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24~5.26
2024.5.24~26 피정에 다녀오며
주말에 피정을 다녀왔다. ‘숲 그리고 고요’를 주제로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수녀님들이 마음모아 준비해주신 자리. 아마도 2021년 경 처음으로 두산 재판이 열리던 날이었던가, 방청연대에 수녀님들이 우르르 찾아오셔서 무척 감사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나경(바람) 수녀님께서 활동가들의 쉼과 재충전을 위한 피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꼭 한 번 가보라고 말쑴을 건네주셨다. 그렇게 꼭 가야지를 반복하기를 몇년 째, 주변에 지친 친구들에게 여러 차례 피정이 있을 때마다 권해왔는데도 정작 내가 가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두어 달 전 선거날을 기다리며 초조해하고 있을 때 즈음 다예와 어린이 거의 동시에 피정 일정을 공유해줬다. 가겠다고 대답하는데는 한 삼초 정도 걸렸다.
삼년은 긴 시간이라 그 새 나에게도 여러 변화가 생겼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원불교 법명을 받은 것인데, 써본적이 메이플 닉네임과 상담소에서 말고는 없어 아마 주변에서는 잘 모르지 싶다. 오랜 도반 도원이에게 부탁해 내 선생님이셨던 민타원 교무님께 정성성, 평화화 자를 따 성화라는 법명을 받았다. 이번 피정에서는 습관처럼 나오는 윤석이 말고 성화로 있었다. 고요한 침묵 피정이라 이름을 불릴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경의중앙선을 타고 양평을 알리는 두물머리를 지나가면 아 서울을 벗어났구나 싶다. 다시 돌아가야겠지만 잠시 떠나있는 것은 괜찮아. 쉼과 떠남을 서로 권하는 문화가 자리잡는 게 우리에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피정을 향하는 입구에서 잠시 핸드폰을 꺼 두었다.
그렇게 양평 산속의 내림의 집으로 납치(?)되었는데, 1999년에 지어진 이 집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뒤에는 산, 앞에는 계곡. 수도원의 개인실과 곳곳의 영적 공간들이 인상에 남는다. 함께 기도를 올리는 큰방과, 옥탑에 홀로 기도를 드리는 조용한 다락방 모두 이곳을 만든 이가 누굴까 궁금해질 정도로 좋았다. 아담한 방에 들어서니 풀꽃이 담긴 유리컵과 환영한다는 작은 편지가 놓여있었다. 그 아룸다움에 이끌려 이 작은 창가의 책상에 계속 앉아있게 되었다.
피정은 피세정념의 준말로 세상을 피해 고요하게 마음을 지닌다는 뜻이라 한다. 성재덕(피에르) 신부님의 책을 펼쳐보니, 한 일화로 피정에 대해 설명하신다. 어느 교황님이 생의 시간이 몇 남지 않았을 때, 그의 가장 친한 벗이자 종이 간청하기를, 남은 시간 동안 일을 멈추시고 당신의 영혼에 집중하셨으면 한다고, 그리고 그 마음을 받아들여 교황은 피정을 떠나는 이야기. 이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떠남과 탈주, 번아웃을 두려운 것으로 상정하지만 어떤 점에서 그것은 존중되고 장려되어야 할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떠남과 돌아옴이 다연스럽게 순환하는 공동체 문화는 어떤 것일까 생각도 남는다.
나를 포함해 많이들 돌봄은 무언가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피정은 밥먹고 자고 산책하고 정도 말고는 그다지 하는 게 없었다. 그리고 모든 일정이 자율이었다. 하루 푹 자고 일어나서 아무것도 해야하는 게 없다는 것에 감탄했다. 이렇게 행복해 본적이 있었나,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그게 이 돌봄 피정의 신의 한 수 였던 것 같다. 돌봄에 대한 생각을 할 때 여백과 비움이 중요한 것 같다. 무언가를 계속 기획해 온 나의 입장에서 당혹스러울 정도로 고요했지만, 참여자를 믿고 쉬게 하는 과정에서 얻는 에너지와 기운이 엄청나서 놀랐다. 돌아오는 길 자전거 타고 오고 싶을 정도로 힘이 넘쳤다. 그런데 오전과 오후의 행복이 밤이 되자 슬픔이 되었다. 그것이 참 신묘하다.
나는 주는 게 편하고 받는 게 어려운 편이다. 주는 건 아깝지 않은데 뭔가를 받으면 미안하기 일쑤다. 처음에 수녀님들이 온갖 (비건)산해진미에 축복기도와 편지까지 아이고 제가 어떻게 이걸 받습니까 하는 마음이 일었지만, 수녀님들의 표정에 주는 자체에서 느끼는 기쁨이 배어계셨다. 아 내가 잘 받는 게 보답하는 길이구나, 를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물론 현명하게도 설거지를 나눠하고 나뭇가지를 모아서 피고 끝나고 방정리를 하는 등 아주 잘 짜여진 시스템이 자연스레 함께했다. 그리고 어떤 말도 이 감사함에 보답하기에 충분치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바람, 벼리, 꽃마리, 쏘잉님께 다시 감사의 인사를 남깁니다. 그리고 이 피정은 수녀님들의 기도와 사랑이 멈추지 않는 한 계속 이어질테니, 스쳐가며 이 후기를 읽을 모두에게 진심으로 피정을 권해봅니다.
정성과 평화 담아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