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음악의 시작
탱고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말이 있다면 아마 이 관용구일 것이다. 탱고를 추는데 두 사람이 필요하다 - 동명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이 문장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장, 엄밀히 얘기하면 틀린 말이다.
It takes two to tango는 탱고를 뭘로 정의하냐에 따라 맞거나 틀릴 수 있다.
일단 탱고를 춤으로 국한해서 볼 때. 탱고 댄스는 두 사람이 추는 것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탱고는 단순히 춤의 장르가 아니다. 탱고는 음악과 춤, 시(cancion)가 상호작용하는 종합 예술 장르다. 음악과 시의 입장에서 볼 때, ‘두 개의 손바닥’은 소리를 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Tango is a form of popular artistic expression embodied in several interconnected areas: music, dance and poetry”
<el bandoneon en el tango>, Eva Wolff, 2018
특히나 음악을 얘기해보자면, 가장 '정통적인' 탱고 앙상블의 구성은 6이다. 초창기의 탱고 오케스트라 티피카(Tango Orquestra Tipica)에서 출발한 완전체 구성, 바로 섹스테토 티피코(Sexteto Tipico) 말이다.
두 대의 바이올린과 두 대의 반도네온, 피아노, 그리고 콘트라베이스. 이 여섯 뮤지션의 앙상블(sexteto tipico)이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난 건 아니다. 저 형태가 갖춰지고 탱고가 음악이 되기까진 거의 3,40년이 걸렸다.
탱고의 시작이 언제인지 정확히 얘기할 할 순 없다. 다만 "TANGO"란 단어가 처음 신문에 등장한 게 1880년대 말인 걸로 미뤄보아, 19세기 끝무렵부터 남미를 휩쓸기 시작했다고 추측할 뿐이다. 탱고를 즐긴 건 유럽 출신의 이민자들이었다. 가난한 노동자 계층의 이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나 몬테비데오같은 항구 도시의 좁은 구역에 서로 모여 살았다. 사람들이 모인 데에선 춤과 음악이 생겨나기 마련. 그들은 하바네라(쿠바), 밀롱가(아르헨티나), 칸돔베(우루과이) 같은 남미 리듬부터 아프리카나 유럽 음악까지 뒤섞어 음악을 만들고 거기에 맞춰 춤을 추었다. 그게 바로 탱고의 시작이다.
그때의 탱고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탱고 - 피아졸라든 고상지든 뭐든 - 와 같을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이민자들이 음악을 하기엔 제약이 많았다. 일단 그들은 프로 뮤지션이 아니었다. 대다수가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워본 적 없었고, 때문에 그들의 음악이란 건 간단한 멜로디와 장단 맞추기 정도였다. 악보를 볼 줄도 그릴 줄도 몰라서 즉흥연주를 하다가, 사람들이 좋아하면 반복하면서 그게 주요 레퍼토리 되는 정도.
악기도 지금이랑 달랐다. 초창기 탱고 악기의 조건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갖고 다니기 편할 것, 둘째, 쉬울 것. 피아노는커녕, 반도네온도 당시엔 택도 없는 소리였다. 가장 처음 탱고에 쓰인 악기는 바이올린, 플루트, 그리고 하프. 그다음에 기타나 클라리넷, 아코디언 정도?
그때 사람들이 탱고만 연주한 것도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가벼운 악기들로, 가벼운 리듬에, 가벼운 멜로디를 지어 여러 멜로디를 연주했는데 그중 탱고도 끼어있었다- 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최소 3대의 악기로 탱고 리듬과 멜로디를 나눠 연주했으니, it takes 2 to tango는 탱고 음악의 입장에서 볼 땐 좀 오류가 있단 말이다.
1910년대가 되면서부터 탱고는 음악적으로 성숙해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내가 탱고 덕후라 그렇겠지만, 마치 월요일엔 땅을 만들고 화요일엔 바다를 만들고 하는 성서 속 이야기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일단 하나가 있든 열이 있든 같은 멜로디만 연주하던 바이올린이 티토 로카타그리아타(Tito Roccatagliata)를 시작으로 '카운터 멜로디'를 연주하게 되었다. 마치 송은이&김숙 언니들이 '3도'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단순히 3도 아래를 연주한 건 아니다.)
그 와중에 피아노는 기타를 내쫓고(기타가 하프를 대체하고 있었다) 리듬 섹션의 주연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비교적 어려운 악기인 피아노의 도입으로 전문 연주자들이 필요해진 것 역시 말 안 해도 뻔한 일. 특히나 초창기 탱고의 가장 혁신적인 인물 로베르토 피르포(Roberto Firpo) 이후 탱고는 오선지 악보도 갖추고 음악 다운 음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호세 산타 크루즈(Jose Santa Cruz) 등의 연주자들은 세상 처음 반도네온을 가지고 탱고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반도네온은 탱고 음악에 무게감과 센티멘탈한 느낌을 덧붙여주었다. 멜로디도 느려지게 되었는데, 이건 시대 배경 탓도 있지만 반도네온 악기가 워낙 어려워서 빠른 연주가 힘든 까닭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반도네온은 플루트나 클라리넷의 자리를 빼앗았고.
마지막으로 바이올리니스트(인데 사실 거의 사업가)인 프란시스코 카나로(Francisco Canaro)가 레오폴도 톰슨(Leopoldo Thomson)이라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를 들이면서 마침내 바이올린, 반도네온, 피아노, 더블베이스 - 탱고의 주요 악기가 모두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쯤 되면 탱고의 창조신화라고 할 법 하단 것. 아님 적어도 드래곤볼을 다 모았다고라 하거나.
예술의 발전과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함께 이루어진다. 탱고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1911년. 아르헨티나엔 축음기가 최초로 소개되었다. 아르헨티나의 뮤지션들은 너도나도 앨범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면 확 튀는 이름이 필요한 법. 그 당시 유명 반도네오니스트 비센테 그레코 (Vicente Greco)는 자신의 앙상블과 함께 녹음을 하고, "Orquestra Tipica Criolla"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오케스트라 티피카의 시작이다.
단어의 뜻 하나하나 살펴보자면, Orquestra는 말 그대로 오케스트라, Tipico는 티피컬, 그리고 Criolla는 네이티브를 뜻한다. 그러니까 오케스트라 티피카 크리올라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전형적인 토착 음악", 즉 탱고를 연주하는 그룹이란 거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당시에 아르헨티나에 음악이 탱고만 있는 게 아니었고 뮤지션들은 탱고 이외에 왈츠나 폴카 등 다양한 춤곡들을 연주했다. 그레코의 앙상블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저 그룹명을 쓰며 그레코는 탱고 음악에 집중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뮤지션들 역시 '본인 이름 + Orquestra Tipica'라는 이름을 따라 쓰며 탱고 앨범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탱고 앙상블의 가장 전형(典型)적인 구성 오케스트라 티피카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레코의 오케스트라 티피카는 반도네온 둘 (Vicente Greco and Juan Lorenzo Labissier), 바이올린 둘 (Francisco Canaro and "Palito" Abatte), 기타 또는 피아노(Domingo Greco), 그리고 플루트 ("el tano" Vicente Pecci)로 구성되어 있었다. 역시나 앞서서 탱고의 주요 악기가 바이올린, 반도네온, 피아노, 콘트라베이스라고 했는데 조금 차이가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갑자기 네 악기의 연주자들이 도원결의라도 하듯 한데 모여 연주를 시작한 건 아니다. 탱고 음악의 가장 정통적인 포맷, Sexteto Tipico가 완성되는 덴 시간이 더 걸렸다. 요약하자면, 피아노가 기타를 완전히 대체해야 했고, 피아노의 큰 사운드와 균형이 맞춰지도록 반도네온과 바이올린이 각각 한 대씩 더 추가되어야 했고, 다시 또 리듬 섹션을 보완하기 위해 콘트라베이스가 합류해야 했다. (중간에 퍼커션이 잠깐 시도되기도 했었다)
그렇게 완성된 Sexteto tipico - 두 대의 바이올린과 두 대의 반도네온,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앙상블. 1880년대에 가벼운 춤곡으로 시작한 탱고가, 3,40년 만에 음악으로 발전한 것이다.
섹스테토 티피코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지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사이에도 탱고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다. 전문 뮤지션들이 합류했고, 단순히 춤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듣기 위해 탱고 뮤지션들의 공연을 가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30년대 중반, 탱고의 황금기 (epoca de oro)를 지나, 피아졸라나 호라시오 살간 등 모던 연주자들을 배출해내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정통 구성의 섹스텟이 인기를 끈 건 15년 남짓이고, 황금기 이후에는 뮤지션마다 개성 있는 앙상블을 시도하곤 했다. 그래서 다시 또 엄밀히 말하자면, It takes 6 to tango도 아주 맞는 말은 아닐지도. 하지만 아무래도 탱고 음악을 사랑하는 나는 it takes two to tango란 말을 볼 때마다 딴지를 걸고 싶어 지고. it takes six to tango를 혼자 외치고 싶어 지고. 기왕이면 사람들도 알아줬음 좋겠고. 그래서 이렇게 장황하게 혼자 떠드는 것이다.
첨언 1.
"takes two to tango"는 1952년 미국의 작곡가 두 명이 만든 곡이다. 사실상 탱고도 아니고. 곡을 쓸 때 나 같은 진지충이 딴지 걸 거라고 생각도 안 했겠지... 그런데 사실 또 춤을 추려고 해도 디제이가 필요하고 오거나이저가 필요하고 뮤지션이 필요하고.. 애초에 둘만으론 어렵다. 새삼스럽지만 여기서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
첨언 2.
탱고 음악을 듀오로 절대 연주 안 했단 얘기는 (당연히) 아니다. 기타&반도네온, 피아노&바이올린 등의 시도도 일찍부터 있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걸 얘기하자면,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선, 1920년대에 페라자노(Agesilao Ferrazzano)와 플로레스(C.V.G Flores)가 함께 낸 바이올린/피아노 듀오 곡들이 있다.
페라자노는 탱고 바이올린 역사상 최초로 거장 소리를 들은 양반인데, 그 전 연주자들은 바이올린 소리를 뚝뚝 끊어서 연주했던 반면에, 페라자노는 마치 노래하듯이, 물 흐르듯이 연주를 했다. 그래서 그를 설명하는 말도 "the architect of 'singing violin'"라고.
페라자노와 플로레스는 1922년부터 1927년까지 총 4곡의 바이올린/피아노 듀오 곡을 발표했다. 그중 1927년 발표된 Gloria는 지금 들어도 너무나 아름답다.
첨언 3.
그럴 분 없겠지만 탱고 음악에 대해 궁금한 거 있음 댓글로 알려주세요. 정성껏 썰 풀어드립니다.
(역사덕후 탱고덕후 글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