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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번역가 Dec 06. 2023

밥은 먹고 다녀야죠, 생존 베트남어 5



앱으로 배운 베트남어는 실생활에 아무 쓸모가 없었다.



충동적으로 하노이행 비행편과 현지 숙소를 예약한 후 출발 일주일쯤 전까지 나는 거의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 베트남어 공부는 언어 학습 앱으로 했다. 박쥐가 기차역에 있다, 너는 틀리기 직전이다, 나의 형은 아시아에서 오세아니아까지 헤엄쳐 갔다 등의 예문을 열심히 외웠지만, 역시나 실생활에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베트남어를 읽는 법과 기본적인 문법 구조, 숫자를 익힐 수 있었다는 점에 만족하기로 했다.


영어만 쓰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도 했지만 유명 관광지 주변의 일부 식음료 업장을 제외하고는 영어가 많이 통하지 않았다. 내가 외국인인 걸 알고 당황해서 옆 가게로 가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을 데려오는 사장님을 보니 베트남어를 좀 잘 공부해 올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물론 전 세계 공용어인 몸짓과 손짓, 표정으로 어찌저찌 헤쳐 나갈 수는 있다. 정 안 되면 번역 앱을 동원하면 된다(단, 나이 든 분들은 번역 앱 사용을 굉장히 어색해하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수월하게 밥을 먹고 다니려면 베트남어 몇 마디는 알아 두면 좋다. 매끼 밥을 먹을 때 제일 유용하거나 간절했던 실전 베트남어 표현을 정리해 본다.





밥 먹을 때 필요한 생존 베트남어 5


다 넣어 주세요

여기서 먹고 갈게요

계산해 주세요

기본 숫자

나이에 따른 호칭





다 넣어 주세요: 더이 두(Đầy đủ)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써브웨이' 지점에 처음 갔다가 너무 넓은 재료 선택 범위에 당황해 울음을 터뜨린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하노이에서 처음 바인 미(베트남식 바게트 샌드위치)를 주문할 때 내가 딱 그런 심정이었다. 말도 안 통하는데 자꾸 재료를 뭘 넣고 뭘 뺄지 물어보니까. 


아, 저 다 잘 먹는다고요!


바인 미뿐 아니라 국수, 죽, 밥 등 다양한 음식을 주문할 때 예기치 못하게 재료 선택의 홍수가 닥쳐 오곤 한다. 한 번 소통 실패로 표고버섯채만 넣은 죽을 먹은 후 급하게 공부한 베트남어 표현, 더이 두는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는 경우 생각보다 유용하다. 음식 이름 뒤에 더이 두를 붙이면 다 넣어 달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짜오 수언 더이 두(고명을 다 넣은 갈비죽)


재료 선택이 가능한 가게들은 메뉴판에 더이 두 가격을 따로 써 놓은 경우가 많으니 참고하자. 상대가 발음이나 맥락 때문에 더이 두를 못 알아듣는 경우 땃 까(전부 다)라고 덧붙이면 무조건 통한다.



여기서 먹고 갈게요: 어 더이(Ở đây)


카페나 간단한 일품 음식만 파는 식당에서 주문을 했는데 직원이 뭔가 물어본다면 십중팔구는 매장에서 먹고 갈지, 포장인지 묻는 것이다. 나는 켐 쏘이(찹쌀밥에 아이스크림과 코코넛 칩을 올린 디저트)를 먹으러 갔다가 이 말을 몰라서 플라스틱 용기에 단단히 포장한 아이스크림을 받아다 공원에 앉아서 먹은 적이 있다. 음식을 주문할 때 어 더이 한 마디만 덧붙이면 원치 않게 포장 손님이 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


반대로 포장해 갈 때는 망 베라고 하면 된다. 근데 솔직히 숙소에서 먹을 거면 그냥 그랩으로 배달 주문하는 게 더 편하다.



계산해 주세요: 띵 띠엔 녜(Tính tiền nhé)


베트남의 식당과 로컬 카페는 대부분 후불이다. 먹은 자리에서 영수증을 받고 계산하는 경우도 있고, 한국 식당처럼 카운터로 가서 계산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직원의 이목을 끌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생각보다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다.


지갑이나 지폐를 보여 주며 영어로 체크 플리즈(Check please)라고만 해도 대충 통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장님과 직원 분들의 나이가 많은 동네 식당에서는 띵 띠엔(계산)이라고 말하면 더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다 먹고 값을 지불하고 싶을 때는 띵 띠엔 녜(계산해 주세요)라고 말해 보자.



기본 숫자


언어 학습 앱에서 배운 것 중 거의 유일하게 실제로 도움이 된 것이 바로 기본적인 숫자였다. 사실 숫자는 영어로도 통하는 경우가 많은데(특히 돈), 그래도 숫자를 알면 좀 더 대화가 수월하다.


1: 못(Một)

2: 하이(Hai)

3: 바(Ba)

4: 본(Bốn)

5: 남(Năm)

6: 서우(Sáu)

7: 버이(Bảy)

8: 땀(Tám)

9: 찐(Chín)

10: 므어이(Mười)

100: 짬(Trăm)

1000: 응인(Nghìn)


돈 계산을 할 때 천=K=응인을 기본으로 생각하면 소통이 편하다. 가령 국수 한 그릇이 4만 동이라면 직원이 4만=40K=본 므어이 응인 동이라고 알려 준다. 천 단위를 빼고 본 므어이(40)라고만 말하기도 하고, 영어로 말할 때도 금액에서 thousands는 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에 따른 호칭: 어리면 엠(Em), 연장자는 치(Chị)/아인(Anh)


한국과 베트남 문화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존댓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베트남어 존댓말의 기본은 서로의 나이에 따라 호칭이 달라진다는 것. 언어 학습 앱에서 나는 또이, 상대는 반이라고 부르면 된다고만 배운 나는 출국 직전 이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부모님뻘 사장님을 친구라고 부를 뻔했다니!


물론 외국인이 서툰 베트남어로 주문하면서 반말을 한다고 화를 내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나를 지칭할 때 언어 학습 앱 때문에 입에 붙어 버린 또이(나)를 몇 번 말했지만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처음 보는 연장자에게 반말을 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찝찝하고 민망한 것이 유교권 국가에서 자란 사람의 숙명이 아니겠는가.


베트남어 존댓말의 세계도 깊이 들어가면 굉장히 복잡한 것 같지만, 사실 밥만 먹고 다니면 되는 여행자 입장에서는 스스로를 엠(저)으로 지칭하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 나이가 많은 상대방이 여자로 보이면 치, 남자로 보이면 아인이라고 부르면 일단 부모님뻘 사장님께 냅다 반말로 주문하는 사태는 피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치 어이, 쪼 엠 바인 너이(누나/언니, 저에게 이 빵을 주세요). 이 정도 존댓말만 해도 사장님의 호감도가 달라진다!





여기 정리한 베트남어 표현은 내가 하노이에서 밥을 먹(거나 못 먹)으면서 필요성을 체감한 것들이다. 이만큼에 몸짓만 더해도 큰 어려움 없이 밥을 주문하고 돈을 낼 수 있다.


그리고 분위기도 좋아진다. 식당에 들어가서 씬 짜오(안녕하세요)라고 하는 순간 사장님의 표정이 안 좋아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십중팔구는 당황하거나 영어 울렁증이 도진 상황이었다. 손님의 발음을 듣자하니 외국인 같은데 어떻게 응대하나 근심에 잠긴 것. 서툴더라도 베트남어로 주문하니 갑자기 사장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발음과 성조를 걱정했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내가 모든 단어를 ~ 성조가 붙은 것처럼 말해도 베트남 사람들은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었다.


저↘↗는↘↗ 한↘국↗인↘↗~~ 이↘에↘↗요↗!
이런 식으로 말해도 통한다.


일단 시도하면 안 하거나 영어만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베트남에 갈 때는 베트남어를 조금만이라도 공부해 가기를 권한다. 밥은 먹고 다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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