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 장윤석 Aug 23. 2018

디아리오 미니모

아주 작은 일기 


분명 '디아리오 미니모'라는 낯선 단어에 '이게 뭔가?'하고 들어온 누군가가 있으리라. 혹시 모를 그 누군가를 위해 짤막한 개를 준비했다.


소개의 시작을 위해 작년 크리스마스이브로 거슬러 올라가자. (너무 거스른 감이 있지만) 자주 가는 세미나 모임에서 누군가 선물나눔을 제안했다. "크리스마스니까 선물 하나씩 교환하는 거 어때요? 하나씩 꽁꽁 감싸 온 다음, 가위바위보 이긴 순서대로 받고 싶은 사람의 선물 가져가기!" 모두 좋다고 하자 대망의 선물나눔이 성사되었다. 나도 설레는 마음으로 1000피스 퍼즐을 예쁘게 포장해 준비해 갔다. 아쉽게도 가위바위보에서 꼴등을 했고, 좐의 선물을 선택, 아니 선택당했다. 그 결과 옆에 보이는 것처럼 어느 인상 좋은 아저씨의 책을 선물받게 되었다. 


이 인상 좋은 아저씨의 이름은 '움베르트 에코', 걸어 다니는 도서관으로 불리는 세계의 석학이다. (실제로 그는 볼로냐 도서관의 모든 책 위치를 기억한다고..)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에코의 에세이-칼럼집이다. 풍자와 농담을 넘나들며 가벼운 논조로 세상의 모순과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영역들을 콕콕 찌른다. 통학을 할 때 틈틈이 읽으면서 쿡쿡 웃었던 기억이 난다.


'디아리오 미니모'는 이 책의 원제다. 정확히는 IL Second Diario Minimo, 원래는 <아주 작은 일기>라는 뜻이지만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 일기 형식으로 쓰는 칼럼을 가리키는 말로 뜻이 확대되었다. 처음 듣고는 그냥 넘겼지만, 이탈리아어의 묘한 어감이 나를 잡아끌었는지 브런치에 처음 쓸 매거진 이름을 정할 때 번뜩 떠올랐다!



일기 형식으로 쓰는 칼럼


글에 대한 고민을 덧붙이자면, 나는 일기, 수필(에세이), 소설, 칼럼 등 다양한 글쓰기 장르의 경계가 혼란스럽다. 칼럼이야 엄밀하게 말하면 어느 장르가 아닌 '어느 난에 기고하는' 코너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요즘은 '칼럼'이라는 장르가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수필과 소설의 경계도 어렵다. 창작이 가미되어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라면, 창작이 결국은 글쓴이의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과 인식에서 기초한다는 점에서 수필과 흡사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일기와 에세이의 경계가 제일 어렵다. 어느 칼럼니스트는 '지성력'을 언급하며 에세이는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과 관념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묘하게 일기를 '집에나 가서 혼자 끄적이는 것'으로 격하한 것 같아 씁쓸한 면이 있었다. '안네의 일기'도, '구토'도, 일기인데 말이지.. ('요즘 에세이 책들, 너무 일기 같지 않나요?' , 이동규, 오마이뉴스


일기와 에세이의 경계를 생각할 때, '가벼움과 무거움',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가 화두다. 읽는 누군가가 있는 만큼 일기처럼 휙 가볍게 쓰면 안 될 것이고, 어느 정도의 진중함을 갖추어야 할 필요도 있다. 한편 얼마나 독자를 의식해야 할지, 글쓰기에 공을 들이다가 에세이가 지닌 가벼운 맛을 놓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있다. 일기가 갖는 '솔직함'이라는 최대의 장점을 얼마나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가 고민이다. 솔직하되 그것이 다분히 지저분한 개인의 감상만으로 남아버리면 안 되니까. 


아무래도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건 일기다. 누군가에게 보여야 한다는 부담 없이 편하게 끄적일 수 있기도 하고 꾸밈없이 솔직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탐스런 일기장의 여백에 만년필로 사각사각 일기를 써 내려가는 건 내 밤만의 은밀한(?) 즐거움이다. (그날 기분 따라 잉크의 색이 바뀌는 변태적인 취미가 있다.) 일기를 많이 써서 그런지 최근의 글들은 일기 같은 느낌을 주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 글을 고치거나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일기가 뭐 어때서. 아마 나는 일기 특유의 솔직함을 사랑하나 보다. 

글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사진은 친애하는 내 만년필

다시 '디아리오 미니모'로 돌아와, 앞으로 이 매거진에 어떤 글을 써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일단 이 정도로 일단락 지을까. 독자가 있다 가정하고(그런데 없으면 슬프겠다..) 내가 겪고 보며 읽는,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것들을 소재삼아 일기처럼 쓰고자 한다. '아주 작은 일기'. 딱 그 정도 되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