생태계와 그 속의 살림살이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뒤를 이어가는 학자로서,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안다. 시대적 과제가 엄중하고, 선생님이 늘 말씀하신 것처럼 이 땅의 학자들은 현명하지도 성실하지도 못했다. 선생님이 주신 ‘근대를 넘어서’라는 화두는 내가 앞으로 쓰고 말하는 모든 것에 깊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셨어도 돌아간 것은 아니겠다. 학문에는 선생과 후학이 있을 뿐이니. 저도 우정과 환대를 기치로 내걸고 살아가겠습니다. 부족한 추도사를 올립니다.


2020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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