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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Jun 23. 2024

선을 지운다. 경계를 흐린다.

2024.6.6. 네 번째

전선을 긋는다. 가장 싫어하는 말을 꼽자면 이 문장이 들어가겠다. 운동을 하고자 하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그리고 우리들을 많이 다치게 하는 표현이다.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쓰는 전쟁 언어의 잔재이기도 하겠다. 이 표현에 어울리는 형용사는 ‘선명한’이겠고, 부사는 ‘분명히’겠다. 선명한 전선을 분명하게 긋는다. 나는 이 말과 불화한다.

‘사직동 그 가게’ 안으로 들어와 인형 위에 앉은 나비. 사진 제공 : 장윤석


이 말은 ‘이것’ 또는 ‘저것’의 이분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나와 너, 적과 동지,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도 자매 표현이다. 구분의 힘은 세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그것이 문제이고, ‘우리’의 ‘이것‘은 ’그들‘의 ’저것‘과는 상반되는 정의와 도덕을 담고 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그 강한 흑백논리의 연장선에서 이 말이 등장한다.

물론 세상에 악당은 정말 많다. 꼭 악당이 아니라도 전선을 그을 필요와 일은 생기기 마련이다. 모두와 평화롭겠다는 발상은 위선이 되기 일쑤니까.


하지만 반대로 내 앞에 있는 너를 너무 쉽게 악당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모르는 너의 맥락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맞다고 생각한 것이 꼭 그러라는 법은 없지 않나. 그동안 맞다고 생각했던 것 중에서 정말 맞았던 것이 얼마나 있었다고. 적어도 나는 우리가 전선을 긋겠다는 말을 너무 쉽게 남발하고 있다고 느낀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전쟁의 구도와 습관에 매여 내뱉는 전쟁의 언어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할 때면 신 샘이 보고 싶어진다. 참 황희 정승 같은 사람이었다. 당신 말이 맞소. 아, 당신 말도 맞소. 대강 맞다고 하고 어물쩍 넘어가는 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정의가 ‘이것’ 또는 ‘저것’의 적대의 구도가 아니라 ‘이것’ 그리고 ’저것‘으로 조화의 구도를 이루도록 살뜰히 신경 쓰는 이였다. 구도가 둘의 관계를 넘어갈 때도 이것 또는 저것 그리고 그것 이렇게 합을 맞추는 이였으니 중재자와 피스빌더로서는 탁월했다고 하겠다. 선을 긋는 사람이 아닌, 선을 지우는 사람. 경계를 분명히 하기보다, 경계를 흐리는 사람. 내가 기억하는 그는 그런 사람이다.


세상을 모 아니면 도로 생각하던 경향이 크던 내게, 갈등을 가능성으로 만드는 그 지혜로움은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선을 긋는 것의 중요함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하긴 하지마는, 선을 쉽사리 긋기 전에 여러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리고 쉽사리 그어지는 선들 가까이로 가서 지우고 흐리는 역할과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이 우리 운동의 다정함과 따뜻함을 만들어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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