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리씽킹 이코노믹스 발제
1. 소개
생태경제학의 정의와 맥락, 존재론
생태경제학이란 “( ! )”. 생태경제학에는 “고대 그리스 이후 인류에게 중점적이었던 부의 창출에 주어진 한계, 좋은 삶의 의미, 개인적·사회적 웰빙의 달성 방법, 윤리와 행동, 가치에 대한 인식론, 과시적 소비의 심리적 및 사회적 영향이 포함되어 있다(234p).”
생태경제학은 1960-70년대 초반 ‘성장의 한계’에 대한 관심과 뢰겐의 작업에 기초한 경제에서의 에너지와 원재료의 흐름 연구, 외부성의 재개념화 –사회적 비용전가와 현대 경제활동의 필수적 부분으로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초반에 비로소 공식적인 학회와 저널로 제도화된 학술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흥미롭게도 이 과정에는 정통적 환경경제학과의 비판과 불화가 한 요인이라 한다.
“경제를 더 큰 생태계 내에 담겨 있는 걸로 명시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현실을 바라보는 기보는 기본적인 개념(존재론적 전제)이었으며, 이 자명한 현실은 주류 경제학은 물론 모든 이단적 이론에서 거부되거나 무시되었다. 경제는 그것이 담겨 있으며 완전히 의존하고 있는 생물물리학적 시스템(biophysical system)과 마치 독립적인 것처럼 연구되고 있다(235p).”
“다양한 경제적 접근법들은 성장경제(growth economy)를 공통의 유토피아 비전으로 삼으며 원재료와 에너지 처리량(사회적 물질대사)의 지속적인 증가를 성공을 위한 핵심 권고로 채택한다. ‘너희는 네 경제를 성장시킬지니라.’” 이는 “경제시스템이 물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것(닫힌 계)”을 전제하지만 이것은 실제 현실도 아니고 경제 활동과 사회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연구할 때 타당한 전제도 아니다.
주류 생태경제학에 대한 비판, 사회생태경제학
생태경제학은 생물물리학적 현실과 근본적인 연관성을 핵심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경제가 담겨있는 사회와의 연결성은 적절히 다뤄지지 않았다. 이는 환경문제를 경제문제와 결합시킬 때 형식주의적 접근법(formalistic approach) - 수학적 언어로 형식화 하는 과정에서 현실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놓치게 된다- 의 한계를 가진다. “이렇게 되면 “신고전주의경제학의 하위 분야를 구성하는 자원·환경경제학자(resource and environmental economist)와 다를 바가 없다(236p).” 예컨대 많은 생태경제학자들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형식을 유지해왔고, 기업의 권력, 가격을 설정하는 시장, 자본축적, 국가의 역할, 군산복합체와 같은 기존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한 체계적 비판도 결여되어왔다.
“경제를 가격결정의 시장시스템으로 다루면서 경제학을 연역적 수학 모델링으로 통합하는 것은 모든 개체를 객체로 변환시켜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토지 노동 자본은 상품의 형태를 취하면서 경제적 기계의 톱니바퀴가 된다. 이에 따라 경제학은 세계를 인적자본, 사회자본, 문화자본, 자연자본으로 개념화한다. 이러한 자본으로의 전환은 과학적 분석의 전형적인 실패사례인데, 모름지기 과학적 연구라면 실제 연구대상의 성질을 고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237p)” 칼 폴라니의 서술처럼 시장경제가 운영되고 촉진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 –허구 상품화, 이중적 운동- 을 살펴야 한다. 분명한 것은 그간 (주류 생태경제학)의 비판은 자연의 착취에만 초점을 맞출 뿐, 사회적 착취를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실패했다.
그러므로 사회생태경제학(Social Ecological Economics)이 등장한다. 이는 그간 주류 경제학과 이단 경제학 모두가 채택한 경제성장에 대한 유토피아적 견해를 기각하고, “경제가 투입물을 얻고 산출물을 처분하기 위해 다른 계를 필요로 하는 열린 계라는 인식(238p)”을 통해, 위기를 이해한다. 비판적 실재론이 사회생태경제학의 기초 과학철학이 되고, 탈성장 운동의 이론적 배경이 된다.
2. 생태경제학의 내용과 의미
열역학 법칙
1970년대 초반 열역학 법칙이 경제학으로 편입되었다. “열역학 1법칙 : 고립된 시스템에서 질량은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생성되거나 파괴될 수 없다.”은 사실상 닫힌 계인 지구에서 인간이 물질을 ‘변형’시킬 수는 있지만 파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시스템은 원재료 처리량을 기반으로 하기에 사용하는 자원만큼 폐기물을 발생시킨다. 환경시스템은 그 폐기물을 처리하는데, 처리에 실패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며 생태계의 기능적 역량이 저하된다(239p).” 생태학은 이 처리량 규모에 관심을 두며 제한의 필요성(정상(定常)상태 : 일정하여 늘 한결같음와 탈성장)에 중점을 둔다. (하지만 환경으로 되돌아가는 물질의 성질 – 독성 폐기물, 방사선, 유전자조작, 전자파송출, 플라스틱-에도 초점을 두어야 한다.)
열역학 2법칙 : 에너지가 유용한 성질의 것(낮은 엔트로피)에서 덜 유용한 성질의 것(높은 엔트로피)으로 변화하며, 고립계에서 에너지 흩어져 평형에 이르고 모든 에너지의 성질이 같아지는 형태로 나아간다고 진술한다. 이 엔트로피 법칙은 경제시스템에 대한 절대적 제약의 존재를 시사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생물학적 한계가 존재한다.
뢰겐은 고전적 엔트로피에 대한 그의 해석으로부터 저성장이 바람직하다고 미래의 자원을 보존해야한다는 추정을 끌어냈다. “사회적 신진대사(social metabolic) 개념은 엔트로피 관점의 연구를 진전시켰다.” 이는 인간시스템과 자연 사이에 이뤄지는 물질과 에너지 흐름의 생물물리학적 순환관계를 다루는 동시에, 어떤 패턴과 역학관계로 인과적 메커니즘을 구성하는지 고려한다.
사회적 신진대사(물질대사)
이 개념은 마르크스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지만, 1960년 산업생태학 분야애서 발전해 1970년대의 물질수지이론에서 파생되었다. 이 이론은 모든 자원 투입물을 생산과 소비를 거쳐 폐기물과 배출물까지 추적한다. “이 물질수지를 일반균형모형과 결합해 활용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환경적 외부성을 수반하고 있기에 경제의 모든 가격이 효율성 측면에서 볼 때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241p)”
오늘날, 사회적 신진대사율(처리속도)은 전례 없이 증가했으며, 재생 가능한 생물량의 비중은 줄어들었고, 거대한 양의 물질이 완성된 기반시설의 형성된 형태로 저장되었다.
탈동조화
“기술낙관론자들과 현대의 경제시스템을 변함없이 유지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물질과 에너지 투입량은 감소하면서 경제성장은 계속되기를 희망한다.(242p)” 하지만 절대적 탈물질화 또는 탈동조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실제 사례라고 주장돼왔던 몇몇 경우는 생산의 탈지역화 사례로 판명되었다.
“생물물리학적 현실의 관련성을 무시하는 또 다른 유력한 방법으로는 전형적으로 GDP로 측정되는 산출물의 화폐적 가치가 자원사용량과 비교해서 더 증가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242p)” 그러나 생태계 및 사회적 착취의 영향을 고려하면, 이 상대적 탈동조화는 의미가 없으며, GDP는 ‘좋은 재난’으로 수치가 증가한다.
절대적 탈동조화가 실현될 수 없는 이유는 리바운드 효과와 제본스의 역설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기술발전에 따라 증가한 자원사용의 효율성이 동일한 비율의 소비증가로 상쇄되는 것을 일컫는다. 이는 자동차, 전구 등 수많은 사례로 우리 사회에서‘일반적인 모습’이 되었다.
생태적인 것에서 사회적인 것으로
『성장의 한계』에서는 1)인구증가 2)산업화의 가속 3)농업생산의 적정성 4)천연자원의 고갈 5)오염 이라는 다섯 가지 인과적 메커니즘 분석을 결합에 시나리오 분석의 형태로 제시되었다. 시나리오의 결론은 붕괴로 이어지는데, 여기서는 생물물리적 한계에 사회적 한계-전쟁, 시민사회 붕괴, 불평등-가 예상된다고 간략히 언급하기도 했다.
“생태경제학 안에서 성장의 한계는 제도주의적, 진화론적, 마르크스주의적, 사회학적, 생태페미니즘적, 과학기술연구 등 다양한 관점의 서로 다른 사회경제학자들에 의해 강조되었다(243p).” 이는 소비자주권, 기업자본주의, 아메리칸 드림 등 (생물물리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성장의 사회적 한계(social limits to growth)가 있음을 깨닫게 했다.
생태적 마르크스주의는 다음으로 표현된다. 1)인간노동의 물질대사 특성은 산업시대 이후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 균열을 낳고 있으며, 그로 인해 지구의 재생산 조건이 유지되지 못하고 있다. 2)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상품의 이중성에서 후자가 지배적으로 되고 있다. 이윤추구의 확산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생산의 자연조건 사이에 모순을 조성한다. 3)자본주의의 생태적 모순은 자본주의 노동과정의 이중적 성격이나, 생산력 및 생산관계와 생산조건 사이의 적대적 관계에 기초한다.
생태페미니즘은 노동가치론이 재생산 차원을 무시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생산관계가 가사영역에 젠더착취로 생성되는 노동잉여에 의존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이처럼 “개인의 배타적 강조와 권력관계를 소홀히 다룬 결과 경제적 분석에서 현대 기업이 누락되는 동시에 은행과 금융부분의 등장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246p).” 방법론적 개인주의는 빈곤하다. 사회를 창발적 성질을 가진 것으로 이해해야 하며, ‘경제적 제도와 사회적 제도 사이 상호작용의 역동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폴라니가 말했듯이 현대 시장경제는 특정한 유형과 조합으로 제도가 배치된 것이라 설명할 수 있는데, 그것은 시장사회를 필요로 한다.”
3. 분야별 구분
생태학과 경제학의 모델을 결합하려는 차원에서 생태경제학이 시작되었지만, 생태적·사회경제적 상호작용에 대한 뚜렷한 방법론과 접근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애초에 갈등이 내포돼 있었다. 학제 간 연구 분야를 발전시키는 것이 모두의 의제가 아니었고, “초학제적 연구와 방법론적 다원주의가 많은 사람들에게서 생태경제학의 핵심 아이디어로 받아들여졌지만, 그 결과 비판적인 이론적 성찰이 부족해졌(247p)”기 때문이다.
주류 경제학의 아이디어와 연계되고 경제적 형식주의에 통합되며 생태경제학은 심대한 타격을 입는다. “극단적으로 생태경제학을 정통적 환경경제학의 하위 분야로 축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주류 경제학자들이 이용하기도 했었다(247p).” 생태경제학은 이론적·이데올로기적 입장에서 크게 신자원경제학자, 신환경실용주의자, 사회생태경제학자 등 3개의 캠프로 나눠진다.
신자원경제학자
“신자원경제학자(New Resource Economist)들은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와, 주류 경제학의 가격이론, 사실-가치의 이분법에 근거한 공리주의적 접근법, ‘제대로 가격 알기’가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는 믿음에 뿌리박고 있다.” 이들은 효율적이고 최적화된 자원사용의 틀 안에서 생태계 기능을 경제모델에 포함시키려 하고, 수학적 형식주의 방법론을 사용해 추상적인 모델을 만들고, 이로써 현실을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해 정책적인 조언을 한다(247p).
신환경실용주의자
신환경실용주의자(New Enviromental Pragmist)는 환경운동 전체에 확산되어온 사고방식을 대표하는데, 현재의 정치상황과 경제제도(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제도)하에서 효과적인 방법과 개념을 설계한다. “이런 실용주의자들은 환경적 메시지를 정치·비즈니스·금융 엘리트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시장성이 있는 형태로 판매하기를 원해 자연을 상품화하고 수량화하며 평가하는 방법론과 이데올로기를 구매(248p)”하고 생태계서비스평가, 자연자본, 녹색회계, 탄소거래, 생물다양성 상쇄 및 은행과 같은 개념에서 드러난다. 이론적 엄격성이 부족하며, 도구적 차원의 달성(해결책)이 방법이 우선순위를 정한다. 환경주의는 실용적인 문제해결 활동일 뿐, 정치경제의 지배적 구조와 그것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것과 무관하다.
사회생태경제학
사회생태경제학은 소비자주권에서 기업구조, 정치권력까지 기존의 경제적 정통주의가 갖는 근본결함을 다룬다. 안정과 균형이 본래부터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 관점은 에코시스템, 공진화발전, 복잡성 등에 기반한 작업을 포함해 다양한 연구에서 발견되는 동태적, 창발성, 시스템 변화에 대한 이해 위에서 세워졌다. 학제적인 접근방식으로 사회심리학·사회학·응용철학·지리학·정치학·자연과학과 경제학을 연결시키고, 진보적인 사회적 환경운동의 발전을 돕는다.
“인식론적 관점에서 사회생태경제학의 근본적인 측면은 실재론과 약한 구성주의를 종합하면서, 다원주의적 절충주의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 접근법은 자연환경을 물질적 성격으로 환원하는 과학주의적 방법과 강한 구성주의(사회생활에 미치는 생물물리학적 제약을 부인)를 거부한다(249p).” 비판적 실재론과 양립하는 과학철학을 바탕으로 물질적 시스템과 시스템 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한다. 비판적 실재론은 층위 간의 차이점과 층위로의 환원불가능성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생물학이 물리학에 뿌리를 박고 있고, 사회적인 것은 생물학적인 것에 뿌리박고 있으며, 공식적 경제는 사회적인 것에 뿌리박고 있다. 구조적 메커니즘의 수준에서는 일방향의 위계구조가 존재한다. 이 유형의 착근성(embeddedness, 묻어듦)은 생태경제학이 전하고자 노력해온 핵심 메시지 중 하나로, 특히 경제는 자연환경에 뿌리박혀 있으며 열역학법칙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말해준다(250p).”
“경제학을 포함하는 사회과학이 자연과학과 실질적으로 구별될 수 있는 건, (흄의 주장과 반대로) 사회과학에서는 사실과 가치가 좀처럼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250p)” 사회현상에는 구조적 요인과 지배적 사고방식이 깃들어 있어 사회과학 연구에서는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을 수반한다. “자원을 착취하며 토착주민을 추방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과 정부가 ‘자유시장’의 해방적 성격과 물질성장의 이점에 대해 온갖 미사여구를 구사하(251p)”는 것처럼 그릇된 믿음이 조직, 권력, 관련 제도를 보호하기 위해 전파되곤 한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단지 비판에 그치지 않고 그 제도적 기반을 약화시켜야 한다.” 사회생태경제학이 급진적인 이유다. 기존의 경제학은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자문을 제공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제도적 구조를 뒷받침하고 있을 뿐이다.
4. 향후 나아갈 방향
“사회생태경제학은 자신이 주장한 정책의 결과에 관심을 쏟으며, 중립성을 지키기보다는 윤리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가치는 논쟁의 여지가 많고 서로 비교될 수 없다는 사실을 수용한다(251p).” 또한 분배문제(불평등)을 일차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생태적으로 기반을 둔 욕구에 관심을 가진다. 분배에 대한 우려와 성장주의 비판을 바탕삼아 탈성장 비판과 더불어 성장 후 사회 모습을 구상하고 있다.
“생태경제학에 입각한 탈성장 비판론은 성장이 생태학적으로 지속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부당하고 실현불가능하며, 인간의 행복을 더 이상 향상시켜주지 못한다고 주장해왔다(252p)” “탈성장은 인간생활을 조직하는 중심원리로서의 시장의 역할과, 산업국가에서의 생산 및 소비가 민주적으로 재분배되면서 축소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252p).” 이런 변화는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정의와 웰빙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탈성장은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전환을 포함한다고 주장되어 왔다.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지배방식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간의 위기에 미미한 시스템 조정으로 이어져온 정책을 비판한다. 전환의 개념은 새로운 의미와 사회적 실천을 적극적으로 창출할 필요성을 내포하고, 이를 위해 대안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전환은 다양한 규모의 거버넌스와 지역·국가·국제사회에 이르는 시스템 단계별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생태경제학은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촉구하는데, 공간적으로 나뉘어 있는 제도와 거버넌스가 지역사회를 넘어서 조정될 방법을 상상해야 한다. 자본축적 체제 없이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조건들을 연구해야한다. “신자유주의 정치경제의 제도를 퍼트리고 있는 전지구적 과정은 (탄소배출권과 같은) 허구적 상품의 창조와 군사개입 및 안보 조치의 강화와 함께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쌓아온 경제시스템은 불평등이 창출·강화되며, 소수에 의해 자원이 방대한 양으로 사용되고, 환경비용이 무고하고 무력한 사람에게 전가되는 체제다.(253p)”
효율성은 우리가 비교·평가해야 할 많은 목표들 중 하나다. “‘그들의’ 공학적 사고방식은 한때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경제에 대한 윤리적 접근방식을 말살시켜버렸다(253p).”
“오늘날 경제는 효율성에 따라 작동하지 않고, 대량소비주의, 과시적 소비, 고의적 노후화, 패션사회, 경쟁, 환경훼손, 파괴 또는 자원전쟁에서 효율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효율성이라는 개념은 자원을 윤리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무엇이 행위를 의미 있게 만드는지에 대한 판단이 전혀 없기 때문에 거의 완전히 공허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253p).”
5. 결론
생태경제학은 생물학, 생채학, 열역학, 복지, 소비, 미래세대, 환경적 가치와 윤리, 불학실성과 무지, 과학정책, 참여와 심의를 포괄한다. 생태경제학의 기본적 존재론은 현실의 계층화를 강조한다. 모든 경제 시스템이 자연계에 담겨져 들어가 있고, 이는 어떤 경제시스템이든 물질적이고 에너지에 기반한 성장에는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한계가 설정되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경제활동의 규모와 유형 모두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사회를 시장사회로 바꾸어놓아야 할 시장경제의 필요는 지속적인 파장을 낳고 있(254p).”지만, 또 다른 경제와 사회는 실현가능하고 실행가능하다.
Ⅱ. 환경경제학과 생태경제학
이 두 학자의 접근법 차이는 환경경제학과 생태경제학의 논쟁을 연상하게 한다. 노드하우스는 환경경제학자들의 연구를 대거 인용하고 함께하고 있으며 요한 록스트륌이 생태경제학자는 아니지만, 그의 연구팀에는 생태경제학자들이 대거 있다.
환경경제학과 생태경제학은 어떻게 다른가? 가장 많이 질문이자 나도 수차례 물었던 물음이다. 도통 이렇게 말하고 한다. 4대강을 들어 생각해보자. 4대강 참사에 대해서 환경경제학의 접근법으로는 “강과 인근 생태계의 가치가 왜 이것밖에 안 되냐. 제대로 산정해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생태경제학의 접근법으로는 “보를 지어서 생태계를 살리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편협한 경제학의 토대에서 빚어진 ‘개발’에 맞선 모든 시도들에서 보이는 두 논리의 흐름이다. 새만금에서도, 밀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외부비용인 환경을 내부화하라는 환경경제학의 주장과, 경제가 생태의 일부라는 것을 심히 간과해 무지한/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생태경제학의 주장은 녹색진영에서 모두 중요하다.
환경경제학은 응용 분야의 일환으로 환경을 보는 시각이고, 생태경제학은 대안 학문을 만들려는 시도라 할 수 있겠다. 양자의 자연관은 많은 부분 차이가 난다. 환경경제학의 ‘환경’과 생태경제학의 ‘생태’는 사뭇 다르다. 환경경제학자들을 자원경제학자라고 부르기도 하니, ‘자원’과 ‘생태’의 차이이기도 하다. 경제를 닫힌 계로 보드냐 열린 계(System)로 보느냐의 차이도 있다.
생태경제학은 뿌리가 다르다. 전자를 내부의 확문이라면 후자를 외부의 학문이라 말할 수 있다. 생태경제학에는 열역학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생태경제학의 존재론적 전제는 “경제를 더 큰 생태계 내에 담겨있는 것으로 명시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경제는 그것이 담겨 있으며 완전히 의존하고 있는 생물물리학적 시스템(biophysical system)과 마치 독립적인 것처럼 연구되고 있”지만 이는 시대착오적일 뿐이다.
경제학 계보 사에서 두 학문을 바라보자. 지금 주류의 위치를 차지한 신고전파의 ‘일반 균형’을 만든 것은 레온 왈라스다. ‘일반 균형(general equilibrium)’은 뉴턴의 동적균형(dynamic equilibrium) 개념을 경제학에 가져온 것으로 보면 된다. 그래서 “세상은 시장에 의해서 어느 점인지는 잘 모르지만 균형을 지향해서 가고 있고, 이 균형이 환경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하는 게 환경경제학의 핵심”이다. 모든 시장은 일반 균형을 이루게 되는데, 환경은 시장이 없어서 균형을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시장을 만들어주면 문제가 해결되고 시장가치추산이 환경경제학에서 중요해진다. “피구(Sir Pigou)는 조세를 통해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코즈(Coase)라는 사람은 배출권거래 같이 소유권을 부여함에 의해서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금이냐 소유권이냐는 논쟁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환경경제학의 과학적 방법론은 고전물리학에 기반하고 생태경제학은 (현대)생물학(시스템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 고전 물리학 위에 경제학을 세운 것이 신고전학파라고 한다면, 생물학 위에 세운 경제학이 생태경제학이다. 생태계(eco-system), 시스템이론의 핵심은 복잡성, 계층성으로 생태경제학에서는 진화 중에서 시스템의 진화와 변화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환경경제학에는 진화라는 개념이 없고 균형과 불균형만 있을 뿐이다. 환경경제학은 시장 구조는 주어진 것으로 보고, 그 안에서 어떻게 균형 가격을 찾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 프로그램으로 정착이 된다.
환경경제학에서 분석단위는 달러지만 생태경제학에서는 물질흐름이다. 1970년대 초반 열역학 법칙이 경제학으로 편입되며 인간이 물질을 ‘변형’시킬 수는 있지만 파괴할 수는 없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생물학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자명한 전제가 주어졌다. 맑스와 물질수지 이론의 사회적 물질대사를 함께 분석단위로 둔다.
생태경제학은 탈성장이론으로 이어진다. GDP와 탈동조화를 확고히 비판한다.
“기술낙관론자들과 현대의 경제시스템을 변함없이 유지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물질과 에너지 투입량은 감소하면서 경제성장은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절대적 탈물질화 또는 탈동조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실제 사례라고 주장돼왔던 몇몇 경우는 생산의 탈지역화 사례로 판명되었다.(242p)”
“탈성장은 인간생활을 조직하는 중심원리로서의 시장의 역할과, 산업국가에서의 생산 및 소비가 민주적으로 재분배되면서 축소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정의와 윌빙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생태경제학은 대안(이단) 이론의 자리를 가진다. 환경경제학과 생태경제학의 갈등이 있었다. “극단적으로 생태경제학을 정통적 환경경제학의 하위 분야로 축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주류 경제학자들이 이용하기도 했었다(247p).” 생태경제학자들은 “‘그들의’ 공학적 사고 방식은 한때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경제에 대한 윤리적 접근방식을 말살시켜버렸다(253p)”고 비판하며 환경경제학의 가정과 방법들을 모조리 부순다. “오늘날 경제는 효율성에 따라 작동하지 않고, 대량소비주의, 과시적 소비, 고의적 노후화, 패션사회, 경쟁, 환경훼손, 파괴 또는 자원전쟁에서 효율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편, 생태경제학에 내부에서도 비판점도 존재한다.
“생태경제학은 생물물리학적 현실과 근본적인 연관성을 핵심으로 삼아왔지만 경제가 담겨있는 사회와의 연결성은 적절히 다뤄지지 않았다. 이는 환경문제를 경제문제와 결합시킬 때 형식주의적 접근법(formalistic approach) - 수학적 언어로 형식화 하는 과정에서 현실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놓치게 된다- 의 한계를 가진다. 이렇게 되면 “신고전주의경제학의 하위 분야를 구성하는 자원·환경경제학자(resource and environmental economist)와 다를 바가 없다. 예컨대 많은 생태경제학자들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형식을 유지해왔고, 기업의 권력, 가격을 설정하는 시장, 자본축적, 국가의 역할, 군산복합체와 같은 기존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한 체계적 비판도 결여돼왔다.(236p)
칼 폴라니의 접근에 기반해 ‘사회’를 다루지 않는 생태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의 근본적인 대안 이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생태와 경제의 관계만을 주목하고 기존의 형식주의적 접근(형식화, 모델화)만으로는 ‘개체’를 ‘객체’로 보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고 총체성을 잃는다. 그런 면에서 제대로 된 생태 경제학은 ‘사회생태경제학’이어야 한다.
* 2020.5.22 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