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물 7호 살림이스트 현경 정담 with 윤석 희연
정현경: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운동이라는 개념은 갈등이론에 근거한 운동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선생님에게 운동이란 무엇입니까?
장일순: 다릅니다. 전체가 다 공생하자는 얘기죠. 운동이라는 게 뭐냐 했을 때 으레 투쟁이 기본이냐, 아니면 조화가 기본이냐로 갈리죠. 나는 조화가 기본이라고 봅니다. 전부 떼어 내버리면 생명이 존재하는 걸까요. 가지고 있는 걸 살리고 극복을 해야죠. 상태를 없애버리는 해결은 해결이 아니라고 보는 거죠. 저것이 있는 것은 이것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없애버리면 해결이 있을 수도 없죠. 과제는 무엇이냐 하면 제3의 지평이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정현경: 제3의 대안을 내서 끌어 안는다는 말씀이시군요.
장일순: 그럼요. 보듬어 안는 것을 혁명이라고 생각해요. 혁명은 새로운 삶과 새로운 변화가 전제가 되어야죠. 새로운 삶은 폭력으로 상대를 없애는 것이 아니고, 닭이 병아리를 까내듯이 자신의 마음을 전심 투구하는 노력 속에서 새로운 삶이 태어나는 것이잖아요. 새로운 삶은 ‘보듬어 안는’ 정성이 없이는 안되니까요.
정현경: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제가 공부하는 것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에코페미니즘에서 얘기하는 것과 선생님의 말씀이 공유하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여성신학의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원론을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김지하 선생의 『밥』도 읽고 요즘에 많이 나오고 있는 생명운동에 관한 이론을 들어보니까, 급진적인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새로운 문화와, 생명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새로운 문화가 동서양으로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점이 닮아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많이 좀 배우고 한국적인 지혜와 전통을 가지고, 서양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이 페미니즘을 연결시켜 보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일순: 오늘은 내게 질문만 하셨지만, 저를 가르쳐 주셔야죠. 고맙습니다.
-1991년 여름호 《대화》(크리스챤아카데미)에 실린 장일순·정현경 대담 ‘새로운 문화의 지평과 공동체 운동’ 중
지금 세대가 ‘데스’에 끌리는 건 어떤 의미일까
윤석: 새해 첫 인터뷰를 현경 선생님, 희연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쩐지 이 현묘한 검은 토끼의 해가 살림의 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희 《바람과 물》은 처음 예정한 3년 중 이제 딱 절반을 왔습니다. 이 시점에서 올해의 첫 호 주제는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편집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페미니즘 얘기를 해보자 이야기가 되었어요. 그 무렵, 우연히 《대화》에 실렸던 장일순 선생님과 현경 선생님의 대담을 읽었어요. 무려 1991년이니 어느새 30여 년이 흘렀네요,현경님은 당시 페미니즘과 생명운동의 공통점을 말씀하셨어요. 이 대화를 다음 세대인 저희가 복각하고 톺아보는 것이 귀하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 맥락을 이어서 오늘 대화는 여성, 살림, 정치를 주제로 풀어가보려 합니다.
현경: 최근에 동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거는, 수운이나 해월 선생이 하느님을 만나는 과정이 마치 모하메드가 알라의 목소리를 듣듯, 모세가 야훼의 목소리를 듣듯, 예수가 광야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듯 너무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다시 수업을 시작하러 뉴욕에 가는데, 이번에 가르치는 과목이 ‘데스Death’예요. 대학원 세미나인데 학생들 30여 명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전에 ‘러브Love’를 가르칠 때 보다 훨씬 신청이 많아요. 지금 세대가 데스에 더 끌린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죽음을 실천적으로 느낀다는 얘기 같아서 어떻게 가르칠지 숙연해지고, 도전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윤석: 전운이 감도는 시대니까요. 여러 분들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예측하고 계세요. 제가 정말 무서운 것은, 모두가 예측하기 시작하면 사회는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점이에요. 은행이 더는 작동하지 않을 거라고 모두가 생각하면 실제로 도산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니까요. 참, 오스트리아로 평화학 공부하러 떠난 희연(줌으로 정담에 참여)은 분위기 괜찮나요? 독일은 총리가 신년사에서 절대절명의 에너지 위기를 국민들이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고 말하던데.
희연: 여기도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난방비가 두세 배 올랐어요. 그 때문에 난방을 줄이고 힘들게 겨울을 나는 사람들이 늘었고요. 유럽은 식민지배 이후로 화려하게 보이지만, 애초에 그렇게 풍요롭지 않고 척박한 땅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시작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지금 봐서는 언제 어떻게 전쟁이 확장되고 장기화할 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만일 전쟁이 길어진다면 전 세계적으로 극도로 폭력적인 상황들이 증가할 거예요.
현경: 나의 새해 소망은 집 짓기예요. 모든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커먼즈인 집을 지으려고 했죠. 한국에 돌아오면서(미국 대학 강의는 줌으로 지속) 새로운 개벽과 창조성의 온상이 될 수 있는 장소가 있었으면 했어요. 그런데 전쟁이 터지면서 인건비, 자재비, 특히 은행 이자가 너무 올라 이걸 정말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위기를 맞았어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났는데 한국에서 집을 못 짓게 되다니……. 정말 평화가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곧 백두산 폭발의 조짐이 있다는 과학자들의 전망도 들리던데, 앞으로의 시대가 한반도에 굉장히 많은 기후난민을 만들어낼 것 같아요. 북에 있는 동포들은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아요. 이미 일본은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에 정부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너무 많은 땅과 바다가 오염되었어요.
역사적으로 정치가 어려워질 때 두 가지 방향이 나오지요. 어쩌면 독일처럼 통일의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인류사가 그래왔듯이 전쟁을 일으키기도 해요. 일본에서 최근 평화헌법을 무력화하고 반격 능력을 보유하자는 이야기가 힘을 얻는 걸 보면서, 자기네 영토가 망가지면 다른 영토를 노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생겨요. 한국은 북한이나 다른 나라의 기후난민이 몰려올 때 서독 사람들이 동독 사람들을 대하듯 환대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 통일의 씨앗이 될 수 있을까 상상해보고 있어요. 그 반대는 너무 비참하니까. 연말에 동학 수련을 다녀오면서 하느님부터 단군, 수운, 해월 모두에게 우리를 지켜주시옵소서 기도를 했네요.
윤석: 저도 얼마 전 일본 교토에 다녀왔는데 제 스승께서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전기를 하나도 안 쓰는 분이시라 추운 방에서 물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넣고 자다 왔지요. 이번에 쓰치다 다카시槌田劭 상이라는 분을 소개해주셨어요. 돌아가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 친구분이시고, 한국에 『지구를 부수지 않고 사는 방법』이라는 책도 나와 있어요. 전 교토대 교수이셨는데 핵발전소의 위험과 공업사회를 고발한 후에 일본의 한살림 격인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使い捨て時代を考える會’을 설립하셨어요. 몇십 년째 매주 금요일마다 도쿄전력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세요. 저는 세 가지 녹색이 어떻게 같이 갈까 여쭈었어요. 활동하는 감성(기후정의), 연구하는 이성(녹색전환), 성찰하는 영성(생명평화), 모두가 중요한 것 같은데 서로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하는 것 같다, 왜 다 같이 못 갈까 여쭈었더니 딱 한 글자로 써주시는 거예요. 그 글자 있잖아요. 힘 력力 자가 세 개 모여 만든 협력할 협協 자요.
현경: 우리 시대는 양극이 통합하지 않으면 폭발하는 것 같아요. 유니언 신학대의 내 스승 중에 라인홀드 니버라는 분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을 썼어요. 크리스찬 리얼리즘 입장이라고 하는데, 진짜 세계에서는 힘은 힘에 의해서만 균형을 잡는다고 봤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은 도덕적이지만, 그들이 자본가나 민족 국가가 되었을 때 그 집단은 굉장히 이기적이라는 거죠. 전쟁 문제도 모든 개인은 평화주의자인데 이번 전쟁처럼 푸틴이 밀고 들어오면 항복해서 다시 식민지가 될까, 싸워서 주권을 지킬까 기로에 서게 된다는 거죠.
희연: 윤석이 이성과 감성과 영성에 대해서 말했듯 평화학에서는 학문을 넘어서 실천적인 부분을 굉장히 중요시해요. 그래서 이론을 연구하는 데 집중하지만, 그만큼 자신을 돌보고 현실에서 어떻게 비폭력 상호작용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작업이 함께 이루어져요. 그럼에도 개인으로서 전쟁처럼 극단적인 폭력 상황이 닥치면 그에 대응하려는 작용이 먼저 발현되는 건 사실이에요. 다차원적 사고나 여러 선택지들이 삭제되고, 아주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과정이 작동하는 거죠. 평화학을 연구하면서 그러한 현실에서 ‘나’라는 개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채롭게 형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인간, 동물, 기계가 연결되는 살림의 세상
현경: 내가 작년에 제일 감명 깊게 읽는 책이 정보라 작가의 『저주 토끼』였어요. 처음에는 못 읽겠더라고요. 왜 젊은 여자가 이렇게 잔인한 책을 썼을까. 내 감성하고는 너무 안 맞는다 싶었는데 읽을수록 가슴이 무너지면서 이게 우리의 현실이지 싶었어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가 인간과 동물 그리고 AI에요. AI에게도 영혼이 있는가,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는가, 그들은 어떤 존재인가 묻는 작품이에요. 기독교 역사에서 300년 동안 여성에게도 영혼이 있는가 토론했잖아요. 그 잘난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석학들이 부정해온 역사를 여성들이 뒤집었고요. 그런데 지금 우리도 동물에게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막 개싸움, 소싸움 시키고 잔인하게 도살하고 그러잖아요. 동물해방운동이 그렇듯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음을 우리 모두 알게 되겠지요. 정보라 작가가 묻는 우리와 사이보그의 차이에 대해서도 충분히 응답해야 해요. 이것이 우리 시대의 근본적 물음이고, 도나 해러웨이와 같은 질문이에요. 우리는 어떻게 AI와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어갈까? 인권이 있다면 AI권도 있어야 하지 않나? 이런 게 정말 고민이죠.
나는 에코페미니즘이 물질주의와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에코페미니즘이 우리 시대를 뚫고 나갈 수 있는 철학이라고 박사 논문에 썼는데, 그때는 자연만 생각했지, 로봇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영성과 물질성의 통합은 어떤 면에서는 이상과 현실의 통합일 수도 있어요.
윤석: 원불교 경전의 첫 문장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이지요. 이전에는 물질이 발달했으니 이제 정신이 발전되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하고, 물질을 부정적으로 보는 성격이 강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을 통합적으로 사유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경 선생님과 장일순 선생님의 대담에 나오는 동학의 삼물(경천, 경인, 경물) 사상도 떠올라요. 물질은 이용 대상이 아니라 아끼고 공경할 대상이고 생명의 분신이라는 생각의 차원으로 가지 않고서는 지금의 문제를 풀지 못할 것 같습니다.
현경: 이번에 한국에 온 뒤 사실 좀 놀랐어요. 『미래에서 온 편지』에서 살림이스트 선언을 쓴 게 20년 전인데, 동물해방운동을 하는 젊은이들이 나보고 “살림이스트 원조세요?” 하는 거예요. 그들이 살림이라는 코드로 동물해방과 비거니즘을 풀어가는 게 너무 놀라워요. 어쩌면 내 세대의 살림이 철학적인 지향이었다면 여러분의 세대의 살림은 실존적인 지향인 거에요. 죽임의 순간이 너무 가까워졌으니까요. 비상시에는 인권이고 뭐고 작동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이 현실이잖아요. 그럼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에코페미니즘의 전망이 너무 커진 것 같아요. 제가 자주 인용하는 아메리카 선주민 우화가 있는데요.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어머니가 열두 명의 아이들에게 처음에는 땅을, 다음에는 집을, 심지어는 다리와 팔을 주다가 “목을 주세요.” 하니까 다 잡아먹었어요. 그게 우리 시대예요. 지구가 우리를 다 잡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구하고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할까요?
희연: 저는 요즘 플루리버스와 가이아 이론에 집중하고 있어요. 이 둘은 지구를 비롯한 존재들을 기존의 학문 또는 철학과 다르게 바라보는 관점을 가졌어요. 이전에 백인 남성 학자들이 만들어놨던 세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지역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힘을 볼 수 있어요.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살림을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실제 죽음의 위협을 극복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결인 듯해요. 살림이라는 한국의 전통적 코드를 지금 세대의 상상력으로 만드는 힘이 우리에게 있는 거죠. 저는 또한 우리가 그 힘을 다양한 작은 집단들 안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은 거대하고 위대한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 작은 집단들의 활발한 네트워크라고 봐요. ‘나’와 ‘너’를 서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집단이 전 세계적으로 많아져서 상호작용할 때 인간을 넘어선 존재의 살림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현경: 여성신학, 해방신학을 하면서 나에게 많은 학문적, 정치적인 영감을 준 네트워크가 있는데요. 1970년대 시작되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신학자들이 일 년에 한두 번씩 모였어요. 그때만 해도 학문 세계가 모두 중심이었잖아요. 그런데 흑인 해방신학자 제임스 콘 같은 사람들이 유럽과 미국을 통하지 말고, 식민지를 경험하고 벗어나야 하는 우리끼리 좀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어요. 대단한 영감을 얻었지요. 일단 학문의 방법론부터 달라져야 하고요. 신학과 정치의 관계가 너무 중요해요. 해방신학은 다 현장에서 시작했어요. 라틴 아메리카의 베이스 커뮤니티, 아프리카의 인디펜던트 처치, 한국의 민중신학, 일본의 백정신학을 유럽 사람, 미국 사람 빼고 논의했어요.
나는 뉴욕에 살면서 온갖 세계적인 운동가들을 만나왔는데, 결국 나의 뿌리인 로컬에서 시작하는 게 가장 힘이 센 것 같아요. 학자로서의 새로운 자기 인식과 자부심이 필요해요. 옛날에는 항상 유럽과 비교해서 뭔가 모자란 느낌, 학문적 열등감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서 굉장한 일들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기존 시스템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내가 아는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조언하기를 땅을 구해서 스스로 먹을 농사를 지으라고 하네요.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해왔던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전망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어요.
윤석: 얼마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탈성장 대학이 생겼어요. 기후생태위기라는 물리적 조건의 변화가 교육까지 온 거죠. 과거와 다른 전환의 세계관과 세계감을 가진 이들이 모여들어 생태경제학과 정치생태학을 공부해요. 이전에 경제학계에서는 생태경제학 이야기를 하면 코웃음을 쳤는데 지금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학문적 힘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더 좋은 건 이 사람들이 학교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거예요.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렸던 자급자족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첨예하고 가장 앞선 이야기라는 게 희망이 아닐까요?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온전함의 여정
윤석: 원래 주제였던 에코페미니즘으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희연이 저한테서 문순홍 선생님 유고집 『생태학의 담론』을 가져간 게 떠오르네요.
현경: 문순홍 선생님, 정말 대단한 생태정치학자라고 봐요. 아직까지 그 영역에서 가장 지혜롭고 이야기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문순홍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에코페미니즘은 달밤에 옷 벗고 춤추자는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신이 여성이었던 시대의 정치경제를 같이 보는 거예요. 가장 소수자를 잘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 무엇일까? 그게 엄마 중심, 할머니 중심의 사회였다는 거지요.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풍요와 돌봄이에요. 그 시대에는 군대도 수비군만 있었고 공격군은 없었어요. 에코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가장 대극에 있는 게 여신문명 시대의 정치경제였던 거예요. 그때가 진정 선물경제였고 예술과 스포츠가 풍요로운, 사회적 약자가 소외되지 않는, 정말 오래된 미래였다는 거죠. 우리도 얼마든지 그렇게 살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에코페미니즘 평화운동의 목표는 딱 하나면 돼요. 그 무엇도 죽이지 말라. 죽이지 않는 게 살림이에요. 서구 계몽주의 이후에 이성의 문화가 너무 오래 이어져 왔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거리가 먼 게 머리부터 가슴까지라고 해요. 우리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야 해요. 가슴 중심의 문화가 할머니, 어머니 중심 문화이고요. 이건 막연한 환상이 아니에요. 과거에 그렇게 살았으면 지금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거잖아요. 여러분 세대가 살아야 하잖아요. 그렇게 찾다 찾다 살림을 찾아낸 것 같아요. 너무 돕고 싶고, 철학적 지향으로서의 살림이스트가 실존적 필요가 된 이 시대를 축복합니다.
희연: 한국에서 어떤 이론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많이 생각했어요. 플루리버스와 가이아 이론 연구는 모계 사회에 집중하는데, 한국철학 가운데 그러한 철학이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요. 저는 평화학과 맞닿을 수 있는 게 동학이라고 생각해서 평화학과 동학을 함께 연구하고 있어요. 특히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동학을 재해석하는 데 관심이 있어요. 이것이 한국의 플루리버스를 만들고 가이아를 찾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러던 중에 문순홍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어요. 저는 제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연구가 평화학, 인류학, 생태학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는데, 문순홍 선생님이 하는 말과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의 결이 같은 거예요. 그래서 ‘내가 지금 하려는 학문이 정치생태학이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분의 연구가 지금 시대에도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현경: 문순홍 선생님을 희연이 살려낼 때,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네요. “당신의 어깨에 서서 다시 시작합니다.”라는 말이 있어요. 문순홍 선생님의 어깨에 서서 희연의 시대를 이야기하는 게 중요해요. 반다나 시바는 토종 씨앗 네트워크를 만들어 식량정책과 경제를 연결했고, 케냐의 왕가리 마타이는 나무 심기와 민주주의를 연결했어요. 칠레에는 에스페란도라는 에코페미니스트 그룹이 있고, 에콰도르와 컬럼비아에는 에코페미니스트 정치가들이 있어요. 이들의 운동에 날개를 다는 게 희연이 이어갈 일 같이 느껴지네요.
윤석: 저는 한국의 살림 철학을 생태경제학과 연결하고 싶어요. 살림학이라고 쓰면 어떨까 싶기도 해요. 우리 시대는 죽임의 시대잖아요. 저는 자살 관련 통계를 자주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는데, 통계에 얼굴이 보이면 가장 무서운 것같아요. 이태원 참사 이후에는 더더욱 어려워요. 우리는 열심히 뭔가를 만들고 있지만, 실제로 죽어가는 것을 멈추는 데는 너무 무력해요.
현경: 죽어가는 사람 옆에 딱 한 사람만 있어도 안 죽어요. 그래서 커뮤니티가 점점 중요해지죠. 자살은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닻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너무너무 난세라서 대단한 영웅들이 태어날 것 같아요. 정말 여러분 세대는 멸종할 수 있거든요. 이왕 멸종할 거라면 두려움 없이 해보는 거지 뭐. 그런 현실이 주는 자유가 있어요. 걱정 말아요. 나는 우리 시대를 꼭 디스토피아로 보고 싶지 않아요.
희연: 정말 그런 것같아요. 저는 지금의 20~30대가 불안과 무기력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느껴요. 그것이 때로는 분노를, 때로는 자유를 가져다주고요. 저는 자유를 택하는 편인데, 직장을 관두고 유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자유가 너무나 좋았어요. 하지만 인류세, 플루리버스, 죽음 같은 주제가 저에게 오롯이 담기면서, 아프더라고요. ‘죽어가는 존재들을 살리기 위한 연구는 어때야 하는 거지?’라는 질문이 파도처럼 계속 저를 치면서 마음이 아렸어요.
현경: 진짜 실천적인 학문은 아파야 나와요. 재밌어서만은 안 나오는 것 같아요. 제가 논문을 현학적으로 멋있게 써갔더니 나의 지도교수였던 제임스 콘 박사가 “너는 현학적인 죄를 짓고 있다. 네가 정말 세상에 쓰임 받으려면 네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을 찾아라.”라고 말해줬지요. 나에게 제일 아픈 건 뭐지, 내 가슴을 찢어지게 하는 건 뭐지 찾다가 여성해방신학과 에코페미니즘으로 가게 된 거예요. 조안나 메이시와 마가렛 휘티어가 쓴 『생명으로 돌아가기』를 같이 읽고 있어요. 메이시가 이런 질문을 해요. 요새 네 기분이 어때? 뭘 느껴? 절망 속에서도 감사하는 게 뭐야? 절망과 감사를 동시에 느끼면서 네가 잘할 수 있는 게 뭐야? 그는 불교도답게 희망을 주지 않아요. 너의 세대에 인류가 멸종할 수 있다고, 있는 그대로 보라고 말해요. 휘티어는 일생 학교나 기업에서 어떻게 하면 민주적이고 공감을 형성하면서도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지 강의했대요. 그런데 잘 안된대요. 그 이유는 현재 지도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놓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는 제도권에 들어가 세상을 바꾸는 일을 놔버렸어요. 그리고 말해요. “당신이 있는 곳에서 ‘온전함의 섬Island of Sanity’을 만드세요. 미래에 어떻게 살겠다가 아니라 오늘 당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사세요. 그 섬들이 둥둥둥 죽어가는 이 지구에 떠다니면서 서로 연결돼 면이 되고 입체가 되도록 하세요.” 어떻게 연대하냐고요? 나 자체가 온전함의 섬이 되는 거예요. 물에 빠진 사람들이 허우적거릴 때 내 섬에 건져내서 같이 가는 거예요. 나는 요새 그들을 매일 생각해요. 어떻게 느끼지? 뭐가 무섭지? 감사하는 것은 뭘까? 다 기록하고 써야겠다, 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윤석: 온전함이라는 말이 깊이 남네요. 앎, 아픔, 아름다움이 이 대화를 관통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경 선생님, 이제 정담을 마칠 시간이 되어서요, 마지막으로 《바람과 물》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릴게요.
현경: 모든 살림은 자기를 믿고 사랑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내 책 『미래에서 온 편지』의 일계명이 ‘나 자신을 사랑하라.’인데요. 종교적 인식론에서도 믿어야만 보이듯이 사랑해야만 보이는 게 있어요. 그전에는 안 보여요. 자기 사랑에서 시작하기 위해 노력하세요. 자기를 정말 사랑할 수 있을 때 이웃도, 동물도, 식물도 사랑하고 새로운 시스템도 만들 수 있어요. 아무것도 안 될 때는 숨만 쉬어도 괜찮아요. 숨만 쉬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게 사랑이에요.
현경 교수(왼쪽 두 번째)와 동학공부모임 ‘번개벽파’의 멤버인 윤석, 희연, 지용(왼쪽부터). 제공: 윤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