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5. 일본 첫째 날
집에서 나올 때는 왜 그렇게 미련이 많은 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발을 떼면 무언가 달라지는 기분이 일어날락 말락 하는 것 같다. 이번으로 네 번째 일본을 간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로 못 갈 뻔했다. 아는 이도 있고 모르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병역거부자가 되기로 했다. 아직 심사도 진행 중에 있고, 박사를 가기로 한 마당에 몇 년 뒤의 이야기지만 그것은 내 사정이고, ‘나라’라고 불리는 병무청 사정은 또 다르다. 군대 나이로 만 28살, 즉 98년생부터는 2026년 1월 1일이 땅 될 때부터 ‘부득이한 사유’ 없이는 출국이 금지된다. 무시하고 나갈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 기다린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전화, 카톡, 메일 여러 경로로 안내받았다. 몇 년 전부터 ‘단기여행허가’라는 이름으로 형식상의 허가를 구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3개월까지만 허가가 되고, 그 한도를 넘으면 처벌이 기다린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불과 출국 일주일을 앞두고 찾아온 이 재난을 헤쳐가는 과정은 참 우울하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기분이었다. 조금 다른 소리지만 얼마 전 인구주택총조사 조사원을 하다가 영문도 모르게 어떤 할아버지께 “나라가 해준 게 뭔데”하고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는데, 이번 출국 금지 경고를 받은 내 기분도 딱 그랬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범죄자가 된 기분. 그래도 이번 기행은 연구와 활동을 가지가지 겸하는 것이어서 나에겐 부득이한 것이었다. 대학원에서 각종 서류를 떼고, (예비) 지도교수님의 정성스러운 탄원서까지 가지고 어찌어찌 빌고 빌어 출항 하루 전에 허가가 나왔다. 그렇게 짐도 싸는 둥 마는 둥, 밤에 빨래를 돌리고 – 그마저도 영하의 날씨에 우리 평창엔 빨래 금지령이 떨어져 손빨래하고 탈수만 돌렸다 – 기차 시간 삼십 분 전까지 설거지를 하다가 겨우겨우 나왔다. 시트콤의 첫 장면으로는 손색이 없겠다.
그래도 이 지난한 과정 속에서 유한성이 주는 선물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 일본 여정이 정말 귀하게 느껴졌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온 마음에 가득 찬다. 그간 어디 필드트립을 가거나 여행을 가면 그 시공간에 충실하게 휘둘리다가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정신없이 지나가버리곤 하는데 이번에는 그러기가 싫었다. 박사 과정에서 중요한 연구노트가 될 것이기도 하고, 이번 여정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생각과 이야기가 앞으로의 내 길에 큰 영감과 영향을 줄 것이라는 묘한 예감이자 믿음이 스치고 지나가기에.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기록을 – 이것을 유랑기, 여정기, 여행기, 일기, 필드노트 무엇이라고 부르든 – 매일 혹은 매 템포 별로 남기려고 한다. 응원해 주시길.
* 동해항에서 배를 기다리는 길, 어느 가게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