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30 열세 번째
하루새 추모축제를 기다리던 마음에서 그 시간을 그리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눈에 선한 순간이 많았다. 함께한 그 순간들이 참 좋았다.
애도의 방법에 정답이란 없겠지만 홀로 여한을 반복하고 쌓아가는 것보다, 함께 많이 울고 또 웃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울다가, 웃다가, 다시 울다가, 다시 울다가 그 차이나는 반복이 참 좋았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기억의 속성이라는 것이 본래 유한하고, 우리가 가진 기억은 다 하나의 조각이라는 것. 그렇기에 어제와 같이 저마다의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어 놓고 퍼즐처럼 맞추어가는 함께-기억이 중요한 게 아닐까. 그걸 유한자의 무한결속이라도 부를 수도 있겠다.
리추얼은,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제 처음 얼굴을 뵌 조합원이 열 명은 되는 것 같다. 신 샘 덕에 이리 귀한 인연들을 만나가는 것이 어찌나 감사한지, 그리고 행복한지. 추모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은 단언컨대 참 즐거웠다. 물론 우여곡절이야 어디든 있지마는, 회의를 마치고 집 가는 길에 춤추면서 돌아간 기억이 제일 선명하다.
어제의 추모축제에서 연주했던 Andata가 난 늘 슬픈 곡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힘이 느껴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같이 서클 댄스를 추는데, 맞잡은 손에 담겨 오는 힘이 참 좋았다. 생태적 슬픔은 사랑의 에너지라는 말이 이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 사진첩에 신 샘과 같이 찍은 사진은 한 장뿐이었다. 예절 그게 뭐라고 그래서 신 샘과 맞담배도 안 폈다. 가끔 부담되어서 전화도 일부러 안 받았다. 늘 이런 아쉬움과 후회가 남아있었는데, 어제 함께한 우리의 이야기에서 좀 풀려가는 걸 느꼈다. 이제 여한은 없고 추억만이 있을 것 같다. 함께한 나날들이 다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