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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Oct 21. 2024

흘러가는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다

산주안 2024.9.12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느새 여정이 희미해져 간다. 나는 이 희미해져 기는 시간의 감각을 괴로워하는 편이다.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그러나 그럴까. 내가 이렇게 아쉬운, 씁쓸한, 혹은 비스름한 말들을 하면 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그 모든 시간들이 다 네 안에 새겨져 있다고. 나는 달리 확인할 방도가 없음에도, 그렇게 믿지 않으면 너무나 속상할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온 지 일 년이 더 지나서 순례기를 쓰는 이상한 분을 알고 있다. 기억이 안 날 법도 한데 기억에 메모에 의존해서 한 땀 한 땀 복원해 내듯이 썼다. 나는 그 글이 참 좋았다. 처음 순례를 떠나야겠다는 다짐을 그때 했기도 하고. 아마 이 글은 그렇게 친절하지는 못할 것이기에, 누군가로 하여금 순례를 떠나게 하지는 못할 것 같지만, 그보다 무언가 항상 후회하고 그리워하는 이가 그 마음 좀 덜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번 그 순간에, 지금-여기-가까이에 머물고 현존하는 것은 어찌나 불가능성에 가까운지. 가능하면 기억이 생생할 때 여정기를 적고 싶지만,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 하에서 인간의 기억력이란 참으로 보잘것없기 일쑤다. 하지만 감정은 사라졌어도, 정동은 어느 시점이던지간에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다. 움직이는 감정의 성격을 상기해 보자. 


길이란 것은 참으로 애매뭐시기 하다. 끝이 있는데, 끝이 없다. 그리고 얼마나 걸어야 하지, 나는 왜 걷고 있지. 같은 생각이 드문드문 인다는 점에서 이상하다. 현기 스님은 돌이키니 삶이 하나의 순례 같았다고 회고하셨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참 맞는 말이라 여겼다. 그 깨달음을 꼭 길을 걸어봐야 아는 것이 사람이란다. 결국 무수한 우왕좌왕과 방황은 다 무언가로 이어지고 얻어내기 위한 필연의 과정이란다. 이것이 말하면서도 낯선데, 그렇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그제 전주에서 열렸던 어느 결혼식에서 오랫동안 못 보던 이들을 만났다. 아끼던 커플이 연을 맺었다. 따로따 로 알고 있던 친구와 친구가 전주의 향교에서 식을 올렸다. 너무나도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건넸다. 내가 그간본 결혼식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다. 식을 마치고 또 오랜만에 만난 친구 님과 그의 반려 완의 차를 얻어 타고 어느 장터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의 집에서 우프를 하고 있는 크리스티나를 만났다. 체코에서 왔는데 스페인 북부에서 이런 아기자기하고 귀한 공동체를 꾸려갈 생각이라 한다. 그곳에서 받았던 어떤 환대와 다정함이 자신을 그곳으로 이끈다는데, 그 이야기에서 다시 북쪽 길을 걷다가 받은 환대를 떠올렸다.


이룬에서 북쪽길의 여정을 시작하면, 지도에는 하루 만에 산 세바스티안까지 약 30km를 걸어가라지만, 몸이 안 풀린 첫째 날에 거기까지 한 번에 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마침 비도 오고 그래서 20km를 채 못 가고 어떤 아름다운 항구 마을에 짐을 풀었다. 아 여기에 살면 문학 한 점 나오겠다 싶은 운치가 있는 마을이었다. 베네치아 같이 -그보다 캄보디아의 톤레샵 호수 마을에 가까우려나- 해수면에 아주 가까이 붙어있어서 조만간 위기해 처할 곳이기도 했다. 천 년이 넘어가는 인간의 역사가 그보다 몇 만 년이 넘어가는 자연의 역사에 의해(정확히는 고작 백 년 정도의 인간의 역사 개입으로 인해) 사라져 간다. 그 마을의 이름은 Pasajes De San Juan이다. 아마도. 


아침에 마을에서 나오자 마자 작은 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그리고 마주친 것은 노랑 리본이다. 헉, 노랑 리본이 왜 여기에. 나에게는, 그리고 꽤 많은 우리에게 리본은 세월호의 기억을 불러올 것이다. 찾아보니 노랑 리본은 선원들의 가족이 실종되어 죽었을 지 살았을 지 모르는 님을 기다리며 내걸었던 오래된 문화에 그 시작이 있다고 한다. 올해가 나에게 가진 의미는 세월호 십주년이라는 것이다. 도와 태와 함께 천천히 세월호에 관한 문헌들을 읽어나가고 있었기에, 텔방에 사진을 톡 보냈다. 놀람의 반응이 시차를 극복하고 날아왔다. 십년이 지나서야 나는 세월호의 시간들과 정동들을 천천히 복기하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다. 


잊을 수 없는 환대의 시작은 다음 날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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