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은강 바람은 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밤에는 육지에서 바다로 분다. 그 바람이 공장 지대의 유독 가스와 매연을 바다와 내륙으로만 몰아갔다. 그런데 오월 어느 날 밤, 은강 사람들은 바람이 갑자기 바람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람은 바다로 안 불고, 내륙으로도 안 불고, 공장 지대의 상공에 머물렀다가 곧바로 주거지를 향해 불었다. 그 바람은 기복을 이룬 시내의 구릉을 넘어 주거지 일대에 가라앉으며 빠져나갔다. 막 잠이 들려던 어린아이들이 바람이 방향을 바꾼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갑자기 호흡 장애를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을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던 어른들도 악취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눈이 아프고, 목이 따가웠다.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거리로 뛰어나왔다. 시가지와 주거지에 안개가 내리고, 가로등은 보이지 않았다. 대혼잡이 일어 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 아무도 정확히 말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은강 역사에 전례가 없는 생물학적 악조건 속에서 자기들이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옥은 멀리 있지 않다. 다른 오월 어느 날 밤, 인도 비샤카파트남이 지옥이 됐다. 은강의 비극이 바다 건너 재현됐다. LG화학 산하의 공장에서 유독가스가 누출되어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다. 35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갔다. 사람들이 길바닥에 널부러지고 곳곳에서 비명소리 울음소리가 들렸다. 5월 7일 현지 시간으로 새벽 3시였다. 그로부터 네 시간 반 뒤,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 LG화학의 부회장은 온라인 생중계로 당차게 기업의 ‘뉴비전’을 발표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학을 인류의 삶에 연결합니다.”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1위 달성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 기업의 미래는 창창하다. 코로나로 인한 저유가로 이번 분기 ‘깜짝’ 영업이익을 냈고, 몇 주 전에는 7000억 규모의 친환경 대출 그린론 조달 체결식을 가졌다. 폴란드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지어 친환경 미래를 위해 이바지하겠단다.
기사가 났다. “LG화학, 인도 공장 사고 소식에도 주가 ‘꿋꿋’”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재가동은 당분간 어렵겠지만 과도한 우려는 없을 것”이라 밝혔다. “가동중단에 따른 연간 손익감소는 제한적일 것”, “다만 사고 관련 위로금 지급 등으로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세상 모든 일들을 주가로만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디에 사는가. 천국과 지옥이 한 날 함께 있었다.
2. 들어가며
한동안 착잡함을 금치 못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또. 이 기업이 뉴비전이랍시고 발표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학을 인류의 삶에 연결합니다.”는 발표할 때부터 헛구호였다. 사람이 죽었는데, 더 나은 미래가 말이 될 리가 없다.
인도는 1984년 마디아프라데시 주 보팔 가스 누출 사고로 세계 최대의 인명 피해를 낳았던 적이 있다. 공식적으로 2800명 이상이 사망했고, 20만 명 이상의 피해자 중 현재까지 2만 명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세월호처럼 이들에게 유독화학물질 사고는 국민적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이 사고는 유니온 카바이드 사에서 농약의 원료로 사용되는 아이소사이안화메틸(MIC) 가스가 누출되며 빚어졌다. 인구밀집지역이었음에도 안전수칙에 따른 철저한 감독과 인력이 부재했고, 설계비용을 줄이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방식으로 탱크가 설계되었으며, 1981년 포스겐 가스 누출로 위험성이 드러났음에도 시정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사고는 인명피해 뿐 아니라 지역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아직도 유니언 카바이드사의 공장 창고에는 425톤이 넘는 유독성 폐기물이 처리되지 않은 채 있고, 토양과 지하수 오염으로 인한 독성도 우려되고 있다.
1979년 미국의 핵 사고를 다룬 다큐멘터리 ‘Meltdown at Three Mile Island(1999)’에서는 위험이 벌어졌을 때 관련 집단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 번도 마주해본 적 없는 위험, 전초증상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메뉴얼도 없다. 현대과학기술이 가진 거대하고 불확실한 특성에서 이어지는 위험은 통제되지 않고, 통제될 수도 없다. 이는 우리 사회를 ‘위험사회’로 만들고야 말았다.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광범위한 참사로 이어지는 이러한 과학기술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무엇보다 이 끔찍한 참사들이 어째서 계속되는가. 당장 독성화학물질 사고만 해도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 2012 구미시 불산가스 사태에 이어 2019년 한화토탈 가스누출 사태, 이번 LG화학 비샤카파트남 가스참사까지 끊이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악순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서 벌어진 사고지만, 관련 기업과 산업이 초래해놓고도 책임지지 않고, (피해를 낳은 위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시민들이 끔찍한 피해를 입고 말았다는 점에서 이 사고들은 ‘같은 사고’라 할 수 있다. 원인은 여러 층위에서 설명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의 지평에서 다양하게 분석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관련된 위험과 안전에 대한 연구 및 적용, 관리가 부재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게 짚어질 수 있을 것이다. 본 보고서에서는 ‘수행되지 않은 과학(Undone Scinece)’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번 비샤카파트남 가스참사를 조명한다. ‘참사’에 있어 부재했던 안전관리와 위험 연구의 ‘수행되지 않음’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반복되어왔던 사고 사례를 참고하여 계속하여 일어나는 독성화학물질사고가 시사하는 지점을 찾는다. 먼저 LG화학 비샤카파트남 가스참사의 배경을 살피고, ‘수행되지 않은 과학’ 개념의 적용과 분석을 수행한 뒤, 마치는 말을 쓴다.
3. LG화학 비샤카파트남 가스참사의 배경
참사의 배경을 살펴보자. 아직 비샤카파트남 가스 누출 사고의 진상은 조사 중이다. 하지만 정황상의 문제와 인도 정부의 소송 내용, 각 언론의 의혹제기로 사고의 맥락을 추론할 수 있다. 3월 25일 인도 주 정부에서 코로나 봉쇄령을 내리며 LG폴리머스 공장은 가동을 멈추었다. 40여일이 지나 공장은 원료 탱크를 재가동했고, 5000t 규모 탱크 두 곳에서 스티렌모노머(SM, Styrene Monomer)가 누출되었다.
주정부는 12일 1만 3000t 분량의 스티렌을 한국으로 반송하라고 명령했다. 당국은 LG폴리머스 경영진을 독성물질 관리 소홀과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인도환경재판소(‘산업 프로젝트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업체들의 환경 규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일종의 특별 법원’)는 LG화학에 80억 원 공탁을 명령했고 오염통제위원회와 환경부의 조사 후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도 법의학 팀(안드라프라데시주 법의학실(APFSL)은 사고 후 이틀간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초동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장 운영을 중단한 기간 동안 스타이렌의 자체 중합을 막는 데 필요한 중합억제제가 스타이렌 저장 탱크에 첨가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화학 반응이 일어나 저장 탱크 내부 온도가 150도까지 과열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APFSL 소속의 한 법의학자는 운영 중단 기간 동안 저장 탱크를 적절하게 관리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공장 측의 관리 소홀과 작업자의 부주의를 지적한 것이다.
인도 환경부는 "LG폴리머스 측이 지난 3월 설비 확장 허가 신청을 했는데 승인이 떨어지기 전에 가동에 들어갔다"며 "이는 환경 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관련하여 LG폴리머스 공장이 당국이 발행한 환경적 허가를 받지 못했다는 보도가 가디언에서 있었다.
가디언에서는 LG폴리머스가 2019년까지 불법으로 작동했음을 주장했다, 공장 설비 확장 과정에서 환경 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고 이는 LG폴리머스가 당국에 신청한 설비 확장 신청 진술서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인도의 환경 관련 인허가 제도는 설치허가(CFE:Consent for Establishment), 운영허가(CFO:Consent for Operation), 환경허가(EC:Environmental Clearance)로 구분”되는데 환경허가는 2006년 가장 늦게 새로 도입되었다. 가디언과 현지 언론의 지적에 LG화학 측 관계자는 “2006년 이전부터 설치허가와 운영허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EC 취득대상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는 공장이 “‘합법적 회색지대 영역(legal gray area)’에서 운영되었기에 누출 전 잠재적 위험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는 추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AP통신은 LG폴리머스가 주 정부 허가(state permits)만 받았을 뿐, 연방 환경 허가(Pederal environmental clearance’없이 운영을 해왔다고 밝혔다. 주 정부 법과 연방 법의 차이 혹은 빈틈을 이용해 운영해왔다는 것이다.
이상의 배경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참사의 원인으로는, 공장 측의 관리 소홀과 작업자의 부주의 뿐만 아니라, 기업이 법의 구멍을 이용해 ‘합법적 회색 지대’에서 환경 규제를 지키지 않고 운영되었을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애당초에 사고가 가져올 위험에 대해서 회사 측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는 사고가 나고 나서야 드러났다. 회사는 미리 대피명령을 알리지도, 경보가 울리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쓰러지고 경찰서의 전화기가 무수히 울리고 나서야 뒤늦게 처리가 되었을 뿐이었다. 이런 사후적인 행보는 대부분의 현대과학기술 재난에 공통된다.
무엇보다 1984년의 보팔 참사에 이어 또다시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관련된 안전제도와 규제의 미비를 확인할 수 있다. “유독물질의 종류만 다를 뿐 1984년 12월 인도 보팔 시의 유니온카바이드 인도 공장에서 벌어졌던 20세기 최악의 화학물질 누출사고 상황을 쏙 빼 닮았다.” 스티렌가스의 독성이 보팔 참사에서의 아이소사이안화메틸가스만큼 강했으면, 21세기 최악의 인명피해를 또다시 갱신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부분에서 관련된 위험과 안전에 대한 연구가 적었고 반영되지 않았으리라고 직관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특히나 새로운 화학물질과 수익성 사업에 대한 연구보다 위험과 안전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했으리라고 유추할 수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는 화학물질 사고는 이 유추의 뒷받침이 된다. 시민단체들과 피해자·유가족 단위만이 그 잠재 위험성과 심각성을 누누이 말해왔다.
사실 이 참사가 왜 빚어졌는지 묻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 맥락에서 원인을 살필 필요가 있다. 개발의 역사 속에서 초국적 기업이 제3세계로 흘러가는 기제와 동학이 있었다. 이를테면 “1993년부터 2004년 사이에 인도의 농부들이 10만 명이나 자살을 택했”는데 이는 ‘구입한 투입물을 뿌리고 상품화된 산출물을 수확하는’ 산업농과 녹색혁명의 결과였다. 유영억 교수의 지적에서도 맥락을 알 수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선진 국가들은 1970년대 이후 환경적으로 유해한 위험산업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유해산업에 대해 엄격한 안전관리시설과 공해방지시설을 요구하게 되었다. 다국적 기업들은 이러한 자국의 규제망을 피해 비교적 규제가 약한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진출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넓은 조감도 아래에 이러한 과학기술 사고를 조명해야 총체적인 분석이 될 수 있다. 1984년 유니언 카바이드 사의 보팔 참사와 2020년 LG화학의 비샤카파트남 참사는 이런 면에서 연결된다.
4. 수행되지 않은 과학(undone science)’
데이비드 헤스는 연구될 필요성이 있음에도 연구되지 않은 채 외면당하는 과학의 영역을 ‘수행되지 않은 과학(undone science)’이라 부르며 “정부, 산업, 사회운동의 제도적 매트릭스 속에서 특정 지식에 대한 체계적 비생산(the systematicnonproduction)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이 개념은 “‘지배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연구개발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사회운동·시민사회가 유용하고 바람직하다고 간주하는 영역의 과학기술적 지식이 창출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재각, 장영배(2009)은 「과학기술 시민참여의 새로운 유형 - 수행되지 않은 과학 하기」에서 “이러한 ‘수행되지 않은 과학’은 환자조직이나 환경단체 등에 의해서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며, 나아가 그들에 의해서 직접 수행되기도 한다며” 시민 사회의 자발적·비제도적 참여가 ‘수행되지 않는 과학’하기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였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수행되지 않은 과학’의 영역은 환경단체와 노동조합 등 시민사회에 의해 주목되고, 정부정책과 연구활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이 개념이 관찰하는 것은 ‘위험’에 대한 연구는 없고 ‘이윤’에 대한 연구만 가득하다는 것이다. 핵, GMO, 나노, 생명공학, 환경오염 등 전 방위에 걸쳐 문제를 초래한 산업 측은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할 수많은 연구와 자료들 – 그리고 이를 재생산할 수 있는 연구소와 연구진, 연구외주까지 - 을 갖추고 있지만, 사회운동이나 NGO단체들은 지식을 구할 수도 찾기도 어렵다.
이는 일종의 악순환이다. 광범위하고 불확실한 위험의 영역에 연구자원과 연구자본이 가지 않고, 확률적으로 사고는 터지고, 사고의 주체는 갖가지 자본을 활용해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와 유가족, 시민단체는 항거하다 열악한 환경에 지치고, 사고는 되풀이되고. 이 ‘수행되지 않는 과학’의 되먹임 과정은 울리히 벡이 말한 것과 같이 ‘위험사회’의 도래에 큰 공을 세운다.
아무래도 이 개념은 과학이 자본에게 먹히고 마는 현실의 잔혹함을 날카롭게 꺼내어 보이는 데는 유용하지만, 대안을 모색하기에는 조금 막막한 지점이 있는 듯하다. 수행되지 않았기에 수행되어야 한다는, 결국 (돈 안 되는) 안전과 생명, 민주, 환경에 관련된 연구는 체계적으로 무시되고, 바뀌지 않는 ‘위험사회’속에서 살아가며 높은 확률로 현대과학기술이 내보이는 위험에 노출되고야 만다는 것이 아닌가. 지역, 시민, 공동체, 비영리단체, 시민단체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얼마나 힘을 다할 수 있나.
연구와 학문이 공공성을 지향하지 않고 ‘매수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수행되지 않은 연구’는 ‘매수되지 않은 연구(Sell science)’와 같은 말로 쓰일 수 있겠다. 이는 과학기술의 상업화 문제이다.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과학기술 상업화는 공적 자금으로 이루어진 연구를 사유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베이돌 법안이라던가 생물 특허의 물꼬를 터준 다이아몬드-차크라베티 판결로 대표된다.
과학기술의 영역에 있어서만 수행되지 않은 연구가 있을 리가 없다. ‘수행되지 않는 연구’는 주류와 비주류가 있는 학문의 모든 층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수행되지 않는 사회과학’이 있음을 잊어서도 안 된다. 사회과학계에서 제3세계의 연구 자료가 상대적으로 희소함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한 예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연구하는 행동 심리학 실험들의 대부분이 미국, 캐나다, 유럽, 이스라엘,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대학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2003년~2007년에 시행된 행동 실험 연구의 96%는 세계 인구의 불과 12%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이는 WEIRD(western, educated, industrial, rich, democratic)표본 편향이라 불리며 학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의 한 면을 나타내고 있다.
법학계도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비샤카파트남 사고에 있어서는 (앞서 보았듯) EC(Ecvirometal clearence)가 주 논점인데, 인도에서 환경허가가 2006년도에 신설되었음을 감안하면 환경법에 관련하여 입법조치·시도가 상당히 미진했음이 드러난다. 법학계라고 연구가 공정히 수행되었을 리가 없다. 상법의 체계화·세분화만큼 환경법이 발달해있었더라면, 사고는 진작에 멈추었을 일이다.
독성화학물질사고의 영역에서 수행되지 않는 과학은 무엇이 있을까. 당장 보팔의 참사는 살충제 기업 유니언 카바이드 사에 의해 벌어졌다. 신경가스와 폭탄을 만들던 업체가 재고를 처리하고 재기를 도모하는데 얼마나 많은 연구와 자본이 투입되었을까. 유니언 카바이드사는 오명만 남기고 역사 속에서 잊혀졌지만 2001년 다우케미칼이 이를 인수했다. 현재 주식시장에 잘만 살아있다. 법인의 전형적인 책임회피인 듯한데, 이들이 신제품 개발과 또다시 새로운 제3세계 착취, 혹은 잠재적 위험 생산 체제 구축에 투입되는 연구비는 얼마나 될까. 어림짐작도 불가능하다. 그 돈의 조금만 안전설비에 투자해도 사고와 산업재해는 크게 줄어들 텐데. 36년간 수행되어야 했을 연구들은 얼마나 많이 남아 있었을까. 다시는 비슷한 재앙이 없도록 취해졌어야 할 조치와 대처는 사실상 수행되지 못했다.
환경 친화적인 대안 기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근본적인 비판으로 들어가면 LG폴리모스 공장은 플라스틱 공장(plastic factory)이다. 플라스틱이(특히 미세플라스틱이) 해양환경에 끼치고 있는 전 방위적 파괴를 고려할 때 대체될 수 있는 무해한 기술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이런 방향의 기술은 한없이 미진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앞으로의 인도 시민사회를 기대한다. 초국적 기업의 유치와 이로 인한 인간·환경파괴에 대해 경각심이 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모멘텀이 활발히 일 것이다. 지금까지 수행되지 못한 연구 – 법학계에서는 생태법(Ecology law), 경제학계에서는 생태경제학, 개발경제학이, 보건안전에서는 불확실한 과학기술의 고위험성이 미치는 영향 – 들이 앞으로 수행되어질 것이다.
5. 나가며
기업들의 모순적인 행보는 참 암담하다. 이들의 손아귀에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이 달려있음을 상기할 때는 참 걱정이 서리다. 얼마 전, 한국수력원자력은 경희대에 선도인재를 양성해달라며 20억을 기부했다. 이날 이들은 '미래 원자력 전문인력 양성 지원 사업 업무협약'을 맺으며 이해관계를 맺었다. 원전의 안전과 해외 수출의 성공적인 추진이 목표라는데, 심히 우려만 될 뿐이다.
삼성 생각도 이어진다.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같은 날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는 강남역 사거리 72미터 철탑 위에서 333일째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2007년 고 황유미씨는 삼성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했고,그로부터 9년 뒤 2016년 8월 31일 삼성 베트남 공장에서 일하던 고 르우티타인떰씨도 입사 4개월 만에 급성 심근염으로 숨졌다. 또 하나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삼성은 두 죽음이 자기들과는 무관하다 했다. 반도체와 클린룸에 대한 안전 개선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와 개선이 있었더라면 또 하나의 죽음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일이다. 꼭 필요한 것들이 되고 있지 않다.
추가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마르크스 에콜로지(Marx’s ecology)의 문제설정이 일맥상통한다고 느껴졌다. 과학기술과 인간을 분리하려는 차원, 의도된 무지, 자본의 방향성, 등 널리 알려진 마르크스의 날카로운 지적 뿐 아니라 ‘물질대사의 균열’ 면에서 ‘수행되지 않은 과학’은 생각할 지점이 많겠다. 인도의 참사들에서는 사람과 자연, 인간과 환경은 그 보호에 있어서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자본은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소외시키며 동시에 착취시키는 동학을 가지고 있으니까. 화학사고의 속출이 지역 생활생태계가 온갖 층위에 걸쳐 무너지고 있는 과정을 말하는 하나의 지표처럼 여겨진다. 앞서 인용한 “1993년부터 2004년 사이에 인도의 농부들이 10만 명이나 자살을 택했다.”는 처참한 통계가 잊혀지지 않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 2020.5.17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