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생태학의 렌즈로 살펴본 반복, 이음, 맑음
故신승철의 철학, 신승철학을 세 가지 생태학의 렌즈로 살펴봅니다. 철학자 신승철은 펠릭스 가타리의 ‘세 가지 생태학’을 화두로 생태와 마음의 세 가지 차원을 말했습니다. 생태학에 자연생태, 사회생태, 마음생태가 있다면, 마음에는 넓이, 높이, 깊이의 차원이 있다고요. 이들은 서로 다르지만 불화하거나 상충하지 않고, 설령 그러하더라도 연결된 셋이자 하나로 있다고요. 이에 결맞게/걸맞게 세 가지 생태학의 렌즈로 신승철학(申承澈學)의 반복(申, 거듭 신), 이음(承, 이을 승), 맑음(澈, 맑을 철)을 살펴봅니다.
*이 글은 2024년 6월 29일 故신승철 1주기 추모축제 "지금, 여기, 가까이"에서 발표되었고, 7월 25일 생태적지혜연구소 미디어에 게재되었습니다.
“은사님의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늘 그랬던 모습 그대로 활짝 웃고 계신 그분의 영정사진을 보고, 전 아내와 가족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이 한 번뿐인 삶을 얼마나 충실하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지요. (중략) 일상에 파묻혀 서로의 존재를 망각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았습니다. 끝이 있다는 것이 더 절실한 사랑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은사님의 장례식은 그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그분은 허무를 남긴 것이 아니라,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습니다. 무엇이 최선일까요? 바로 사랑과 욕망, 정동이 최선이 아닐까요? 지위도 명예도 이름도 없이 그저 우주의 먼지와도 같은 존재가 된 그분에게 삶이라는 소풍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 신승철,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1 중
1년 전 이맘때를 기억합니다. 신승철 선생님2의 부고를 받아들고 받아들이지 못하던 날, 장례식장의 해맑은 영정사진 앞에서 절하며 망연자실하던 날, 먼발치의 순례길을 걷다 신 샘이 꿈에 나와 아침에 왈칵 눈물이 고였던 날. 왜 하늘은 좋은 사람을 먼저 데려가는가, 왜 죽고 나서야 너의 의미를 알 수 있는가, 왜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은 왜 늦고야마는가 하고 차오르는 물음들. 오년이란 길지도 짧다고도 못하는 시간 속에서 맺어진 인연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맘때 이후로 몸과 마음의 무언가가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신 샘이라면 분명 낯간지러워 할 말이겠지만 선생님은 제 스승이었습니다. 신승철 선생님에게 삶이라는 소풍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무래도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는 늘 숙제인 것 같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몇 달 뒤 그 숙제를 풀고자 먼발치로 훌쩍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 시간은 저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지만, 돌아간 사람을 애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더군요. 어느 날인가 신 샘이 꿈에 나와 저에게 경을 쳤는데 도저히 그 영문을 모르면서도 제가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채감과 미안함과 같은 정동을 되돌이키며 여한을 쌓아가는 것이 좋은 애도는 아니라는 것을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의 생물학적 유기체는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생태적지혜연구소와 철학공방 별난이라는 사회적 몸체와, 고양이,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이 이룬 정동적 몸체가 남아 이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고.”3 먼발치에서 후회와 자책을 키우기보다, 지금-여기-가까이에 남아있고 살아가는 우리로서의 신 샘과 그 공동체에 함께하겠다고. 애도의 숙제는 함께 풀어갈 때 그 사이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생태적 지혜가 끊임없이 재구성되며 이어지고 이어받는 순간들을 사랑합니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지금 죽어도 참 괜찮은 것 같아.”라고 말했더니 신 샘도 “너, 나랑 생각이 똑같다. 나 자신으로 아무 후회나 미련이 없어.”라고 답한 적이 있더랍니다.4 매일 아침이 단 한 번뿐이라는 시간의 유한성을 진실히 깨달을 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삶의 태도는 무한히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같이 기후생태위기에 절절히 슬퍼하면서, 동시에 그 특유의 상상력으로 우리에게 길이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해맑은 미소를 기억합니다. 그 기억을 이어서 신승철학을 시작합니다.
“어쩌면 아침이 늘 올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색다른 아침을 맞이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5
“이야기 구조가 빈곤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리고 무엇부터 바꾸어야 할지, 어떤 삶의 방식을 채택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 구조의 빈곤에 직면해 있다.”6
사같이 기후생태위기에 절절히 슬퍼하면서, 동시에 그 특유의 상상력으로 우리에게 길이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신샘의 해맑은 미소를 기억합니다. 사진 : 한승욱
우리에게는 상상의 빈곤을 넘어서는 다른 이야기 구조가 필요하다고, 신 샘이 매번 입에 달고 살았던 말입니다. 제 질문으로 바꾸면,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기후는 괜찮은 걸까? 여기서 기후는 우리의 사회와 경제가 묻어들어 있는 생태로서의 기후(Climate)이지만, 우리의 관계망과 문화가 자리잡은 기후(대기, Atmosphere)이기도 합니다. 기후·생태위기의 심화는 더 비할 데 없이 최악의 일로를 달리기에, 우리는 이 위기를 타개해가기 위해 모든 것을 바꿔야 하지만, 정작 똑같은 이야기 구조 안에서 알맹이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밖의 기후 위기 앞에서 정작 우리 안의 기후를 바꾸지 못하고 막다른 길에 다다른 아닐까요. 철학자 신승철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가 천지개벽을 하며 긴급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우리는 이 위기를 만들어낸 사고방식과 표현양상으로 이 위기를 대하고 있다고요. 신 샘은 이어서 묻습니다. “다시 희망을 말하려면 우리에게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라고요.
그렇다면 위기를 만들어낸, 혹은 간과하고 있는 이야기 구조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어떤 다른 이야기구조가 필요할까요. 먼저 “~은 ~이다”는 의미화와 정의(definition)의 논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단일한 답을 찾음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단일한 질문에 단일한 답이 나오는 배경에는 인과관계로 세상이 구성된다는 가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그렇게 살필 수만 있을까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멸망과 위기의 이유 등의 확실한 답이 아니라, 문제 상황과 대면해서 던지는 다양한 문제제기입니다. 즉, “왜(Why) 이러한 위기가 일어났느냐?”가 문제이기도 했지만, “어떻게(How) 이것에 대응할 것인가?”가 더 절실한 상황인 것입니다.”7
“현실에는 다양한 상관관계와 인과관계가 함께 공존합니다. 현실은 복잡계입니다. 하나의 인과관계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법은 없습니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 곁에 다양한 간섭 요인인 상관관계가 들러붙어 있습니다. 현실은 다양한 문제 설정이 어우러져 있고, 다양한 원인과 결과 선과 흐름이 교차하는 공간입니다.”8
대부분의 문제는 어떤 것이 옳은가/맞느냐는 질문이 던져질 때 시작됩니다. 무엇이 옳은지 윤리성의 잣대는 분명 중요하지만, 무엇이 아름다운지, 무엇이 조화로운지, 무엇이 가능한지 다양한 질문의 선택지가 있음에도 이 질문만이 주되게 등장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세상에 무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옳고 그름뿐이라면, 그 사회는 형법만이 작동하는 냉혹한 사회와 같을 것입니다.
대개 이 질문은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이접의 논리로 이어집니다. 이 말은 저에게 함석헌의 “모든 잘못의 근본 원인은 너·나를 갈라 생각하는 데 있다.”9는 말로 풀이됩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너와 나를, 그들과 우리를 나눕니다. 그리고 이 구분의 뿌리를 찾아가면 근대철학의 관성적인 분할과 배리의 이분법적 문제설정에 다다릅니다.
“이항 대립적인 설정 자체는 생태주의의 성격을 이접(disjunction)에 따라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배리의 논리로 이끈다. (중략) 현실은 복잡계이기 때문에, 이항 대립적인 방법을 적용하여 설명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10
이것이냐 또는 저것이냐는 질문 자체가 오류 혹은 위험성을 품고 있습니다. 현실은 수많은 스펙트럼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선택지를 무 자르듯이 양분하여 두 가지로 분류해두고 그 속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관성은 효과적이지만 위험합니다. 우리와 그들의 구분이 만드는 대립 항은 적대의 구도를 낳기가 쉽습니다. 한국전쟁 이후에 남북으로 나뉘어 몇십 년간 증오의 말들을 주고받은 분단의 문법이나, 공룡 같은 거대양당이 독점해 적대적 공존을 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문법이 대표적으로, 이 이야기구조는 이러한 비극에 뿌리를 두고 있을 수 있습니다. 차이가 다름이 아니라 그름으로 인식될 때 크고 작음의 차이만 있을 뿐 전쟁이 시작됩니다. 녹색 혹은 정치의 영역에서 이 이분법은 근본과 현실의 대립, 근본파와 현실파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만약 임의로 나누어본다면 원칙에 충실한 근본파와 현실 논리에 충실한 현실파로 나누어볼 수 있겠지만 (중략) 지난 40여 년 동안 전 세계 곳곳에서 녹색 정치는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서 배타적인 양자택일적 선택지로 갈라져 그 이상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도 신 샘은 근본파와 현실파 사이에 “n분절의 다양한 과정형적이고 진행형적인 다채로운 재특이화 과정이 내재해 있고”, “근본파와 현실파가 서로 이념적으로 완결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늘 배치의 재배치 과정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진행형이라는 점에 주목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즉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현실에 유능한 운동이 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사항이며, 굳이 둘을 갈라치기 해서 이념적으로 투쟁과 반목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드러난다”는 것이지요. “타자화의 논리는 사랑에 무능할 때 발생한다”는 그의 통찰을 기억합니다.
어쩌면 기후위기의 긴박함과 긴급성이 우리로 하여금 뾰족한 마음을 일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냐, ~이냐. 선택하라! 그것도 빨리 선택하라!”하는 이접의 마음이 우리에게 너무 강하게 자리했던 것은 아닐까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우리가 사용해왔던 이야기 구조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보고 싶은 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의 삶의 이야기 구조를 바꾸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는 말이 유독 와 닿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넘어가야 하는 장벽은 비단 핵, 석탄발전소나 거대 양당 뿐 아니라, 이 정체된 시스템을 만든 문법과 이야기 구조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흑백논리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철학자 신승철은 이분법을 넘어서 N개의 분법을, 그리고 그 시작으로 삼분법을 제안합니다.
다리가 두 개인 의자는 없습니다. 삼각대처럼 다리가 세 개부터야 비로소 설 수 있습니다. 2차원의 평면이 3차원의 입체로 바뀌면서, 양적 증가뿐 아니라 질적 전환이 이뤄집니다. 세 가지는 두 가지의 한계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신승철의 삼분법은 펠릭스 가타리의 ‘세 가지 생태학’에 기초해 사회생태, 자연생태, 마음생태의 도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철학자 신승철은 이어서 이 세 가지 생태학이 각기 사회생태주의, 환경관리주의, 심층생태주의에 조응한다고 말합니다.
“‘자연 생태’라고 언급되었던 환경관리주의는 환경 보전과 보존, 기업에 의한 환경오염에 대한 견제와 감시 등의 움직임을 의미한다. ‘사회 생태’라고 언급되었던 사회생태주의는 사회 변혁과 과학기술의 재전유를 추구하는 움직임이다. ‘마음 생태’라고 언급되었던 근본생태주의는 생명 파괴적인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삶의 변화를 추구하며 생태 영성에 따른 대안적 삶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다. 이 세 가지 영역은 주체성의 문제, 사회적 관계의 문제, 자연과 인간의 관계의 문제 등을 각각 의미한다.”11
한국의 녹색계를 이 세 가지 생태학의 렌즈로 살펴볼 때 각기 기후정의, 녹색전환, 생명평화라는 세 가지 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세 축은 저마다의 특성을 지닙니다. 기후정의의 축은 사회 변혁을 위한 운동론으로서, 실천적인 전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녹색전환의 축은 폭넓게 다양한 전환 경로를 인정하며, 실질적인 전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생명평화의 축은 내적 혹은 공동체적 변화에 역점을 두며, 근본적인 전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유의할 것이 하나 있다면 삼분법의 목적은 구분이지 분리가 아닙니다. 세 가지 녹색을 분할하는 경계선으로 작동하는 분리가 아니라, 세 가지 녹색의 구분을 통해 다양한 배치와 전략을 살핌으로써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이 펼쳐져 있는지 살피고자 함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사회, 자연은 전환을 이룰 생태계의 세 가지 구성요소이다.”12 신 샘은 이 세 가지 생태가 서로 다르지만 불화하거나 상충하지 않고, 설령 그러하더라도 연결된 셋이자 하나로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앞선 질문으로 돌아가 우리가 처한 위기를 어떻게 마주하고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습니다. 관건은 이 세 가지 생태의 조화로운 황금비율에 달려있습니다. 된장, 고추장, 간장 중에 어느 하나라도 없다면 우리의 음식은 꽤나 심심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절묘한 맛을 내는 국물은 이 장들의 황금비율로 구성되기 마련이지요. 우리 사회의 전환이라고 다르겠습니까.
“이러한 감속과 가속의 투트랙 전략의 핵심은 하나의 모델에 따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델이 교차 적용되어 탄력성을 갖추었을 때,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본격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인식이다.”13
“우리의 미래는 ’하이브리드‘로 다가올 것이다. 정치 체제로서도 그렇고 운동으로서도 그렇다. 필요한 전환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운동, 모든 운동이 정신없을 정도로 펼쳐져야 하고 대안의 모듈들이 흘러넘쳐야 한다.”14
자료: 펠릭스 가타리15, 신승철16에 이어 장윤석17 도표 제작
그렇다면 신승철, 나아가 신승철학의 이야기 구조는 어떤 빛깔과 결을 가지게 될까요? 신 샘 이루고자 했던 이야기 구조는 단순 소박하게 “생명으로 돌아가기”라고 요약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워진 생태적 지혜를 복원하고, 돌아가 오늘에 걸맞는 오래된 미래를 길어올리는 작업에 그리 열심히였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생명은 목적의식에 따라 행동하지 않습니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과 도구를 동원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요. (중략) 목적에 따라 ‘~은 ~이다’라는 결과를 내기 위해서 질주하다 보면 생명과 자연은 수단이자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생명과 자연은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입니다.”18
여기에서는 신승철학(申承澈學)의 반복(申, 거듭 신), 이음(承, 이을 승), 맑음(澈, 맑을 철)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반복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형화된 반복이고, 다른 하나는 차이나는 반복입니다. 신 샘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아침-점심-저녁, 사계절과, 밀물과 썰물과 같이 생태계를 구성하는 차이나는 반복들에 대해서 말해왔습니다. 그것은 동일노동의 반복 혹은, 자본의 반복적 이윤 창출과는 다른 창조하고 생성하는 순환과 살림의 반복입니다. 이 맥락에서 모심, 살림, 보살핌, 섬김, 돌봄을 강조합니다. 문득 드는 생각은, 무릇 지혜란 시간의 조급함에 섣불리 쫒기지 않고, 자기 자리와 위치에서 꾸준히 무언가를 반복해가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거듭나는 것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동일성의 반복이 아닌, 차이의 반복으로서의 생명, 생태, 생활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보다. 동일성의 반복은 비루하고 똑딱거리는 삶을 주조하는 반면, 차이의 반복은 늘 새로운 것을 생성하는 생명력의 원천이다.”19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도움으로서 좀 더 나은 공동체의 배치와 연결망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 Shane Rounce
다음으로 이음, 연결성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되기(Becoming)는 철학자 신승철이 사랑했던 방법론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도움으로서 좀 더 나은 공동체의 배치와 연결망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철학자 김상봉의 “나는 너를 통해 내가 된다”는 서로주체성의 이야기를 좋아하는데요, 이 말을 “나는 너를 통해 우리가 된다”는 말로 확장될 수 있지 싶습니다. 다름과 차이를 사랑하기에 더 강하고 유연하게 연결될 수 있었던, 이 지혜로운 이음의 철학에 기반해 수많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생태적지혜연구소의 독특한 포용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스칩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는 더욱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더 협동하여야 합니다. 더 연대해야 합니다.”는 말로 끝나는 창립선언문과 같이요. 하나의 단일한 뜻으로 건설하는 공동체가 아닌, 별난 이들이 드글거려도 괜찮은 공동체를 꿈꾸었던 것 같습니다.
“따로 떨어진 100그루 나무보다 서로 연결되어 숲 생태계를 구성한 50그루의 나무가 더 외부 조건에 맞설 수 있다. 그리고 이 숲 생태계 속에서 벌레, 동물, 버섯 등의 생명들이 생성되며 창발될 수 있다. 마음도 사회도 자연도 생태를 이룬다는 생각은 어렵게 느껴지는 개념이다. 그러나 네트워크를 생각해 보면 금방 그림의 구도를 그릴 수 있다. 생태계는 마치 네트워크처럼 직조되고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가장자리나 주위에서 끊임없이 특이한 것을 생산하는 창조적인 관계망이다. 나무와 태양, 바람과 물, 나비와 꽃, 동물과 인간과 같이 연결망은 보이지 않는다. 숲에 조용히 누워있으면 미세한 변화마저도 마음을 자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숲은 조용하지만 보이지 않는 강렬한 흐름이 지나가는 공간이다. 그래서 숲은 생명을 창발한다.”20
마지막으로 맑음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신 샘이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함을 계속 되새겼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떡갈나무 혁명은 숨겨둔 도토리를 까먹는 다람쥐의 우연성의 지혜에 빚을 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맑은 철학을 해맑은 목소리로 반복하고 이어가는 신 샘의 말을 들으며, 때로는 그 낭만하는 그림과 현실의 폭 사이에서 좌절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놓치고, 간과하고, 우선순위에 밀리고 마는 여러 흐름을 보고 느끼면서, 이상적이고,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꿈과 태도를 지켜가는 것이 어찌나 귀한지를 절감한 것도 사실입니다. 매일 시계추처럼 차이나는 반복의 일상에서, 곁의 수많은 생명들을 서로 이어가며, 한없이 해맑은 미소로 안부를 물었던 신 샘을 그립니다. 이 추모축제에 모신 여러분이 신승철학의 반복과 이음, 맑음이란 색다른 이야기 구조를 맛보며 함께 춤추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기후위기 선언, 탄소중립 정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것은 마치 절박하고 파열된 우리의 마음에 주는 일종의 진통제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친구, 가족, 이웃과 만든 관계와 배치가 던져주는 마음의 생태계에서 진정으로 출발해야 한다. 기후위기를 설명할 때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현실의 변화가 없는 무의미한 선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계와 배치의 변화를 통해서 마음의 성좌를 바꿔나갈 때 현실의 변화는 느린 거북이처럼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탈성장 전환사회는 우리의 가난한 마음, 연결의 마음, 연대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웃과 친구와 가족과 더불어 가난해질 때, 우리는 온갖 가식과 허위를 벗고 마음의 깊이와 높이, 넓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야 우리의 마음이 기후위기 상황에 입체적이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 속에서 희망의 이야기를 다시 나누어볼 수 있는 여지도 생겨날 것이다. 희망은 모든 것이 산산이 흩어져버린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작은 목소리지만 여전히 울림이 되는 마음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21
“우리는 ‘녹색당’이라는 작은 씨앗입니다. 이 씨앗을 싹틔워 인류가 지구별의 뭇 생명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초록빛 세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는 작은 도토리 하나가 만드는 떡갈나무 혁명이며, 여러 무늬와 색깔을 가진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입니다. 우리는 지구별의 생명을 지키는 지구의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나침반이자 등대이며, 녹색전환의 씨앗을 심는 농부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과 함께, 공기의 순환이나 에너지의 흐름, 그리고 생명의 고동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변화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는 공동체 돌봄과 살림경제, 협동과 연대의 경제 속에서 대안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성장과 물신주의, 경제 지상주의를 넘어서는 정당이며, 화석연료와 핵에너지를 넘어선 태양과 바람의 정당, 문명사적 전환을 만드는 녹색정당, 반정당의 정당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대안정치는 기성정당과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편적 인권을 넘어 생활정치ㆍ다양성 정치ㆍ녹색정치를 통해 소수자와 생명과 자연을 옹호합니다. 우리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과 낙관을 잃지 않으며, 비폭력과 평화의 힘을 통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녹색당과 함께 지구 곳곳에서 녹색전환을 실현할 것이며, 이 길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 녹색당 강령 전문23
신승철 선생님은 녹색당 강령 전문의 초안을 함께 쓰셨다고 합니다. 녹색당 강령의 전문은 떡갈나무 혁명과 같이 아리따운 말들로 그득해 10년이 넘도록 당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강령의 첫 어절에 대한 신승철 선생님의 주해를 첨부합니다.
“녹색당을 씨앗이라고 본 것은 늘 싹을 틔우는 형성과 구성과정 중에 있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어떤 완성된 모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발아하고 창안하며 늘 씨앗처럼 잠재성과 깊이를 가진 상태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한 목표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에 수단과 도구를 설정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식이 아닌 늘 사안에서 형성되는 사람들에 주목하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삶의 방식에 주목하는 것이다. 즉, 녹색당이라는 씨앗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삶을 재창안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셈이다
“생태계는 서로 연결된 판과 배치이기 때문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면 그와 연결된 주변과 가장자리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다시 말해 작은 변화를 강건히 반복하고 지속하는 한, 그 가까이에 있는 사물, 인간, 생명은 함께 변용하거나 적어도 태도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녹색당은 이런 점에서 생태혁명, 네트워크혁명, 연결망 혁명과 같이, 작은 도토리로부터 시작하여 온 산을 뒤덮을 떡갈나무 혁명을 만들어낼 주체성이다. 녹색당의 정치는 의식적으로 세를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의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통해서 점차 스며들 듯 주변과 가장자리의 변화를 촉발하는 방식을 따른다.”24 그 10년을 지켜보면서, 신승철 선생님에게 지금의 녹색당에게 하고자 하는 말들이 있는 것 같아 대신 옮겨 적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부분은 한국에서의 녹색당이 근본파와 현실파의 대립이라는 각국의 역사적인 흐름을 넘어서 이미 n분절의 생태주의, 스펙트럼으로서의 생태주의, 과정형적이고 진행형적인 재특이화 과정으로서의 생태주의, 원칙에는 철저하지만 동시에 현실에도 유능하기 위한 여러 결의와 실천 방안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강령 전문에 담았다는 것이다. 중략) 한국에서의 녹색당은 근본생태주의, 환경관리주의, 사회생태주의의 삼분할에 따라 균형 잡히고 역동적인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중략) (한국녹색당은) 근본파와 현실파의 대립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적 녹색 정치의 한 모습을, 아직은 씨앗의 수준이나 더 다양하고 포괄적이며 급진적인 형태로 나아갈 잠재력의 일면을 드러낸다.”25
우리는 녹색당 강령 전문에서 세 가지 생태를 모두 읽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뜻 귀하게 받아서 우리를 살리고 돌보고 지키고 싶은 바람을 함께 전해봅니다. 그리고 한 명의 후학 혹은 이어달리기 주자로서 앞선 길을 걸어가며 귀한 바통을 넘겨준 녹색당의 정책자문위원이자, 강령을 함께 쓴 철학자 신승철에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참고문헌(인용순)
신승철,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도서출판 사우, 2019. ↩
철학자 신승철, 생태사상가 신승철, 네 고양이의 집사 신승철. 신승철 선생님을 수식할 수 있는 여러 말들이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 ‘신 샘’이라고 호칭을 붙입니다. ↩
이승준,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여러분, 생태적지혜미디어, 2023.7.8. ↩
장윤석·이승준·박숙현, “탈성장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 물》 9호 ‘탈성장을 향해’, 2023. ↩
신승철,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 도서출판 삼인, 2017. ↩
신승철, 「탈성장 사회 비전과 전략」,『탈성장을 상상하라 – 성장 신화의 종말과 이후 시대』, 2023. ↩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창립선언문, 2019.6.28. https://ecosophialab.com ↩
신승철, 11장 「표현을 관찰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묘한철학 – 네 마리 고양이와 함께하는 18가지 마음 수업』, 흐름출판, 2021. ↩
함석헌, 『인간혁명』, 한길사, 2016(1961). ↩
신승철·정유진·최소연, 『근본파와 현실파 넘어서기 – 새로운 녹색 운동을 위하여』, 도서출판 알렙, 2024. ↩
신승철, 프레시안, “아, 지금이야말로 녹색당이 필요한 때다! – [철학자의 서재] 펠릭스 가타리의 『세 가지 생태학』” 2011. ↩
권희중·신승철,『기후전환사회』, 모시는 사람들, 2022. ↩
권희중·신승철,『기후전환사회』, 모시는 사람들, 2022. ↩
김현우, 「기후위기 대응과 탈성장 모듈 접근」,『탈성장을 상상하라 – 성장 신화의 종말과 이후 시대』, 2023. ↩
펠릭스 가타리, 윤수종 옮김, 『세 가지 생태학』, 2003. ↩
신승철·정유진·최소연, 4장 「근본파/현실파 논쟁에서 가타리의 세 가지 생태학의 의미」, 『근본파와 현실파 넘어서기 – 새로운 녹색 운동을 위하여』, 도서출판 알렙, 2024. ↩
장윤석, “근본파 현실파 넘어 신샘파, -『근본파와 현실파 넘어서기』를 읽고”. 생태적지혜미디어, 2024.4.3. ↩
신승철, 『묘한철학 – 네 마리 고양이와 함께하는 18가지 마음 수업』, 흐름출판, 2021. ↩
신승철, “기후위기와 마음의 생태학”, 생태전환매거진《바람과 물》창간호, 2021. ↩
신승철, 프레시안, “아, 지금이야말로 녹색당이 필요한 때다! – [철학자의 서재] 펠릭스 가타리의 『세 가지 생태학』” 2011. ↩
신승철, “기후위기와 마음의 생태학”, 생태전환매거진《바람과 물》 창간호, 2021. ↩
신승철, 프레시안, “아, 지금이야말로 녹색당이 필요한 때다! – [철학자의 서재] 펠릭스 가타리의 『세 가지 생태학』” 2011. ↩
녹색당 창당 당시 신승철 선생님은 강령 전문 초안을 함께 작성했습니다. ↩
신승철, 녹색당 강령 주해, 2018 추정 ↩
신승철·정유진·최소연, 『근본파와 현실파 넘어서기 – 새로운 녹색 운동을 위하여』, 도서출판 알렙, 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