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유랑기

나를 기다리는 만남들

2026.1.19., 도쿄, 캄파니아

by 노마 장윤석

도쿄에 도착했다. 야간버스의 피로가 몸 곳곳에서 느껴진다. 이번에 일본에 오게 된 데에는 곧 있을 만남이 가장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재연결 reconnect‘. 이 이야기를 하려면 어디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이 인연에 다다른 혜의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일단은 간략하게 ‘조아나 메이시와 재연결 작업을 찾아온 혜의 여정이 몇 년에 걸쳐 여기에 닿게 되었다’고 줄인다.


우에노 역에 내려 공원 일대를 조금 걷다가 카페에 있다가 만남 장소인 닛포리 역으로 갔다. 줌으로 살짝 만났던 예진과 유카님이 여기 있었다. 수많은 만남이 있겠지만 깊은 만남은 아무래도 다른 밀도의 감각이 있다. 재일교포 3세인 예진의 (서투르다고 본인은 손사래 치는) 다정한 우리말을 들었다. 우리는 곧 혜선과 만나 진과 그 공동체의 농장에 갈 예정이다. 나는 삼 일간 머무르겠지만 이어서 찾아오는 예, 린, 선, 미는 며칠 더 이곳에 지낸다고 한다. 일본에 여러 생태 공동체가 있다고 전해전해 들었지만 직접 만나게 되는 건 처음이라 설렘이 있다.


유카는 불교생태학자 조아나 메이시 선생님의 제자라고 한다. 제자라는 말보다는 뜻깊은 관계였다고 쓰는 게 더 낫게 느껴진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조아나 메이시와 함께 재연결 워크숍을 함께해 왔고, 지금은 일본에 돌아와 학업을 이어가며 조아나의 씨앗을 함께 퍼트리는 역할을 하고 계시다. 부드러운 영어로 유카는 내게 한국어로 ‘반갑습니다’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종이에 써주려고 가방 속을 찾다가 툭 손에 잡힌 건 혜선이 준 작은 노트였다. 이 예쁜 노트를 보면서 너는 어떻게 쓰이게 될까 궁금했는데, 이 만남으로 노트의 첫 장이 시작되었다.


이윽고 혜선이 도착하고, 이동한 근처의 소파가 부드럽고 아름다운 카페에는 예진과 유카의 동료들이자 (사단법인) 캄파니아(compania)의 멤버 사울과 미카가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캄파니아는 같이 빵을 나눈다는 의미로 3S(Soul, Soil, Society)라는 재미난 철학 위에서 일본 곳곳의 멤버 열 명가량이 꾸려가고 있는 공동체다. 하나같이 부드럽고 맑은 미소의 환대에 덩달아 기분이 살랑거렸다.


유카가 혜선의 손을 맞잡고 말했다. “(당신이 여기에 와 주어서) 조아나가 기뻐할 거야. “ 혜선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그들의 맞잡은 손이 참 따스하고 다정하고 단단하게 여겨졌다. 이 만남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지고 흘러가게 될지 궁금하다. 호기심을 안고 함께하게 될 것 같다.


돌아가면서 자기소개가 이어지자 눈물도 잇따라 이어졌다. 유카는 우리의 만남이 몇 사람의 만남도 넘고, 한국과 일본의 만남도 넘으며, 보다 깊고 깊은 시간의 재연결과 같다고 말한다. 수천 년간 이어져 온 관계가 고작 백 년도 되지 않은 관계로 갈음되는 게 너무 슬프고,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연결될 필요가 있다 한다. “우리는 여기서 만나고 다시 걷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남는다. 사울의 소개에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unforgiveness)’이라는 표현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일본이 한국에 가한 역사를 지칭한 표현이고, 그렇기에 우리의 만남이 귀하고 앞으로 여러 이야기를 지어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건네며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울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고, 괜찮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예진은 오래전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 오래전부터 자이니치(Japaness Korean)로서 한국 사람들과 만나사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렇게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같이 퍼머컬쳐 전환마을 운동을 소개하고 함께해나가고 싶다 한다.


유카는 조아나가 자주 들려줬다는 파파치니의 파스타 이야기를 여기에서도 같이 나누고 싶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간절히 소망하면 이뤄진다는 이야기인데, 우리의 만남 사이에서 조아나의 영혼이 같이 깃드는 것 같다고 마음을 말해주었다. ‘연인으로서의 세계 the world as lover’라는 아름다운 문구(조아나 책의 제목이기도 한)도 적어두었다.


여기서 말하는 재연결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누군가 말했던 이 문장이 우리를 잘 소개하고 있는 것 같아 남긴다 “우리의 의심을 전환하고, 자연과 연결하고, 사람을 연결하고, 지구와 연결되기.” 귀한 말들을 더듬더듬 통역을 거쳐서 듣다가 나를 소개하는 걸 잊어버렸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적어도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생각하는지는 깊고 깊게 드러나고 있었다.


올해 9월에 지리산에서 열게 될 재연결 워크숍에 캄파니아 멤버들을 초대하기로 하고, 헤어지는 인사를 나눴다. 나는 도쿄에 올 때마다 그 대도시 특유의 서늘함에 좋지 않은 감정을 느꼈던 것 같은데, 오늘 이후로 도쿄라는 시공간을 조금 다르게 기억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 안에는 어떤 만남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이 귀한 연결감을 며칠간 잘 이어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히로시마에 들어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