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유랑기

히로시마에 들어서며

2026.1.16. 히로시마 첫 날

by 노마 장윤석

동해항에서 출발한 이스턴드림 호는 돗토리 현의 사카이미나토항에 닻을 내렸다. 배를 타는 건 나에게 조금 무서운 일이다. 이것이 밤바다와 망망대해가 가져다주는 근원적인 무서움인지, 우리가 피해 갈 수 없는 세월호의 기억이 연상되는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배에 오르면 울렁이는 게 있다. 약간의 뱃멀미로 잠을 설친 뒤라 근처의 키에코 온천에 가서 몸을 조금 녹이고자 했다. 동네 주민들이 자주 오는 온천에서 몸을 녹이면서 몸에 힘을 빼고 욕심부리지 않고 유한한 시간을 소중히 마주해야지 싶었다. 새해계획을 기갈나게 세워야겠다는 다짐과 욕심으로부터 벗어나기로 했다. 나는 이미 와버린 새 해를 살고 있다.

버스를 타고 히로시마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이었다. 대도시에 들어왔다는 것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버스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걸어가려고 길을 나섰는데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이상한 건물이 보였다. 히로시마 원폭돔이라고 불리는, 어디선가 한 번 즈음은 본 원폭의 여파로 뼈대만 남은 그 건물이었다. 도시의 중심가에 한적하니 원폭돔이 남아있는 모습은 참 이상했다. 여기가 바로 그 비극의 도시라는 것을 자신의 온몸으로 말해주는 그 건물을 찍으며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 옆에는 동백꽃이 펴 있다. 남도에서, 제주에서 보던 동백꽃을 여기에서 또 보니 반갑고도 슬프고 그랬다. (4.3의 상징도 동백 아닌가.) 이상한 연결감을 알게 모르게 느끼며 강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내가 처음 히로시마의 비극을 알게 된 건 어렸을 적 어느 도서관에서 ‘맨발의 겐’이라는 만화를 보고서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도서관 같은 곳이었으니 교육용 만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용은 무시무시했다. 아직도 그 만화에서 묘사했던 비극의 모양들이 머릿속에 남아있을 정도니까. 그렇지만 세상에는 이런저런 일들이 많고도 험하기에, 또다시 잊어버리고 다시 일상을 살았다. 기후 생태 활동을 하면서 핵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병역거부자가 되면서 평화 이야기에 눈을 두게 되었지만, 히로시마를 가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여전히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암묵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던 내가 히로시마로 오게 된 건 몇 달 전 후쿠시마에서 만났던 모모 덕분이다.

모모는 작년 10월 후쿠시마 스터디 투어에 모인 세계 각지의 청년 멤버들 중에 가장 말과 마음이 잘 통했던 친구다. 나는 기본적으로 일본 활동가 친구들의 기조와 논조에 어떤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왜 정부의 입장에 크게 비판적인 포지션을 취하지 않는가?” 하는 지점이다. 물론 사람 by 사람이지만, 비판적 태도를 골자로 삼는 한국의 시민사회와는 사뭇 다른 정동이 일본의 시민사회에서 느낀다. 반면, 모모와는 이런 점에서 공감대가 있었다. 모모가 들려주기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사람들은 마냥 정부의 데이터와 주장을 신뢰하기는 힘든 역사적 맥락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후쿠시마 투어에서 생겼던 여러 고민들을 다채롭게 나눌 수 있었다. 그 뒤로 언어교환을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오다가, 이번에 일본에 오는 김에 히로시마로 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고.

짧게나마 원폭돔을 보면서 나는 이곳에 왔어야 했구나 싶었다. 앞으로 일본과 한국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게 될 텐데, 이 이야기를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는 게 있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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