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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Nov 25. 2024

2024년 11월 25일의 끄적임

다시 태어나고 싶다, 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문장만 보면 걱정스러울 수 있는데, 이 말 안에는 내가 나인 게 불만스러운 마음 한 조각과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의지 한 조각이 들어있다. 어떻게 말해지냐에 따라 나는 정말 왜 이러나 싶은 자책이 되기도, 아 이제부터는 잘해보고 싶다는 다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마음들은 공속하는 경우가 많다. 이 양면성이 나는 신기하기만 하다. 이양면성에 뭔가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비단 나에게만 있는 마음의 궤적만은 아닐 것이다.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과하면 완벽주의의 함정에, 마음이 부족하면 무기력 상태가 된다. 전자는 모든 것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삐뚤삐뚤한 종이를 찢고 싶어지는 마음과도 같다. 완벽한 선을 긋고자 하는 마음이 지나쳐서 어느 것도 긋지 못하는 그런 것. 갑자기 어린 시절에 도화지를 자주 찢고 노트를 새 걸로 금방금방 바꿨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모든 것을 새로고침 혹은 마법처럼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냥 그 상태를 긍정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중요하다. 나는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다 치워버리고 다시 하고 싶은 마음에 정작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하는 관성이 강한 것 같다. 매년 연말 연초마다 겪는 동일한 패턴의 리셋의 오류들이다. 전환은 리셋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려고 하고 있다. 


후자인 무기력은 실은 원인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아플 때 무기력해지는 걸 예로 들자. 한 주간 뭔가 많이 아픈 것도 그렇다고 안 아픈 것도 아닌 환절기 감기에 걸렸다. 몸이 축 처지니 당연히 기력이 떨어져서 뭘 할 맛이 안 나고 일들은 계속 밀리고, 머리 안 쓰고 어디 안 나가는 게임과 만화 보기 같은 것만 손이 간다. 그럼 그럴 때가 있구나 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되고 계속 나를 책망하게 된다. 무기력한데 일들을 해야하고, 먹고는 살아야 하고, 약속해둔 것이 있는데... 의 악순환. 그럴 때는 그냥 양해를 구하고 며칠 쉬어버리는 게 맞다. 아마 우리 사회의 구조 속에서 쉽지만은 않은 대책이지만, 그렇다고 아프다는데 뭐라고 할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니까.


한 명의 경험주의자로, 저번 한 주에서 이렇게 또 배워간다. 그런데 고민이 남기는 한다. 돌봄주의자가 되어가려고 애쓰고는 있고. 그러다보니 타자에게도 자신에게도 관대해지고 있고, 나는 이렇게 늙어가는 것이 무척이나 좋다만, 아무래도 생존이 쉽지 않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생에서 지금이 제일 가난한 때인 것 같은데 이 도시에서 생존하기 위해 부여하는 속도에 내가 따라가지는 못하고 있으니까. 돈이 안 되는 일에 더 마음이 동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도 있고. 아빠에게 가장 부러운 것 한 가지는 일상을 빠릿빠릿하게 영위하는 그 시스템 창조와 성실성의 능력인데, 나에게는 그 힘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 논문을 쓰기 위해서 여러 생산성 툴을 익혀야 하고, 그렇게 전문성을 훈련해나가야 하는데 갈 길이 너무 멀게만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어떤 체계로 익히고 소화해야 하는지 막막할 따름이다. 분명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생산성이란 속도만을 추구하는 효율성이나 자기 착취의 속성이 짙은 갈림성(?)은 아닌데, 일상을 자신이 뜻하는 바로 꾸리고 영위하여가는 방안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걸까. 연말연초가 다가오며 다시 마음들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칠전팔기가 이럴 때 좋은 말일까. 써놓고도 모르겠다. 현명한 가운뎃 지점이 있다고 믿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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