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끄적임' 이 단어가 좋다. 왜 그런거 있잖아, 문득 좋아지는 것들. 엊그제 친구 하나가 적어놓은 단상을 보니 '문득'이란 단어가 참 좋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려다 '문득' 좋은데 이유가 뚜렷할 리가 없어 그만두었다. 세상만사에 뚜렷한 게 어디 있을꼬,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는 사소한 것들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다. 이를테면 어감. 끄적임 어감이 얼마나 큐티한지. 끄적끄적. 끄적임.
단어를 끄적끄적 곱씹다가 문득 뜻이 궁금해져 사전을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끄적임'이라는 단어는 없고 '끄적이다', '끄적거리다' 뿐이다. 아마 '끄적이다'를 줄여 '끄적임'이 된 거겠지. 동사를 줄여 만든 만듦새라 그런지 hearing, playing 같은 동명사 느낌이 든다. 그러니 '끄적임'의 느낌은 정적인 '기록!'보다야 되는대로 쓰고 적는 행위 내지 과정이랄까. 아무튼.
사실 '끄적임'은 요새 뭐 하냐는 말에 "글 쓰고 있어요"하기엔 민망해 약간 낮추어 "글이나 끄적이고 있어요" 할 때 쓰는 말이다. 글 쓰는 건 맞긴 한데 '글 쓴다'하면 신춘문예 당선이라던가 칼럼 기고라던가 좀 성과 비스무레한 게 있어야 할 것 같아 말이다. 그냥 내 기록의 소산에는 '끄적임'이라 이름 붙이는 게 가장 편하다.
나는 우울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위해 펜을 잡는다. 세상은 너무나 넓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는 아무래도 막막하기만 하다. 왜 사는가, 에 대한 흔한 넋두리를 변주해가며 계속하고 있다. '잘 살아나가기 위한 끄적임'이라 매거진 제목을 붙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이 막막함을 헤쳐나가기 위한 끄적임 뿐인 것 같아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진리 따위는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 시점과 순간에 적합하고 필요한 것들은 있으리라고 여긴다. 나의 끄적임은 그것들을 찾으러 향하는 활로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