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경제학과 생태경제학, 기후위기를 막는 두 가지 접근법
목차
0. 들어가며 – 기후위기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1.『기후카지노』
2.『지구 한계의 경계에서』
3. 양자의 비교 - 노드하우스와 록스트륌
4. 환경경제학과 생태경제학
5. 나가며
0. 들어가며 – 기후위기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 시간은 참 오묘하다. 남은 탄소예산은 오늘자로 7년 7개월 10일, 지구의 온도상승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해서 남은 시간이다. 물론 1.5도는 단지 IPCC가 파국을 멈출 수 있는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일 뿐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로 지옥은 빚어졌다. 더군다나 영구 동토층, 빙하 등 곳곳에서 지적되는 각종 티핑 포인트를 생각하면 이 7년이란 시간도 턱없이 나태한 것일 수 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데, 아 지구가 변하는 것이고 마는 것이었나. 그것도 돌이킬 수 없는 임계지점으로 말이다. 록스트륌은 우리가 미증유의 위기를 자각한 첫 세대이자 새로운 미래를 향해 떠날 특권을 가진 첫 세대라 말했다. 용기나는 말이지만, 아무래도 이게 특권인지는 모르겠다. 풍요를 바라고 달음질치다가 미래를 상실해버린 인류, “이 아이러니를 난, 우리 시대의 한 표정으로 고정시키고 싶었을 뿐.”
우리의 물음은 명료하다. 기후위기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아무래도 확실한 것은 기후변화의 문제가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녹색’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붙어 있는 모든 생명의 문제이고, 그리하여 누구든 어떤 접근법이든 막론하고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위기와 절망 앞에서는 하나의 단일한 길과 대안이 있을 수 없기에 여기서 마법의 단어 투 트랙이 등장한다.
“기후 아마겟돈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여러 의견이 제출될 수 있다. 먼저 시장이 초래한 현 상황에 대해서 시장적 논리로 무장하여 대응하고 적응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정상상태의 경제에 대한 점진적인 수정과 제도적인 대응을 필요로 한다. 반면 생태적 한계를 초과한 정상상태의 경제의 현실 자체의 판과 구도를 대전환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기후카지노’ 발제를 맡으며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를 같이 읽어보자고 제안한 것에는 이런 맥락이 있었다. 기후·생태위기를 막는 방도에는 먼저 노드하우스처럼 적절한 비용으로 위해를 줄이는 지점(목표)을 찾고 대안으로 ‘적절한 가격 매기기 - 탄소세, 배출총량거래제’를 제시할 수 있다. 반면 록스트륌처럼 지구 한계를 넘지 않고 안정된 번영을 이룰 수는 선을 과학적으로 제시한 후, 총체적인 대안을 내놓으며 모색할 수도 있다.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이 두 접근법의 차이는 ‘경제학’과 자연과학의 차이이자, 고전과학과 현대과학의 방법론 차이이자 환경경제학과 생태경제학의 차이이기도 하다. 어떤 접근법이냐에 따라 드러나는 시선과 내용, 대안의 차이는 사뭇 흥미로울 뿐 아니라 위기를 헤쳐나갈 지혜를 준다.
노드하우스의 접근법은 시시각각 닥쳐오는 심대한 위협 앞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을 감안할 때 유효해진다. 특히나 현실의 동학이 자본주의에 심히 젖어있음을 고려하면, 대안 이론으로서 ‘상’을 세우는 것보다 수정 이론으로서 현실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전략이 실효적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구 시대를 고쳐 쓰는 게 아니라 새 시대를 여는 것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옛말에 돌아갈수록 빠르다는 말도 있지 않나. 최근의 기후 판에서는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1.5도라는 마지노선을 지키는 탄소배출‘량’에 시야가 쏠리고 있지만, 이 경우, 우리는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탄소자본주의가 어떤 역사적 맥락을 거쳐 인간과 자연을 소외시켰는지를 잊게 된다. 전 지구적 개발의 역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잔인하게 맷돌을 굴려왔고 그 결과는 지금 보는 것과 같다. 기후정의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지점이다. 애당초에 온갖 모순과 거짓된 풍요로 얽히고 꼬여 굴러온 실타래를 풀어내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는 것은 안 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며 저렴한 정책·접근·대안”을 찾는 것은 조급함에 섣부른 우를 범하는 것일 수도 있다. 록스트롬의 접근법이 가지는 장점은 여기에 있다. 편협한 토대 위에 자리한 ‘경제학’의 존재론과 방법론을 저물고 진정 과학적인, 그리고 총체적인 이론과 대안을 내보이는 것이다.
1. 기후카지노
(1) 월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
노드하우스는 기후변화 경제학의 최고 권위자이자 저술가로, ‘경제학과 에너지사용 기후변화 사이의 상호작용 통합평가모델’인 DICE((Dynamic Integrated Climate Economy) 모델을 구축했다. 이 모델은 지구온난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지불해야 할 비용과 편익)에 대한 통합 분석 틀을 만들어낸 것으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과학적 사실들과 경제 성장의 기존 이론을 포괄하는 모델”을 최초로 구축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그는 40년 전부터 지구온난화를 연구했는데, 처음에는 기술 혁신과 성장을 연구하다가 환경과 자원의 문제가 기술혁신 못지않게 중요함을 깨닫고 기후변화를 연구했다고 한다. 그는 ‘녹색(?)’혹은 비주류 인사는 아니다. 폴 새뮤얼슨과 같이 주류 경제학의 베스트셀러 교과서 ‘경제학(Economics)’를 썼을 했을 정도로 신고전파 미시 이론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으며 대통령경제자문위원(지미카터, 1977~1979), 미국경제학회 회장도 역임했다.
그의 ‘기후변화의 경제학’은 외부효과로 대표되는 기존 경제학의 분석틀로 기후변화를 분석한 것이다. 그의 연구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정책 –탄소세, 배출권거래제- 의 결정적인 이론적 배경을 마련했으며 IPCC의 분명한 목표를 제안하는 ‘통합모델링’의 기틀을 마련했다.
2018년 폴 로머와 함께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는데, 노벨위원회가 제시한 수상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의 연구는 기후변화를 장기적인 거시경제 분석틀에 도입하여 새로운 경제성장 모델을 수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노드하우스 교수의 DICE 모델은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문제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탄소세를 전 세계에 동일하게 부과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2)『기후카지노』요약
『기후카지노』(2013)은 “지구온난화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부제로 노드하우스의 40년 가까이의 연구를 간명하게 담고 있는 책이다. 1부에서는 지구온난화의 과학적 사실, 2부에서는 기후변화의 영향, 제3부는 기후변화를 늦추는 전략들의 경제적 측면, 4부는 기후변화정책의 핵심적인 문제들, 5부에서는 기후정치에 대해서 말한다.
1부) 지구온난화의 과학
책은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자연과학 연구를 토대로 경고하며 시작한다. 그의 방법론은 통합평가 모델에 기초해 있는데 이는 “최상의 정교함은 단순함(45p)”이라는 다빈치의 말처럼 경제성장, 배출량, 기후변화, 경제에 미치는 영향, 기후정책의 예상효과를 하나로 포괄하는 모델이다. 이 DICE모델은 “정책결정자들이 온실효과를 늦추는 정책을 얼마나 펼치느냐에 따라 비용과 편익이 얼마나 변하는지를” 계산한다.
‘외부효과(externality)’는 ‘보상이나 비용 없이 제3자에게 미치는 효과’로 (기존)경제학의 분석에서 제외되었던 기후변화를 분석틀 안에 포함시키는 위해 꼭 필요한 개념이다.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외부효과라는 특성을 갖는다. “규제되지 않은 시장은 외부효과를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기에(18p)” 내부화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는 “어떤 정책이든 효과가 있으려면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배출에 시장가격을 매겨야 하고, 그렇게되면 외부효과의 저가현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18p)”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은 온도 표적을 설정하는데 있어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기후변화의 피해는 미래에 온다. 지금 비용을 들여가도 편익은 나중(50년 뒤)에 온다. 미래에 얻을 편익과 지금 들일 비용이 균형을 이루는 점을 찾아야 실행가능성 측면에서 도달할 감축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이것이 합리적이다.
2부) 기후변화의 영향
기후변화가 인간계와 자연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때, 주요한 구분은 시스템이 관리될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관리된 시스템은 “사회가 자원의 효율적이고 지속적인 사용을 위해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스템(107p)”으로 농업과 의료가 예로 들어진다. 반대로 관리될 수 없는 시스템은 “인간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108p)” 허리케인, 해수면상승, 해양산성화가 있다. 관리될 수 있고 없고의 여부에 따라 분석 자체가 달라진다.
관리된 시스템은 위험을 대비할 수 있다. 더 성장하고 소득수준이 올라갈 미래에는 그 위험을 더 많이 상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테면 기후변화가 농업에 미칠 영향을 논하는 장에서 그는 탄소시비(식물이 탄소 흡수 및 생산량 증가), 이주와 관개 시스템, 국제무역의 역할, 경제와 노동력에서 농업 비중의 축소를 말하며 이들이 적응과 완화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마찬가지로 건강에 있어서도 “현재의 경제조건만을 근거로 예측을 할 것이 아니라 미래 경제라는 맥락에서 영향을 평가”할 때, 더 많은 의료 재화·서비스를 미래에 누려서 총 건강위해는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관리되지 않는 시스템에서는 기후변화의 위해는 큰 파급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위해를 줄이는 적응·완화책은 있다. 해수면 상승의 위험에는 이주로, 허리케인에는 자본을 안전 장소로 천천히 대비시키면 된다. 야생동물과 종의 감소를 논하면서는, 생물종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분석의 까다로운 특성과 기후변화의 여러 영향이 시장 범위 밖에 있음을 인정하나 그럼에도 시장(근사)가치와 외부효과 가치에 의해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명을 돈으로 저울질한다는 비판에는 “정말로 비도덕적인 행위는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을 계산할 때, 이들 종의 가치를 누락하는 것이다(185p)”라고 답한다. 수치화하지 않으면 우리의 선택과 대응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피해들은 어떻게 합산해야 하는가. 그는 시장경제 영역은 갈수록 기후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시장 외의 영역에서는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그가 내리는 결론은 이렇다. “각국의 경제활동은 농업과 토지기반활동에서 산업과 서비스로 이동할 것이고, 그에 따라 시장경제의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은 갈수록 낮아질 것이다(203p).” 또한 “경제의 많은 부분이 기후변화에 상대적으로 안전(209p)”하고 “시장피해액은 특히 고소득국가에서 상대적으로 크지 않으며”, “오늘날 빈곤한 국가들의 취약성은 21세기 말에 이르면 상당히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212p).” 하지만 정량화되지 않은 영향은 분명 존재하고 우려스럽다,
“기후카지노에서는 기후변화의 전체적인 영향이 개별 영향의 합보다 크다(208p).”
3부) 기후변화의 위협을 다루는 방법론
기후변화의 위협을 다룰 수 있는 방법들을 살펴본다. 그가 검토하고 있는 접근법은 총 세 가지다. 첫 번째 접근법은 적응으로, 기후변화가 일어난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지구공학으로 냉각요인으로 온난화를 상쇄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완화(예방)로 탄소 배출량과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 감축 조치를 말한다.
적응과 지구공학의 유혹은 저렴하고 효과적으로 보이나 상당수의 위험을 해소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기후변화와 함께 살아가자는 적응은 완화(예방)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인 조치이다. 지구공학은 태양복사관리나 탄소포집기술(CCS)을 이르는데, 그가 비유하는 구조요법(위험성이 잠재된 치료법)과 소방차와 같이 사후적인 대책이다. 노드하우스는 적응도 지구공학도 지구온난화라는 위협의 만족스런 해법이 되지 못한다며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후변화를 늦추는 방법으로는 네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경제성장을 둔화시켜 생활수준을 낮추는 방법, 둘째 탄소집약적인 활동을 억제하는 생활양식의 변화, 셋째 저탄소 혹은 무탄소 기술로의 에너지 전환. 넷째, 화석연료 연소 후 이산화탄소 제거이다.
경제성장을 둔화시키는 건 ‘고통스럽고’ 현실가능성이 없기에 제외한다. 적용가능하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비용측정을 시작한다. 여기서 ‘할인’이 기후변화 경제학의 핵심 논쟁 지점으로 떠오른다. 할인의 필요성은 기후변화로 인한 위해의 감축이란 편익이 먼 미래에 발생하기 때문에 생긴다. 미래의 가격은 얼마인가? 금융처럼 미래가치를 현재가치로 환산하는 것으로 답할 수 있다. 현재의 비용·편익을 미래의 비용·편익과 비교하는 것이다. 할인율을 책정하는 데는 규범적 관점과 기술적 접근(자본의 실직이윤율로 계산) 두 가지가 있는데, 전자를 택한 『스턴보고서』의 니콜라스 스턴은 할인율로 1.4%를, 후자를 택한 노드하우스는 3%를 잡았다. 할인율 논쟁이 중요한 까닭은 할인율에 따라 택할 지구온도상승 제한 지점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미래세대의 편익이 중요해 할인율이 낮다면 온도 상승을 최저로 해야겠지만할인율이 높아 현재의 비용이 중요하다면 온도 상승을 조금은 해도 된다는 식이다.
“거금을 들여 가능한 최저수준으로 온난화를 제한하느니, 차라리 밀 수확량이나 해수면상승의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려 할 수도 있다. 이 돈을 종자개량이나 물 관리, 농업하부시설 같은 데 좀더 생산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297p).”
문제의 실질적 해결은 중요하고, 모호하면 정책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노드하우스 ‘지금의’ 비용과 ‘할인된’ 편익이 만나는 균형지점을 찾는다.
4부)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한 정책과 제도
“무엇이 최고의 목표인지는 그것을 달성하는 비용에 의해 판가름이 날 것이다(289p).” 기후변화의 자연과학을 토대로 사회과학은 사회가 배출감축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정책도구를 설계해야 한다. 기후정책목표를 합리적으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비용과 편익을 고려해 균형을 찾아야 하고 이 지점에서 경제학이 등장한다. 감축비용과 기후위해를 한 그래프에 올려놓아, 순 영향을 검토하는 통합모델을 통해 (감축비용이 최소가 되고, 기후편익이 최대가 되는 균형지점인) 2.3도의 목표치를 총소득의 2.9%를 들여 이뤄낼 수 있다는 식의 결론을 낼 수 있다.
노드하우스는 시장메커니즘 도입이 최선이라 말하며 탄소가격을 설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사람들이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낮추는 방향으로 행동을 바꾸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320p).”
그는 탄소에 가격을 매기는 것은 첫째, 소비자에게 저탄소 신호를 줄 것이고, 둘째, 기업들이 저탄소 기술로 이전하게 할 것이며, 셋째, 혁신가들에게 시장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현행 기술을 대체하는 결과를 낼 것이라 주장한다. 관련 결정과 정보의 양을 단순화시킨다는 게 “무엇보다 탄소가격의 아름다운 점 중 하나다(327p)”
탄소의 올바른 가격 설정은 ‘탄소의 사회적 비용’으로 위해를 추정하는 것이거나, 통합모델을 사용해 환경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가격을 추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탄소세와 총량제한거래제를 대안으로 도출한다. 탄소세는 탄소배출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고, 세수로 국가재정에 도움이 된다. 총량제한거래제는 (환경경제학자들의 해법으로) 배출량에 한도를 설정하면 그 배출권이 시장을 형성해 거래된다. 노드하우스는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 외부효과이기에 이 탄소가격이 국제정책이어야 함을 중시하고, 무임승차를 막는 방법들로 수출규제와 탄소관세부과를 내보인다. 그러면서 보완책으로서 기후규제와 최후책으로서 신기술을 말한다.
5부) 기후정치
끝으로 기후변화를 막는 효과적인 정책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언급한다.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의 논지와 정치적 맹점을 짚고, 국가주의의 딜레마와 근시안성의 세대 딜레마를 말한다. 이는 국가 간 무임승차와 세대 간 무임승차의 문제로 이어지기에 규제가 필요한 지점이다.
“인간은 지구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돌이킬 수도 있다. 게다가 사람들이 지구온난화라는 현실적인 위협을 인정하고 탄소배출에 비용을 지우는 경제적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며 저탄소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면, 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달성할 수 있는 일이다(466p).”
(3) 논평
그의 작업은 기후변화의 대차대조표를 만드는 것과 같다. 노드하우스는 경제성장이 기후와 지구시스템에 위험한 변화를 가하고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그는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경제성장만을 꼽는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이 가져올 것들은 미래의 위기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된다. “200년간 성장세가 지속되고 나면 이 세상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풍요로운 장소가 되어 있을 것이다(119p).” 그는 탈탄소화를 말하고, 경제가 성장할수록 탄소집약도도 줄어듦을 이야기한다.
이 통합 모델은 여러 한계를 지닌다. 먼저 낡았다. 2018년의 IPCC보고서를 상기할 때 그의 자료들은 낡은 구석이 있다. 특히 호주보고서의 펫-테일 접근법 등지와 비교할 때 그의 모델링과 데이터, 할인율 등은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조천호 박사가 말한 것처럼, 그의 모델이 화폐가치로 추산되는 손실(비용)은 고평가하면서, 잡히지 않는 손실은 그렇지 않는다는 한계를 지닌다. 즉 뉴욕이 아마존보다 비싸게 잡힌다.
그가 저개발국이라 쓰는 제3세계를 보는 관점은 심히 오리엔탈리즘에 젖어 있다. 미래에 대한 전망과 예측이 이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일반적인(직관적인) 가정과 추측으로 미래의 기술수준, 경제성장, 건강, 농업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서구의 백인 경제학자의 한계를 보인다. 가령 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기온이 올라가면 소득에 따라 에어컨 같은 수단을 가지고 자신의 건축물과 생활양식을 거기에 맞게 적응시키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142p).”고 썼다. 폭염에 맞서 에어컨을 틀 수 있는 사람은 인구의 몇 퍼센트나 될까. 동남아 NGO 활동가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거기는 에어컨이 마을에 한 대 있거나 없거나 그래요. 폭염 오면 그냥 맞고, 기상재난이 오면 그냥 다 아작난다고요.
그뿐 아니라 개도국이 선진국을 따라가는 저소득 국가가 고소득 국가의 소득수준을 따라잡아야 하는 직선적 진보관은 놓지 못한다. 소득이 만능인가? 경제성장만능주의는 계속된다. “경제발전의 규칙 중 하나는, 사회는 갈수록 사람들을 모든 종류의 부정적인 충격에서 격리시킨다는 것이다(p).”
이 분석의 한계들은 그가 인정하듯이 미국과 서유럽 등 자료가 풍부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시장영역 도는 시장근접영역에 대해서 제3세계의 자료는 거의 없다. 시장 없는 존재하는 살림살이의 경제를 그는 다루지 않는다. 계급분석이 없고, 기후정의가 없는 것도 분명하다.
할인율 논쟁에서 미래의 가격을 매기는 데는 그렇게 열심이지만 이어지는 생각은 ‘빚’이다. 선배 세대에게 우리가 물려받은 것은 대차대조표의 왼쪽에 자산으로 잡힐 뿐인가? 미래 세대를 위해 선대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물려받은 유산은 대차대조표의 자산에 집어넣어 버리고, 마땅한 책임에 해당하는 영역을 비용을 따진다니 약았다.
그는 에코모더니스트다. 그의 과학기술에 대한 낙관론은 책 전반에 걸쳐 깔려있다. 미시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 관리되지 않은 시스템의 위험성을 회피하기 위한 기술이 말해진다 “해수면 상승은 구름씨뿌리기나 심지어는 남국대률 정상으로 물을 다시 퍼 올리는 어떤 환상적인 장치를 가지고 관리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지구 반사율 접근법도 곁들인다. 한편 나의 우려는, 이 노드하우스의 접근법이 인간의 어스멘탈리티를 어떻게 바라보는 것인가 싶다. 기후변화의 문제를 탄소배출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은 일종의 탄소 물신성이 아닌가?
2.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
(1) 요한 록스트륌(Johan Rockstrom)
요한 록스트륌은 지구 한계 과학의 선두에 서 있는 과학자다. 스톡홀롬 대학의 교수이며 스톡홀롬복원센터의 소장이다. 2009년 28 명의 학자로 구성된 국제그룹을 이끌었고 이들이 제시한 지구위험한계 지구 한계 과학 접근법의 초석을 놓았다. 도넛 경제학의 바깥 원이 이 지구 한계 과학이 데이터에 따라 그린 경계선으로 점점 유망한 지위를 차지해가고 있다.
록스트륌은 혼자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 책을 비롯해 그의 여러 데이터들은 다학제적 과학자 그룹의 공동 연구와 협업 모델링을 통한 것이었다.
(2)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 요약
“‘큰 지구’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세계’에 거주할 때는 문제가 없었으나 오늘날 우리는 ‘작은 지구’ ‘큰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중략) 우리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조망해볼 필요가 있으며, 지구와 새로운 관계를 맺음으로써 세계 번영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15p).”
록스트륌과 클룸은 안정된 지구 내에서 세계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1부에서는 지구가 직면한 시급한 문제를 보이고 ‘지구 한계(Plantary ’ 개념을 보인다. 2부는 지속가능한 지구에서의 번영, 정의, 행복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소개한다. 3부는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그들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전달된다. “1)눈을 뜨라 2)위기는 긴박하며 전 지구적이다 3)모든 것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4)예상치 못한 일들의 일상화 5)지구 한계를 존중하라 6)지구 차원의 사고 전환 7)남아 있는 지구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라 8)우리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 9)혁신 촉발하기 10)시급한 것부터 시작하라.” 이 메세지들은 위기를 경고하면서도 혁신과 번영의 가능성을 북돋아 준다.
1부) 거대한 도전
인간이 지구에 가하는 거대한 가속의 압력은 인류세를 도래하게 했다. “지금껏 이어진 지속불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해줄 지구의 능력은 이제 생물리적 한계에 도달했(48p)”으며, 인구증가, 기후위기, 생태계 악화, 지구시스템의 불확실성(문턱 값을 넘어가는 티핑 포인트)의 4대 압박이 지속가능성을 저해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와 자연의 속성인 상호연결성과 되먹임구조를 알고 생태계의 회복력·복원력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
‘지구위험한계(Planetary Boundary)’는 안정적인 지구의 안전한 운용 공간을 알아내기 위한 프로젝트 연구였다. 학제적 과학자 집단이 꾸려져 아홉 가지 요소로 구성된 위험한계를 수량화했다. 불확실성 지대가 넓고, 위험한계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예측하기가 어려움에도 이들은 새로운 접근법을 만들어냈다. 기후변화, 성층권 오전층의 파괴, 생물 다양성의 손실률, 화학물질에 의한 오염, 해양 산성화, 담수 소비, 토지 이용의 변화, 질소·인에 의한 오염, 대기오염 혹은 에어로졸 부하 각각을 원형으로 주욱 가이드레일을 세웠다. 이 한계들은 계속해서 업데이트된다. 이 9개 중 4개가 - 인·질소와 종 멸종률, 기후변화와 토지 이용 변화 –가 지구한계를 넘어 위험지대에 들어섰다. 기후변화의 한계 지점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350ppm인데 작년에 415pp을 훌쩍 뛰어넘었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은 최종상태가 복합적 결과로 나타남으로 ‘핵심 위험한계’로 설정되어 있다.
“지구 한계 접근법은 자원 이용과 자원 수요, 추진력, 기타 인간 활동의 여러 측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생물리적 과정, 특히 파괴적이고 느닷없는 변화를 촉발하는 문턱값의 역할에 직접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러한 타협을 거부한다(85p).”
2부) 사고의 대전환
“죽은 지구에서 기업은 없다.(158p)” 지구의 무임승차 시대는 막을 내려야 하며 우리가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관리하는 것이 단순히 ‘비용’이 아니라 복원력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경제적 가치의 중요한 측면이라는 것이다.
지구를 지금까지 세계경제에 보조금을 지불해왔다. 자연이 경제에 제공하는 직접적인 서비스만을 고려했을 대, 기업이 생태계 서비스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세계경제의 산출량은 27%나 줄어든다.
기업에서의 혁신과 사고 대전환은 과거에 말해지던 ‘사회적 책무’ 개념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를 기업 외적인 이슈로 여기는 것은 낡은 구분이 되었다. “지속가능성은 세계성장에 관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유일한’ 이야기다.” 인간이 가하는 피해로부터 환경을 ‘보호’하자는 서사는 저물 때가 되었고, “‘인류세’라는 시대에서 우리는 지구 전체의 스튜어드가 될 필요가 있다(171p).”
“우리에게는 안전한 지구 운용 공간 내에서의 인류 번영, 지구 한계 내에서의 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172p).”
지속가능성으로 옮아가기 위해 과학기술의 혁신이 필요하다. 세계 에너지 대전환, 지속가능한 집약농으로 ‘모두를 위한 식량’을 조달, 순환경제로의 전환, 복원력 있는 도시의 건설, 지속가능한 운송 등 다섯 가지 전환책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들은 이렇게 덧붙인다. “급증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것이 작동하도록 허용되는 절대 한계치를 설정해야 한다. 한마디로 풍요는 지구 한계의 안전한 운용 공간 내에서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다(190p).”
그리고 반드시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이들은 “1)안정한 운용에 관한 전 지구적 규제, 2)지구상에 남아있는 생물리적 공간의 평등한 공유에 관한 범지구적 합의, 3)국제 탄소 가격 부여, 4)아래로부터의 동맹과 위로부터의 거버넌스 협력, 5)GDP 넘어서기 6)역량 개발에 집중 투자(192p)”를 제시하고 있다.
3부) 지속가능한 해결책들
환경 스튜어드십(enviromental stewardship)을 다시 생각할 때 지구 한계의 안전한 운용 공간 내에서 모두를 위한 윤택한 미래를 추구하는 것의 중요성이 떠오른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숙제는 세계적 차원과 지역적 차원 모두에서 거버넌스와 관련하여 새롭고도 대담한 전략을 촉구한다(202p).”
제도, 집행기관, 국가 사법제도, 국가 간 협업, 새로운 무역질서, 세계적 규정 등 ‘위로부터’의 흐름과 풀뿌리 활동가, 지역사회 관리자, 기업 혁신가, 교육 실험가 등 ‘아래로부터’의 흐름이 연결되고 협업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 뿐 아니라 공유지의 비극을 막아 줄 강제력 띈 국제 거버넌스(예로 유엔 환경기구)가 필요하다.
시장은 사회적 구성체기에, 국제 탄소세와 지구 한계에 관한 국제적 합의에 이르는 규제 조치는 시장을 억압하지 않고 새로운 법규·규범·가치를 요청하는 루트가 될 것이다. 발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되며, 지속가능 발전 목표 -17가지 목표, 150가지의 세부 목표는 아홉 가지 지구 한계를 모두 포괄하는 목표를 담고 있다- 와 다중적 발전의 논의 틀- 경제는 사회에 기여하는 하나의 수단이고, 사회는 지구 한계의 안전한 운용 공간 내에서 발전을 도모한다- 을 본격적으로 채택해야 한다.
지구의 티핑 포인트가 아니라 사회적·정신적 티핑 포인트를 촉발시켜야 한다. 사회적 요구와 생태적 요구를 동시에 충족하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좀더 긴밀하게 손을 잡아 지구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모시키는지의 지식이 공유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교육을 최우선 과제로 하고 경제를 지구 한계 두어야 함을 이해하는 새로운 경제학자 세대를 키워내야 하며, 정치와 기업에서 환경 어젠다가 ‘최우선적인’ 위치로 달라져야 한다.
이들은 양방향 전략을 취할 것을 제안하는데, 긴급한 과제들에 대해서는 즉각적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장기적인 사고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물다양성 손실 제로, 농경지 확대 제로, 질소 인 순환 막기 등의 목표를 바탕으로 코펜하겐 2도 저지를 지지한다. 즉각적인 해결책으로는 다음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재생 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이다. 탄소를 제로로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연구는 곳곳에 있고, 탈탄소화 세계경제로의 전환과 경제성장 간에 모순이 없음을 보여주는 연구도 있다. 국제 탄소가격은 필수다. 재생 에너지 체제는 혁신의 문턱 값인 10%에 도착한 바 있다. 두 번째로 지속가능한 농업이다. 삼중 녹색혁명이 필요하다. 생산력을 한층 높이며, 환경에 끼치는 영향력을 줄이고 수원을 지속가능하게 관리하는 게 그 골자다. 이는 보존경운, 무쟁기 농법 등 전통적 생태적 지혜 농법과 궤를 같이 한다.
마지막으로 순환경제로의 이행을 통해 영양물질의 루프를 닫아야 한다. 생명공학의 발전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자연에서 배운 기법, 기술이 이 과정에서 쓰일 수 있으면 된다. 안전하고 공정한 인류 발전의 사회적 과제와 물리적 과제를 동시에 다루어야 하며, 발전의 천장은 지구 한계를, 바닥은 좋은 삶에 요구되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필요조건을 충족해야 될 것이다.
3. 두 책의 비교와 논평
이제 기후변화의 경제학과 지구한계과학, 각각의 영역에서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두 학자의 접근법을 비교해보자. 먼저 노드하우스는 경제학자고 록스트륌은 과학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자. 자연과학이 정보를 제공하면, 사회과학은 이에 응답하는 부분이 있다. 또한 록스트룀은 지구 한계를 긋는데 공을 들였지만 노드하우스는 배출량 정책과 분석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한편, 노드하우스의 책은 그의 이론이 담겼지만 록스트륌과 클룸의 책은 수많은 동료 집단과 함께 총체적으로 도출한 이론이다.
두 학자의 차이는 다음의 인용구에서 가장 간명히 드러난다.
좋은 정책은 경제를 파탄 내는 길과 세상을 파탄 내는 길 중간 어디쯤에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서로 상충되는 경제중심적인 요구와 환경중심적인 요구를 어떻게 저울질 할 것인가(115p), 무엇이 최고의 목표인지는 그것을 달성하는 비용에 의해 판가름이 날 것이다(N, 289p).” - 노드하우스
“지구 한계 접근법은 자원 이용과 자원 수요, 추진력, 기타 인간 활동의 여러 측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생물리적 과정, 특히 파괴적이고 느닷없는 변화를 촉발하는 문턱 값의 역할에 직접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러한 타협을 거부한다.(R, 85p).” - 록스트륌
온도차)
가장 큰 차이는 온도차다. 실제로 둘이 제시하는 목표 개입 온도 차이도 존재한다. 노드하우스는 3도 정도에서 지구 온난화를 제한하는 것을 목표 했지만 록스트륌의 지구 한계에서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350ppm을 넘어가는 순간을 위험 지대로 둔다(이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도 이하로 제한해야 함을 말한다). 우리는 록스트륌이 사고예방원칙에 더 신중하게 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분석에 있어서는 록스트림이 아홉 개의 지구 한계를 바탕으로 시스템 이론에 기반해 복잡계 과학의 모델을 펼쳐놓는 반면 노드하우스는 이산화탄소만 간결하게 ‘단순화시켜’ 분석한다. 그에게 다른 것은 모델의 단순화를 방해하기에 등장할 수 없다. 하지만 노드하우스에게 초점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아니다. 지구한계 내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기후 변화에 맞선 ‘최후의 전장’은 배출량 감축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생물권의 권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옮아가야 한다(R, 103p).”
티핑 포인트(임계요소, 체제 변환, 문턱값)를 언급하는 면에서도 록스트륌이 그 위험성을 수없이 반복해 경고하는 반면에, 노드하우스는 그런 게 있다 정도로는 알려주지만 모델링에 방해가 되는 요소라 여기는 듯하다. 노드하우스에게 티핑 포인트는 가능성 정도로, 하지만 불확실하고 예상 불가능하니 모델링에서는 제외되는 방식이다. 자연계가 비선형적인 것을 안다알고 불확실성을 경고한다 할지라도 비용과 편익으로 계산되는 그의 통합 모델에서 이 변수들을 포함하기란 상당히 까다롭다. 반면 록스트륌의 분석에서 이 지구시스템의 불확실성은 큰 자리를 차지한다.
무엇보다 노드하우스는 기후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 한참 뒤쯤 있는 것처럼 여긴다. 그의 모델링에서는 아직 기후변화의 위험이 시작되지 않았다. 또한 그의 논지에서는 (심지어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에게 인용되기도 하는) “이산화탄소 증가와 이로 인한 약간의 온난화(1도까지는) 지구 전체에 경제적으로 이롭다”고 말하기도 하니, 기후위기가 빚어낸 지옥은 그의 시야에 없다. 한참 나중의 일이다. 온난화가 가져다 줄 편익은 이를테면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작물수확량 증가 같은 게 포함 되어 있다.
반면 록스트륌은 9개의 지구 한계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는지, 되먹임 구조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을 실시한다. 기후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위험지대에 들어섰다. 지금 당장 우리는 위험한계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미래의 일이 아니다.
방법론)
노드하우스의 방법론을 이루고 있는 ‘경제학’적 분석방법은 현대 과학의 최정점에 올라있는 록스트륌에게는 답답하지 않을까 싶다 당장 노드하우스의 이론 틀의 전제와도 같은 ‘외부비용’에 대해 록스트륌은 이렇게 일갈한다. “서로 관련되어 있으며 환경적으로 포화 상태인 오늘날의 세계에서 외부효과란 있을 수 없다(R, 219p)”, “경제학자들은 지구에 미치는 영향력을 ‘외부효과’로 언급하는 시대착오적 주문에 갇혀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부정확한 말이 어디 있는가. 어떻게 모든 부의 원천인 지구 위에서 살아가면서 그것을 ‘외부’라고 선언할 수 있단 말인가(170p).”
게다가 노드하우스는 경제학을 기후변화에 적용하며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여전히 채택하고 있다. 이에 비해 록스트륌은 “지구 속에 묻어든 사회, 그 속에 묻어든 개인”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이제 우리는 경제가 사회에 이바지하고 사회는 지구의 안전한 운용 공간 내에서 발전한다고 보는 논리로 옮아가야 한다(R, 206p).”고 말한다.
성장관)
노드하우스와 록스트륌의 가장 흥미로운 차이 지점은 아무래도 성장관일 것이다. 이는 환경경제학과 생태경제학의 두드러지는 차이이기도 하다. 모든 학문의 가장 밑바닥에는 인간관과 세계관으로서의 철학이 깔려있고, 경제학에서는 성장관이 가장 중심되는 바탕이라 할 수 있다. 성장에 관해서는 갖가지 논쟁점과 담론이 있다. 경제성장이냐 탈성장이냐 지속가능한 성장이냐. 이 지난한 성장의 논쟁에서도 이 두 책은 다른 입장을 가진다.
노드하우스는 간명하게 ‘무성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한다. 그는 탈성장에 대해서 잔뜩 비꼰다. 이렇게. “무성장 시나리오의 영향이 마음에 드는 친환경론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억 인구에게 무성장 시나리오는 무한정 가난과 질병에 갇혀 살아야 함을 의미하는데도 무성장 시나리오를 지지할 수 있을까?(121p)” 그는 제로경제성장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건 우유가 상했다고 식재료 전체를 내다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적절한 대응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잘못된 경제적 외부효과를 손질하여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는 것이다(123p).
반면 록스트롬은 신멜서스주의자와 신자유주의자 두 극단의 중간 께에 절충점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앞에 놓인 증거들을 토대로 인류가 미래에 ‘지구의 안전한 운용 공간 내에서’ 성장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176p).” 이전의 환경주의자들과 달리 성장의 한계가 아니라 한계 내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성장론은 도넛경제학의 저자 케이트 레이워스의 ‘성장 불가지론’과 흡사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탈성장 이론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록스트륌의 “행성한계가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유한한 생태계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고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성장이란 불가하다는 것이다.”
농업)
한편 농업에 대한 두 학자의 의견을 비교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노드하우스가 보는 기후변화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경악스럽다. 그는 다음과 같이 본다. 첫째 탄소시비(carbon fertilization)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할 때 수확량이 증가할 것, 둘째 이주와 관개시스템으로 변화하는 기후에 맞추어 적응할 수 있다는 것, 셋째 농업 내에서 국제무역의 역할, 넷째 경제와 노동력 내에서 농업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록스트림이 이해하는 농업 시스템은 “종들이 균형 있게 동존하는 상태에 크게 의존하기(R, 120p).”때문에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사회를 바꾸는데 큰 기여를 하고 전통적이고 생태적인 지혜를 담을 수 있다.
대안)
노드하우스의 대안은 탄소가격을 설정하는 것이다. 규제는 비효율적이기에 보완책으로, 지구공학은 최후의 수단으로 둔다. 반면 록스트륌과 그의 집단은 총체적인 분석 하에서 대안 패키지를 도출한다. 당연히 노드하우스의 대안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들은 탄소가격을 설정하는 것은 만능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탄소세 가격이 노드하우스는 25달런데 록스트림은 60달러다. 연구시점을 감안해도 약 두 배가 차이가 난다.
록스트륌은 인식의 대전환, 환경스튜어드쉽, 국제기구 창설, 기업의 혁신, 교육의 역할, 경제학의 재조정 등을 말하고 있다. 사고와 패러다임 체제 가릴 것 없이 전환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는 급진적이며 총체적이다.
가장 중요한 차이로는 기후위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태도를 꼽겠다. 비용이냐 기회냐. 이 태도는 중요하다. 기후변화를 막는 개입과 지점들을 비용으로 보는 노드하우스에게 록스트륌은 일갈한다. “미래의 성장과 번영에 관한 전망을 어둡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밝게 하기 위해서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210p).”
노드하우스
록스트륌
직업
경제학자
지구한계과학자
방법론
DICE&RICE 단일 모델링
지구한계과학 모델
과학방법론
뉴턴식 고전과학 분석
복잡계 과학
유사한 경제학 분과
환경경제학
생태경제학
구호
비용편익
안전도모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적절한 지점
(지금 편익이 없는 기후대응)비용과 (기후변화가 가할 미래의 위해로부터)편익의 균형점
지구 한계를 넘지 않는 영역
전략
시장주의
혁신을 통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대안
탄소가격의 형성, 탄소세
총합 패키지
선
비용감소, 소득증가
안정, 안전, 균형
분석단위
달러화폐단위
에네르기, 물질흐름분석
온도
낙관
합리적 비관
기후변화 위험성
괜찮다
큰일났다
다루는 변수
기후
아홉 개의 지구한계
적응가능여부
열파가 오면 에어컨
해일이 오면 방파제
한계를 넘어서는 위험은 선형적으로 오지 않는다
환경주의자들과의 관계
안 친함
친함, 하지만 비판점이 있다. 환경과 인간은 별개의 실체가 아니다
4. 환경경제학과 생태경제학
이 두 학자의 접근법 차이는 환경경제학과 생태경제학의 논쟁을 연상하게 한다. 노드하우스는 환경경제학자들의 연구를 대거 인용하고 함께하고 있으며 요한 록스트륌이 생태경제학자는 아니지만, 그의 연구팀에는 생태경제학자들이 대거 있다.
환경경제학과 생태경제학은 어떻게 다른가? 가장 많이 질문이자 나도 수차례 물었던 물음이다. 도통 이렇게 말하고 한다. 4대강을 들어 생각해보자. 4대강 참사에 대해서 환경경제학의 접근법으로는 “강과 인근 생태계의 가치가 왜 이것밖에 안 되냐. 제대로 산정해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생태경제학의 접근법으로는 “보를 지어서 생태계를 살리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편협한 경제학의 토대에서 빚어진 ‘개발’에 맞선 모든 시도들에서 보이는 두 논리의 흐름이다. 새만금에서도, 밀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외부비용인 환경을 내부화하라는 환경경제학의 주장과, 경제가 생태의 일부라는 것을 심히 간과해 무지한/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생태경제학의 주장은 녹색진영에서 모두 중요하다.
환경경제학은 응용 분야의 일환으로 환경을 보는 시각이고, 생태경제학은 대안 학문을 만들려는 시도라 할 수 있겠다. 양자의 자연관은 많은 부분 차이가 난다. 환경경제학의 ‘환경’과 생태경제학의 ‘생태’는 사뭇 다르다. 환경경제학자들을 자원경제학자라고 부르기도 하니, ‘자원’과 ‘생태’의 차이이기도 하다. 경제를 닫힌 계로 보드냐 열린 계(System)로 보느냐의 차이도 있다.
생태경제학은 뿌리가 다르다. 전자를 내부의 확문이라면 후자를 외부의 학문이라 말할 수 있다. 생태경제학에는 열역학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생태경제학의 존재론적 전제는 “경제를 더 큰 생태계 내에 담겨있는 것으로 명시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경제는 그것이 담겨 있으며 완전히 의존하고 있는 생물물리학적 시스템(biophysical system)과 마치 독립적인 것처럼 연구되고 있”지만 이는 시대착오적일 뿐이다.
경제학 계보 사에서 두 학문을 바라보자. 지금 주류의 위치를 차지한 신고전파의 ‘일반 균형’을 만든 것은 레온 왈라스다. ‘일반 균형(general equilibrium)’은 뉴턴의 동적균형(dynamic equilibrium) 개념을 경제학에 가져온 것으로 보면 된다. 그래서 “세상은 시장에 의해서 어느 점인지는 잘 모르지만 균형을 지향해서 가고 있고, 이 균형이 환경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하는 게 환경경제학의 핵심”이다. 모든 시장은 일반 균형을 이루게 되는데, 환경은 시장이 없어서 균형을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시장을 만들어주면 문제가 해결되고 시장가치추산이 환경경제학에서 중요해진다. “피구(Sir Pigou)는 조세를 통해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코즈(Coase)라는 사람은 배출권거래 같이 소유권을 부여함에 의해서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금이냐 소유권이냐는 논쟁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환경경제학의 과학적 방법론은 고전물리학에 기반하고 생태경제학은 (현대)생물학(시스템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 고전 물리학 위에 경제학을 세운 것이 신고전학파라고 한다면, 생물학 위에 세운 경제학이 생태경제학이다. 생태계(eco-system), 시스템이론의 핵심은 복잡성, 계층성으로 생태경제학에서는 진화 중에서 시스템의 진화와 변화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환경경제학에는 진화라는 개념이 없고 균형과 불균형만 있을 뿐이다. 환경경제학은 시장 구조는 주어진 것으로 보고, 그 안에서 어떻게 균형 가격을 찾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 프로그램으로 정착이 된다.
환경경제학에서 분석단위는 달러지만 생태경제학에서는 물질흐름이다. 1970년대 초반 열역학 법칙이 경제학으로 편입되며 인간이 물질을 ‘변형’시킬 수는 있지만 파괴할 수는 없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생물학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자명한 전제가 주어졌다. 맑스와 물질수지 이론의 사회적 물질대사를 함께 분석단위로 둔다.
생태경제학은 탈성장이론으로 이어진다. GDP와 탈동조화를 확고히 비판한다.
“기술낙관론자들과 현대의 경제시스템을 변함없이 유지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물질과 에너지 투입량은 감소하면서 경제성장은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절대적 탈물질화 또는 탈동조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실제 사례라고 주장돼왔던 몇몇 경우는 생산의 탈지역화 사례로 판명되었다.(242p)”
“탈성장은 인간생활을 조직하는 중심원리로서의 시장의 역할과, 산업국가에서의 생산 및 소비가 민주적으로 재분배되면서 축소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정의와 윌빙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생태경제학은 대안(이단) 이론의 자리를 가진다. 환경경제학과 생태경제학의 갈등이 있었다. “극단적으로 생태경제학을 정통적 환경경제학의 하위 분야로 축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주류 경제학자들이 이용하기도 했었다(247p).” 생태경제학자들은 “‘그들의’ 공학적 사고 방식은 한때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경제에 대한 윤리적 접근방식을 말살시켜버렸다(253p)”고 비판하며 환경경제학의 가정과 방법들을 모조리 부순다. “오늘날 경제는 효율성에 따라 작동하지 않고, 대량소비주의, 과시적 소비, 고의적 노후화, 패션사회, 경쟁, 환경훼손, 파괴 또는 자원전쟁에서 효율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편, 생태경제학에 내부에서도 비판점도 존재한다.
“생태경제학은 생물물리학적 현실과 근본적인 연관성을 핵심으로 삼아왔지만 경제가 담겨있는 사회와의 연결성은 적절히 다뤄지지 않았다. 이는 환경문제를 경제문제와 결합시킬 때 형식주의적 접근법(formalistic approach) - 수학적 언어로 형식화 하는 과정에서 현실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놓치게 된다- 의 한계를 가진다. 이렇게 되면 “신고전주의경제학의 하위 분야를 구성하는 자원·환경경제학자(resource and environmental economist)와 다를 바가 없다. 예컨대 많은 생태경제학자들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형식을 유지해왔고, 기업의 권력, 가격을 설정하는 시장, 자본축적, 국가의 역할, 군산복합체와 같은 기존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한 체계적 비판도 결여돼왔다.(236p)
칼 폴라니의 접근에 기반해 ‘사회’를 다루지 않는 생태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의 근본적인 대안 이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생태와 경제의 관계만을 주목하고 기존의 형식주의적 접근(형식화, 모델화)만으로는 ‘개체’를 ‘객체’로 보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고 총체성을 잃는다. 그런 면에서 제대로 된 생태 경제학은 ‘사회생태경제학’이어야 한다.
5. 나가며
물음은 이어진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어떻게 막을 수 있나. 하나의 만능키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른다. 신승철 선생님의 말처럼 앙상블과 길항작용을 기대해야 하지 않나. 주류의 안에서 주류를 엎는 방법과, 주류의 밖에서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 혹은 상을 보여 주류를 엎는 방법이 있다. GDP를 갈아치우는 방법에도 행복지표(Happiness index)가 있는가 하면 SEES(환경경제통합계정)이 있다. 경제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아무리 경제의 진정한 뜻에 골몰하여 주류가 담지 못하는 새로운 상을 내보인다 하여, 바로 그 곳으로 도약할 리 없다. 우리가 막아야하는 위기가 있고 가야하는 세상이 있는데 찬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다. 마법의 단어 투트랙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금 소환된다. 이 두 갈래의 실이 길항작용을 일으키리라 상상해볼 수 있을까?
분명히 우리가 본 두 접근법에는 온도차가 있다. 이것은 서있는 곳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학자라고 다르랴. 학문에도 온도가 있다. 약간의 기후우울증을 앓았던 나의 위치도 저 투발루에서 대대로 살아온 땅이 잠기는 이의 시름에 비하면 높고도 높을 것이다. 이런 위치의 차이, 거리의 차이, 온도의 차이는 가 닿으려는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타자의 고통에 가닿을 수 있을 때 우리는 경제학의 주판놀음, 그리고 자연과학의 물신화의 오류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