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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May 27. 2022

[한국철학과 녹색] 녹색당 이야기

http://thetomorrow.kr/archives/15860

* [한국철학과 녹색] 연재에서 갑자기 녹색당 이야기가 나와 낯설지도 모르겠다. 실은 나에게 있어 한국철학을 녹색화하는 작업과 녹색당 활동은 분리되지 않는다. “나는 너를 통해 내가 되고, 우리가 된다.”는 말에 근원에 있다. 끊어진 철학을 복원하는 작업과, 기후위기를 직시하고 풀어나가는 작업은 연결되어 있다. 실은 녹색당 이야기는 마지막에 쓰고 싶었다. 그러나 선거가 며칠 안 남은 지금, 지금이 아니면 못 쓸 것 같아 적어본다. 오래 눌러 담았던 말들을 편지에 적듯이 전해본다. 만나 뵙고 말씀드리고 싶다.        


1. 나는 녹색당에 있다
.      

나는 녹색당에 있다. 녹색당과 함께 태어난 연구소에서도 일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당원이지는 않았다. 같이 녹색 책들 읽어보지 않겠냐는 손길에 당원이 되었고, 지난 총선 즈음 도와줄 수 있느냐고 건넨 손길에 당사로 왔다. 그때는 참 많은 것이 부서지던 때였다. 독성이 짙은 한국 사회에 작고 가난한 녹색당이 살기란 쉽지 않으므로, 밖으로도 안으로도 상처가 난무했다. 그때 참 우연히도 같이 기후를 공부하고 녹색평론을 읽던 한 당원이, 당원 이전에 내 친구 하나가 군대에서 생을 멈췄다. 나도 같이 멈췄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랬다. 당사에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마음에 맺힌 한이 분노인지 부채감인지 슬픔인지 아직 구별이 잘 안된다. 건강하게 풀어가는 법도 잘 모른다. 다만 코로나라는 재난이 덮쳐 텅 빈 당사는 황량했고 청소를 안 한 지 오래되었고 풀떼기들은 말라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화분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2.
녹색당 이야기       

녹색당은 한 포기 풀떼기와 같다. 풀뿌리로부터 시작했음을 자처해왔고, 풀뿌리 민중 옆에 있기를 지향하고 그래왔다. 10년 전 후쿠시마 핵사고가 터졌을 때의 마음에, 그보다 십여 년 전부터 여러 이름으로 준비해왔던 초록/녹색 정치의 힘을 모아 창당했다. 한국의 정당법 아래서 창당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년 사이 최소 다섯 개 광역에서 각각 천 명씩을 모아야 한다. 문턱은 높았지만 녹색이(?) 들은 전국을 순회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보기에는 환경 하나지만 기후, 에너지, 물, 땅·농, 동물/권, 생태·생물다양성, 생태민주주의, 에코페미니즘, 교육 등 수많은 판이 그것도 지역마다 있다. 숲의 생물다양성을 생각하면 된다. 나무 수종의 수만큼 많다. 만나기도 쉽지 않은 이 수많은 결을 하나로 엮어낸 곳이 녹색당이라는 공간이다. 이 전통은 지금도 녹색당 내 열 개가 넘는 부문별 위원회가 작동하고 있는 모습에서 이어진다.      

십 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던데, 지난 십 년의 역사는 실제로 강이 뒤집어지고 산이 깎여나가는 역사였다. 강산이 파헤쳐지는데 그 속에 묻어들어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무사할까. 월성 같은 핵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송전하기 위해 밀양의 할매들 살고 있는 농촌 마을에 765kV 송전탑이 꽂혔고,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명목으로 구럼비 바위가 폭파되고 강정마을에는 혼란이 찾아왔다. 경북 영풍 석포제련소, 전북 새만금은 지역의 고질적인 고민으로 남아있고, 지금은 강릉과 삼척의 신규 석탄발전소와 전북, 대구경북, 제주, 가덕도, 충남의 신공항까지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익히 알듯이, 지금 같은 선거철에는 한술 더 떠 양당이 앞다투어 토건·개발 공약을 내놓고 이목을 끌어 당선된다.      

지난 십 년간 녹색당은 그곳에 있어왔다고 생각한다. 녹색당의 지역당들은 언론이 안 다루고 정치적 이득이 없어도 늘 그 곁에 있으려 해왔다. 녹색당이 찾아간 것도 있지만 그보다 거기 있는 사람들이 (잘 밝히지는 않지만) 녹색당원들이었다고 보는 게 맞겠다. 물론 늘 현장은 가도 가도 부족하고 더욱 진심으로 가있어야 하겠지만, 각종 현장에 녹색당원들이 함께하는 장면은 참 귀하다.      

나는 이것을 작년 이맘쯤 단식농성장에 있다 알았다. 국내외 십여 기의 석탄발전소의 철회를 요구하는 단식 농성이었다. 낮에는 더워서 밖에 있으면 숨이 차오르고, 밤에는 추워서 나다니면 으슬으슬한 계절, 농성장에는 전국의 녹색이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왔다. 녹색당원들에게는 왜 기후 단식을 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것을 기후위기라고 부르던 생태, 생명 위기라고 부르던 이미 알고 있었고, 아프게도 체감하고 있었다. 단식 농성의 마지막 날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녹색당이 전국의 풀뿌리들을 한데 모아 만들었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수많은 단위가 하나둘 들어와서 준비해온 성명을 각각 읽었다. 누구는 가덕도에서 누구는 한국전력 앞에서 누구는 비자림로 앞에서, 그리고 우리는 단식 농성장에서. 그때의 성명서를 잠시 발췌하자면 이렇다.           


“녹색당 탈핵위원회는 핵발전에 미련을 갖는 우를 범하지 않고 행복과 안정이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기후정의를 말한다. 녹색당 건강사회위원회는 기후위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닥치지만 기후위기의 피해는 동등하게 오지 않기에, 식량, 소득, 노동, 사회적안전망, 주거, 돌봄과 의료 등 사회권 보장을 말한다. 녹색당 동물권위원회는 기후위기의 원인으로 공장식 축산과, 더 나아가 위계적 이분법을 말하며, 동물로서 동물의 연대라는 기후정의를 말한다. 녹색당 국제위원회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책임을 말하며 국제연대에 기반한 ‘정의로운 녹색 전환'을 말한다. 충남 녹색당은 기후위기 시대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산업단지를 건설하고, 민항을 건설할 수는 없음을 말한다. 대전 녹색당은 열병합발전소 증설 취소, 토목공사가 아닌 생태하천 사업, 작은 실천이 아닌 실천 로드맵 마련을 말한다. 부산 녹색당은 하늘 위 4대강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며 정의로운 전환을 말한다. 서울 녹색당은 P4G가 말하지 않는 기후위기의 문제로 ‘불평등’과 ‘생존’을, P4G가 내놓을 수 없는 기후위기의 해법은 ‘녹색’과 ‘정의’임을, 녹색 정치의 물결을 말한다. 대구 녹색당은 대구시 통합신공항, 대구시 신청사, 달성공원 이전시 동물원 확대 등 전면 백지화와 개발 토건이 아닌 선제적인 안전대책을 말한다. 제주 녹색당은 곶자왈과 숲을 밀어내고 짓는 제2 공항을 건설하고 도로 개발을 중단하고, 탈탄소 전환을 말한다.”   


지금 치르는 지선에서 녹색당 후보로 나온 이들은 이런 사람들이다. 더 말할 것 없이, 이 사람들은 그 자체로 기후 후보다. 절실함에 공명해 손 보태고 목소리 보태고 광장에 함께 앉고 돈 보태고 힘 보태는 사람들. 이들이 광장을 지나 의회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나왔다. 그때의 농성장 지킴이들도 기후 단식에서 기후 선거로 넘어와 애쓰고 있다. 누구는 후보자로, 누구는 수행원으로, 누구는 사무처 홍보국, 누구는 정책국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가고 있다.      

얼마 전 을지로에서 열었던 정당연설회가 기억에 남는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서는 현재 하나의 기업 같은 가게가 나머지 가게들을 모조리 내쫒고 있고 서울시는 이를 방관 중이다. 녹색당 활동가들이 모여 정당연설회를 열었다. 노래를 부르고 발언을 하고 구호를 외치고 춤을 췄다. 을지OB베어 사장님들께서 마지막에 하셨던 말씀이 깊게 남았다. 정당이 상생을 외치며 우리 곁에 와 준 것은 처음이라 너무 감사했다고. 뜨거운 분노와 환한 축제가 같이 있어서 어쩜 이런 곳이 있나 싶었다고. "녹색당을 진심으로 지지합니다." 그분을 안아드렸다.     

분명한 것 하나는 오래전부터 일어나 모였던 마음들이 지금도 전해지고 새롭게 모아져 계속 '가고 있다'는 것, 옛이야기가 구전되고 전수되어 살아있는 것처럼, 녹색당이 십 년간 이어온 이야기는 오늘도 이어지는 중이다.            

3. 상처 속에서 가능성 피우기      

녹색당은 여러 평가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 채 떼어내지 못한 꼬리표도 있다. 10년 동안의 시간은 마치 한 가정의 가족사처럼 다사다난했다. 밖으로는 무력했고 안으로는 평화롭지 못했다. 일련의 모습들이 여과 없이 비치며 많은 당원들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녹색당을 탈당하거나 떠나는 이들을 보면서 사랑해서, 그렇기에 미워서 떠나간다는 생각했다. 녹색당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는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가치 정당으로서 한 줌의 희망을 뭉쳐 만들었다는 것에 있다. ‘문명의 대안, 전환의 씨앗’을 슬로건 삼아 이어온 희망의 이야기들이 현실에서 힘을 가지지 못하고 그 험난한 여정 속에서 자꾸만 무너지고 말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게 된다. 동시에 사랑은 상처받을 위험을 늘 동반한다. 만남은 기존의 것이 깨어짐을 속성으로 한다.        

참 고민이다. 떠나가는 사람 붙잡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데. 십 년 동안 흩어진 풀뿌리들을 어떻게 다시 엮을 수 있을까. 어떻게 마음을 다시 모을 수 있을까. 다시 마음을 모으는 것이 나에게도 당에게도 주요한 화두이자 과제로 남아있는 듯하다. 녹색당의 돌봄 철학은 ‘공존을 위한 돌봄’으로 상처를 받고 아프더라도, ‘잘’ 상처받고 아파야 한다고 말한다. 끝내 돌보고 살려 회복할 수 있게 관계망을 이루는 것을 우리는 상상해야 한다.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 과정의 아름다움을 공동으로 감각할 때, 우리는 다음의 가능성을 낳을 수 있다. 평화는 늘 비극 속에서 발현하고, 가능성은 수난 속에서 피어난다. 가장 아픈 곳에서 있으려 했던 녹색당이 겪었던 상처는 다음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      

비관과 실망이 잔뜩 섞인 말들을 듣고 돌아오면 많이 아리기도 한다. 절망하고 돌아서 있는  이들을 보면 애잔하고 응원하고 조금 서운하다. 실은 너무나도 이해가 간다. 인지도, 방향성, 전략, 정책, 실무력, 조직력 등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비관에는 충분히 익숙하다. 나의 전망도 절대 밝지 않다. 이 시대에 비관은 공기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희망을 발굴하려는 시도가 중요하다. 다음을 만들어가려는 그 헛수고에 가까울 근면의 노동은 너무나 중요하다. 절망과 실망과 상처는 잘 받고, 잘 느끼고, 잘 넘어가야 한다. 계속 고민해야 한다. 회의주의의 늪으로부터 우리가 헤어 나오는 법은 정직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문제와 한계를 말하자면 끝도 없다. 영향력과 인지도는 미비해서 정말 도토리 같다. 그러나 도토리가 담지하고 있는 떡갈나무 혁명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4.
미래가 있다면 녹색     

고민은 동시에 가능성이다. 정말 풀뿌리 같은 녹색당이다. 풀뿌리는 얼핏 낭만적인 말로 들리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엉키고 뒤엉켜, 도무지 가지런히 정리되지 않는다. 여러 결이 모여서 아우성이다. 가만 보면 이게 한 뿌리는 맞는지 헷갈릴 정도다. 녹색당에는 현장에 재빨리 뛰어가는 활동가들과, 전환을 위한 정책에 최선을 다하는 연구자들과, 요가부터 등산에 밴드를 만드는 등 생활가·영성가·예술가가 모두 뒤섞여 있다. 오죽하면 녹색당을 정당으로 생각하는 당원이 얼마나 될까 하고 농담이 나오기도 한다. 일반적인 정치학 이론에서 정당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을 집단적으로 쟁취하기 위한 기구로 정의되고, 이 관점에서 녹색당은 아주 괴이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 다양성은 지금의(혹은 아주 오래된) 정치학 이론에서 가능성으로 증명된다. 정치생태학자이자 생태경제학자 요르고스 칼리스는 기후위기를 막을 유일한 정치 전환인 탈성장 정치를 실현하는 접근으로 세 가지 정치 층위의 동시적 접근에 대해서 말한다. 전환은 집, 광장, 의회 세 공간에서 영성과 활동과 제도가 동시에 변할 때 비로소 변할 수 있다. 풀뿌리 변화와 법, 제도, 거버넌스의 변화가 같이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 녹색당의 창립에 기여한 펠릭스 가타리가 말했던 정치생태학, 마음생태학, 사회생태학의 동시혁명과 이어지는 이야기일 것이다. 혹은 동양의 정치이론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처럼 삶을 돌보고, 공동체(사회)를 일구고, 국가를 바꾸는 접근에 이어진다. 즉,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를 바꾸고, 광장과 현장에서의 변화를 만들고, 제대로 된 법질서와 정치제도를 같이 바꾸어가야 한다. 그 어느 곳도 법안을 만들고, 노래 부르는 정당 연설회를 하고, 농성장을 동시에 차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녹색당은, 우리는 할 수 있다.       

녹색당에는 수많은 단위가 있고, 녹색당의 의사결정 구조는 남들이 보기에는 미련할 정도로 느리고 민주적이다. 비효율적이고 느리며 때를 놓치기 일쑤다. 이것은 녹색당이 강령에 있는 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 숙의의 힘에 속도와 신뢰를 붙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겠다. 그보다 우리는 이 느림과 다양성의 힘이 가진 잠재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실로 그 공간의 미래를 염려하는 이들이 있는 한, 결코 희망은 마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미래가 있다면 녹색이다          


5.
미우나 고우나 녹색당     

미우나 고우나 녹색당일 수밖에. 녹색당이 아니라면 누가 어떻게 기후위기 앞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아픔들에 응답할까. 을지로와 녹색평론(혹은 한살림 선언)사이를 연결할 공간, 녹색당이다. 녹색당은 그럼에도 나무다. 열매가 많이 열리지는 않았을 수 있다. 부러진 가지도 시든 잎들도 있다. 그래도 한국 사회라는 오염된 땅에서 희망으로 키워 눈물겹게도 죽지 않고 자라난 나무다. 죽지 않은 나무 한 그루는 숲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증축을 시도하는 고층빌딩이 꿈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꽃이 피지 않는다고 돌보지 않으면 풀떼기는 말라 죽는다. 아무래도 말라죽어가는 식물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처음 녹색당사에 왔을 때 누렇게 떨어진 이파리들을 주워 담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선거철, 일하는 이들이 바빠지고 잊을세라 풀떼기 물주기를 하루의 할 일 목록에 적는다. 선거를 치르면서도 가장 아픈 현장 곁에서 전환의 씨앗을 만들고 있다. 마침 당사의 풀떼기에 꽃이 피었다. 꽃피우는 친군지 몰랐는데 어느새 작은 꽃봉오리가 올라와 있었다. 그렇구나. 우리도 그렇게 피어날 것이다.      


*덧. 자그마치 십 년이다. 십 주년을 맞이한 정당이 추스른 이후 치르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다. 녹색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부탁드린다. 당원이 되어주시라. 그리고 풀떼기에 물을 주시라. 지역구 투표는 4번, 정당투표는 5번 녹색당!      


<녹색당 홍보!>

○ 녹색당 지방선거 후보페이지 vote2022.kgreens.org

○ 녹색당 지방선거 정책공약집 https://vote2022.kgreens.org/policies 

○ 녹색당 후원하기 kgreens.org/donate 녹색당 중앙당후원회 우리은행 1005-403-316782

○ 당원 가입 링크

https://mrmweb.hsit.co.kr/v2/M/Member/MemberJoin.aspx?action=mjoin&server=gfzNNMS7EHszhJHjmTU5xg==          

녹색당사에서 피어난 꽃. 분무기는 이틀에 한 번. 물은 삼일에 한 번 © 윤석    

녹색당사에서 자라는 풀떼기. 겨우내 죽은 줄 알았는데 잘 피어났다. ©윤석    

기후정치를 실현할 녹색당 후보들  © 녹색당    

기후선거를 만들기 위한 녹색당 기후철도  ©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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